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프가 교회에 말을 걸어온다면 ― 2023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조사

[389호 시대를 잇는 읽기]

2023-03-31     신하영

*이 글은 2023년 2월 16일 기윤실이 발표한 〈2023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 자료집〉에 실린 ‘우리의 믿음을 넘어, 우리를 향한 믿음으로’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자료집은 기윤실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들어가며: 여론조사 결과를 ‘읽는다’는 것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은 기독교 시민단체 중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편에 속한다. 〈복음과상황〉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 전체로 보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기독교 사회운동과 기독교 언론의 좌표는 어디쯤에 찍힐까. 기윤실이 3년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조사’를 대규모로 진행해서 결과를 발표하는 의의가 여기에 있다. 기독교 사회운동을 하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서 이미 ‘다수’에 들어가지 못하는 교인이나 목회자 또는 신앙인이다. 그만큼 표본(샘플)의 편향성이 크다. 그런데 기윤실이 미약하게나마 기독교 윤리를 실천하고 실천하게 만드는 무대는 교회가 속해있는 ‘사회’이다. 교인들도 사회에서 일상을 보낸다. 그래서 박제된 상태로 ‘교회 밖 사람들’ 혹은 ‘지금 교인들’이라고 대상화된 집단이 아닌, 일상을 살아가며 교회를 바라보고 실망하고 비판하고 기대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기윤실은 2009년부터 총 6회에 걸쳐 한국교회 신뢰도 조사를 수행했다. 기본적으로는 한국교회 전반적 신뢰도, 구성원(목회자, 성도)에 대한 신뢰도, 종교별 신뢰도, 친근감, 호감도와 한국교회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비교 인식과 평가를 지속적으로 추적 조사해왔다. 그러면서도 시대별로 종교, 특히 기독교 평가에 영향을 미친 사건을 중심으로 목회자의 정치적 발언, 정치 참여, 종교인 과세와 사회 활동(선교) 등에 대한 질문을 통해 시의성 있는 사회 인식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2015년에는 종교인 과세와 관련해서 “2015년부터 종교인에게 소득세를 부과할 예정입니다. 종교인 과세에 대해 얼마나 찬성하십니까? 또는 반대하십니까?”라는 질문을 추가했고, 목회자 성범죄 고발이 잇따르던 2017년에는 “현재 한국교회 ‘목사’들이 더욱 신뢰받기 위해 다음 중 어떤 부분이 가장 먼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선택지로 도덕성, 물질 추구 성향, 사회 현실 이해 등을 제시했다. 다음 [표1]은 기윤실의 한국교회 신뢰도 조사 주요 설문 문항을 정리한 내용이다.

[표1] 설문 문항

사회과학 연구자로서 새삼스럽지만, 이 조사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조사는 우리 사회의 목소리를 날것 그대로 듣게 해주기 때문이다. 연구자는 늘 편향성을 경계해야 한다. 모집단이 전체 사회라고 한다면, 설문 조사에서 추출하는 표본은 대표성을 확보해야만 한다. 이 조사 표본이 응답한 내용을 곧 한국 사회 보통 사람들 이야기로 이해하려면 그래야만 한다. 이 조사는 샘플의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인구사회학적으로 개인의 성향과 경향성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성, 연령, 지역에 대한 ‘인구 비례 할당’을 부여했다. 이 샘플들을 한국 사회 축소판으로 보일 수 있도록 구성했다는 의미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운동(movement)에는 조사(survey)가 필요하다. 운동 주체가 자신들 의에 취해 교회 안에서 변화를 주도하는 동안, 주변인들의 기대와 지지에 눈이 가려 보지 못하는 현실을 ‘그나마’ 확인할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특히 무작위 추출을 통해 표본의 대표성이 확보된 이런 조사는, 아프더라도 반드시 마주해야 할 진실을 보여주고, 그간 미진했던 기독교 사회운동 영역을 발굴할 기회를 마련한다. 물론 수년간 그야말로 씨 뿌리는 마음으로 울며 버텨온 운동 영역에서 미약하거나 급작스럽게 나타난 변화의 불씨를 알아차리는 소중한 기회라는 기대도 가질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교차 분석(두 가지 이상의 속성을 동시에 가진 집단에 대한 분석)을 통해 지금 교회 안에 속해있으나 신뢰를 잃어버린 이들과 교회 밖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교회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가진 이들을 포착할 수도 있다.

이 글에서 방대한 설문 조사의 여러 문항 결과를 모두 다룰 수는 없다. 그래서 수십 개의 그래프와 표로 이뤄진 여론조사 보고서를 하나의 단행본, 책이라고 생각하고 하나의 주제로 주요 결과를 엮어서 이야기를 풀어내본다. 이 이야기는 ‘믿음’을 다룬다. 교회의 믿음과 함께 교회를 향한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교회를 향한 기대와 실망

첫 번째 주제는 ‘교회의 믿음’이다. 기독교인이 믿는 것과 믿음에 바탕을 둔 행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이 믿음을 바라보는 시각을 성, 연령, 지역, 소득수준, 이념 성향, 종교, 신앙심 정도, 교회 신뢰도 등으로 나뉜 집단별 응답 차이에 주목해서 보았다. 선거철 여론조사를 할 때는 한국 한정으로 가장 크게 나뉘는 ‘기준’은 영호남 지역별 차이다. 사안별로 여성과 남성 간 차이가 두드러지는 영역이 있고 세대별 차이가 두드러지는 영역이 있듯이, 한국교회에 대해 열렬하고 신랄한 반응을 보이는 인구사회학적 집단이 어디인지 주목했다.

‘교회의 믿음’에 대한 인식은 한국교회가 신념대로 행하고 있는 사회적 활동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으로 정의했다. ‘한국교회의 사회적 기여도’에 대한 응답 결과를 통해 한국교회가 나름대로 ‘성경대로’ 실천하고 있는 사회적 활동, 교회 활동을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한국교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기여하는지를 긍정, 부정으로 답한 이 결과는 ‘당신은 취약계층 구제 및 복지 증진에 한국교회가 얼마나 기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는가’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기대하는 만큼 기여했다고 여긴다면, 긍정적 응답이 나올 것이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경우 부정적 응답을 했을 것이다. 간혹 부정 응답을 한 이들 중 한국교회가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데 오히려 저해하는 요소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사회적 기여도가 비교적 높다고 여겨지는 분야, 즉 긍정적 응답 비율이 높은 분야는 ‘취약계층 구제 및 복지증진’(38.2%)이다. 반면 가장 낮은 분야는 ‘경제성장’(부정적 응답 80.6%)이다. 사회에서 종교가 해야 하는 역할이 경제 부흥만은 아닐 것이다. 교회를 향한, 교회에 요구되는 역할과 기여하는 바가 있고 이에 얼마나 부응하는지를 더욱 주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종교에 요구되는 역할은 개인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으로 나뉜다. 개인적 기능은 ‘삶의 의미와 방향을 제시하고 신념을 제공하는 것’과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기능은 ‘사회 통합에 도움을 주어 갈등보다 유대를 추구하게 하는 것’과 ‘문화 발전에 도움을 주는 것’과 ‘봉사와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1) 이러한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고려하고 현재 한국 기독교의 사회적 기여 정도에 대한 인식을 바라보면 조금 다른 답이 도출된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신념을 제공하는 ‘도덕과 윤리 고취’에 기여하고 있냐는 질문에 70%가 부정적 응답을 했고, ‘부패 방지’에 기여하고 있냐는 질문에는 80%가 부정적 응답을 했다. 일차적으로 개인이 종교를 가졌을 때 본인과 타인이 기대하는 바는 아주 적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 사회운동이 해야 하는 ‘운동’이라면, 흔히 사회적 흐름이나 거대 담론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기 전에 개인적 차원의 윤리와 도덕성을 더 가열차게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나는 그동안 기독교 사회운동이 타인에 대한 비폭력과 포용을 의사소통 제일 원칙으로 삼도록 하는 것, 금융자본주의와 기회주의에 뒤덮인 세상에서 부정부패와 무임승차를 지양하는 삶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을 간과해왔다고 생각한다. 만약 다른 사회운동 단체와 비교했을 때 기독교 사회운동이 지녀야 할 변별적 특징과 강점이 있다면 이 지점이 아닐까 싶다.

기독교인의 믿음에 대한 세상의 기대는 “기독교인(개신교인)이 더욱 신뢰받기 위해 다음 중 어떤 부분이 가장 먼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과 연결 지어 해석할 수 있다. 응답자들은 ‘나만 옳다는 자세’(23.7%)와 ‘이기적 태도’(21.5%)를 가장 큰 개선 과제로 꼽았다. 좀 더 들여다보면, 남성들은 ‘나만 옳다는 자세’(28.2%)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고, 여성들은 ‘정직하지 못한 언행’(21.2%)을 더 큰 문제로 꼽았다. 연령대별로 보았을 때, 30대는 ‘이기적 태도’(25.4%)를 꼽았지만 60대 이상은 ‘정직하지 못한 언행’(23.9%)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는 기독교인에게 기대하는 부분도, 실망하는 부분도 집단별로 상이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흥미롭게도 이 결과는 교사를 향한 한국 사회 인식에 대한 최근 보고 결과와 매우 닮아있다. 한국 사회에서 교사는 교수 학습을 책임지는 교육 전문가면서 동시에 국가공무원으로서 매우 높은 수준의 윤리적, 법적 책무를 가진다. 특히나 백년지대계인 교육을 다루고 아동, 청소년을 대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성스러운 직무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교사를 성직자로 보는 시각, 한 종류의 노동자로 보아야 한다는 시각, 전문가로 대우해야 한다는 시각이 혼재되어있다. 이렇게 얽혀있는 기대와 이해는 교사의 정치적 활동, 단체 활동을 둘러싼 논란을 불러온다.

이런 측면은 기독교인이 청빈하고 윤리적으로 사는 ‘종교인’ 혹은 ‘구도자’ 역할을 할 것을 기대받으면서 동시에 사회에 참여하여 좋은 영향을 미치는 ‘좋은 이웃’ 역할을 하기를 기대받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이 문제가 기독교인에게 주어진 두 가지 큰 계명,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마 22:37, 이하 새번역)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마 22:39)를 어떻게 동시에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다가왔다. 코로나19 유행이 극심하던 시기, 차별금지법 입법화 관련 논란이 극에 달하던 시기에 일부 교회 목회자들은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마 6:33)만을 외치고 ‘밖에서 뭐라고 하든 그건 우리를 향한 핍박일 뿐이다’라고 얘기하며 철옹성을 쌓았다. 그렇게 고립되는 것은 두 계명 중 하나만 좇고 하나는 놓치는 길이다. 내 몸이 사랑할 이웃의 눈과 마음이 향하는 곳에 교회가 있어야 하는 것이 두 번째 계명이고, 이것이 사회가 기독교인과 교회에 바라는 바였다고 생각한다. 취약계층 구제와 사회적 약자 보호에 한국교회가 기여했냐는 질문 모두 과반 이상이 ‘기여하지 않는다’(56.5%, 64.5%) 응답한 것은 이를 방증한다.

그럼에도, 믿음을 갖고 싶어 한다면

두 번째 주제는 ‘교회를 향한 믿음’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내용은 한국교회에 대한 전반적 신뢰도이다. 이념적으로 보수적 성향인 응답자의 신뢰도가 높고 진보적인 성향인 응답자일수록 신뢰도가 낮아지는 경향은 한국교회가 어떠한지, 한국교회에 기대하고 실망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이 조사 결과는 얼핏 ‘한국교회가 보수적이니 보수적인 사람들이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소득수준별로 볼 때 긍정 응답이 높은 집단은 소득수준이 높은 집단이었다. 결합하면 ‘보수면서 계급적 우위에 있는, 그야말로 기득권의 종교’라고 갈음하기 좋은 신호들이다.

하지만 신뢰와 동조는 다르다. 반대의 명제도 성립한다. 주장과 입장에 대한 불신이 곧 그에 대한 반대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조금 더 희망적 관점으로 이 조사를 들여다보고 싶다. 신뢰하느냐는 물음에 부정적으로 응답한 이들 중에는 한국교회에 문제가 있고, 구조적으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가 많을 것이다.2) 그만큼 ‘이 사회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들일수록 기독교를 신뢰하는 비율이 적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교회에 대한 전반적 신뢰도 응답에서 20대의 긍정 응답이 21.8%로 나왔고, 이것은 30대와 50대보다 높은 비율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독교 목사의 말과 행동에 믿음이 간다’라는 문항에서도 20대의 긍정적 응답 비율(19.7%)은 30대(12.8%)보다 높고, 심지어 50대(19.6%)보다 높았다. [표2]에서 보듯이, 연령대별 정치적 성향도 20대에서 진보 성향이 높고(44.2%), 60대에서 보수 성향이 짙다(44.3%)는 점에서 이 표본은 한국 사회를 잘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와 교회 구성원을 향한 청년들의 시각을 지금처럼 절망 일색으로 생각하는 데서 조금 달라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표2] 연령대별 정치적 성향

흥미로운 사실은 기독교, 천주교, 불교, 기타 종교를 선택지로 주고 묻는 ‘가장 신뢰하는 종교’ 문항에서 기독교인들조차도 73.8%만이 ‘기독교’를 꼽았다는 점이다. 주목할 것은 이 문항에서 기독교를 선택한 집단 중 여성의 비율은 낮다는 점이다. 그런데 기독교 내 결과는 달랐다. 여성만을 두고 가장 신뢰하는 종교에 대한 응답을 확인한 결과는 기독교인 여성 88명 중 79명(89.8%)이 자신의 종교인 기독교를 가장 신뢰한다고 응답했지만, 기독교인 남성 97명 중 기독교를 선택한 이들은 70명(72.2%)에 불과했다. 또 눈여겨볼 만한 것은 이들 기독교인 남성 중 12.4%는 기독교인이면서도 가장 신뢰하는 종교로 천주교(가톨릭)를 꼽았다는 점이다.

[표3] 남성 내 종교별 가장 신뢰하는 종교

‘청년 여성이 교회를 떠난다’라는 우리의 위기의식도 지금보다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될 필요가 있다. 조사에 참여한 여성들의 응답을 연령대별로 교차해서 다시 살펴봤다. 20대 여성은 가장 신뢰하는 종교로 기독교를 선택한 비율(13.5%)이 30대(8.2%), 50대(12.4%)보다 높았다. 이런 작지만 분명한 시그널을 통해 우리가 알아차려야 할 점은 무엇일까. 한국교회 내 성범죄 상황이 워낙 심각하고, 교회 내 성차별적 관행과 고정된 성 역할에 따른 직분과 역할에 대한 비판이 매우 높다 보니 우리도 모르게 ‘교회 내 젊은 청년 여성들은 교회에 불만이 많다’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나는 우리가 교회를 떠나는 ‘청년 여성’, 관성적으로 20-30대를 도매금으로 취급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본 조사에서는 교회 내 청소년, 10대가 응답 대상이 되지 않았지만, 20대까지는 두 자릿수를 유지하던 여성들의 교회 신뢰도가 30대에 한 자릿수로 곤두박질치는 이유가 무엇일지 깊이 있는 논의와 추가적인 질적 인터뷰 등을 통한 파악이 필요하다. 나는 교회 내 비(미)혼 여성을 향한 결혼 권면 혹은 압박과 기혼 여성에 대한 출산 혹은 육아에 대한 권면, 비난들이 30대 여성을 교회로부터 떠나게 한다는 것을 선험적으로 제시하고 싶다. 미시적 차원에서 파악된 양상들인데, 이번 조사에서 이와 연결되는 수치가 발견되어 좋은 꼭짓점을 찾은 듯하다.

이 결과는 사실 새롭지 않다. 2020년 조사 결과에서도 ‘떠나는 30대, 40대’에 대한 지적은 존재했다. 당시 세미나에서는 가장 신뢰하는 종교로 기독교를 꼽은 30대, 40대, 50대의 눈에 띄는 감소를 지적하며 이 사회에서 가장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는 세대가 교회에 불신을 드러내는 것이 점차 한국교회의 큰 위기가 되리라고 예상했다. 더불어 이 세대 자녀들이 바로 교회학교 아이들임을 강조하면서 “이들이 교회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찾기 어렵고, 자신들이 원하는 종교적 필요를 얻지 못해서 교회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변하고 조용히 자리를 떠나고 만다. 특히 교회의 정치적 표현들이 이들을 교회에서 내몰고 있다”는 관찰 가능한 현상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조사 결과를 활용한 바 있다.3)

나가며: 성찰과 회복으로

발제문을 준비하면서 2020년 조사 결과와 이번 조사 결과를 비교 대조해보았다. 뼈아픈 현실도 있고, 그때보다는 그나마 차악이라고 여겨야 하나 싶을 정도로 근소하게 개선된 응답 결과도 있었다. 2020년에 제기된 이야기는 비기독교인, 무종교인 그리고 30대와 40대에 더 관심을 두자는 말이었는데 2023년 조사에서도 교회에 속해있으나 이미 신뢰를 잃은 것으로 보이는 3040세대가 포착되기도 했다. 3년간 한국교회가 ‘사회적 신뢰도 절망편’에 매몰되어있을 동안 더 기민하게 대응했어야 하는 위기가 아니었나 싶다. 교회의 사회봉사와 구제 활동에 대한 과소평가를 억울해하는 대신, 교회를 차마 떠나지 못하는 누군가를 챙겼어야 했다.

글 초반에 이야기한 것처럼 운동에는 조사가 필요하고, 조사는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외면하고 싶은 부정 응답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만 볼까’ 억울함이 들 수 있다.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 조사 결과를 마주하면, 교계에서는 ‘침소봉대’ ‘일부분을 과대 해석한 것’이라며 깊이 들여다보거나 분석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치 않았다고 해도 외면할 수는 없다. 이는 많은 진실이 가지는 속성이다. 외면할 수 없다면, 아파도 들여다보아야 한다. 뼈아픈 진실 뒤에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있다. 이번 조사 결과를 몇 가지 변인을 가지고 기술 통계와 차이 분석, 교차 분석밖에 수행하지 않았는데도 풍부한 시사점이 쏟아져 나왔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데, 연구자라서 그런지 흥미로운 ‘특이점’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특히 우리가 간과해왔던, 여전히 교회에 희망을 두고 싶어 하는 교회 밖 사람들과 교회 안팎의 경계선에서 고뇌하는 이들이 그래프 막대 어딘가에서 보인다. 뼈아픈 진실을 적극적으로 마주하면, 우리가 손발 걷어붙이고 ‘운동’할 지점이 더 많이 눈에 들어오리라 기대해본다.

■ 주

1) M. B. 맥과이어, 김기대·최종렬 옮김, 《종교사회학》(민족사).
2) 본 조사에서 계급(가구소득)을 묻는 질문 대한 응답은 가처분소득에 대한 증빙 없이 본인이 느끼는 자신의 상대적 가구소득의 고하 정도였다.
3) 정연승, ‘2020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 분석’, 〈2020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발표 세미나 자료집〉, 58-87쪽.


신하영
세명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믿는페미’로서 눈물과 고뇌로 한국교회 안을 바라보고, 공감과 위로로 세상을 바라보려 애쓴다. 현재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상임집행위원과 청년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교육정책, 시민 학습, 소수자 정책과 젠더 이슈이다. 교육과 학습을 통한 인간의 변화,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관심이 많은 교육학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