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열망
[384호 묵상 스케치 - 개혁신앙의 뿌리]
종교개혁으로 말씀에 충실한 신앙, 복음에 기초한 교회를 세우고자 몸부림쳤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순수한 신앙은 점차 화석화된 교리로, 개혁의 열정은 광신으로 변해갔다. 내가 믿는 신앙만이 바른 정통이라는 고집불통은 결국 종교전쟁이라는 재앙을 낳았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조차도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처럼 웅덩이에 고인 물이 되고 말았다. 이때 제2의 종교개혁을 표방하며 나선 인물이 필립 슈페너(1635-1705)이다. 흔히 ‘경건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슈페너는 《경건한 열망》에서 새로운 종교개혁 혹은 16세기에 시작되었다가 교리적 정통주의로 인해 중단된 개혁운동의 완성을 제안했다. 따라서 이 책이 출간된 1675년을 경건주의의 시작으로 본다.
슈페너는 1635년 현재의 프랑스 리보빌레(Ribeauvillé)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17세기 당시에 라폴츠바일러(Rappoltsweiler)라 불린 신성로마제국에 속한 지역이었다. 지금도 리보빌레의 슈페너 광장 옆에 있는 개신교회 안에는 슈페너의 초상이 있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그야말로 유럽의 격변기였다.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진영이 나뉘어 유럽 전체가 30년 전쟁(1618-1648)을 치르는 중이었다. 전쟁 후 남겨진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파산, 도덕의 붕괴와 영적 퇴락은 슈페너가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교회와 사회의 모습이었다.
〔그림1〕은 슈페너가 공부하고 가르치던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신학부 건물이다. 스트라스부르는 16세기 종교개혁 시기 마테우스 젤, 마르틴 부처, 장 칼뱅과 같은 개혁자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알자스의 중심 도시이다. 스트라스부르 대학 전신은 16세기 인문주의자 장 슈투름이 1538년 세운 김나지움(Jean Sturm Gymnasium)이다. 그 후 1621년 페르디난트 2세 황제 때 대학교로 다시 설립되었다. 박사학위를 받던 날 슈페너는 수잔네 에르하르트와 결혼했고, 슬하에 11명의 자녀를 두었다. 지금도 스트라스부르 신학부 건물 옥상에는 학교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의 입상이 보이는데, 루터·칼뱅·슈투름 등과 함께 슈페너도 스트라스부르 대학을 빛낸 인물로 그곳에 당당하게 서있다.
〔그림2〕는 슈페너가 20년 동안(1666-1686) 목회했던 교회이다. 슈페너는 대학에서 계속 가르치길 원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다. 1666년 프랑크푸르트 교회에서 그를 수석목사로 청빙했다. 명패 중앙을 보면 교회와 사회 개혁자로서 슈페너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왼편에는 《경건한 열망》 초판본 표지가, 오른편에는 슈페너 초상이 있다. 교회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슈페너의 옛집이 지금은 순례자와 여행객을 맞는 숙소(Hotel Spenerhaus)로 사용되니 슈페너의 경건주의 정신을 배우려는 순례자라면 꼭 찾아보길 권한다.
슈페너는 프랑크푸르트에서 20년을 목회하면서 어떻게 하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1670년 ‘경건 모임’(Collegium pietatis)을 조직하고 새로운 경건 운동과 성경 연구를 통한 교회 개혁 운동을 시작했다. 그가 《경건한 열망》에서 제안한 개혁안들은 성경 연구 전념, 만인제사장설 구체화, 이론보다 실천 강조, 교파 간 신학적 논쟁 제한, 경건의 실질적 구현에 초점을 둔 신학 수업, 설교의 초점 변화 등이었다. 이것은 당시 독일에 편만했던 정통주의에 대한 맹렬한 반격이었으며, 삶의 개혁을 수반하지 않는 교리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슈페너의 제안은 이전에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본질적인 것들에 대한 재발견이자 회복이었다. 슈페너에 의해 시작된 독일 경건주의의 지도력은 이후 할레 대학교의 아우구스트 프랑케를 거쳐, 할레 대학교가 배출한 또 한 명의 인물인 니콜라우스 친첸도르프에 의해 새로운 꽃을 피우게 된다.
그림 이근복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했다.
글 박경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장.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로 석사학위(Th.M.)를,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종교개혁사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저서로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인물로 보는 종교개혁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