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최초 ‘사육곰 생츄어리 건립’을 준비하다

[383호 커버스토리]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최태규 대표

2022-09-30     최태규

2평 남짓한 공간. 안쪽에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1평이 채 안 되는 내실이 있었다. 콘크리트와 녹슨 철창으로 만들어진 비좁은 사육장. 이곳에서 곰들은 갇혀 살아갈 운명이었다.

8월 29일 일요일 강원도 화천의 사육곰 농장을 방문했다. 오전 8시 대림역에서 최태규 수의사를 만나 차로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었다. 최태규 수의사는 수의사, 훈련사, 변호사, 예술가 등과 함께 2018년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Moonbear Project, 이하 ‘곰 보금자리’)를 결성해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곰 보금자리는 사육곰을 구조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생츄어리(sactuary, 보호구역) 건립을 목표하고 있으며, 사육 야생동물의 복지를 연구하고 관련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곰 보금자리가 화천 사육곰들을 돌보기 시작한 시점은 2021년 6월부터였다. 40년간 이곳 사육곰 농장을 운영해온 주인이 먼저 도움을 요청해왔다. 처음 농장을 방문했을 때, 사육곰들 상태는 좋지 않았다. 수척해진 곰도 있었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같은 곳을 빙빙 맴도는 ‘정형행동’도 심각했다. 농장주 부부가 춘천에 거주해 끼니는 이틀에 한 번 줬다. 건강이 나빠진 농장주는 이제 곰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복음과상황 이유진

협력 단체 동물권행동 카라가 곰들을 매입했고, 현장 돌봄은 곰 보금자리가 맡았다. 수의사 등 전문 인력이 붙고, 상근 활동가들이 인근에 상주하면서 매일 개별 곰마다 맞춤형 식단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세 끼 나눠서 개 사료와 함께 양배추, 토마토, 계란, 고구마 등을 주고 말린 과일과 땅콩 같은 간식도 제공한다. 오랜만에 체중을 잰 곰들은 증량 혹은 감량에 성공했다. 사회성 좋은 개체들끼리는 서로 만나게 하는 합사 훈련도 시킨다. 활동가들은 곰들의 거주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해먹을 매달고, 수로를 새로 파고, 배수구를 만들기 위해 시멘트를 타설하기도 했다. 이름이 없던 곰들에게 ‘유식이’ ‘라미’ ‘어푸’ 등의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곰들이 여전히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야 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사육곰들은 50kg대에서 100kg대까지 크기가 다양했다. 남매인 곰 두 마리가 합사한 사육장도 있었지만 대부분 ‘독방’을 썼다. 정도가 덜하더라도 곰들은 여전히 정형행동을 보였고, 야생의 나뭇잎을 밟고 다니는 데 적합한 곰 발바닥이 견디기엔 시멘트 바닥이 거칠었는지 쉽게 다쳤으며, 아예 앞발을 끌고 다니기도 했다. 하루에 한 번 사육장을 청소하지만 곰들은 먹고 자는 곳에서 배설도 해야 한다. 매입 당시 곰 15마리가 있었지만 현재 13마리가 남아있다. 한 마리는 원인 불명으로 죽었고, 다른 한 마리는 노령성 질환으로 안락사했다.

# 야생에서 살아갈 수 없는 동물들을 위한 보금자리

1980년대 한국 정부는 곰 사육을 권장했다. 일본·말레이시아 등에서 곰을 수입해 웅담(쓸개) 채취와 번식 후 재수출을 통해 농가 소득 증대를 꾀하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러나 1993년 한국 정부가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해 곰 수출이 금지되면서 길이 막혔다. 웅담의 효능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고 동물 학대 논란이 일며 수요가 줄자 정부는 2014년 남은 사육곰 967마리에 대한 중성화 사업을 주도했다. 2021년에는 용인의 한 사육곰 농장에서 곰 한 마리가 탈출한 사건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탈출한 곰은 결국 사살되었고, 농장주는 불법도살과 불법증식으로 인한 야생생물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현재는 전국 20여 사육곰 농장에 322마리가 남아있는 상황이다.(2022년 6월 기준)

평생 사육되어온 곰들은 ‘죽은 이후에야’ 철창을 나갈 수 있다. 이들은 야생에서 자력으로 살아갈 능력이 없고, 외래종이라서 생태계 교란 가능성 때문에 방생할 수도 없다. 이에 곰 보금자리는 민간 최초로 사육곰 생츄어리를 건립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크기와 규모를 고집하고 있지 않지만 민간 생츄어리를 만들려는 목적은 분명하다. 한국에 곰 사육 산업이 존재했다는 것, 야생동물을 포획해 사육하는 일은 위험하고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다. 우리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질 수 있는지도 보여주고자 한다.

동아시아 지역의 한 생츄어리 모습. (사진: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제공)

본격적인 이야기는 30일 서울 대림역 인근 곰 보금자리 사무실에서 최태규 수의사를 다시 만나서 들었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동물복지 문제에 관심이 있었지만 가축을 진료하는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을 시작했다. 2003년쯤 사육곰 문제를 알게 됐고,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서 동물복지를 공부하며 생츄어리 건립을 꿈꾸게 되었다. 귀국한 그는 2020년 지방의 한 공영 동물원에서 생츄어리를 만들고자 수의사로 1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생츄어리의 필요성에 대해 보다 균형 있는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생츄어리 건립 준비 과정에서 마주하는 문제로는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했다. 무엇보다 동물복지가 어떻게 동물만이 아닌 인간의 문제일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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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츄어리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게 느껴진다.

곰 보금자리가 만들려는 생츄어리는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육곰을 죽을 때까지 돌보는 구역이다. 동물을 일시적으로 돌보다가 입양시키는 유기동물 보호소나,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야생동물 보호소와는 다르다. 낯설더라도 ‘생츄어리’라는 말을 쓰는 이유다.

생츄어리의 시작은, 중세 때 범죄자나 사회적 약자가 숨어서 보호받을 수 있었던 종교시설 안의 피난처였다. 지금은 홈리스나 보호자 없는 어린이가 머무는 공간을 생츄어리로 부르기도 한다. 다른 흐름으로는 동물 생츄어리가 있다. 1980년대 북미에서 공장식 축산에 대항해 농장동물들을 구조해 보호하는 운동으로 농장동물 생츄어리가 생겨났고, 이어 야생동물 생츄어리도 나타났다.

국제생츄어리연맹(Global Federation of Animal Sanctuaries)은 생츄어리가 갖춰야 할 다양한 조건을 명시하고 있다. 동물실험이나 상업적 행위 및 동물을 생포해 교배하는 일을 금하고, 동물과 대중의 접촉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다. 생츄어리라 이름 붙인 시설이 전 세계에 많이 생겨났는데, 여전히 동물을 만지게 하고 동물 쇼도 하니까, 조건을 충족해야 인증해주는 시스템이 갖춰졌다. 이와 함께 해외 사육곰 생츄어리들을 많이 참고하고 있는데, 기후와 인건비 등 조건이 각각 달라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고 보완할 필요가 있다.

- 동물원 근무 경력이 있다.

동물원 동물의 삶의 질을 높여보려는 마음으로 갔었다. 대부분의 종들은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는 야생보다 동물원에서 더 오래 살지만, 대체로 동물원은 좁은 곳에서 다양한 먹이 등이 부족해 야생동물들이 필요로 하는 자극을 충분히 줄 수 없다. 또, 한국의 일반적인 동물원은 대개 동물에게 살 만한 삶의 질을 제공하지 않는다. 종 보전이나 건강검진을 이유로 동물들에게 가하는 호르몬 검사, 채혈 등 침습적 의료행위에 동의하기 어렵다. 현대 동물원의 역할인 종 보전, 교육, 연구는 동물복지를 기반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동물복지 논의가 삭막한 한국의 동물원에서 오랫동안 공무원으로 일한 사람들이 가진 기존의 생각을 바꾸기엔 내가 역부족이었다. 곰과 사자 같은 큰 동물과 달리 앵무새처럼 작은 동물 몇 마리는 죽어도 상관없고, 죽더라도 기록되지 않는 관행도 있었다.

- 근무한 동물원에서 안락사를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고.

어떤 곰을 안락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리를 못 써서 발바닥을 끌고 다녀 뼈가 보일 정도였다. 치료를 시도하면 고통을 연장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빨리 안락사시켜야 한다고 말했는데, 나머지 사육사, 수의사 전원은 ‘곰이 밥을 잘 먹는데 어떻게 죽이냐, 살려는 의지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 문화에서는 어떻게든 살아있는 게 낫다는 판단이 아직까지 존재하는 듯하다. 안락사를 옹호하는 입장은 고통을 끝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보는 건데, 고통을 연장하면서 살려두는 것을 수의학이나 동물을 돌보는 사람의 역할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곰 보금자리 내부에서도 안락사는 첨예한 논쟁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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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 가까이 해결되지 않은 국내 사육곰 문제

사육곰 문제에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환경부와 지자체가 협력해 건립 예정인 사육곰 생츄어리는 전국에 두 곳이다. 구례군은 2024년까지 50여 마리, 서천군은 2025년까지 70여 마리를 수용할 예정이다. 곰 보금자리는 구례군 생츄어리 설계 및 운영계획에 참여하면서 자문 역할을 해왔다. 구례군 생츄어리 시공은 작년 말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현재까지 연기된 상황이다.

문제는 구례, 서천에 생츄어리가 세워지더라도 전국의 3백여 사육곰 중 120마리 정도만 수용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사육곰들이 머물 생츄어리도 필요하다. 곰 보금자리는 3만 평에 곰 150마리를 보호하는 생츄어리를 계획하고 있다. 지금까지 모은 자금은 1억 원에 불과하고 부지도 찾지 못한 상황이다. 생츄어리 건립에 필요한 예산은 부지와 건물 짓는 것을 포함해 5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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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육곰 문제는 왜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았나.

가장 큰 문제는 목돈을 댈 주체가 없어서다. 전국 20여 사육곰 농장 중 100마리, 80마리 정도가 수용된 농장이 한 곳씩 있고, 나머지 농장은 소규모다. 농장주들은 정부 보조금을 바라고 사육곰들을 데리고 있는데, 정부는 직접 매입보다 시민단체가 모금을 통해 사들이길 기대하는 것 같다. ‘실패한 산업’에 왜 정부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논리인 거다. 곰 보금자리는 시민들의 십시일반도 필요하지만 목돈을 댈 수 있는 주체, 즉 정부나 기업을 다 살펴보고 있다. 물론 성사가 되어도 얼마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어쨌든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고 검토 중이고, 여전히 희망적이다. 몇 년째 아무 진전이 없지만.(웃음) 50억은 큰돈이기도 하지만 어떤 세계에선 예산의 일부이기도 하지 않나. 사람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본다.

- 사육곰들을 해외로 보내기도 어려운 건가.

동물을 해외로 보내려면 고민할 문제들이 있다. 우선 공중보건 관점에서 취약해진다. 동물이 옮겨질 때 동물이 갖고 있는 질병도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야생동물은 물론이고 유기동물이나 도살장 개를 구조해 북미나 영국 등으로 많이 보내고 있는데, 동물들이 새로운 질병들을 옮길 수 있다. 미국에서 급속히 전파되었던 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H3N2)의 역학을 따져보니 한국 개농장에서 왔다고 밝혀진 적이 있다. 개농장에서 닭과 개를 함께 키웠는데, 개한테 죽은 닭을 날것으로 먹인 행위가 문제였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개에게 감염되어 새로운 변이를 일으켜 전파력이 높은 인플루엔자가 발생한 것이다.

가축종이 아닌 야생동물의 수출은 훨씬 더 리스크가 크다. 어떤 바이러스나 세균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방역 측면에서 최대한 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입된 동물들은 국내 공항 계류장에서 검역을 실시한다. 동물이 아픈지 며칠 두고 보는데, 사실 눈으로만 봐서는 알 수 없지 않나. 감기만 해도 잠복기가 있고 바이러스마다 기간이 다른데. 동물들이 옮겨질 때 큰 스트레스를 받거나 목숨을 잃을 위험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전세기에 태워 보내는 비용도 큰돈이 들기 때문에, 그 돈이면 한국에 생츄어리를 만드는 선택이 합리적이다.

# 연결돼있는 인간복지와 동물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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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복지도 미진한데 무슨 동물복지를 말하냐는 입장도 있다.

인간복지가 안 되는 현실이 동물한테 재화를 많이 써서 벌어진 문제인가? 한국은 달 탐사 프로젝트에도 많은 돈을 투자하고, 복지 예산과 비교했을 때 국방비 예산이 말도 안 되게 큰 나라이기도 하다. 인간복지는 동물한테 쓰이는 돈보다 사람을 해하는 데 쓰이는 돈을 줄여 충당하는 게 맞지 않나. 인간복지와 동물복지는 대치된다기보다는 함께 가야 한다.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은 대체로 사회적 약자들이고, ‘종 차별하지 말자’는 말에 완전히 공감하진 않지만 사회적 약자에 동물도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 인간복지와 동물복지의 연결성을 생각할 때, 피부에 와닿았던 사례가 구제역 사태였다. 키우던 가축을 살처분해야 했던 농장주와 살처분 및 매몰 과정에 투입됐던 공무원이 트라우마를 겪거나 끝내 자살하는 사례도 있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가축매몰(살처분) 참여자 트라우마 현황 실태조사’ 보고서 과정에 일부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했던 동네가 살처분을 가장 많이 한 지역이었다. 구제역이 터졌을 때 당황한 공무원들이 돼지들을 빨리 죽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밀어넣었던 건데, 투입된 공무원들과 현장 농장주들이 어떤 상황에 놓이는지, 죽어야 하는 동물들이 어떤 죽음을 맞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하루에 약 3천 마리의 돼지를 키우는 농장을 싹 비워야 했다. 돼지들을 살처분하는 용도로 나눠주는 약물도 부족했고, 생매장해도 돼지들은 쉽게 죽지 않고 땅을 파고 나왔다. 포클레인으로 쳐서 죽이는 과정을 인간이 해야 했다. 굉장한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인간의 낮은 삶의 질도 동물한테 악영향을 주지만, 동물들을 그렇게밖에 대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자괴감도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

동물원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적어도 동물 관련 학과를 나온 사람을 사육사 지원 자격 조건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1970-1980년대만 해도 전문성 없는 사람들이 동물을 키웠다. 전문성을 공인받지 않은 사람에게 많은 돈을 줄 수 없고 국가건 기업이건 임금을 줄이는 데 혈안돼있으니, 공영 동물원이나 큰 동물원에도 최저임금에 가까운 비정규직들이 많다. 동물원은 기본적으로 위험한 곳이기도 한데, 사육사에게 동물을 키우는 데 필요한 의사 결정권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2013년에도 서울대공원에서 사육사가 호랑이에게 물려 숨진 사건이 있지 않았나. 20년간 곤충관에서 일하던 사람을 호랑이사에 발령시키고 혼자 일하게 하다 발생한 일이었다. 사육사가 키우던 동물을 그가 모르는 사이 다른 곳에 보내기로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 사람과 동물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복음과상황 이유진 

- 같은 이유로 생츄어리에서 일하는 직원들 복지나 노동조건도 중요한 문제겠다.

생츄어리 운영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구례나 서천 생츄어리처럼 정부가 주도한다면, 특히 더 계획에 명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키우느냐에 따라 동물들은 큰 차이를 느낀다. 예컨대 문을 위아래로 여느냐, 밀고 당기는 방식으로 여느냐도 동물에게 큰 차이가 있고 각각 장단점이 존재한다. 이를 이해하는 사람이 동물을 돌보는 게 중요하고, 이는 설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국립 생츄어리가 구례에 결정됐다고 했을 때 곰들을 돌보는 구성원들 인적 구성과 고용 방식을 어떻게 할지 따졌는데, 관행적으로 ‘나중 일’이더라. 현재 구례군은 반달가슴곰을 복원하고 있는 국립공원공단이나 민간단체에 위탁하는 쪽으로 고민 중인데, 일하는 사람들 자격이나 노동조건에 대해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

- 사회적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겠다. 동물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는 오늘날, 또 다른 과제가 있다면.

지금 한국 사회는 동물한테 뭐가 필요한지 고민은 안 하고 ‘동물은 자유로워야 해’ ‘먹으면 안 돼’ ‘동물실험 안 돼’ 같은 원론적 목소리만 커지는 듯하다. 이 역시 필요한 작업인 것은 맞다. 그런데 동물의 고통을 절대 수반하지 않는 삶의 현장이 실재할 수 있을까? 식물조차도 동물의 죽음 위에 기반하고 있는데. 물론 동물에게 어느 정도의 도덕적 지위를 인정해야 동물복지라는 것도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동물복지를 고려하지 않고 인간의 개념인 동물권만 강조하는 일은, 필요한 작업이지만 한계가 있다. ‘동물에게 필요한 것’을 고려하지 않고 ‘동물에게 해주고 싶은 것’에만 집중할 때 놓치는 것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예컨대 동물원 동물들에게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주자는 쪽으로만 초점을 맞추면 이들을 야생으로 돌려보내거나 동물원 철창을 없애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된다. 동물원 동물들은 야생에서 살아갈 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야생에서 살 수 없는 동물들의 거주 공간을 넓히거나, 장난감과 다양한 먹이를 자주 주는 식으로 결핍된 부분들을 채워주는 고민들을 할 필요가 있다. 농장동물을 구출하는 방식도 있을 수 있지만, 시스템적으로 돼지 스툴이나 닭 배터리 케이지를 금지하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

동물보호 운동에서 분노는 중요하고, 여전히 분노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물의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계속 나와야 하지만 이 질문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동물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이에 대한 다양한 답들이 지금보다 풍부하게 논의되고 공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복음과상황 이유진

진행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