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전도해줘!
[389호 커버스토리] 온라인 예배를 반기던 내가 교회로 돌아간 이유
세 살 무렵 엄마 손을 잡고 예배당에 처음 발을 디딘 이래로, 일요일은 늘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었다. 예수님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이나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는 재미도 있었지만, 주일성수를 배운 뒤 생긴 의무감(정확하게는 주일에 예배당에 가지 않으면 밀려오는 죄책감이나 두려움)이 동력이었던 적도 많았다. 어린 시절에는 그랬다.
자라면서 다양한 설교를 접했다. 단지 일요일에 예배당에 가지 않는다고 벌을 받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일요일뿐 아니라 모든 날에 예배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고등학생 때는 학교 점심시간에 예배드리기도 했고, 대학생 때는 교회 혹은 선교단체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대부분의 일정을 채우기도 했다.
한결같은 열정으로 신앙생활을 해온 건 아니지만, 일요일에 예배당으로 향하는 건 일종의 마지노선이었다. 기독교인이라면 최소한 확보해둬야 하는 시간이었달까. 예배 피아노 반주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약속한 시간에 예배당에 가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교회를 떠난다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 다른 공동체를 찾으러 갈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디까지나 교회를 떠난다기보다 나와 맞는 공동체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떠올린 일이었다. 그럴듯한 이유도 있어야 했다. 권위주의적이거나 성차별적인 문화 혹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견해 차이 같은 이유 말이다.
달라진 일요일 풍경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빠르게 온라인 예배로 전환했다. 뉴스에 연일 오프라인 예배와 집회를 강행하면서 코로나를 확산하는 종교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교회가 욕먹을 만한 일을 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온라인 예배로의 전환이 반가웠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꺼내놓지 않은 진심도 있었다. 예배당으로 가는 수고에서 해방된 기쁨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의무감만으로 예배당에 가고 있었던 것이다.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여기면서도, 오프라인 예배를 드리지 못해 속상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배우자가 그랬다. 평소에도 그가 나보다 신앙심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반응은 신기하다 못해 이질적이었다. 온라인 예배로 전환된 후에도 그의 일요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결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식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예배를 중계하는 유튜브 화면을 틀었다. 목사님 인도에 따라 기도 시간에는 눈을 감고 기도를, 찬양 시간에는 소리 내어 찬양을 했으며, 설교 시간에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귀를 기울였다.
나는 예배 전 기도가 시작되는 시간쯤에 슬금슬금 일어났고, 찬양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잠을 깨우다, 설교 시간에 다시 꾸벅꾸벅 졸았다. 그나마 초반에는 자리를 지키며 졸기라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키던 자리마저 소파로, 소파에서 이불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예배를 드리는 배우자 옆에서 누워있는 모습이 민망했지만, 그마저도 차차 적응되어갔다. 어차피 졸면서 들을 거, 편하게 잠을 자고 오후에 좋은 컨디션으로 성경을 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물론 오후에 성경을 펼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옆에서 아무리 기도와 찬양을 하고 설교를 크게 틀어놓아도,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 몸을 일으키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되돌아보면 나는 온라인 예배로 전환되기 전에도 설교 시간에 잘 졸던 사람이었다. 직장인이 된 이후로는 줄곧 그랬던 것 같다.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는 꼭 설교를 들을 때 몰려왔다. 피아노 반주자가 앉는 맨 앞자리에서, 그러니까 설교자가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에서도 그랬다. 다른 사람들(특히 설교자)을 의식해서 잠을 깨려 부단히 노력하긴 했지만, 노력이 언제나 성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러던 중 온라인 예배로 전환되자 노력조차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일요일 오전을 ‘잠’으로 채우는 삶은 아주 달콤했다. 일요일 오전을 충분히 쉬고 나니까 오후에는 활기가 생겼고, 예배당에 나가던 때에 비해 일요일이 여유 있게 느껴졌다. 집안일을 하고 TV를 보고 뒹굴어도 아직 일요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느낄 때마다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일요일을 그토록 여유롭고 충만하게 보낼 수 있다니,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이제껏 이런 삶을 살아왔을 것을 생각하면 그간의 세월이 억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드러난 신앙의 민낯
코로나 확산세가 기울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곧 종식할지도 모른다는 분위기가 일던 시기에, 교회에서는 찬양팀이라도 먼저 오프라인 모임을 시작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찬양팀이라고 해봤자 인도자, 싱어, 반주자 정도였다. 반주하기 위해 예배당에 가야 했는데, 그게 그렇게 싫었다. 사실상 예배를 전혀 드리지 않고 있었으면서, 오로지 반주를 하기 위해 예배당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간 반주해오던 이유도 그저 ‘무책임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교회에 간다는 게 싫어서, 수년 동안 지속하던 예배 반주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선데이 크리스천조차도 되지 못하는, 신앙의 민낯이었다. 어쩌면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적당히 형식적인 모습만 근근이 유지하고 있던 것이다.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나서야,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정체화해도 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나는 여전히 기독교라고 답했고, 교회와 관련하여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오면 모든 교회가 그러는 건 아니라고 변호하고 싶었고, 죄로부터 구원받는 길은 예수님뿐이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당장 나의 일상은 예수님과 교회 없이도 잘만 굴러갔다. 어떤 목사님이 그걸 “귀신의 신앙”이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귀신도 인간이 죄인이라는 본성과 예수님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예수님 말씀은 따르지 않았다면서.
몇 명의 기독교인 친구들을 만나서 신앙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어떤 친구는 ‘중학생 때 내 주변에서 제일 신앙 좋았던 네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라면서 놀라워했다. 부끄러울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후련했다. 매주 예배당에 나가고 수년간 피아노 반주를 한다는 이유로 신앙이 있는 것처럼 굴던 때보다, 알맹이 없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게 나았다. 또 다른 친구는 전부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는 듯이 ‘네가 스스로 신앙이 없다고 선언해서 다행이야. 이제부터 예수님께 찾아와달라고 기도해. 예수님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설득시켜 달라고’라며 조언했다. 그 말을 듣고 특별히 기도에 대한 의지가 생긴다거나 기도를 하면 달라질 거라는 믿음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더 내려갈 곳이 없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자유로움 같은 게 있었다. 물론 막막하기도 했지만.
신앙이 필요한 이유
근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했다. 신앙은 왜 가져야 하며, 교회 공동체는 왜 필요한지와 같은 질문 말이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 같은 구호가 와닿지는 않았다. 천국이 죽음 이후에 펼쳐질 세계를 말하는 거라면, 죽음 이후 세계는 당장의 관심사가 아님이 분명했다.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세상에서 예수님을 따라야 할 이유를 찾고 싶었다. 내가 벗어나고 싶은 감옥, 구원받고 싶은 지점을 생각해봤다.
가부장제, 자본주의의 부조리 등 달라졌으면 하는 현실들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세상을 바꿀 해답이 하나님에게 있다고 믿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실현되는 곳이 내 이상과 맞닿아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비슷한 이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그런 부조리를 해결하려 애쓰는 사람 중에는 비기독교인도 많았고(오히려 기독교인보다 더 많아 보였다), 꼭 교회만이 답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결국 예수님만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내 마음이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나 상대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상대를 달리 대하고자 하는 마음, 혹은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과 같이 나의 자아를 실현하고 추구하는 게 가장 우선적인 마음들. 내가 기독교 신앙을 배우지 않았다면 당연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르는 마음들 말이다.
성경이 그런 마음을 죄라고 여긴다는 것을 배웠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마음 말이다. 내가 만나온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죄라는 본성을 거스르고 이웃들을 사랑하기 위해 애썼다.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한 예수님의 삶을 향해 분투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과 같은 문장으로 표현하였다. 내가 구원받아 이르고자 하는 모습이 정말 그 고된 삶인지 헷갈렸지만, 지금처럼 결국 나밖에 모르는 삶을 살다가 죽는 건 어쩐지 두려웠다.
나를 전도해줘!
두려움으로 다시 교회에 나갈 수는 있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예배가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진행될 때 배우자에게 권유를 받아 오프라인 예배에 몇 번 나갔다. 다만 힘이 많이 들었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장벽 때문이기도 했다. 몇 년 만에 예배당에 나가니, 사람들과 만나는 게 너무 어색하다 못해 피로했다. 예배당에 다녀오는 길에, 배우자에게 계속해서 ‘나 같은 내향인이 주말에도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를 설명하려 들었다.
그러다 운동 중 발가락이 골절되는 사고를 겪었는데, 그게 오프라인 예배를 가지 못할 새로운 명분이 되어주었다. 예배당에 나가지 않을 이유가 생긴 것에 또다시 안도하는 내가 우스웠다. 다리가 나을 즈음에는 두려움으로 마지못해 가는 마음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예배당에 가고 싶었다. 일요일의 꿀잠이나 혼자만의 시간에서 오는 평화로움보다 좋은 무언가를 위해 예배당으로 향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배우자에게 전도해달라고 부탁했다.
전도를 해달라고 말은 했지만, 매주 반복했던 것처럼 수동적으로 설교를 듣고 싶지는 않았고, 누군가 만들어낸 프로그램에 나를 맞추는 형태도 내키지 않았다. 고민 끝에 ‘자체 수련회’를 기획했다. 휴가를 내어 배우자와 나, 둘만 하는 수련회를 열었다. 특별할 건 없었다. 그냥 집중적으로 성경을 보기로 했다. 기독교를 처음 접한 사람처럼, 성경의 흐름을 정리했다. 성경 전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처음에는 그냥 개론 공부를 하듯이 대강 훑어보려 했는데, 막상 흐름을 타다 보니 자세한 내용이 궁금해졌다. 중간중간 본문을 정독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미 대충 알고 있는 내용이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느껴지는 게 달랐다. 마치 드라마 요약본을 보는 것과 정주행하는 것의 차이 같았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반복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모습들과, 그럼에도 이스라엘에 계속 기회를 주는 하나님이 보였다. 한심하기만 했던 이스라엘 모습이 나와 다르지 않았고, 그럼에도 계속 이스라엘을 쫓아가는 하나님의 마음은 무서울 정도로 집요했다. 어릴 적 어떤 교회 선생님이 성경은 하나님의 러브 스토리라고 했었는데, 그 말이 딱 맞았다. 오랜만에 흰 종이 위 검은 활자를 읽으며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시간들을 보냈다.
교회로 돌아간 이유
자체 수련회 이후 하나님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일요일에 예배당에 가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조금씩 달라졌다. 졸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 민망하고 미안해서가 아니라 설교를 제대로 듣고 싶은 마음으로 집중하려 노력했다. 일요일 설교만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져서, 작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금요일 성경 공부 모임에도 참여하게 됐다(새삼스럽게도 이런 가르침들이 공짜로 주어진다는 게 감사하게 느껴졌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곧바로 편해지지는 않았다. 코로나 이후로 많은 사람이 나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오기도 해서 적응하는 데 더욱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공식 예배 시간이 끝나면 후다닥 집에 가기 바빴는데, 신앙 얘기를 더 나누고 싶어지자 예배 후 기도 제목 나눔 모임까지 참여하고 나서 예배당에 머물기도 했다.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각자 깨닫고 느낀 것들을 듣는 시간이 좋았다. 같은 설교를 듣고도 어떤 사람은 하나님에게 서운했던 마음이 풀렸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자기 죄가 드러난 것 같아 찔렸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믿음의 선진들 모습에 도전을 받았다고 했다. 비록 나는 아무런 깨달음과 느낌을 받지 못한 날에도, 사람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나와 달리, ‘어떻게 옆에 있는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어떻게 예수님을 더 전할까’를 고민하는 모습에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럴 때면 다시금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기가 민망했다. 하지만 하나님 음성을 직접 듣고도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말하여 하나님을 열받게 했던 모세도, 시간이 흐른 뒤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고 세 번 부인하던 베드로도, 결국에는 죽음을 불사르고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그들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집요해서라고 믿는다. 그 하나님이 나 또한 바꾸시리라고 공동체와 함께 기대하는 것이 다시 교회로 돌아간 이유이겠다.
이슬아
쉽게 단정 짓는 것을 경계하여, 주로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