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교회를 나가며

[389호 커버스토리]

2023-03-31     김경미

10년 만에 다시 교회를 다니고 있다. 그럼 그동안 교회를 떠나있었나? 이 질문이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않기로 했나? 교회를 마음에서 지우기로 했나? 교회가 싫어졌나?’라는 의미라면, 아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했고, 사전적 단어로서의 교회를 좋아했다. 그런데 왜 교회를 다니지 않았나? 교회를 나가는 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나의 신앙생활을 더 방해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외로웠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서 경제학과 국제정치를 전공했는데, 이후 미국 로스쿨을 준비하다가 한국인으로서 한반도 분단 상황에 대한 구조적 원인을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민단체 인턴과 유학 준비를 병행하는 와중에 청어람아카데미(현 청어람ARMC)에서 한반도 평화 관련 강좌를 들었다. 마음에 깊이 울리는 바가 있어, 유학을 접고 당시 간사를 모집하고 있던 평화네트워크에 지원하여 평화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기독 청년 커뮤니티인 ‘가름과 다름 사이 나름’ 창립 멤버로, 한신대 평화와공공성센터 사무국장으로, 정치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정치발전소 기획실장으로, 서울시 청년정책과 임기제 공무원으로,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인사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그리고 지금 정치 스타트업 섀도우캐비닛 대표로, 한국 사회에서 좋은 정치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일하고 있다.

덤덤하게 열거했지만 저 과정마다 역동적인 결정의 순간들이 매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께 의견을 물어보았다. ‘저는 이 문제를 풀어야 할 것 같은데, 그래서 여기로 발을 옮겨야 할 것 같은데, 당신 생각은 어떠세요?’라고 말이다. 내가 답을 제대로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매 순간 하나님 뜻을 묻고, 그 과정 속에 결정을 내렸으며, 결정을 내린 후에는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물을 내고자 노력했다.

광범위하게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로, 더 협소하게 분야를 좁히면 정치와 행정 영역에서 터를 닦고 일한 지 20년이 되었다. 그런데 시민사회와 정치 영역에서의 활동이 깊어지고 넓어질수록 이상하게 교회 안에서는 점점  외로워졌다. 함께 대화할 사람이 점점 없어졌다.

교회 순모임에 참여해 내가 하는 일을 나누면, 보수적인 분들은 조금 어렵게 생각하셨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낯설게 여기셨다. 제일 불편했던 표현은 “큰일 하시니까” “큰일 다루시니까” 같은 표현이었다. ‘이 말의 뜻은 뭘까….’ 평화활동가로서, 정치사회 문제를 다루는 연구자이자 기획자로서, 가까이에서 정당을 들여다보는 정당 연구자로서, 서울시와 청와대에서 정부 정책이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되고 집행되는지 들여다보고 또 집행하던 별정직 공무원으로서, 나의 활동이 깊어지고 다층적이 될수록, 내 삶의 준거 기준으로 삼아왔던 교회 공동체에서 고민과 질문, 단상을 나눌 사람이 없어졌다. 뭐라고 할까. 교회라는 커뮤니티 안에서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적정 온도를 가진 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해야 할까.

한국교회는 이 다층적 세계를 이해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어 보였고, 오히려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 하나님에 대한 나의 믿음을 흔들어댔다. 교회에 나가면 나의 일상과 여러 삶의 고민들을 편안하게 나눌 사람들이 없었고, 그분들에게도 나는 점점 낯선 존재가 되었다. 복음과상황을 중심으로 한 복음주의 운동 기독 커뮤니티는 사회 속으로 나가 하나님 이야기를 실천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지만, 막상 일반 시민단체 커뮤니티에서는 이들을 만나보기 어려웠다. 이것이 내가 시민단체 활동 초기 10년간 경험했던 기독 공동체 모습이었다.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다 보니 예배만 드리고 오게 되었고, 예배만 드리다 보니 온라인 예배와 무슨 차이가 있나 싶어 점점 집에서 예배드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교회가 왜 이럴까?’라는 질문을 치우고 하나님과 나에 대해서만 집중하게 되니, 오히려 마음과 머리가 맑아져 그렇게 10년을 보냈다.

교회를 떠나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했던 시간

내가 교회를 떠난 과정은 점진적이었다. 한국교회, 다니던 교회, 복음주의 기독 운동권 등에 대한 다층적인 실망과 기대하지 않음 등이 결합되어, 그냥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고 기대지 않게 되었다. 초기에는 복음주의 기독 공동체에 많은 애정을 품고, 내가 하는 사회 활동의 여러 경험과 네트워크를 열심히 공유하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역시 외사랑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 그것도 좀 멈췄다.

교회라는 커뮤니티에 대한 기대, 교회 구성원들 속에서 얻고자 했던 따뜻하고 다정하지만 무례하지 않은 온기, 이런 것들을 기대하지 않으니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좋아졌다. ‘도대체 교회가 왜 이럴까요, 나는 여기서 왜 이렇게 외로울까요’ 등 하나님과 나의 관계 속에서는 부차적일 수 있는 문제를 치우고 나니, “하나님,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여기서 내 역할은 무엇일까요?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이것들을 해내야 할까요? 과연 할 수 있을까요? 미약하지만 풀어보고 싶습니다. 풀 수 있는 힘과 믿음과 자세를 주세요. 그리고 함께 마음을 나눌 믿음의 동역자들을 보내주세요”라는, 더 본질적인 기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내게는 물리적 교회는 아니지만 사실상 교회 같은 믿음의 커뮤니티가 있었다. 하고 있는 일의 분야는 다르지만 기독인으로서 비슷한 소명 의식을 가지고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들이었다. 세계관, 가치관, 정치관이 비슷하고 사람과 일을 대하는 태도와 밀도가 비슷했다. 그 친구들이 내게는 교회였는데, 교회 건물이 아닌 주님을 믿는 자들의 모임이 교회라는 사실을 경험했던 시간이었다.

그 친구들과는 여전히 좋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서로 기도 제목을 나누고, 어려움과 좋은 일을 함께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성실히 잘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실 그 모임으로도 내겐 충분하다. 그런데 나는 왜 교회를 다시 나가게 되었을까?

교회로 돌아온 이유

‘루틴’이 필요했다. 지난 10년 동안은 내 신앙이 흔들리는 것을 교회를 떠나있음으로 막고 싶었다. 모태신앙으로서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준거 기준으로 삼았던 교회가 내가 살아가는 한국 사회라는 커뮤니티를 더 좋게 만드는 그룹이 아니라 더 뒤로 가게 만드는 공동체임을 알게 되었을 때, 교회를 넘어 하나님을 싫어하게 될까 봐 잠시 떠나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대신, 작지만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부지런히 다리를 놓고자 노력하는, 다정하고 따뜻하고 강한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나의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가운데 교회에 대한 상처가 많이 아물었다. 이제는 교회를 다시 나갈 힘이 좀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교회가 그리웠다. 내가 나고 자란 나의 믿음의 공동체. 매 주일 교회를 나갈 때의 기쁨. 그게 그리웠다. 그 루틴이 그리웠고, 어렵게 회복된 교회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과 나 사이를 단단하고 따뜻하게 해줄 어떤 규칙적인 일상이 필요했다. 이 과정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열심히 노력하는, 말 그대로의 교회가 그리웠다.

그렇다고 아무 교회를 갈 수는 없었다. 내가 교회를 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판단 기준은 ‘목회자가 어떤 사람인지’였다.(교회 성도들을 일일이 만나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동안 나는 목회자를 성직자가 아닌 ‘목회라는 업을 직업으로 삼는 직업인’으로 볼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되었고, 목회자가 목회자 이전에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좋은 사람’ ‘성실한 직업인’, 두 가지를 두루 겸비한 목회자가 사역하는 다정하고 따뜻하고 명랑하면서도 하나님과 사회에 대한 뚜렷한 비전과 철학이 있는 교회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런 교회를 찾았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이들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므로, 다시 출석할 교회를 선택할 때 고려했던 나의 기준에 대해 나눠보고자 한다. 대략 이러하다.

• 목회자가 교회만 아는 자인지, 교회와 사회를 함께 아는 자인지

• 목회자가 직업으로든 봉사 활동, 친목 모임으로든 상관없이 사회 활동 경험이 있는 자인지, 교계 경험만 있는 자인지

•  목회자가 교계 사람들과만 교제하는지, 비기독인과도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지

•  목회자가 여러 다양한 관점의 신문을 두루 읽으려 노력하는지

• 목회자가 직업인으로서 성경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는지

• 목회자가 직업인으로서 교회 사역을 대하는 데 성실한지

• 목회자가 설교 중 비슷한 예화를 계속 돌려가며 쓰는지

• 목회자가 자신이 만들어놓은 기준(교회 출석률, 특히 평일 교회 모임 출석률)에 성도를 맞추려 하고, 그에 부합하지 못할 때 성도들 신앙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는지

• 목회자가 설교 시간에 자신의 정치관을 하나님 말씀이라며 성도들에게 주입하려고 하는지, 정치사회적 문제에 목회자의 양심으로 반드시 이야기해야 하는 것과 자신이 생각하는 바대로 성도들을 끌고 가고자 하는 욕망 사이를 정확하게 분별하고 그 안에서 절제할 수 있는지

• 목회자가 돈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돈의 문제를 잘 다룰 수 있는지, 이 부분에서 훈련을 해본 자인지

• 목회자가 계속 변화하고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지

• 목회자가 권위적인 자인지, 평등한 성품을 가진 자인지

• 목회자가 가족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지

• 목회자가 스스로 늘 배우려고 하는 자인지 아니면 끊임없이 사람들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인지

• 목회자가 비기독인들도 존경하고 따르고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 비기독인들 사이에 부정적 평판을 가진 자인지

목회자의 영성, 기도 생활, 성경 봉독 시간 등은 사실 매번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어서 기준에서 뺐다. 많이 한다고 말하지만 거짓말일 수 있고, 겸손해서 적게 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수백 번 강대상에서 말하지만 그 열매를 인격과 삶과 몸에 지니지 못한 목회자보다, 영성 훈련에 대해 한 번도 말하지 않지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몸에 지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목회자가 진정한 목회자임을 알 정도의 나이와 연륜은 되었기에, 그가 어떤 인격과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보았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가 좋다.

교회에 기대하는 단 한 가지

그러나 특별히 교회에 기대하는 바는 없다. 한국교회에 기대하는 바는 더욱이 없다. 교회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가 완전한 존재가 아니듯 나 역시 완전한 존재가 아니고, 역시 완전하지 않은 자들이 모여 하나님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가 교회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럼에도 한 가지 기대하는 바가 있다. 이 교회가 내게 적정한 온기를 나눠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 무례하지 않되 다정하고 따뜻한 온기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닮아가기 위한 신앙의 루틴을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 서로를 계속 응원하고 격려하는 공동체. 그런 교회였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겠지만.

한국교회를 볼 때마다 여전히 고민이 많다. 성도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좋은 시민을 만드는 데는 실패한 교회. 그것이 보수적 정치관을 가진 시민이든, 진보적 정치관을 가진 시민이든, 어떤 방향으로든 좋은 시민을 만드는 데 끊임없이 실패하는 교회. 성도가 될 것이냐 좋은 시민이 될 것이냐를 끊임없이 선택하게 만드는 교회. 이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지 못하는 교회. 사회참여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20-30년 전에 있었던 시민사회 활동 경험을 기독 청년들에게 공유하는 복음주의 기독 운동권. 지난 20년 동안 시민사회, 정치 영역에서 만났던 수많은 신실한 기독인들을 복음주의 기독 운동 커뮤니티의 좋은 자산으로 안지 못한 복음주의 기독 운동 선배 그룹들. 후배들을 키워내고 지원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혹은 마이크를 넘겨주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 여러 안타까움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나이가 이제는 지났다는 것을. 어느새 나도 후배들에게 “그럼 당신은 무엇을 했는데?”라는 질문을 받을 나이가 되었다.

어쩌면 이 글이 “그렇다면 당신은 우리 기독 공동체가 좋은 성도와 좋은 시민을 함께 키울 수 있는 커뮤니티가 되기 위해 무엇을 했나?”라는 질문에 대한 10년 만의 첫 응답, 첫 실천일 수 있겠다. 물론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지만. 이게 내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복음과상황에 털어놓겠다고 결심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김경미
부산대에서 경제학을, 한동대에서 국제정치를 공부했다. 평화네트워크, 정치발전소, 서울시,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인사비서관실에서 일하며, 시민사회·행정부·입법부가 어떻게 협력하고 또 반목하는지, 각 단위는 어떤 원리와 특징들을 가지고 굴러가는지에 대해 경험적 지식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좋은 공공 리더십, 국가 통치 엘리트를 발굴·육성할 수 있는 플랫폼이 부재하다는 것을 발견, 동료들과 함께 정치 스타트업 섀도우캐비닛을 만들었다. 〈한국일보〉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향신문〉 〈여성신문〉 등 여러 매체에 비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한다. 저서로는 《세 번째 개똥은 네가 먹어야 한다》 《골을 못 넣어 속상하다》 《나는 지방의원이다》가 있다. 현재 더좋은세상교회를 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