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에서 건짐 받은 아이, 성령의 불길에 사로잡히다
[386호 묵상 스케치 - 개혁신앙의 뿌리]
복음 전도자, 사회운동가, 교회 개혁자, 부흥사, 신학자, 이 모든 호칭에 어울리는 인물이 바로 감리교 창설자라 불리는 존 웨슬리(1703-1791)이다. 존은 1703년 영국 랭커셔주에 속한 엡워스(Epworth)에서 성공회 사제인 사무엘 웨슬리와 어머니 수산나 사이에서 십구 남매 중 열다섯째로 태어났다.
〔그림1〕은 웨슬리가 태어난 생가이다. 꼭대기 다락방을 포함하여 3층으로 이뤄졌다. 지금은 존 웨슬리 박물관으로 운영되는 이곳 ‘옛 목사관’(Old Rectory)에서 존은 부모와 많은 형제자매와 더불어 왁자지껄 생활했다. 이곳을 방문하면 어린 시절 존이 어떤 가정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표현으로, 존은 전형적인 ‘목회자 자녀’(PK)였다.
어린 존이 이 집에서 겪은 가장 큰 사건은 만 여섯 살이 채 되지 않았던 1709년 2월 9일 발생한 화재였다. 한밤중 화재를 발견한 아버지 사무엘은 고함을 지르고 가족들을 깨워 밖으로 대피했으나 워낙 식구가 많아 존이 집 안에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다행히 인간 사다리를 만들어 겨우 존을 창밖으로 꺼낼 수 있었다. 그때 수산나는 웨슬리를 보며 “하나님이 장차 이 아이를 영혼의 불쏘시개로 사용하시려고 구해주신 것이다”라고 말했다. 웨슬리는 이후 평생 자신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타는 불에서 꺼낸 부지깽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훗날 그가 폐병으로 죽음을 직감했을 시기 1753년 11월 26일 일기에 묘비에 기록할 유언을 남겼다. “여기 존 웨슬리의 육신이 잠들다. 타는 불에서 꺼낸 부지깽이 같은 그가 나이 51세에 폐병으로 죽다. 하나님이시여, 비오니 이 무익한 종을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웨슬리는 결국 화재와 병마에서 살아남아 ‘사도 시대 이후 가장 강력한 설교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 평가받는 인물이 되었다.
앱워스에는 존의 생가 외에도 아버지 사무엘이 목회했던 세인트 앤드류 교회와 사무엘의 묘지가 있다. 존은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후일 아버지 무덤 위에서 복음을 전하며 설교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까이에는 1889년 완성한 웨슬리 기념 교회와 2003년 웨슬리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그의 청동상 등 존 웨슬리와 관련 있는 유적들이 남아있다.
〔그림2〕는 런던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위치한 존 웨슬리 회심 기념비이다. 런던 박물관 앞에 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존은 런던 차터하우스 스쿨과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공부한 후 1725년 성공회 부제로, 1728년 성공회 사제로 안수를 받았다. 1729년에는 동생 찰스 웨슬리가 시작한 ‘신성 클럽’(Holy Club) 지도자로서 성경을 읽고 기도와 금식에 힘쓰며 사회적 약자를 방문하고 돕는 일에 헌신했다. 그러다 1735년 10월 미국 조지아로 선교 여행을 가던 중 바다에서 폭풍을 만났을 때 모라비아 교도들의 확신에 찬 신앙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가 결정적인 회심을 하게 된 때도 1738년 5월 24일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진행된 모라비아 교도들의 모임에서였다.
회심 기념비에는 웨슬리의 그날 일기가 새겨졌다. “나는 저녁에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한 집회에 참석하였다. 그때 거기에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고 있었다. 8시 45분경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을 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기념비가 불꽃 모양을 한 것도 웨슬리의 이 고백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바로 이 회심의 장소가 감리교회가 탄생한 곳이라 할 수 있으리라. 비록 존은 평생 성공회를 떠나지 않았지만, 사실상 성공회를 개혁하는 감리교회가 이날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여섯 살 화마에서 건짐을 받았던 부지깽이가 서른다섯 살 성령의 뜨거운 불길에 사로잡힌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다.
그림 이근복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했다.
글 박경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장.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로 석사학위(Th.M.)를,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종교개혁사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저서로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 《인물로 보는 종교개혁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