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388호 커버스토리]

2023-02-28     백소영

사적 일화로부터의 깨달음

나는 남동생이 둘 있다. 2년 터울이니 고만고만한 나이 차이이다. 이 경우 보통은 성장 과정에서 남동생들이 누나의 권위(?)에 도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 집은 특수한 상황이었다. 심방을 자주 가셨던 부모님의 부재 시에 나는 집안에 남겨진 ‘큰아이’로서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알았지? 엄마 아빠 없을 때는 누나가 부모님 대신이야.” 나에게도, 동생들에게도 계속 확인시키신 부모님 덕분에 어려서부터 나는 무한책임감을, 동생들은 무조건적 복종심을 내면화했다. 부모님도 누나의 권위를 늘 확보해주셨다. 어쩌다 동생들이 누나에게 덤비면 호통을 치셨다. “어디, 누나한테!” 하지만 뿌듯한 권력만 누리는 자리는 아니었다. 부모님이 밤늦도록 귀가하지 않으시면 속으로 별별 상상을 다 했다. ‘만약 두 분이 교통사고로 함께 돌아가시면 난 뭘 해서 쟤들을 먹여 살리지? 이 집은 교회 사택이니까 우린 집도 없는데.’ 동생들에게는 고작 두 살, 네 살 많은 나도 어린이였지 않았나. 그런데 왜 내가 서른 살 가까이 차이 나는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고 ‘부모의 고민’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속마음을 밖으로 드러내 따지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그 역할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어려서부터 묵묵히 ‘큰아이’의 몫을 했고 지금까지도 그랬다. 집안 대소사는 물론 모든 일을 주도하고 재정적으로도 으레 내 책임이라 여겼다.

나의 누적된 억울함은 5년쯤 전에 어이없는 일로 터져버렸다. 늘 ‘누나’가 주관해오던 가족 행사의 하나였던 어머니 생신 모임에서 사달이 났다. 당시 아프고 바빴던 나는 하필 모임 당일 서너 건의 외부 일정이 겹친 까닭에 처음으로 막내에게 주관을 맡겼다. 자세한 내용이야 일기장이 아닌 여기에 풀어낼 이유가 없다. 하여튼 상황은 내가 준비하던 방식에 익숙했던 부모님께 생소했고,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어그러진 상황에서 심지어 동생 가족이 약속 시간에 40분을 늦게 되었다. 서울을 남으로 북으로 가로지르며 일정을 마치고 용인까지 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동생네 집 근처까지 시간에 맞춰 도착한 나로서는 코앞 식당에 나오는데 늦는 동생네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필 식당 앞이 통유리라 천천히 주차하고 유유자적 들어오는 동생네 식구들 태도마저 거슬려 보였다. 그래도 크게 언성을 높일 생각은 없었다. 다만 늦은 것에 대한 사과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누나로서’ 한마디했다. “넌 미안하다는 말도 안 하니?”

격식을 차린 사과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언급은 해야 할 일이었다. “아, 미안해요. 내가 시간을 착각했어요.” 머리를 긁적이며 꾸벅 인사하는 몸짓이었어도 족했을 일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동생이 좀 달랐다. 매우 예민했고 심지어 화를 냈다. 대뜸 ‘여기서 무릎이라도 꿇으라는 거냐’며 격앙된 반응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동생네 가족이 식사 장소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 헤아렸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동생이 평소랑 달랐던 것은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나 역시 아프고 바쁘고 지쳐있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필시 말투가 곱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다고 목소리가 크거나 거칠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쩌면 좋나. 다음은 그야말로 상상 초월이었다. 동생은 점점 격해졌고, 나 역시 ‘대드는’ 동생이 당황스러웠으나 물러서지 않았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이 오고 가다가 급기야 동생이 내 멱살을 잡을 듯 달려들며 “당신, 나와!”라고 소리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평생 처음 들은 말이다.

“부모를 앞에 두고 무슨 짓들이냐!” 화가 나신 아버지께서 벌떡 일어나 식당 밖으로 나가셨다. 하지만 그곳은 일반 차량이 다니지 않는 곳이다. 동생으로부터 ‘당신’이라는 말을 들은 충격에 반응할 틈도 없이 얼른 ‘큰아이의 책임감’이 발동했다. “아빠, 여기 차 없어요!” 아버지 뒤를 따라가며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다. 돌아갈 생각이 없으시다는 말에, 엄마의 의중을 여쭈니 엄마는 동생네와 함께 있으시겠단다. 하여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어 나는 아버지를 대접하고 동생은 어머니를 대접하는 이상한 가족 행사가 진행되었다.

문제는 오히려 그 이후였다. 그래도 어머니 생신인데, 망쳐진 것에 대한 미안함에 나는 내 감정을 뒤로하고 꽃다발을 사서 친정집 거실을 한가득 꾸몄다. 사과의 의미였다. 조금 지나자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네도 부모님 댁으로 들어왔다. 동생은 곧장 부모님께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언성을 높여 죄송하다고. 그런데 뭔가 잘못되지 않았나? 언성은 나한테 높였는데? 언성만 높였나? 누나보고 ‘당신’이 뭔가! 고작 네 살 아래 동생을 포대기로 업고 수요일 저녁 예배 뒷자리에 앉은 어머니를 대신해서 문밖에서 서성이곤 했었던 누나다. “저기 엄마 보이지? 예배 금방 끝날 거야.” 어쩌다 동생 무게에 휘청 넘어질 때면 아이 쪽으로 넘어져 울면 예배에 방해가 될까 봐 어설픈 운동신경을 발휘하여 내 쪽으로 넘어져 무릎이고 얼굴이고 깨먹은 일이 다반사였건만, 정작 나는 아파도 울지 않았다. 내가 참아내고 감당한 세월에 대한 보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누나로서의 존중, 그건 내가 이 가족 구성원에게 요구할 당당한 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풍경이 이상했다. 어린 시절과는 사뭇 달랐다. 부모님께는 얼른 사과했던 동생이 나에게는 오히려 화를 내고 있었고, 동생의 사과에 화가 풀어지신 부모님도 잘잘못은 따지지 말고 ‘얼른 화해하라’며 나를 종용하셨다. 명령, 애원, 협박. 장르도 다양했다. 독자들로서는 웃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가족 간 관계 역학을 재고할 만한 큰 사건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상황, 그리고 오히려 나보고 (별일 아닌 일을 크게 키운 죄를) 사과하라는 이 상황을 난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강자는 사과하지 않는다?

감정이 담겨있을 때는 의사 전달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기에, 나는 일주일을 기다렸다. 동생도 평소와 달리 유난히 공격적이고 예민했던 것으로 볼 때 뭔가 괴로운 일이 있었겠거니 싶어 기다려주자는 마음이기도 했다. 그런데 갈수록 난감했다. 부모님으로부터는 어린 동생도 아니고, 심지어 남자의 자존심을 세워줘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그러니까 동생 가족들 앞에서 내가 너무 동생을 나무라듯 몰아세웠다는 거다. 그럼 동생이 내게 먼저 했던 무례한 말과 태도는? 조카들 앞에서 자기 아빠가 손위 누나인 고모에게 때릴 듯 우격다짐을 하며 소리친 것은? 누나니까 져주란다. 품으란다. 동생은 남자고 가장이니 세워주란다.

이상하지 않나? 어려서부터 작동했던 법칙이 왜 바뀐 걸까? 나는 한참 생각하고 오래 기도해야 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결국 내가 그동안 책임의 이름으로 부여받았던 권위는 ‘부모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구나! ‘누나는 부모 대신’이란 법칙은 그 역할이 필요한 순간에만 작동하는 것이었구나. 반평생을 의무와 책임만 다하다가 졸지에 ‘권리’를 잃어버린 나는 기가 막혔다. ‘시’부모가 아들 쪽으로 팔이 굽는 것이야 예상할 수 있었기에 명치끝까지 아프진 않았지만, 내 부모도 결국 늙고 약해지면 필요에 따라 편을 드는구나! 어려서 내가 부여받은 권리는 힘을 보태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구나! 장성하고 성공한 아들은 이제 나보다 더 의지할 만한 대상이겠구나! 이런 생각이 미치자 문득 세상의 모든 약자가 가여워졌다. 사과받을 권리는 강자에게만 있다는 것이 피를 나눈 가족끼리도 작동하는데, 하물며 이익사회에서는 어떠할까. 그래서 강자들은 사과하지 않는가 보다. 어쩌면 동생도 미처 깨닫지 못했을 수 있다. 그동안 ‘아버지’ ‘박사님’ ‘사장님’으로 불리며 성공 가도를 달려온 중년의 세월 동안 차근차근 누적된 언어와 습관들이 쉽게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태도를 잊도록 했는지 모른다. 자신의 큰소리에 주눅 들지 않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사람을 근간에 처음 만나 당황한 쪽은 어쩌면 동생이었는지도 모른다.

둘이 화해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생일상을 받지 않겠다는 어머니의 엄포에 동생은 사건 한 달 뒤쯤 내게 이메일을 보냈다. 부모님을 위해서 ‘화해한 척’ 행동하자는 제안이었다. 어차피 서로 바빠서 일 년에 몇 번 안 만나는데, 부모님 계신 동안 그 정도 못 해드리겠냐는 말이었다. 메시지에는 강자의 ‘너그러움’이 오롯이 담겨있었다. ‘너를 용서할 마음은 전혀 없지만, 부모님을 봐서 연기는 해줄 수 있다’는 의미였다. 나는 무슨 잘못을 했기에 동생에게 사과해야 하나? 이야기인즉, 야무지게 ‘팩폭’을 하는 누나의 패기 덕분에 자기 아내와 아이들이 놀랐단다. 상처를 받았단다. 난 동생에게 답장을 했고, 부모님께는 선언을 했다. 각자 나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성찰하고 기도하라고. 그리고 진심으로 정확하게 그 내용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면 그땐 용서하겠노라고.

다행히(?) 나는 다른 구성원들이 강제로 재배치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족 역학 안에서 여전히 또 다른 ‘강자’였다.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나는 가족 구성원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받는 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주 2회는 친정에 들리고 장도 봐드리고 외식도 함께한다. 하지만 이건 일종의 ‘유예기간’이다. 조건은 하나다. 진심 어린 사과를 하든지, 아니면 나에게 ‘화해(하는 척)하라’는 강요를 하지 않는 것. 그래서 지금까지도 친정집에서 그날의 사건은 금기어이다. 그냥 계속 유보된 채 시간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종종 생각한다. 내가 만약 이 집에서 제일 약했다면, 가난했다면, 못 배웠다면, 힘이 없었다면,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 이 가족 구성원들에게 나의 생존을 위한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조건이었다면, 나는 내가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을까? 생각이 이리 미치자 문득 그 힘을 갖지 못한 세상의 약자들이 얼마나 위태롭고 외롭고 서러울지, 마음이 저려왔다.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비는 것

예전과 달리 SNS가 발달한 요즘 세상에서는 갑이라고, 강자라고 무조건적 권력을 남용하기 힘들다. 시민사회의 합의와 인권이 법률적으로 보장된 상황에서 아무리 ‘관행’이라 해도 일단 드러나면 세상의 비난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잘못이 세상에 드러났을 때, 가장 바르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진정한 사과이다. 하지만 사람 심리가 그렇지 않다. 분명히 자신이 잘못한 일이 드러났는데, 발뺌할 수 없을 만큼 명백한 잘못인데, 강자의 습관과 태도를 배워버린 사람들은 쉽게 사과하지 않는다. 그들이 가장 자주 하는 반응은 ‘무시’다. 가만있으면 조금 시끄럽다 말겠지. 힘없는 사람들이 왁왁거려봤자 달라지는 게 있겠어? 그런 심보다. 그래도 지속적으로 사과를 요청하면 ‘자기 합리화’로 수를 바꾼다. 네가 오해해서 그렇지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는 변명이 길어진다. 오죽했으면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오지 않았나. 어떻게 같은 잘못인데, 남이 하면 분명 불륜인 행동이 내가 하면 로맨스일까? 그래도 상대가 계속 명백한 잘못을 명시하고 사과하라고 외치면 마지막 행동은 ‘쌍방고발’이다. ‘너는 잘못한 거 없냐’며 상대방의 치부를 들춰낸다. 요즘 정치권에서 자주 보는 풍경이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을 보고 잘못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사과’의 사전적 정의에 주목해보자.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 아주 명료하다. 여기엔 강자와 약자, 어른과 아이, 어릴 때와 성인이 되었을 때,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나 차등이 없다. 사과는 잘못한 사람이 피해 대상에게 하는 거다. 어른이라도 아이에게 잘못했다면 아이 앞에서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런데 세상은 이 명료한 원칙을 가르치지 않는다. “먼저 잘못했다고 하지 마. 그러면 지는 거야.” 이렇게 아이들에게 훈육하는 어른들이 많다. “미국에서는 결코 I am sorry를 먼저 말하지 마세요. 법정에서 불리해요.” 유학 가기 전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다. “내가 오늘 하루만 이 백화점에서 800만 원 넘게 썼어. 그런데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해?” 몇 년 전 불법주차 구역에 차를 주차해놓았던 한 고객은 이를 지적한 주차 아르바이트생을 무릎 꿇려놓고 오히려 자신에게 지적한 일로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사과란 주체와 대상이 아주 분명한 행위다. 불법주차를 했으면 내가 하루에 얼마를 썼든 그건 아무 상관이 없다. 내가 잘못을 한 주체이다.

그래서 실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인정하는 것이 먼저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에 근거한 매우 정당하고 양심적인 자기 성찰이다. 그런데 ‘오만 증후군’에 걸린 세상의 강자들은 이 성찰을 할 인지능력을 잃었다. 뇌과학자들이 하는 말이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상호작용에서 적절한 행동을 하게 되어있는데,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자기 삶의 환경이 안정적일수록 상대방을 배려하고 살피는 능력이 현저히 퇴화된다는 거다. 안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슬픈 현실은 반대의 사람들, 그러니까 잘못한 일이 없음에도 살아남기 위해서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 삶의 배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자꾸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어느덧 그것이 ‘나’를 구성하게 되는 법인데, 생존을 위해 정당한 자기주장을 포기한 후자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이다. 당당하게 주장하세요! 사과를 받아내세요!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없는 관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야말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그러니 모두 자립 자생의 힘을 가지자는 결론은 아니다. 결심한다고, 노력한다고 그 힘을 다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예수께서 가르치신 무한 용서의 마음으로 사과받을 생각 말고 매사에 용서하고 살자는 은혜로운 제안도 신자로서는 하나의 선택이겠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는 한 예수께서는 관계의 불의를 용서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었다. 거짓과 독선과 오만과 편견을 그대로 수용하라고 하신 것도 아니었다. 검을 주러 오신 예수님은 옳지 못한 일들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아니오’를 외치고 부정의를 그치는 일에 헌신하라고 말씀하셨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만족감의 문제가 아니다. 지위, 출신, 권력, 부와 상관없이 용서는 피해자에게 구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다.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 실재는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가 박힌 궁전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서 대하는 세상, 그것이 창조주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의 근본 질서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잘못을 피하기 어렵다. 유한한 사람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은총을 베푸셔서 회개하면 다 용서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니 하나님께는 회개하고 사람에게는 사과할 일이다. 피해자가 분명히 있는데, 하나님께만 회개하고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면 그건 큰 오산이다. 땅에서 매었는데, 어찌 하늘에서 풀릴까. “당신은 나에게 잘못을 했어요. 그러니 뭉뚱그리지 말고, 엉뚱한 대상에게도 말고, 나에게 사과하세요!”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행위는 나의 자존감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능력을 잃어버린 상대를 돕는 행위이기도 하다. 사과할 줄 알아야 비로소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로의 ‘인간성’을 유지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과하지 않는 사람,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결국 자기 답 안에 갇혀서 ‘완악함’과 ‘강퍅함’으로 다른 이들을 대할 테니까. 그런 마음에는 성령도 들어갈 틈이 없다.

물론 잘못한 사람이 ‘곧바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그야말로 세계 평화이다. 그게 안 되니 세상은 온통 큰소리가 나고 잘못했다고 비난하는 목소리로 가득한 것이겠지. 그래도 이 긴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 잘못한 사람의 인정과 구함 없이 쉽게 용서하지 말라. 그건 서로를 망치는 일이다. 하지만 이 말이 복수하라는 뜻은 아니다. 그가 자기 성찰을 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정확하게 피해자를 향해 용서를 빌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라는 말이다. 그 기다림은 오래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사람됨을 위한 기다림이다. 자기 성찰이야말로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의 독특성이요 능력이다. 이 기회를 그에게 부여해야만 그는 비로소 사람이 되어갈 수 있다.

백소영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와 미국 보스턴 대학교에서 기독교사회윤리학을 공부했다. 이화인문과학원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강남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회 및 시민단체에서도 강연하며 기독교 세계관과 윤리의식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세상을 욕망하는 경건한 신자들》 《엄마되기, 힐링과 킬링 사이》 《교회를 교회되게》 《우리의 사랑이 의롭기 위하여》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드라마에서 긷는 영성》 등이 있다. 상호주체적 성경 읽기로 평신도들을 초대하고자 유튜브 채널 〈so young한 인문신학〉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