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했습니다

[388호 커버스토리]

2023-02-28     박제민

이상한 말들

고매하신 분들께서 어쩌다 잘못하(신 것을 걸리)셨을 때 사과 대신 이렇게 읊조리는 것을 본다. “유감의 뜻을 전합니다.” 유감? 유감이라…. 모호한 말이라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봤다. 유감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라는 뜻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잘못은 했는데 그게 영 마음이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고 불만스럽다는 뜻을 전하겠다는 말인가? 그냥 잘못했다고 하면 될 일이다.

2022년 8월경 “심심한 사과”가 큰 화제였다. 모 업체가 사과문을 올리며 “심심한 사과 말씀드립니다”라고 썼는데, 누리꾼들이 대거 일어나 “나는 하나도 안 심심하다” “더 화가 난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대통령께서 친히 나서시어 ‘디지털 문해력’ 향상을 지도하셨지만, 해당 업체가 보인 대응은 간단했다. “진심으로 사과 말씀드린다”라고 다시 올린 것이다. 그렇다. 어려운 말이나 헷갈리는 말을 굳이 쓰지 않아도 그저 잘못했다고 하면 된다.

“본의 아니게”라는 말을 애써 갖다 붙이는 경우도 왕왕 본다. 어떻게든 자기 책임을 가볍게, 잘못을 작게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게 더 무섭다. 의도 없이 한 행동이 타인을 훼손시켰다니! 그 평소의 마음가짐이 어떠했을까. 단언컨대 사람은 절대로 상상해보지 않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자나 깨나 생각 조심! 애당초 본의를 다잡고 정신을 차리며 사는 길만이 나와 타인의 사람됨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떤 사과는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했다거나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면서,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한 말들을 곁들여 은근슬쩍 차선을 변경한다. 또 어떤 사과는 기-승-전-훈화 말씀으로 변태하여 “하지만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민족”이라면서 “다시 일어서자!” “대단히 감사합니다”로 끝마치며 항로를 완전히 이탈한다.

어떤 사과는 “모든 분에게 죄송”하고 “모든 분에게 감사”하다면서 깜찍하게도, 아니 실은 끔찍하게도 “모두 안녕” 네 글자로 끝나는데, 정작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없다. 단언컨대 모두에게 사과하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사과하는 것이 아니다. 또 어떤 사과는 피해자를 찾지 않고 사찰이나 교회를 돌아다니며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차선 변경이나 항로 이탈이 아니다. 아예 목적지 자체가 잘못되었다.

간혹 언론을 통해 “사실상 사과”라는 말을 볼 때가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라 또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봤다. 사실상은 ‘실제로 있었던 상태. 또는 현재에 있는 상태’라는 뜻이다. 그럼 결국 현재 실제로 사과하고 있는 상태라는 말인데, 뜻을 풀이해보니 아예 이해가 안 간다. 사실상에서 ‘상’을 빼고 그냥 사과하면 안 될까?

왜 사과를 안 할까?

특별히 눈치챌 것도 없이, 저 이상한 사과 아닌 말들을 내뱉는 이들은 대부분 정재계 핵심 관계자들이다. 많이 배워서 높은 직책에 올라 큰일을 하시는 분들이 어쩜 저렇게 이상한 말을 할까. 아니, 왜 사과를 안 할까? 혹자는 돈과 힘이 생기면 뇌에서 독특한 호르몬이 분비되어 절대 사과를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비꼬기도 한다.

간혹 언론, 특히 정치면 기사를 보면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 “강 대 강 대치” 같은 표현을 보게 된다. 현대의 현실 정치는 여론을 등에 업고 말과 글로 하는 싸움이기에 자칫 사과하는 일을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 보이는 것처럼 느껴 소극적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상이 이른바 ‘정적’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 특히 연이은 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라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상대가 이분들이라면 좀 밀려나면 어떤가. 강 대 강으로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울분을 토해낼 자리 한쪽 마련해주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가.

시사와 정치를 평론하는 대부분 사람이 하는 말이 있는데 결국 지는 쪽이 이긴다는 것이다. ‘나라님’들끼리야 서로 사과를 하면 더 밉보여서 결국 정치 생명이 끝장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직을 맡은 한 사람의 진정한 사과가 손가락질을 받기는커녕 큰 울림을 일으켜 한 시대를 다음 장으로 넘어가도록 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사과의 힘

1970년 당시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게토 유대인 추모비를 방문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폴란드는 나치의 침공으로 쑥대밭이 되었고, 수도였던 바르샤바의 게토에서는 유대인들이 고립되어 저항하다가 무참히 학살당했다. 그 나치의 나라였던 독일의 총리가 온다니 폴란드 사람들 마음이 고울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빌리 브란트는 추모비를 방문해서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도 나치를 피해 외국으로 망명했던 사람이지만, 독일 총리로서 독일의 과거사에 대해 사죄의 뜻을 표현한 것이다. 훗날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인간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행동이, 이 사과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이 장면을 중계하던 헝가리 방송국 진행자는 “무릎을 꿇은 것은 브란트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민족이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 자신이 나치 피해 생존자였던 폴란드의 유제프 치란키에비치 총리는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빌리 브란트를 끌어안고 울면서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는 않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전범국가였던 독일이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기여한 사례로 빌리 브란트의 무릎 사과가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하지만 늘 문제는 국내에서 발생하는 일. 빌리 브란트는 이 사과 때문에 서독의 정치적 경쟁자들로부터 ‘매국노’ 소리를 들으며 혹평받았다. 영토권 분쟁에서 불리해졌을 뿐만 아니라 동구권과 화해하려는 정책에 대한 불만까지 합쳐져 빌리 브란트는 독일 역사상 최초로 불신임 투표를 받게 된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라는 말을 이럴 때 쓰면 좋을까? 불신임 투표는 단 2표 차이로 부결되었고, 의회를 해산하고 치러진 총선에서 빌리 브란트가 이끄는 사회민주당(사민당)은 역사상 최초로 기독교민주연합(기민당)을 제치고 1당에 오르면서 빌리 브란트는 총리 연임에 성공하며 전보다 훨씬 더 강한 정치적 위상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몇 번의 사과가 인상적이었다. 하나는 2005년 겨울 농민들이 시위하던 도중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전용철, 홍덕표 씨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12월 27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을 위로하며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했다.

그는 이 사과가 경찰에만 책임을 묻는 것 같아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뤄야 하며 이 점을 국민과 공직사회에 명백히 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폭력 시위가 없었다면 이런 불행한 결과가 없었으리라는 점을 짚었고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정부도 이전과는 다른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당시 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사과에 대해 무성의하다고 공격했지만, 지금까지도 의미 있는 사과로 기억되고 있다.

또 하나는 제주 4·3 사건에 대한 연이은 사과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10월 31일, 제주 4·3 사건에 대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최초로 사과했다. 당시 보도된 기사를 보면 이날 노 전 대통령이 유감 표명이 아닌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명확히 사과하자 유가족들이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1) 또 2006년에는 역대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4·3 사건 위령제에 참석해 추도사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도 사과를 했다. 제주도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사과가 피해자 회복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꼽는다.2) 추도사 일부를 옮겨온다.

자랑스런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야 합니다. 특히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국가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합니다. 또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입니다. 그랬을 때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확보되고 상생과 통합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누구를 벌하고, 무엇을 빼앗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분명하게 밝히고, 억울한 누명과 맺힌 한을 풀어주고,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다짐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통해 통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난날의 역사를 하나하나 매듭지어갈 때, 그 매듭은 미래를 향해 내딛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최근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선감학원’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에 대해 도지사로서 공식 사과했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 선감원으로 시작하여 해방 이후 경기도에 이관되어 이름을 바꾼 뒤 1982년 9월 30일 폐쇄될 때까지 이른바 부랑아로 지목된 청소년들을 강제수용한 시설이다. 청소년들에게 강제 노역을 강요하고 구타와 고문을 자행하는 등 국가 폭력을 일삼아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김 지사는 이전 정부의 관선 도지사 시절에 벌어진 일이지만 현재 도지사로서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사과하며 피해자 지원 센터 설치, 의료 서비스 내실화, 추모 공간 조성, 특별법 제정 촉구 등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사과받고 싶다

사회학자 엄기호는 사과 매뉴얼 따위가 돌아다니는 점에서 사과에 대한 한국 사회의 엽기성이 드러난다고 꼬집는다.3) 부인할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공직자나 큰 회사 기업인으로서 모르겠으면 배워서라도 사과를 했으면 좋겠다. 못 하겠어도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거면 사과할 때 사과해야 한다.

뇌과학자 정재승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가 쓴 《쿨하게 사과하라》(어크로스)는 사과가 갖추어야 할 6가지 충분조건을 적고 있다. 요약하자면 첫째, 사과 앞뒤에 변명을 붙이지 않을 것. 둘째, 무엇이 미안한지 구체적으로 표현할 것. 셋째, 자신의 책임과 잘못임을 명확히 표현할 것. 넷째, 보상을 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할 것. 다섯째, 재발 방지를 약속할 것. 끝으로 여섯째, 쉽지 않겠지만(나는 이 부분을 용서받기 쉽지 않을 것이란 뜻으로 여긴다) 용서를 구할 것 등이다. 이런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할 때 사과가 아니라 이상한 말들이 나온다.

그래서 사과받고 싶다. 2009년 1월 20일, 용산 남일당 건물 망루에서 여섯 명이 죽었을 때 무리한 진압 작전을 펼친 것을 인정하고 사죄했다면 어땠을까. 책임자였던 당시 서울경찰청장에게 응분의 책임을 지우고(그는 현재 국회의원이자 집권당의 사무총장인 김석기 씨다), 피해자들에게 치료와 보상을 제공하고, 궁극적으로 재개발 사업의 폐해와 중소 상공인의 고통을 없앨 방안을 마련했다면, 오늘날 그 정부는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2014년 4월 16일, 침몰해가던 세월호에서 스스로 탈출한 사람 말고는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했을 때, ‘살려야 한다’를 적은 종이를 벽에 갖다 붙이고 사진을 찍어 내보낼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의 최종 책임이 국가에게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혔으면 어땠을까. 진도 앞바다에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개별화된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크레인이 됐건 구축함이 됐건 다이빙 벨이 됐건 뭐든 간에 투입해 구조에 힘썼으면 좋지 않았을까. 이윽고 침몰한 배를 인양해서 흔적이라도 찾아주고, 왜 배가 침몰했는지 누가 잘못했는지 명백히 밝혀주었다면 오늘날 그 사람은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광장에서 밀려난 추모 공간에 전기가 언제 다시 들어올지 모르겠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 놀러 간 일이 잘못이 아니라 놀러 가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국가가 잘못된 것이다. 수많은 신고를 받았음에도 경찰은 왜 오지 않았는지, 용산구청과 서울시는 무엇을 했는지, 궁극적으로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알고 싶다. 정부 책임자로부터 사실상 사과가 아니라, 사찰이나 교회를 돌아다니며 내뱉는 사과가 아니라, 무엇이 잘못됐고 누구에게 실질적 잘못이 있고 누가 도의적 책임을 질 것인지 듣고 싶다. 정부는 정말, 단 한 번이라도 유가족에서 밀려줄 수는 없을까. 그렇게 밀려난 정부를 야당이 정치적으로 얕은수를 써서 공격한다면, 보통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여론은 어디로 움직일 것인가?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진심을 담은 이 한마디로 회복과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물론 회복의 첫 번째 대상은 가해자고, 피해자는 훨씬 나중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그렇게 되길 바란다.) 빌리 브란트의 무릎 꿇기와 노무현의 사과처럼 한 시대가 다음으로 넘어가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회복과 변화를 따져보기 전에, “잘못했습니다” 이 한마디를 건넬 줄 알고 또 건네야 할 때 해야 하는 것이 사람이 사람으로서 사람에게 가져야 하는 도리다.

■ 주

1) “노대통령의 4.3사과 의미”, 〈한겨레〉(2003.10. 31.).
2) “노무현 대통령 사과, 4.3피해자 회복에 가장 큰 영향”, 〈제주의소리〉(2020.1.4.).
3) 엄기호, ““언제까지 사과하나?” “사과한다고 받아주나?””, 〈한겨레21〉(1446호, 2023. 1. 15.)


박제민
사과의 말과 행동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 직업(생활)정치인. 녹색당 서울특별시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