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로 × MZ = 새롭고 익숙한 것
[385호 민민과 생귄의 대중문화 돌려보기]
대중문화는 특정 세대 혹은 집단에 대한 이해를 제공한다. 설령 세대 전부를 대표하진 않더라도 말이다. 지난 글(2022년 11월호)에서 민민님은 ‘뉴트로’ 현상이 MZ세대 사이에서 실재하고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기보다,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상품의 소비와 관련된 문화로 보았다. 이는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문화가 상업적인 이해관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소비자본주의 구조에서 문화란 사고파는 상품이다. 물건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분위기, 멋스러움, 세련됨을 포함한 무형의 문화상품들을 포함한다. 여기서 대중의 위치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능동적 주체라기보다, 문화로 포장된 상품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수동적 소비자에 가깝다고 하겠다. 이 지점에 대한 민민님의 지적은 옳다.
하지만 ‘뉴트로’ 현상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문화(상품)를 소비하는 과정에서도 가치판단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뉴트로 상품을 소비하기로 한 선택도 의미가 있으며, 소비하지 않기로 한 선택도 마찬가지이다. 관점을 바꾸어 ‘왜 MZ세대는 뉴트로 문화를 소비하는가’ 물을 수 있다. 소비의 패턴이 MZ세대 전부를 대표하진 않더라도 말이다. 대중문화를 연구한다는 것은 대중 전체가 아니라 대중이라는 집단에 대한 이해를 위한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 어찌 됐건 뉴트로 현상이란 적극적으로 선택하든지 수동적으로 소비하든지 간에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2020년 전후 사회에서 주로 MZ세대를 중심으로 말이다.
MZ세대와 뉴트로 현상을 이해하려면 이들이 자란 환경이 디지털 사회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PC, 이동통신, 인터넷 등을 사용한 세대이다.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라고도 부른다. 디지털 사회의 특징은 쉽고 빠른 정보의 생산과 복제, 전달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고유한 물질이 있어야 존재하는 아날로그와는 대비되는 개념이다.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쉽고 빠른 복제의 가능성이 원작의 고유한 아름다움, 즉 아우라(aura)를 훼손한다고 보았다. 디지털 세상에는 원본과 똑같은 복제품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뉴트로는 레트로에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는 것
뉴트로와 레트로를 구분하자면, 먼저 레트로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레트로’(retro)는 과거의 문화 양식(특히 패션이나 음악 스타일 등)이 다시 유행하는 일을 뜻한다. 대중문화에서 레트로는 주로 과거 세대를 향한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대중문화 속 레트로 열풍의 주역은 뭐니 뭐니 해도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1990년대를 주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의 주요 타깃은 19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40대 이상이다. 당시 TV 드라마의 주요 시청자층으로 40대를 꼽기도 했었다. 이들은 한국 대중문화 중에서도 방송 산업의 황금기를 누리며 자라온 세대이기도 하다. ‘X세대’ ‘오렌지족’ 등의 수식어는 ‘MZ세대’만큼 실체가 없는 개념이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을 시작으로 H.O.T.와 젝스키스, god(남성 팬들에겐 핑클과 S.E.S.) 등으로 이어지는 1세대 아이돌 문화를 공통분모로 삼는 세대임은 부인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한 세대가 모두 같은 취향(선택)을 갖지는 않더라도 같은 문화상품을 보거나 (좋든 싫든) 소비하며 자라온 공통의 경험(기억)을 공유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응답하라’라는 시리즈 제목은 1990년대 기억을 소환하는 주문인 셈이다.
반면에, ‘뉴트로’(newtro)는 자신들이 직접 경험한 것을 회상하거나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는 과거 세대의 문화가 새롭고 흥미롭게 여겨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온라인 탑골공원’1)은 MZ세대가 과거의 대중음악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확장되었다.2) 이는 기성세대가 과거의 음악을 그리워하면서 다시 듣는 ‘7080 플레이리스트’와 다르다. 자신들의 부모, 삼촌 세대의 음악이라 좋아했던 게 아니라, 지금 듣기에 뭔가 새롭고 매력적이라 느껴서 찾게 된 결과이다. 이 취향 혹은 선택은 MZ세대 몫이다. 이를 ‘뉴트로’라 명명하는 일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모두가 레트로 음악을 좋아했다는 말도 아니고, 또 현재 아이돌 음악을 안 듣고 레트로 음악만 좋아한다는 말도 아니다. 그저 옛날 음악에서 뭔가 매력을 느꼈고 재미가 있었던 탓이다. 1990년대 음악은 일종의 원조와 같은 셈이다. 하루에도 똑같은 음악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나온다. 거기에 비하면 1990년대 가수들은 무언가 다른 독창성(originality)을 갖는다. 세련되었지만 기계적인 음악들과 비교해, 1990년대 음악은 조금은 촌스러울지언정 인간적인 생명력을 느끼게 했을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다
문화 현상은 일종의 텍스트이며 이는 해석을 필요로 한다. 텍스트란 크게 표면적 메시지와 숨겨진 메시지로 나뉜다. ‘뉴트로’ 현상은 표면적으로는 복고풍 이미지나 (주로 1990년대풍의) 대중문화를 떠올리는 시각적 요소들이 주를 이룬다. MBC 〈놀면 뭐하니?〉의 프로젝트 그룹으로 탄생한 ‘싹쓰리’는 1990년대 댄스 그룹의 옷, 노래, 음악 스타일까지 그대로 되살렸다. 광고계에서 레트로는 단연 인기다. 사라졌던 두꺼비 캐릭터가 돌아오고 백색 곰도 돌아왔다. 한 인스턴트커피 광고는 1970-1980년대 하이틴 잡지를 그대로 오마주한다. 추억 속 물건들, 딱지, 뽑기, 달고나, 쫀득이도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이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사고 판다. 새롭고 재밌으며 멋지다는 건 주관적이고 모호한 개념이지만, 인기를 끄는 것들은 어떤 특성을 가리킨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 세대를 그리워한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이는 일종의 상실에 대한 그리움과도 같다. 직접 잃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현재에는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그리워하는 감정이다. 밴드 그룹 ‘잔나비’의 〈가을 밤에 든 생각〉이란 곡은 이런 상실과 그리움을 잘 나타낸다. 노래는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며 나중에 커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날을 잊지 말자고 미래의 자신에게 다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노래 뮤직비디오의 배경은 소년이 브라운관 TV로 〈아기공룡 둘리〉를 보고 길가의 문방구 오락기를 즐기던 1990년대이다. 서정적인 가사와 과거 어린 시절 기억을 소환하는 방식은 ‘응답하라’와 유사하다. 하지만 잔나비는 자신의 추억을 노래한다기보다는 자기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 세대의 추억을 기억해달라고 노래한다.
‘응답하라’ 시리즈 후속작인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은 제목처럼 한 대학병원 의사들의 일상(일, 가족, 사랑)을 다룬다. 이 드라마에는 특별한 악역이나 극단적인 이야기 전개가 없다. 과거 〈하얀거탑〉이 의사 캐릭터들을 다양한 욕망을 가진 복잡한 인물로 묘사했다면, 슬의생은 전문성과 성실함, 착한 성품까지 소유한 모범적인 의사 캐릭터가 주를 이룬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현실감이나 무게감이 없는 가벼운 판타지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신원호 PD도 이런 비판에 수긍하는데, 그는 무겁고 자극적인 이야기보다 보기 편한 드라마, 감동과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면서 그런 판타지라면 하나쯤 있어도 좋지 않겠냐고 말한다.3) 매운맛 드라마, 막장 드라마에 지친 시청자들이 ‘착한 드라마’ 등장을 반겼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다.
〈슬의생〉이 MZ세대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중심에는 서울대 의대 99학번 동기들(99즈)의 훈훈한 우정이 자리한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과 다른 인물의 관계를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대신, ‘99즈’의 찐한 우정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다섯 명 개인으로는 성격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지만, 그들은 대학 시절 그랬던 것처럼 끈끈한 동기이자 친구로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다. 밴드는 대학 시절 풋풋했던 우정을 오늘의 현실까지도 이어주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밴드 연습실에서 부르는 노래는 드라마 전체 주제를 이끌어주고, 각 인물의 이야기나 심정을 영리하게 표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자연스레 드라마 OST도 인기를 끌었다.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에 올라온 댓글들에는 노래 자체에 대한 평가와 함께 드라마에 대한 소감도 많았는데, 그중 99즈 5인방의 ‘찐우정’에 대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정말 인상적인 댓글은, 각색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내가 만약 이 시대에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다면 어땠을까? 나도 친구들과 모여 선풍기 바람에 수박을 먹으면서 부루마블 게임을 하며 놀았겠지?
이렇게 내용을 소개하는 이유는, 소위 뉴트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MZ세대의 선호에 대해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MZ세대는 우정을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찐우정’에 대한 상실과 그리움이 반영된 것에 가깝다. ‘찐우정’에 대한 개인적 이해와 만족이 다르겠지만, 대중문화에 투영된 ‘찐우정’에 대한 그리움은 ‘우리 세대에는 없는 것’을 ‘과거 세대로부터 찾는 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현대사회에서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신하의 충성스러움과 부모의 희생과 지고지순한 사랑 등을 사극 장르에서 찾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 쉽고 익숙한 것의 유혹
과거로부터 현재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는 시도는 인류 역사에서 반복되어온 현상이다. 우리는 과거를 회상할 때 주로 좋았던 것만을 왜곡해서 기억하곤 한다. 주로 현재의 불안함과 불만족스러움을 회피하며, 과거 특정 시절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디 앨런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이런 심리를 재치 있게 다루고 있다. 주인공 길은 우연히 192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되는데, 그에게 1920년대 파리는 그토록 동경하던 예술가들이 살던 예술의 황금기였다. 하지만 그가 만난 전설적 예술가에게도 현재란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것임을 확인한다. 영화는 1920년대 파리에 살지만 한 세대 이전인 1890년을 동경하던 아드리아나에게 말하는 길의 입을 빌려 이야기한다.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우리는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과거로 회귀해야 한다는 당위로 사용하곤 한다. 홍해가 갈라진 기적을 경험하면서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으로 가는 광야의 길이 길어지자 차라리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시절이 더 좋았다면서 모세를 원망했던 것처럼 말이다.
흔히 레트로 현상은 경제적 불황기에 두드러지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문화일보〉 조현미 기자는 ‘복고와 불황의 상관관계’라는 칼럼에서 오늘의 레트로 현상을 경제적 불황과 연결 짓는다.
언제부터인가 복고(Retro)가 아니라 옛것을 새롭게 즐긴다는 의미에서 뉴트로(New Retro)로 불리지만 ‘복고’는 꽤 익숙한 트렌드이자 마케팅 툴이다. 추억을 통한 위로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이고, 소비자 세대를 순식간에 확대하는 데에 복고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다만 복고 코드는 심리적으로는 사회적 스트레스 지수가 높을 때, 경제적으로는 불황기에 등장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복권 판매가 역대 최고를 기록할 정도로 ‘대박’ 외에 기댈 곳 없는 불황인 지금, 이곳에서 부는 복고 열풍은 ‘복고의 법칙’을 재증명하고 있다.4)
경제가 어렵고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우리는 해법을 과거에서 찾는 유혹에 빠진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익숙한 과거를 선택하는 것이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반면 경제적 호황기에는 좀 더 모험적인 선택이 가능하다. 미국의 인기 시트콤 〈프렌즈〉는 1990년대 미국의 경제 호황기를 반영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5) 뉴욕을 배경으로 한 청춘들의 일과 사랑을 유쾌하게 그려내면서, 당시 사회 분위기에 비해 자유로운 연애관, 비혼, 동거 등의 소재들이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묘사된다. 〈프렌즈〉에 등장하는 6명의 청춘은 우울하거나 크게 낙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비록 그 시대를 너무 가볍게 재현하고 소비한다는 비판이 있을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찬란한 과거라 할지라도 그것은 지나간 일이고 우리는 현실을 살아간다. 과거로의 회상이 오늘이라는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는 있겠지만 현실 자체를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변화는 현재를 사는 당신으로부터
뉴트로 상품을 소비하는 현상에서 MZ세대의 선택은 무엇을 의미할까? 필자는 그들의 선택이 ‘새롭지만 익숙한 것’이라고 보았다. 새롭다는 것은 디지털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무언가를 뜻하며, 구체적으로는 좀 더 인간적인 것, ‘찐우정’ 같은 진실한 관계에 대한 그리움과 같다. 반면에 ‘익숙한 것’은 그들이 상실한 것을 현재가 아니라 익숙한 과거로부터 찾으려는 태도를 말한다. 경제 저성장과 불안정이 장기화되고, 사회에 대한 실망이 늘어나고 생존과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진 세상에서 과거로의 회귀 혹은 환상을 추구하는 것은 쉽고 안정적인 길이다. 하지만 진짜 변화의 열쇠는 과거에 있지 않으며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에게 있음을 MZ세대도 잘 알고 있다.
올해 초 방영했던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여느 레트로 콘텐츠처럼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 속 시대적 배경을 과거를 지금보다 살기 좋았던 시절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시 청춘을 헤집어놓았던 ‘IMF 외환위기’ 이후의 상황을 정면에 배치하고 있다. 드라마 속 자주 반복되던 ‘시대’는 스물다섯 백이진과 스물하나 나희도, 그리고 그의 친구들 모두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그 ‘시대’를 당당히 극복하는 것도 바로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청춘이었음을 보여준다. 드라마에서 재현하는 청춘의 끈끈한 우정과 지치지 않는 체력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근성으로 세상에 부딪히며 성장하는 모습은 어쩌면 MZ세대가 가장 원하는 가치의 상품이 아닐까 한다.
동명의 노래 가사처럼, 무엇을 해도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기성세대가 보내는 응원가이며 ‘이런 소비라면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든 드라마이다. 누구의 전유물도 아닌 과거와 현실의 소통이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하는 능동적인 선택과도 같다. 진짜 뉴트로는 이런 것이 아닐까?
민민의 한마디
저는 지난 글에서 다소 격양된 나머지 ‘너희들을 믿는 나를 믿어라’ 풍의 결론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조금 더 정제된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있었는데, 생귄님의 아이디어로 이렇게 ‘뉴트로’와 ‘MZ세대’에 관한 다른 관점을 볼 수 있어 좋습니다.
레트로는 우리가 갖지 못한 것, 잃어버린 것, 혹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지만 존재했으리라 희망하며 살아가는 것들을 과거의 유형적 산물에 묻혀 보여주는 문화라 할 수 있겠지요. 뉴트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둘 다 영어 표현임에도 서구에서 레트로와 뉴트로의 구분을 두지 않는 것은 결국 본질이 같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누군가는 경험했고, 누군가는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레트로와 뉴트로를 구분하려 한다면, 뉴트로는 MZ세대의 문화적 특징이라는 전제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니까요. 예를 들어 ‘온라인 탑골공원’은 M세대에게는 경험한 것이겠지만, Z세대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지요. (〈스물다섯 스물하나〉도 M세대와 Z세대의 시청률 차이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MZ세대라는 표현 자체가 경제 연구 기관에서 나왔다는 점, 뉴트로라는 표현이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 등을 볼 때, 결국 저 두 단어는 소비중심주의적 자본주의의 산물이며, 허상에 불과하다는 제 비판적 음모론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떠나서, ‘레트로’라는 문화가 지금 우리에게 결여된, 그래서 더 아련하게 그리운 무엇에 대한 이야기라면 저 역시 무한 긍정이고, 이미 즐기고 있으며, 앞으로도 응원하리라 말씀드리고 싶네요.
날이 추워지네요. 이제는 잊지 않고 품에 3천 원을 넣고 다녀야겠어요.(이 문장을 이해하신다면 레트로!)
1) ‘온라인’과 노년층이 많이 모이는 서울 종로의 ‘탑골공원’을 합친 신조어. 1980-1990년대 출생한 30-40대가 주로 몰려드는 음악 방송 콘텐츠를 가리킨다. 유튜브 같은 동영상 플랫폼에서 1990-2000년대 음악 방송이 실시간 스트리밍되는 것이 인기를 끌며 시작됐다.
2) 사실 ‘온라인 탑골공원’은 1980년대 이후 활성화된 음악 방송 콘텐츠가 존재했기에 가능했으며, 유튜브 플랫폼이 있어서 확장될 수 있었다.
3) 이지영, ‘슬의생’ 신원호 PD “이런 착한 판타지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중앙일보〉(2021. 10. 9.).
4) 최현미, ‘복고와 불황의 상관관계’, 〈문화일보〉(2019.9.17.).
5) NBC 방송국의 대표 프로그램인 〈프렌즈〉는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총 10개의 시즌이 방영되었다. 미국은 물론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프렌즈〉의 흥행에 힘입어, 한국판 프렌즈 격인 〈남자 셋 여자 셋〉(MBC)이 1996년부터 1999년까지 방영되었다.
김상덕(생귄)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평화를 위한 언론사진의 역할에 대한 공공신학적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사회의 다양한 갈등의 문제들을 문화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평화와 화해를 위한 교회의 공적 역할과 다양한 창조적 실천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커피를 좋아하고,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추구한다. 미술 작가인 아내(민정See)와 평범한 이상주의자로서 현실을 살아내려고 발버둥 치는 중이다. 현재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하면서, 학교 강의와 글쓰기, 방송 및 유튜버 등 N잡러의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