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실력은 ‘살아온 이야기’에서 나온다

[389호 다시 만난 세계] 인도 선교사에서 목회자로, 조수교회 주성학 목사

2023-03-31     주성학
ⓒ복음과상황 정민호

1. 17년 만에 돌아온 선교사

주성학 목사는 인도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다가 2020년 한국에 돌아와 지역교회 목회자가 되었다. 두 가지 조건 중 하나가 충족되면 선교지에서 철수하기로 한 아내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하나는 어떤 이유라도 인격이 파괴되거나 인간성이 황폐화될 경우였고, 다른 하나는 사역의 열매가 풍성해져 가장 보기 좋을 때 사역지를 다른 사람에게 이양하는 경우였다. 그는 인도에서 더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큰 충만함을 느꼈고, 약속대로 인도를 떠나기로 했다. 현지 목회자와 전도자들을 위해 세운 ‘코너스톤 목회자 아카데미’는 현지인들 재정으로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작은 규모였지만 ‘자급 자치의 교회를 만들 것’이라는 네비우스 선교 정책1)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대로 현지 사역을 이양하고, 방문연구원으로 미국 대학에 1년 머무른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인도로 간 지 17년 만이었다.

그가 담임목사로 부임한 곳은 제주도 한경면 조수리에 있는 조수교회. 선교 현장에서 많은 것을 경험한 그가 어떻게 목회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인도 선교사이자 애독자로서 본지와 인터뷰한 지는 6년 만이었다.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연락했을 때 그는 마침 서울 어느 교회에서 열린 부흥회에 강사로 초청되어 사당동에 머물고 있었다. 일정 중 짬을 내어 인사를 나눴다. 일주일 뒤 들뜬 기분으로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고 조수리를 찾아갔다.

주성학 목사 인터뷰는 3월 3일 진행되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2. 목회와 선교는 주파수를 맞추는 일

조수리는 제주도 서쪽에 있는 한경면 중산간 마을이다. 마을에 도착하자 높이 솟은 교회 십자가가 보였다. 잔디밭이 펼쳐진 마당을 서성이다가 교회 건물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예배당 건물부터 교회학교 예배당, 식당 건물, 화장실, 차 마시는 공간이 각각 있었다. 목양실과 사택이 있는 건물 앞으로 갔을 때, 주성학 목사가 창문을 열고 인사를 건넸다. 화들짝 놀라며 1층 목양실에 들어갔다. 한쪽 벽면에 인도와 종교학 관련 서적들이 가득하고 중앙에 책상이 자리 잡은 그 방엔 해외 CCM이 큰 소리로 울리고 있었다. 그는 볼륨을 낮추고, 커피 머신으로 내린 커피를 내게 건넸다.

- 오늘은 좀 덜 바쁜 날인가요?

항상 바빠요. 오늘은 미국 애즈베리 대학에서 일어난 부흥 운동에 대해 글을 쓰고 있었어요. 지금 그곳에서 회개 운동이 일어나면서 미국 켄터키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기도와 찬양이 24시간 계속될 정도로 큰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요. 이번 주일예배 설교 때 이 소식을 전하려고 합니다. 혹시 제 책(《인도에 피는 이야기 꽃》)은 읽어보셨나요?

- 네. 읽었고, 가져오기도 했어요.

아니, 왜 들고 오셨어요. 무겁게. 책 내용은 어땠어요?

- 놀랄 만한 이야기가 많던데요. 약간 비현실적인….

뻥 같죠?(웃음)

- 저는 인도에 가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가 보다’ 하면서 봤죠. 사실 목사님이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아닐까 의심했어요.

책에 나오는 분들은 대부분 저와 친하게 지내는 분들이셔요. 이 글들은 인도에 있을 때부터 썼고요. 사람들은 윌리엄 캐리2)나 마더 테레사, 지겐발그 같은 선교사들을 위대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인도 불가촉천민 마을에서 핍박과 박해를 받으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분들을 만났을 때, ‘아, 이분들은 성령의 사람이구나’ ‘하나님이 쓰시는 하나님의 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가촉 마을에서 죽일 거라는 협박을 받으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 교회가 불에 타서 사라져도 또다시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이 있었죠.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이분들은 그들의 사역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이었죠. 이를 글로 남기는 일은 선교사로서 제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선교 현장에서 기존 질서와 전통, 문화가 기독교와 긴장 관계에 놓이는 상황을 자주 목격하셨을 것 같아요.

맞아요. 어디든지 그리스도교가 들어가면 그곳의 전통이나 가치관과 충돌하면서 긴장 관계가 형성됩니다. 인도에서도 어느 지역에 전도자가 들어가거나 교회가 세워지면 그 지역 사람들이 경계를 하죠.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면 대적하거나 갈등을 빚는 상황이 반복되기도 하고요.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오해가 풀리고 화해하게 되는 일들이 생기기도 해요.

2017년 마을에 홍수가 났던 적이 있어요. 댐이 넘쳐서 건물 2층까지 물에 잠길 정도로 큰 물난리였죠. 저희 아카데미 센터는 지대가 높은 곳이라 다행히 피해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곳의 모든 공간을 개방하고 마을 주민들이 피난을 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며칠간 지낼 수 있게 물품도 제공하고 음식도 나누었어요. 물이 빠지고 난 후에 주민들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죠. 그때 저희는 그분들과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서로 알게 되었어요.

교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처음엔 어떤 긴장이나 오해가 생기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서로 이해하고 나은 관계로 발전할 기회가 오죠. 그런 것이 목회의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 어느 곳이나 한 가지 문화와 태도만 존재하는 건 아닐 텐데요. 다양한 입장들 사이에 있을 때 목사님은 주로 어느 쪽에 속하시나요?

저는 늘 경계인으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누군가 어떤 주장을 한다면 본인이 믿는 신념이 있다는 것이고, 확고한 의지가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거겠죠. 틀렸다고 말하기 전에 경계에서 그 얘기를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해요. 내 의견을 주장하기 전에 상대방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는 거죠. 그냥 듣기만 해도 해소되는 일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 조수교회에 부임한 지 3년이 되었습니다. 요새 이곳은 어떤가요?

코로나 유행이 극심하던 시기에 부임해서 비대면 예배를 드릴 때는 교인들 얼굴을 볼 수도 없었고, 모일 수도 없었어요. 그래도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꾸준히 있었어요. 요새 교회를 찾아오는 분들은 적당히 알아보고 오는 분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교회 프로그램이나 시설, 유명세를 보고 찾아갔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사람들이 그런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해요. 교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강단에서 매주 선포되는 메시지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봅니다.

가끔 몇 달 치 설교를 미리 듣고 오신 분들이 있어요. 목회자들이 목회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가 온 것 같아요. 이제 목회자들 설교는 유튜브를 통해 평가하고 비교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목회자들이 치열하게 공부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기도하면서, 말씀을 연구한 흔적과 성숙한 세계관으로 메시지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습니다.

- 목회자들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톰 레이너 목사님이 쓴 《살아나는 교회를 해부하다》(두란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장하는 교회의 공통적인 특징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가치를 지키면서도 언제든지 시대의 변화와 도전에 응할 준비를 하는 것이죠. 반면 쇠퇴하는 교회는 과거에 얼마나 큰 이름과 큰 예배당을 가지고 있었든 변화 앞에서 주저했고, 이를 외면했다고 해요.

한국교회는 조직으로서 전통적인 시스템과 과거의 정서에 갇혀있기 때문에 외부 변화 흐름에 효과적이고 빠르게 대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코로나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였잖아요. 톰 레이너 목사님은 앞으로의 교회가 두 종류로 나뉠 것으로 봅니다. 변화를 선택하는 교회와 변화를 거부하는 교회.

저는 얼마 전까지 선교사였으니까 외부자 시선으로 보면,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우리가 배웠던 대로 가르치기에 앞서, 목회자들이 한 번 더 고민하고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믿으세요’ ‘믿습니다’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고 성도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정답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죠?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얼마나 지엽적이고 편파적이었는지 돌아보게 돼요. 저희 딸이 지금 대학교 3학년인데요. 딸과 대화할 때 ‘이게 신앙의 원리야’ ‘이렇게 믿어야 해’ ‘이렇게 해야 돼’라며 가르쳤던 내용들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었고, 내 세계 안에 아이를 가두는 일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어요. 어쩌면 정답을 얘기해주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수준 낮은 방법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좀 더 나은 건 공감해주는 일이겠죠. 그런 방법이 오히려 딸의 마음을 사는 것 같더라고요. 교회 안에서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하지만, 그들이 신앙이 없어서 떠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들도 분명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텐데, 답을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 그들의 얘기를 어른들이 귀담아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7년 인도 칸치푸람(kanchipuram) 불가촉천민 마을에서 교회를 개척할 장소를 답사하는 주성학 선교사. (사진: 주성학 제공)

3. 평생이 걸리는 훈련

1997년,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 1학년생 주성학은 1년 휴학을 하고 인도 오지 보육원으로 향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자신이 앞으로 복음 전하는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고, 검증해보기 위해 그곳에 간 것이다. 그는 낯선 사람과 문화에 대한 적응력 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인도는 사역을 하기에 가장 힘들 것 같은 나라였다. 종교의 나라로 불릴 만큼 다양한 종교 전통이 존재했고,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는 시골 마을에 있는 힌두교 사원에서 뿌자를 드리는(고사를 지내는) 여성들을 보았다. 그는 스바냐 3장 17절 “주 너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 구원을 베푸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너를 보고서 기뻐하고 반기시고”라는 말씀을 떠올렸다. 하나님은 그곳에도 계신다는 사실과 인도인들의 마음과 예배가 하나님을 향하길 바라는 마음이 일었다. 그는 울며 자신을 복음 전하는 사람으로 사용해달라고 기도했다.

- 신대원생 때 인도에 가셨다가, 4년 후 인도 장기 선교사(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로 파송받으셨습니다.

네. 인도에 가기 전까지 한국에서 언어를 준비하고, 인도에 관련한 책을 수백 권 읽었습니다. 복음 전하는 사람이 되는 훈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죠.

- 지금까지 이어진 일들은 무엇인가요?

그때부터 일상의 루틴을 만들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어요. 일상에서 이를 잘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편입니다. 자신의 루틴이 무너져 사역이 의무적인 일이 되거나 가정에서 어려움 겪는 경우를 많이 봤고, 저도 개인적으로 경험했죠. 그래서 저는 선교사나 목회자뿐 아니라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저만의 루틴을 꼭 지키려고 합니다.

- 그 루틴이 궁금합니다.

대다수 한국교회 목회자들 일상과 다르지 않을 텐데요. 제 일과는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새벽 4시쯤 일어나면 제 영혼을 위한 경건의 시간을 갖습니다. 새벽기도 때 목회와 사역을 위해 기도하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영적 성장을 위한 주님과의 사귐을 갖기 위해 집중합니다. 그리고 오전에는 성경을 읽습니다. 설교를 준비하기 위한 성경 읽기가 아니라 영혼 성장을 위한 묵상(렉시오 디비나)를 두 시간 동안 합니다. 이후엔 다음 날 새벽기도회 설교를 준비하죠. 그다음엔 두 번째 영역인, 심방을 포함한 교회 사역 활동입니다. 이건 대다수 교회 사역자들 일과죠. 세 번째 영역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입니다. 저녁에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지키려 합니다. 목회자와 선교사 중 일에 치여서 가정이 뒷전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큰 어려움에 처하는 선교사들도 많이 봤고요. 사실 제가 당사자였습니다. 일이 우선이었고, 가족은 사역을 위해 포기와 희생을 강요당했지요. 후유증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가족과 보내는 일상의 시간도 중요한 루틴으로 삼았습니다.

- 가족들이 희생하던 생활에서 돌이키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아내가 과로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어요. 현지 의사는 이러다 자칫하면 과로사도 할 수 있다고 경고를 하더라고요. 당시 선교 후원금이 넉넉지 않아서 운영하던 선교센터의 월세를 낼 형편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아내는 인도 부유층과 외국인들 대상으로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을 했죠. 일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때 선교 사역과 일이 잘되어가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행복하지 않았어요. 아내는 힘들어했고, 아이는 여러 어려움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했죠. ‘과연 이렇게 지내게 하려고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에 보냈을까?’ 질문하게 되었죠. 저는 죽도록 충성하다가 죽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인 줄 알았는데,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하나님은 우리가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이 길을 가기 원하신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와 아내가 서로 사랑하고, 우리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정서적·영적·물리적으로 충분히 받으면서 자라는 길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며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가정의 가치를 발견하면서 사역과 가정 사이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했습니다.

2008년 인도 뮤디처(mudichur) 오지 마을에서 주성학 선교사가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다. (사진: 주성학 제공)

- 인도인의 종교 전통과 삶을 가까이에서 보셨는데, 인상적이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인도 사람들에게 종교는 교리나 단순한 종교 행위로 보기 어렵습니다. 살아가는 방식에 가깝지요. 한국교회에서 제자훈련이라고 하면 6주나 12주 과정을 떠올리는데, 인도인들에게 자기 종교와 문화는 머리로 습득된 게 아니었습니다. 인도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아버지가 외우는 만트라 소리를 듣습니다. 매일 아침 경전을 귀로 듣는 것이지요. 그것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아버지 목소리로 듣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핀 향을 코로 맡으면서 종교의식을 냄새로 기억합니다. 어머니가 아침밥을 차려주는데, 음식에는 신앙적 가치와 교리가 담겨있습니다. 자이나교도는 감자, 고구마, 양파, 당근과 같은 뿌리 식물이나 계란, 우유 등을 입에 대지 않습니다. ‘아힘사’라는 비폭력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죠. 먹는 음식을 통해서도 종교적 가치를 배우는 셈입니다. 집 앞을 나서면 현관 앞에 ‘콜람’이라는 종교적 상징을 보게 됩니다. 눈을 통해 행운을 부르는 상징 언어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학교 가는 아이의 이마에 자신이 속한 종파를 상징하는 점인 ‘빈디’를 찍어줍니다. 이는 접촉을 통해서 종교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익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오감을 통해 종교의 전통과 원리를 배우니, 그들의 신념과 이념은 머리가 아니라 삶으로 배운 것이 됩니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제자훈련을 받지 않아도 삶으로 그들의 종교를 익히고, 몸으로 배웁니다.

기독교인의 제자훈련도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모든 시간들이 제자훈련의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하고, 신앙하고, 살아가도록 돕는 일이 제자훈련이고 이를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는 매달 두 번씩 ‘코너스톤 목회자 아카데미’ 제자들과 비대면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 주성학 제공)

4. 목회자에게 필요한 능력

주성학 목사는 최근 여러 형태의 모임에서 강의하고 있다. 강의를 요청해오는 곳은 노회, 시찰회, 대학원, 목회자와 평신도 대상 세미나 등이다. 선교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선교에 관한 실제적 이야기와 현실적 방법을 전해준다. 인문학에 관심 있는 이들을 만나면 종교와 인간이라는 철학 주제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설명한다. 얼마 전 개척교회 목회자 모임과 지역교회 담임목사 리더십 컨퍼런스에서는 목회자의 내적 성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 목회자들을 만나면 어떤 말씀을 주로 하시나요?

최근에 목회자의 능력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목회자의 진짜 실력이 뭐냐는 거죠. 요새 목회자들이 가지고 있는 주석과 설교 자료는 거의 비슷해요. 어디서든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죠. 그러면 그것들을 잘 엮어내고 해석해서 전달하는 것이 목사의 실력일까요? 요즘에 챗GPT가 10초에서 20초면 원하는 주제에 맞는 설교문을 나쁘지 않은 수준으로 만들어줘요.

저는 목회자의 실력이 그의 ‘살아온 이야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진리를 깨닫기 위해, 작은 것 하나라도 깨우치기 위해 밤잠 없이 기도해보았는지,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헌신해본 적이 있는지, 내 뜻과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속을 끓이고 아파하면서 품어본 적 있는지,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 내 시간과 재정을 헌신해봤는지 등, 이런 것들과 지나온 삶의 흔적이 목사의 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5. 보통의, 평범한 일상을 꿈꾸다

3월 5일, 일요일 오전 11시에 시작되는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높은 강단 위에 서서 예배를 인도하는 그가 인터뷰할 때와 다르게 느껴졌다. 예배당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준비한 말들을 정돈된 투로 전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예배를 마친 후에는 식당 건물로 이동해서 교인들과 준비된 국수를 먹었다. 주성학 목사는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나를 건물 옥상으로 안내했다. 식사를 마친 성도들이 한두 명씩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는 아이들부터 집사님들, 어르신들까지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넸다. 인사하는 사람이 어떤 분인지 한 사람씩 소개하면서 이런 말을 덧붙인다. “저는 한 시간의 예배가 사람들 일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요. 목회자의 일주일 모든 시간이 담긴 한 시간이기 때문이에요.” 일상으로 걸어나가는 성도들의 등을 그가 힘껏 밀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 구순을 맞이한 성도님 이야기는 목사님 페이스북에서도 봤습니다.

얼마 전 두 분의 성도님들이 구순을 맞이해 가족들이 교우들에게 식사를 대접했고, 교우들은 그분들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저는 시간을 들여 기도문을 작성하고 기도를 했죠. 그분들 삶의 여정과 역사적 상황 속에서 느꼈을 삶의 무게를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현재 그분들 상황도 깊이 헤아려보게 되었어요. 저희 교회에 연세 드신 성도들이 여럿 계시는데요. 그분들이 제 설교를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어요. 어떻게 그분들에게 예배의 감동과 진정성을 더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그분들의 예배가 축도 순서와 함께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어르신들 이름을 일일이 불러드리면서 안부를 물을 때 비로소 그분들의 예배가 끝나는 건 아닐까 싶었죠. 사실 일주일 동안 그분들 이름 석 자를 불러주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 어르신들 이름이 가장 많이 불리는 곳은 병원이겠죠. 목사가 성도들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준다면, 잠깐이라도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느끼는 시간이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매주 예배당 문 앞에서 연세 드신 어르신들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넵니다. 다들 좋아하시고요. 주일예배 기능 중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그 인식은 일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선택과 삶을 빚어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일이죠.

ⓒ복음과상황 정민호

- 목사님은 어떤 목사가 되고 싶으세요?

우리 성도들 중에 한 분이 제게 “목사님은 제가 생각했던, 목사님은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너무 감사하면서도 두려웠죠. 저는 평범한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에요. 목회자는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자니까, 그에 맞게 기도하고 살아가는 사람이고 싶어요. 상식적인 선에서 윤리적이면서 학문하는 자세와 시인의 감수성을 가진 그런 목사를 꿈꿉니다.

- 목사라는 직분을 제외하고, 목사님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나요?

지금까지 제게는 ‘나’라는 것이 없었던 것 같아요. 늘 사역 속에 묻혀있는 저였고, 선교사이기만 했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정체성을 깨닫는 일 같아요.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부를 때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거라고 했잖아요. 그것이 나중에 아브라함의 정체성이 되었다고 봐요.

저는 누구일까 고민해보자면, 저는 평범한 기독교인이 되고 싶어요. 만약 목사가 아니라면, 평범한 집사이고 싶어요. 세상에는 목사, 선교사도 필요하지만, 일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웃들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부르심이 아닐까 싶고요.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며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요.

■ 주

1) 19세기 말 한국에 파견된 선교사들을 위해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가 네비우스 선교사의 제안에 따라 채택한 정책이다. 선교 사업의 궁극적 목적을 ‘독립적이고 자립적이며 진취적인 토착교회 형성’에 두고, 선교 정책 기본 이념으로 ‘자진 전도’ ‘자력 운영’ ‘자주 치리’ 세 가지를 내세웠다.
2) 인도에서 활동한 영국 침례교 선교사. 젊은 시절 인도로 파송받아 평생 인도인들을 위해 살았다. 6개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으며, 기독교 대학 설립, 인도의 악습 폐지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개신교 현대 선교의 아버지로 불린다.


진행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