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받는 여성의 주거 안전
[387호 무브먼트 투게더 2]
협소한 의미의 주거 안정만을 꾀하는 한국에서, 여성의 주거 안전이 다뤄지는 방식은 매우 작고 초라하다. 2019년 신림동 원룸 침입 사건이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됐던 때가 있다. 한 남성이 다세대주택 내 여성의 집에 무단침입하려 했던 장면이 찍힌 영상이 SNS에 퍼져 논란이 일었다. 주거 불안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 수면 위로 떠오르자 서울시 등은 ‘안심홈세트’를 배포했다. 이중잠금장치나 스마트 안전센서와 등으로 구성돼있었다. 이 도구들은 누군가의 불안을 단기간 완화하는 기능을 할 뿐 결코 정부와 지자체가 제시해야 할 대책의 전부여서는 안 됐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여성이 겪는 범죄, 이에 관한 혐오와 편견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보인 대처는 매우 단순하거나 피상적인 접근에 그친다. 정상가족 안에 머물고 있다면 주거 안전 문제도 자동적으로 해소되리라는 전제라도 있는지, 도통 근본적인 접근은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5년간 주거침입 범죄 검거 건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주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개인 차원의 것으로만 취급된다. 하여 ‘더 안전한 집’으로 가기 위해 ‘더 많은 주거비’를 지불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지옥고(지하·옥탑방·고시원)’로 표현되는 열악한 주거 환경은 선택지로 주어지지 않는다. 부동산 중개사들은 ‘아가씨들은 이런 집에 못 산다’며 보여주지 않기도 한다. 주거 안전을 확보하고 싶은 이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민간임대에 살거나, 주거 안전도 중요하지만 높은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는 이는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한다.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지 못하면 다시 본가로 돌아가기도 한다. 고질적 문제인 성별 임금격차로 인해 주거 문제는 여성에게 더욱 큰 경제적 부담으로 돌아온다. 프랑스에는 성별 임금격차 때문에 여성이 만성적 빈곤에 빠질 우려가 있으니 저임금 여성에게 주거비를 보조하는 정책이 있다. 주거 안전에 관한 주거 정책이 없듯이, 성별 임금격차에 관한 주거비 보조 정책 또한 한국은 아직 전무하다.
도시에서 더 쉽게 안전을 위협받고 불안을 느끼는 여성의 주거 문제는, 도시에서 착취당하고 배제되는 여성들 이야기와도 맞닿아있다. 반성매매 인권 운동을 펼치는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은 일상화된 빈곤과 빈곤의 여성화에 주목하고 있다. 여성들의 절박함을 악용해 여자라면 무담보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사기를 쳐서 이들의 삶을 착취하고, 동시에 여성 노동의 저임금과 짝을 이루는 고액 화대를 형성하여 여성들을 이용해 돈을 벌어들인 죄에 관해 논했다. ‘홈리스행동’과 ‘빈곤사회연대’는 여성 홈리스의 비가시화 문제에 주목하며 여성 홈리스가 마주하는 곳곳의 폭력과 희롱이 이들의 일상을 긴장과 경계 태세로 몰아넣고 있다고 보았다. 여성 홈리스가 일차적으로 지원 체계 이용자 대다수를 구성하는 남성으로부터, 넓게는 성 인지적 관점이 부재한 정책 구성으로부터 배제와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는 말이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는 탈가정 청소년 모두 한국 사회에서 매우 취약한 위치에 놓이는데, 특히 젠더 불평등으로 벌어지는 폭력이 여성 또는 성소수자 등 약자들을 향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비영리 민간단체 ‘지구인의 정류장’ 또한 농업에 종사하는 여성 이주 노동자의 열악한 주거 환경과 이들이 겪는 젠더 폭력에 주목하며,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착취하는 또 다른 여성들의 노동과 주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안전과 존엄을 보장받지 못하는 삶
평소 주거권 보장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안전과 존엄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의 삶은 서로 닮아있으며, 이들이 도시에서 겪는 차별과 멸시의 모습이 꽤나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도시란, 단순히 행정구역을 구분 짓는 표현이 아니라, 자원과 인프라가 대규모로 확보되어있는 장소이자, 이를 통해 자본주의를 극대화하고 상품화하는 장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도시 공간은 자본주의를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겪는 고통을 해소하기보단 묵살하는 선택을 해오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도시는 정상성을 전제로 한 가부장제 남성 중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주거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은 오랫동안 가부장제 중심의 한 ‘가정’이 빚을 져서 주택을 ‘소유’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구조를 유지해왔다. 집값이 오르면 빚을 갚을 수 있고, 투기를 하면 자녀의 결혼 자금과 부부의 노후 자금도 마련할 수 있다고 여겼다. 사실상 가족 구성원들의 복지를 국가가 아닌 집을 통해 해결하는 구조다. 국가의 태도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지난 정부의 주거복지 로드맵은 생애단계별·소득수준별 맞춤형 지원 방안으로 발표되었지만, 청년 →신혼부부 → 고령층으로 이동하여 정상가족을 꾸리는 이가 주택을 소유하는 주거 사다리를 전제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청년층의 결혼과 출산, 육아를 고려한 로드맵이 전부였다. 도시가 어떻게 젠더화되어 있는지, 어떻게 여성을 착취하고 있는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어떤 이의 안전하고 존엄한 삶을 외면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국가의 주거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투기 수단으로 여기는 현실 가운데, 주거복지를 필요로 하는 이들조차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주거 안정을 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렇게 만들어진 테두리 밖으로 이탈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정상성’을 획득하지 못한 자가 되어 함부로 낙인찍히고 소외받게 된다. 국가 또한 이에 대해 시큰둥하거나 어쩔 수 없는 일, 노력을 통해 극복해야 하는 일로 취급하고 있다.
가족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있지 않은 여성은 함부로 의심받고 낙인찍히며, 주거권을 보장받아야 할 대상으로 취급되지 않으며, 아주 쉽게 편견 가득한 시선을 받는다. 민달팽이유니온의 한 활동가는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네가 그렇다는 건 아닌데 셰어하우스에 사는 여자들은 문란하다더라’라는 말을 들었다. 그 활동가는 셰어하우스에 살기 전까지는 성범죄 사건이 벌어졌던 원룸촌에서 살고 있었다. 원룸에 혼자 사는 여성은 생존과 안전에 대한 두려움을 어쩔 수 없이 떠안은 채로 지내야 하고, 비혈연 비혼인 관계의 사람들과 함께 사는 여성은 문란함에 대한 편견을 마주할 때마다 할 수 있는 힘껏 비웃는 것으로 떨쳐내며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고 했다.
이 같은 배경하에 민달팽이유니온은 지난해 11월 ‘집과 젠더’ 포럼을 열었다. 이 포럼은,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어떤 이의 주거권을 외면하는지, 도시에서 이뤄지는 민주주의가 어떤 이를 소외하는지를 이야기하기 위한 자리였다. 많은 이에게 주거 문제가 곧 부동산 문제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민달팽이유니온을 비롯한 주거권 활동가들은 언제나 고민이 많다. 한국 사회는 돈벌이 수단으로서, 자산 증식 수단으로서 집을 이야기하기에 바쁘다. 사람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존재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공간으로서 집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쉽게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이란 존엄한 삶을 위해 반드시 보장되어 할 최소한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언제까지고 외면할 순 없다. 단순히 투기나 개발이익에 관한 계산을 넘어, 모든 이에게 주거를 보장하기 위한 여러 맥락을 내포한 주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과제는 미뤄지고 있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집과 젠더’ 포럼은 그렇게 집에 관하여 주목받지 않는, 그러나 계속해서 어떤 이의 삶을 착취하거나 소외하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자 했다. 주거권에 대한 도시적 맥락, 관계, 신체, 섹슈얼리티, 노동에 관한 이야기들을 배제하지 않고 상상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뤄진 자리였다.
도시에 살 ‘자격’
민달팽이유니온은 집다운 집에 살 권리를 보장받고자 하는 이들에게 특정한 자격을 요구하고, 자격을 획득하지 못하거나 이탈한 이에 대해서 낙인을 찍고 끊임없이 소외시키는 문제들에도 주목했다.
가장 쉬운 예로는 대학생 기숙사가 있다. 대학생 기숙사를 짓고자 할 때 일부 지역 주민들의 조직적인 반대 민원이 이뤄지는 일은 매우 흔한 도시 풍경이다. 공공임대주택 반대에 관해서도 거의 동일한 양상이 벌어진다. 보통 대학생 기숙사, 청년 대상 공공임대주택을 반대하는 이들은 크게 네 가지 이유를 든다. 기숙사나 공공임대에 사는 청년들은 출신이 불분명하여 주민의 안전과 치안을 위협한다, 교통 혼잡을 일으킨다, 원룸 주인들이 생존권을 침해받는다, 차라리 공원을 만들어야지 공공임대나 기숙사는 안 된다 등이 주요 내용이다.
2015년 진행되었던 목동 행복주택 사례에 관한 연구 자료를 살펴보면, 주거권을 보장받고자 하는 이들을 향한 혐오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당시 행복주택이 목동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했던 주민은 인터뷰를 통해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허덕인다’ ‘요즘 애들은 힘든 거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 경제가 어려운 거다’, 그리고 ‘목동에 살고 싶어하는 애들이 떼쓰는 거다’라는 요지로 말을 했다. 이화여대 인근에 기숙사가 지어질 때 이를 반대하던 한 주민은 ‘신촌에 있는 대학생들 내가 하숙으로 먹여 키워서 영부인이나 더 좋은 지위에 가게 만들어준 것’이라고 했다.
기숙사, 행복주택 등 저렴하고 안전한 집에 대한 반대는 도시에 살 자격을 논하며 누군가를 이탈시키고 낙인찍어 결국 소외시키고 마는 일련의 과정이다. 주택을 소유하지 않은 이들, 점유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은 이들, 그리고 정상성을 확보하지 못한 이들을 향한 낙인이다.
도시는 어떤 이의 안전과 평화, 그리고 존엄을 보장하고 있는가?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도시에서 소외되고 낙인찍힌 이들이 겪는 주거 문제를 함께 외치고, 계속해서 물어야 할 것이다.
1) 황유나(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도시는 어떻게 여성을 착취하는가? 성매매를 중심으로’(민달팽이유니온 집과젠더포럼 1회 차 〈여성주의적 도시는 가능한가〉, 2022)
2) 이재임(빈곤사회연대), ‘도시에서는 누가 살아갈 수 있는가? 여성 홈리스를 중심으로’(민달팽이유니온 집과젠더포럼 1회 차 〈여성주의적 도시는 가능한가〉, 2022)
3) 미혜(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함께걷는아이들), ‘도시에서는 누가 살아갈 수 있는가? 탈가정 여성청소년을 중심으로’(민달팽이유니온 집과젠더포럼 1회 차 〈여성주의적 도시는 가능한가〉, 2022)
4) 김이찬(지구인의 정류장), ‘농업 여성 이주노동자의 주거환경’(민달팽이유니온 집과젠더포럼 6회 차 〈국적이 뭐길래〉, 2022)
지수
청년 세입자 대상 주거교육 및 주거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집 없고 돈 없어도 안전하게 오래 살 수 있는 공공임대가 더 많이 확대되길 바라며, 주거권과 기후위기, 페미니즘이 연결되는 지점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