“성서·성서화 읽기는 삶을 하나의 조각 작품으로 완성해가려는 노력”
[특별기고 ‘책과 사람’]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입 맞출 때》 저자 김학철 교수
7월 말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입 맞출 때》를 펴낸 비아 출판사 편집부가 9월 3일, 저자인 김학철 연세대 교수와 진행한 인터뷰를 블로그에 공개했습니다. 원고를 제공받아 온라인에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8월 30일, 숙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한 카페에서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입 맞출 때》(비아, 2022)의 저자 김학철 교수와 진행한 인터뷰를 공개합니다.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입 맞출 때》에 흐르는 문제의식과 생각을 좀 더 세밀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신약학을 전공하시고 신약학자로 오랫동안 활동하셨는데 성서화, 혹은 그리스도교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2001년인가, 2002년 신약학을 공부하는 와중에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입 맞출 때》에도 소개한 라파엘로의 〈변모산의 예수〉를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 그림은 마가복음 9장에 나오는, 예수가 산 위에서 변모한 이야기와 산 아래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함께 묶어서 표현하고 있었어요. 산 위의 영광과 능력, 산 아래의 무능과 비참을 대비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학자들이 지적인 고투를 통해 이해한 바를 라파엘로는 일종의 예술적 직관으로 보여주더군요. 게다가 너무도 아름답게 말이지요. 지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뒤로 예술, 성서화에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신학자는 성서에 담긴 진리를 논리 정연하게, 문자로 표현하려 노력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를 익히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서화는, 특히 탁월한 성서화는 많은 사람을 그 세계로 초대합니다. 사람들은 그 세계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교 신앙이란 이토록 아름다운 거구나, 하느님은 아름다우신 분이구나, 예수는 이토록 아름다운 분이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지요.
- 신학에서도 성서화를 포함한 예술 작품을 다루는 분야가 있습니다. 문화신학도 있고 신학적 미학도 있고, 도상학도 있는데요.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입 맞출 때》는 기존의 문화 신학이나 신학적 미학, 도상학과는 달라 보입니다.
틸리히의 《문화신학》은 그전에도 읽었고, 본격적으로 성서화에 관심을 가지고 난 뒤에는 신학적 미학에 끌려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의 글들을 좀 읽어보았어요. 하지만 뭐랄까, 어떤 신학 체계로 아름다움을 다룬다는 것이, 달리 말하면 예술가의 통찰을 자기 신학의 소재로 삼는 게 저하고는 맞지 않았습니다. 성서학을 연습해서 그런지 그런 교의학적 신학 체계를 추구하지도 않았고요. 예술에 당위를 부과하면 선동, 아주 강력한 선동이 되기 쉽다는 것도 그런 식의 접근을 지양하게 했습니다. 미술사의 흐름을 존중하면서 그리스도교 전통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이 무엇인지를 모색해야지, 자기 머릿속에 구상한 신학적 체계, 미학적 체계로 현실에 계속 등장하고 있는 예술 작품, 예술 활동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저는 조심합니다. 그래서 저는 예술가들의 작품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예술가들의 통찰과 신학에 위계를 설정하지 않고 그들의 통찰과 성서 읽기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습니다.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입 맞출 때》는 그 산물이고요.
- 책의 방법론을 다룬 장 ‘성서의 시각적 읽기, 그리고 신상(神像)으로 살아가기’는 “성서의 시각적 읽기는 종국에 신의 형상으로서 살아가기를 향한다. 성서 본문을 시각화하고 나아가 예술화하려는 노력은 우리 삶을 시각화하고 나아가 신앙-예술화하려는 것으로 향한다. 성서를 읽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삶을 신앙-예술품으로 조형해 나가려는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됩니다. 인상적인 문장인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앞에서 시작한 생각, 예술가들의 통찰을 받아들이고 이를 성서 읽기에 반영해보니 자연스럽게 이른 생각이에요. ‘신앙을 시각화하자, 우리의 삶을 자체를 하나의 조형품으로 생각해서 우리의 삶을 조형해나가자’라고 말이지요. 조각에는 가법 기법과 감법 기법이 있습니다. 가법은 더하는 거고, 감법은 있는 것을 빼는 것이지요. 우리가 잘 아는 미켈란젤로는 감법의 대가라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그가 말했지요. 대리석을 보면 그 대리석에 이미 형상이 들어있고 조각가의 임무는 그 대리석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빼는 거라고 말이에요. 우리는 대부분 소비와 축적으로 이루어진 자본주의적 삶의 패턴을 살고 이를 완성해야, 무엇인가 계속 늘리고 쌓아야 우리 삶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저 말을 삶에 적용해보면, 우리의 형상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늘리고 쌓기보다는 줄이고 덜어내야 하지요. 무엇을 줄이고 덜어내야 하는지는 좀 더 생각해야겠지만 말이에요. 성서와 성서화를 보고 읽는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의 삶을 하나의 조각 작품으로 완성해 나가려는 노력, 곧 성스러움을 닮아가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우리 자신을 신앙인이자 예술가로 인식하면서 삶을 살아나가려는 노력입니다.
- 성서화를 다룰 때 특별히 기준이 되는 것이 있나요? 아니면 어떤 성서화, 혹은 성서화가가 대화 상대가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스도교인들의 통념을 그대로 반복하는 성서화, 성서화가는 잘 다루지 않고, 다루고 싶지 않아요. 그런 작품들과 그런 작품들을 그리는 화가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런 작품들에 관해서는 이야기할 게 없으니까요. 탕자의 귀향 중에서 탕자가 회개하고 아버지가 받아주고, 장남은 삐져있고 … 그런 모습을 그린 작품들, 전형적인 북유럽계 남성 얼굴에 전형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예수, 그 예수를 두고 전형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주변 인물들을 그린 작품들, 이런 통념을 그대로 반영한 성서화는 대화할 거리가 없죠. 그 통념들을 거스르는 작품들, 비튼 작품들, 다른 시선을 보여주는 작품들, 그리고 그 작품들을 그린 화가들에 관심이 가요. 성서학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오독을 했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일반적인 읽기를 알고 부러 달리 읽었다면, 그래서 왜곡해 표현했다면, 그건 창조적인 오독이고 그 오독의 배경이 무엇인지를 묻고 이야기해 봐야지요.
-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입 맞출 때》 이전에 《렘브란트, 성서를 그리다》(대한기독교서회, 2010)를 쓰셨고, 앤디 워홀에 관한 논문을 쓰셨습니다. 여러 화가 중 두 사람을 주목한 이유가 있나요? 특히 앤디 워홀은 성서화, 성서화가라는 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말이지요.
일단 렘브란트는 탁월한 성서화를 굉장히 많이 그렸습니다. 시각적 주석가로서, 성서 독자로서, 예술가로서 성서를 잘 읽어내고 이를 잘 표현했기 때문에 이야깃거리가 많았지요. 앤디 워홀의 경우에는 의외의 선택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앤디 워홀의 작품들을 보면서 무언가를 보았고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할 거리가 생겼어요. 앤디 워홀의 저 유명한 마릴린 먼로나 엘비스 프레슬리, 마오쩌둥에 관한 작품들이 현대의 이콘화이었고, 색채 역시 전형적인 이콘화의 것들이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로의 성서화를 패러디한 작품도 있고 십자가도 많이 그렸는데 ‘왜 그렇게 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어 좀 조사를 해보았지요. 연구를 해보고 저는 앤디 워홀이 현대 예술, 현대 예술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계를 잘 표현하는 사례라 생각했습니다. 현대 미술 시장에서는 그리스도교적 색채가 있는 작품에 그리 좋은 평가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유명한 화가들은 계속 자신의 종교성을 호소하지요. 그리스도교적 주제를 다루기도 하고요. 하지만 평론가들은 이를 알면서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앤디 워홀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평론가들은 팝아트에 대한 그의 공헌만을, 호사가들은 워홀의 저 유명한 팩토리 생활 같은 것들만을 이야기하지요. 하지만 실제로 그는 꾸준히 종교 생활을 했습니다. 팩토리에서는 집단 성행위가 이루어졌다는 루머가 있고 실제로 마약이 성행했지만, 정작 본인은 마약을 하지 않았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았어요. 자기 집에 기도실을 만들어놓고 기도를 하기도 했지요. 그의 집에서 기도집이 발견되었는데, 그 기도집이 닳아있었어요. 많이 펴 본 거지요. 앤디 워홀은 그 자체로 현대 미술의 분열을 보여주는, 사적으로는 종교에 관심이 있고 이 관심이 자연스럽게 예술에 표현되는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품으로서 또 다른 공적 자아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렘브란트가 성서의 세계를 잘 보여준다면, 앤디 워홀은 현대 예술 속에서 종교가 놓인 상황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어요.
- 《렘브란트, 성서를 그리다》는 성서화가를 다룬 책,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입 맞출 때》는 성서화와 성서학, 인문학의 상호작용을 녹여낸 책인데요. 그리스도교 미술, 성서화와 관련해 좀 더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있으신가요?
애초에는 3부작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성서화가는 누구인가?’ ‘성서화란 무엇인가?’ ‘성서화의 관람자는 누구인가?’ 이런 식으로 생각을 했는데,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만 논문을 썼고, 그 뒤의 질문들은 제대로 다루지는 못했습니다. 지금은 성서화에 대한 열정이 조금 식어서 앞으로 할지는 모르겠어요. 새롭게 공부한 분들이 쓰시는 그리스도교와 미술 관련 글들을 통해서 배우고는 있습니다. 요즘에는 새삼스레 신학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있어요. 신학을 한다는 것에 대해 … 인문학을 한다는 것에 대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실험실에서 실험하는 과학자,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의사와 견주었을 때 신학자는 무엇을 하고, 또 할 수 있을까 … 아마도, 자본의 힘과 권력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이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님을 환기하는 것이겠지요. 어떤 면에서는 예술도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지금 속해있는 질서가 영속적이지는 않으며 전부도 아니라는 것, 끊임없이 그걸 얘기하는 것, 늘 패배하는 싸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맘몬과 리워야단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게, 그 너머를 상상하고 가리키는 것, 그 상상을 삶으로 녹여내도록 돕는 것, 그런 것으로서 신학함, 신학의 길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 한국 개신교 상황, 교회 현실과 관련해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입 맞출 때》에 녹아든 생각을 반영한다면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한국 개신교는, 물론 개신교 자체가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에 견주면 시각적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편이지요. 교회 건축과 예배당 설계만 봐도 알 수 있어요. 한국 개신교 교회 예배당을 보면 대부분 공연장처럼 되어있습니다.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에 대해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나 여백이 없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를 모방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개신교 교회로서 신앙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고, 그 고민 가운데 조금씩 현실화한다면 여러 측면에서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를테면 교회 식당에 가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애찬을 나누는 공간인데 〈최후의 만찬〉이 걸려있으면 의미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저라면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를 걸어놓을 것 같아요. 엠마오 식탁에서 제자들이 예수의 얼굴을 알아보게 되었듯이, 애찬을 나누면서 성도들이 상대방에서 예수의 얼굴을, 그러니까 하느님의 형상을 발견한다는 의미로 말이지요.
- 이번에 편집을 하고, 독회를 하면서 느낀 거지만 교수님 문장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간결한데, 그 간결한 문장들에 일정한 리듬을 부여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사자성어와 한문 단어를 활용하시기도 하고 말이지요. 교수님 나름의 문장론 같은 것이 있으신지요?
별 볼 일 없는 문장이고 문장론이랄 것도 없지만, 글을 쓸 때 몇 가지는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원칙이랄까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보시던 책을 우연히 펼쳤는데 그 책 앞부분에 아버지가 영어로 쓴 문장이 있었어요.
‘열정은 이성의 소리고 간결은 탁월의 상징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파토스를 일으키는 데만 신경을 쓰면 논리를 잃어버리기 쉽지요. 그런 글을 쓰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마다 저 말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리고 과도한 형용사를 사용하지 않고 간결하게 글을 쓰는 건 헤밍웨이 문장론의 영향이 있지요. 정작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었을 때는 낚시 도구를 가리키는 생소한 단어가 너무 많이 나와 사전을 찾다가 결국 잘 읽지 못했지만요.(웃음) 사자성어를 쓴다든지 종종 고어 느낌을 주는 한문 단어 쓰는 것, 혹은 한자어를 어색할 수 있는 우리말로 바꾸는 것은 아마도 함석헌 선생님의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함 선생님 문체의 아우라에 미치지 못하지만 젊은 시절에 그분의 책들을 탐독하면서 알게 모르게 그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제 문체도 조금씩 변했습니다. 예전에 썼던 글들, 《렘브란트, 성서를 그리다》 같은 책을 보면 파토스에 신경을 썼습니다. 하지만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입 맞출 때》에서는 좀 더 교과서 같은 문장을 쓰려고 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고요. 원래부터 수사보다는 글의 구조에 관심이 더 많은 편입니다. 구조에 밀려 수사가 나오는 것이 더 힘이 있는 듯합니다.
- 교수님에게 영향을 미친 신학자나 오늘날에도 영감을 주는 신학자가 있을까요?
박사학위 지도교수, 곧 독토파터(Doktorvater)이신 서중석 교수님의 영향이 결정적입니다. 그분에게서 대다수를 배웠지요. 아름다움을 신학의 중심으로 놓고 사유하시는 유동식 선생님의 ‘한 멋진 삶’에 관한 가르침은 산만했던 제 신학적 넋두리에 어느 정도 꼴을 주었습니다. 한태동 교수님의 구조주의적 사고의 특출남을 흉내 내려고 노력하기도 했지요. 직접 배우지는 못했지만, 학부 들어갔을 때 안병무 선생님, 서남동 선생님의 글들을 중심으로 민중신학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나쁜 선배’들을 만난 탓이지요.(웃음) 저는 외국 유학을 하지 않았고, 지금도 왜 유학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합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렘브란트가 생각납니다. 렘브란트가 활동하던 당시 화가라면 모두 이탈리아 유학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탈리아 유학을 가지 않았어요. 누군가 왜 안 갔냐고 물었는데, 답이 간단했습니다. “바빠서!” 렘브란트에 비길 만한 것은 없지만, 제가 배운 선생님들이 자랑스럽고 덕분에 외국의 이른바 ‘대가’라는 사람들 앞에 주눅 들지 않고 살아가려 합니다.
- 마지막으로, 가벼운 질문인데요, 미술사에서 가장 탁월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녹여냈다고 생각하는 작품 다섯 개를 꼽아주실 수 있는지요?
‘Top 5’ ‘세계 3대’ 이런 건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데, 저는 해보지를 않아서요.(웃음) 그냥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작품들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일단은 렘브란트가 그린 〈예수상〉, 그리고 〈탕자의 귀향〉, 다음에는 앞에서 이야기해서 그런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 샤갈의 〈하얀 십자가 처형〉이 떠오르네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냥 지금 제 머릿속에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작품들이에요. 이 작품들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 건 아닙니다.(웃음)
진행 비아 민경찬 편집장, 정다운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