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풍성함을 전하기 위해 그가 지나온 여정들

[390호 책과 사람]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 정한욱 저자

2023-04-27     정한욱
ⓒ복음과상황 정민호

기독교 신앙과 관련한 딸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아 출간한 책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정은문고)가 관심을 받고 있다. “성서에는 왜 그렇게 끔찍하고 폭력적인 내용이 많나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세상에는 왜 그렇게 악과 폭력이 만연한가요?” “왜 기독교인들은 진리 이야기만 나오면 그렇게 오만하고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나요?” 누구나 궁금해할 법한 고민에, 저자는 일리 있는 견해들을 소개하며 진정성 있는 대답을 내놓는다. 성서·세계관·수사학·역사·타종교 등 폭넓은 주제에 관한 깊이 있는 논의를 할 수 있었던 건 저자가 오랜 시간 기독교 신앙의 탐구자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저자 정한욱 작가는 보수적인 교단 중 한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오래전부터 그 교단이 그어놓은 경계를 넘나드는 독서와 사유의 여정을 이어온 다독가다. 성서와 세상을 향한 호기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왔으며, 현재도 매년 70-80권의 책을 읽고 개인 블로그(서음인의 집)에 꼼꼼히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는 전라북도 고창에서 안과 개원의로 일한다. 2008년부터 국제실명구호기구 (사)비전케어 운영이사로 활동 중이며, 그동안 20차례 해외 개안 수술캠프에 참여해 의료선교를 이어오기도 했다.

낮에는 안과 의사, 그 외 시간은 기독교 신앙의 탐구자로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인터뷰를 청했다. 본지 창간 독자라고 밝힌 그는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하며 곧바로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평일에는 병원이 있는 고창, 주말에는 가족들과 교회가 있는 서울을 오가며 지내는 그의 일정을 따라 4월 1일부터 이틀에 걸쳐 그를 만났다.

서울의 한 교회에 40년째 출석하고 있는 그는 주일 아침 일찍부터 성가대 대원으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소장하던 〈복음과상황〉 창간호를 들고 온 그에게 이 책을 집필한 과정과 신앙 이야기를 물으며 대화를 나눴다.

-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 2쇄 발행을 축하드립니다. 독자들 반응이 아주 좋은데요.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약 2년 반 전에 정은문고 대표님으로부터 제안받았어요. 당시 대표님과 저는 친분은 없었고, 페이스북 친구였을 뿐인 사이였죠. 제가 가끔 정은문고의 책을 읽었는데, 저는 책을 읽으면 블로그에 리뷰를 남겨둡니다. 대표님이 그걸 좋게 보신 것 같아요. 저보고 책을 써보지 않겠냐고 하셨죠. 처음에는 의사인 기독교인의 삶에 대해 글을 써보기로 했어요. 책 이야기와 의료봉사 이야기 그리고 의사의 일상을 풀어쓴 에세이 원고를 써서 보냈죠. 그랬더니 대표님이 이 글은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는 피드백을 주셨어요. 그리고 책 이야기 위주로 다시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죠. 그래서 책 얘기만을 주제로 글을 썼죠. 다 쓸 때쯤 됐을 때 대표님이 다시 한번 방향을 바꾸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딸과 대화한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그걸 보고 하신 말씀이었어요. 딸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대화하는 포맷으로 해보자고 하셨죠. 사실 제 글이 책으로 나올 수 있다는 확신 없이 글을 썼습니다. 원고를 보내드리니 대표님이 “계약하시죠”라고 그러시더라고요. 2022년 11월 계약서를 쓴 후로부터 일이 빠르게 진행되더니 드디어 올해 3월에 이 책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 자녀가 믿음에 관하여 묻는 일이나, 이에 답할 수 있다는 것이 신앙을 가진 부모들에겐 꿈에 가까운 일이라고 하는데요. 딸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질문을 받으신 건가요?

굳이 따지자면, 이 책에 나오는 질문 비율은 둘째가 65%, 첫째가 25%, 셋째 아들이 10% 정도 될 겁니다. 저희 아이들은 예전부터 제게 질문을 많이 했었어요. 부모가 둘 다 아이들에게 공부 얘기를 하지 않으니까 가족끼리 사이가 나빠지지 않더라고요. 자기들끼리도 사이가 좋아서 대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어요. 신앙도 개인의 결단이라고 생각해서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뭐든 질문할 수 있었죠. 아빠인 입장에서는 기분 좋은 일이었어요. 그래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떻게든지 하나라도 더 답해주려고 노력했죠. 책 분량만큼 길게 답을 해주진 못했지만 비슷하게 얘기하긴 했어요. 그러면 우리 딸들은 깜짝 놀라죠. 그런 소리 해도 되냐고요. 큰딸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이해하면서도 “아빠, 교회 가서는 그런 소리 하지 마”라고 해요. CCM을 공부하고 교회에서 찬양 간사로 활동하기 때문에 교회 분위기를 너무 잘 아는 거죠. 둘째 딸은 교회를 다니다 말다 해요. 그래서 둘째에게는 기독교가 고리타분한 대답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 풍성한 논의를 두고 있으며 아름다운 전통과 지성을 가진 종교라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죠. 그리고 세상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종교라는 사실도 말해주고 싶었어요. 창조 때부터 내려온 죄 이야기를 반복하고 풀어 쓰는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대화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죠.

- 사실 이 책에 나오는 질문들은 기독교인 사이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물음들입니다. 그럴 때마다 어떤 식으로 대화가 이어지는 게 좋을지 고민하게 되는데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어떤 질문에 대답한다고 해서 그게 답이 될까요? 질문한 사람에게는 원하는 대답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답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어떤 고민을 얘기할 땐 듣고 싶은 대답이 있어서 말하는 경우도 있고, 원하는 대답 없이 말하는 경우도 있죠. 어쨌든 진지하게 경청해주는 일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청하지 않고 하는 말은 하나 마나 한 소리가 될 때도 있어요. 그런 일이 계속되면 결국 말문을 닫게 되기도 하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까닭도 교회에서 답을 얻지 못해서라고 봐요. 일단 진지하게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러고 나서 이런 식으로 답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전통적인 대답은 이런 것인데, 다른 대답으로는 이런 것들이 있어. 결국은 모두 기독교 전통 안에 있지만, 어떤 게 좋을지 한번 생각해보자.” 이런 식으로요. 저는 가능하면 좀 다른 대답을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맨날 하던 얘기를 하면 듣는 사람이 잘 듣지도 않거니와, 그런 건 저보다 훨씬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많거든요.

이 책에 나오는 질문들은 모두 예전에 제가 했던 질문들이고, 지금도 하는 질문들이에요. 하지만 교회를 오래 다닌 분일수록 이런 질문을 하기가 어렵죠. 자신의 신앙이 굳어지면 이런 질문까지 가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을 하려면 내가 가진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전제해야 하는데, 모든 말에 ‘아멘’ 하면서 받아들이면 반지성주의로 흘러가게 되죠. 물론 교회에 너무 회의하는 사람만 있어도 사람들이 피곤할 겁니다. 그래도 교회에 ‘예스맨’만 있으면 그 공동체가 합리적인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에서 ‘도움책’으로 소개한 책들 중 일부. 총 119권을 소개했다.

- 작가님을 ‘독서광’ ‘넘사벽 다독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책에서는 질문에 답하면서 그동안 작가님이 읽어온 많은 책이 등장하고 인용됩니다. 책을 읽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다독가는 아니고요. 1년에 200권 이상 읽는 분도 있는데요. 저는 70-80권 정도 읽고 리뷰를 쓰는 정도죠. 많이 읽고 싶기도 하지만 책을 읽을 때마다 충실하게 요약과 정리를 꼭 합니다. 페이스북을 시작한 게 2009년이니까 그때부터 했어요. 그전에는 책에다가 써놓기만 했었는데, 그걸 정리해서 페이스북에 올린 거죠. 나중에 블로그를 만들어서 이를 모아두기 시작했습니다. 참 지루하고 힘든 과정이었는데, 이 책을 쓸 때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굉장히 좋은 자료가 되더라고요.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한 건 기독교 세계관 운동 때문이었어요. 그때 제임스 사이어(James Sire)의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을 만난 일이 중요한 계기였죠. 당시 세계관과 관련한 책이 많았습니다. 서구 문명을 모르면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역사·철학·문학 등 개론서들을 읽기 시작했죠. 점점 독서 폭이 넓어졌고,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주의권 고전들도 30대 중반 이전에 거의 다 읽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범위가 넓어져서 다른 분야의 책들도 많이 읽은 것 같아요. 제 책에 복음주의권 독자들에게 익숙한 저자들이 많이 언급되지는 않습니다만, 그분들의 가르침은 저변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존 스토트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분이라 거의 모든 책을 읽었습니다.

- 신학서부터 르네 지라르, 루스 베네딕트, 소포클레스, 에마뉘엘 레비나스까지, 도움 주는 책으로 소개한 저자의 범위도 굉장히 넓습니다. 모두 독서 여정을 통해 자연스레 만나게 된 책들이죠?

그렇습니다. 독서는 단순히 제 인생과 제가 가지고 있던 관념을 굳히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되고, 타자를 대면하고 개입하며 결국엔 제가 바뀌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분명한 건 자신만의 여정으로 모험할 때 그 사람의 신앙이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거예요. 기존의 사고에 갇혀있으면 절대 자신이 변하는 독서를 할 수 없습니다.

탁월한 기독교 변증가인 G.K. 체스터턴은 자신의 책 서론에서 재미있는 얘기를 했습니다. 어떤 잉글랜드 요트맨이 항해를 시작했다가 경로를 약간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다시 잉글랜드에 도착했는데, 그것을 남쪽 바다의 새로운 섬으로 착각한 이야기였죠. 그는 신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믿게 됐는지 설명하며 “독창적인 인물이 되려고 애썼는데 알고 보니 기존의 문명화된 종교 전통의 엉성한 복사판을 나 홀로 창작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라고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항해를 떠났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깨달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자리에만 머무르는 사람은 스스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도, 더 큰 신앙의 단계로 도약할 수도 없겠지요.

제가 책의 결론에서 비슷한 얘기를 쓰기도 했어요. ‘달란트 비유’를 언급하며 하나님이 인간에게 모험 본능을 주신 인자한 주인 같은 분이라면, 주인에게 받은 달란트로 더 큰 결실을 거두기 위해 손해의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세상으로 나아가 장사하는 종을 보며 기뻐하실 것이라고요.

- 성서를 자신들 교리의 체계와 진리를 수호하는 데 사용하기보다 삶의 실천으로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는 대목이 여러 번 나옵니다. 앞서 말씀하신 독서 방법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그렇죠. 저는 신학이라는 것이 동시대 학자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 그 시대의 과제를 가지고 씨름할 때 나타나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실존적이든 사회적이든 자기 시대의 문제를 부여잡고 나름대로 해결책을 낸 것이 신학이거든요. 그래서 이 세상과 동떨어진 신학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요. 바울이 서신서를 썼을 때도 독립된 서재에 앉아 세상과 분리된 채로 쓰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는 순회 설교자, 순회 봉사자였기 때문에 머무는 곳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서신서를 썼을 것이고, 다른 복음서들도 마찬가지였겠죠. 자신들이 전해 받은 복음을 어떻게 공동체 내에서 재해석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구약 역시 마찬가지죠.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하면서 전승되는 이야기들을 모아서 하나의 큰 서사로 만들어낸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매료되어 넋을 잃고 바라보게 만드는 위대한 신학 저서들을 읽어보면 그 자체가 매우 아름답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저서가 쓰인 시기로 돌아가서 살 수는 없어요. 우리는 오늘날 우리 상황에서 가장 맞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죠. 과거의 위대한 유산은 유산대로 남기고, 오늘날 우리가 살 집은 또 새롭게 지어야 하는 거죠. 제가 신학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위대한 학자들을 공부하더라도 거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정통 실천’(authenticity practice, orthopraxis)이라는 말이 있어요. 해방신학에 나오는 얘기인데요. 오늘 여기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건지 고민하는 일이 신학의 목적이라는 말이죠. 교리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실천 과제는 무엇일까요?

저는 지금 한국교회가 타인을 혐오하고 배제하고 있다고 봐요. 자신들의 정통성을 지킨다는 목적으로 타인을 적대시하고 적으로 만들고 있죠. 달리 보면 이건 지금 교회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거든요. 만약 기독교가 주류였고 힘이 강했다면, 지금보다 더 너그러운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을까요. 이건 다른 사회나 집단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옳은지 그른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죠.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교가 가진 다양한 전통 중 가장 중요한 실천은 ‘환대’라고 생각합니다. 낯선 자를 환영하시는 하나님이죠. 아브라함이 낯선 자로 하나님 앞에 섰잖아요.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셨고요.

선택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환대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낯선 자에게 환대를 베풀었고, 나그네를 환대했죠. 환대에 주목하는 해석이 필요한 것 같아요. 레티 M. 러셀의 《공정한 환대》를 보면 ‘환대의 해석학’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성경을 읽어왔던 방식은 소위 ‘본문으로 괴롭히기’를 통해 누군가를 은혜에서 배제하는 ‘차이의 해석학’이었어요. 그런데 러셀은 지금까지 분열, 배제,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로 이용되어온 선택의 교리는 환대의 해석학이라는 렌즈로 보면 외부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환영을 개방하는 가장 강력한 보증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환대를 통해 중심과 주변, 내부자와 낯선 자의 구별이 흐려지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장소라고 강조합니다. 저는 자신이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개인이나 공동체들은 이 세상에서 누군가를 판단할 권한을 가진 심판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환대를 전하는 증인으로 세워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진지함’이라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옵니다. 작가님을 진지한 그리스도인이라 평가하는 분들도 있고요. ‘진지함’은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작가님도 자신을 진지한 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요. 저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농담도 좋아하고, 쾌활해지려고 해요. 물론 내향적인 편이지만요. 저는 개원의잖아요. 사람을 상대해야 하니까요. 환자를 마주 보고 대화하는 의사가 너무 진지하면 안 되죠.

그리고 교회 오래 다닌 분들이 다 공동체 생활을 즐겁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면이 있죠. 저도 그래요. 책에서도 성서를 읽고 해석하는 일을 설명하면서 ‘놀이’라는 용어를 언급했죠. 기독교인이 너무 진지하면 문제라고 봐요. 성서 공부가 놀이이기를 그치고 특정한 도그마 안에서 굳어지게 되면, 누군가를 살리는 데 사용되기보다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핍박하는 죽임의 도구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이죠. 즐겁게 놀이로, 진리를 추구하되, 내가 알고 있는 것만 진리라는 생각을 버리고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즐겁게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서 즐거움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책을 쓰면서 사람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을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제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소속 교회의 교인입니다. 서론에도 썼지만 책 내용 중에 제가 속한 교단을 포함해 한국의 보수 교회들이 가르치는 공식적인 교리와 배치되는 부분들이 꽤 나옵니다. 저는 조직신학 교과서를 포함해 교리와 관련된 책들도 꾸준히 읽어왔기 때문에 어떤 부분이 문제 될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책의 질문에 대해 ‘정통’ 신학이 원하는 정답도 잘 알고 있죠. 아마 저보고 보수 교회가 원하는 대답을 담은 책을 쓰라고 했다면 그것도 가능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책이 말을 거는 주요 대상은 정통 교리의 대답에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해 기독교에 회의적인 태도를 갖게 된 사람들입니다. 제 목표는 그분들에게 기독교는 당신이 들어왔던 단 하나의 ‘정통’ 대답보다 훨씬 많은 답을 가진 풍성한 종교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이었어요. 그래도 만약 이 책을 제 주장을 담은 형식으로 썼다면 문제 삼으려는 사람이 있었겠죠. 그런데 평신도 안수집사가 신앙을 묻는 기특한 딸에게 주는 조언을 가지고 신학자나 목사가 싸우자고 달려들기에는 좀 거북하지 않겠습니까. 정작 본인들은 자녀와 신앙적 문답은커녕 일상적 대화조차 단절되어있는 경우도 많을 테니까요.

- 책에 담긴 추천사 중 “저자가 다니는 교회 목사가 목회하기 힘들겠다는 것. 어지간한, 아니 사실 대부분의 목사보다 성경과 신학에 대한 지식과 관점이 더 넓고 깊으며 지금도 시간 나면 성경 공부와 독서에 몰두하니 왜 안 그렇겠는가”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이 추천사를 보고 “정한욱 집사는 찬양대에서만 목소리를 내는 평신도다”라고 했어요.

교회에서는 제가 큰소리를 잘 내지 않습니다. 그냥 조용히 안수집사로 섬기고, 성가대 열심히 하면서 지내고 있죠. 장학위원회처럼 돈을 내야 하는 자리에 뽑아주셔서 나름 열심히 섬기기도 합니다. 아까 진지함에 대해서 얘기하기도 했지만,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일반적인 교회에 붙어있기가 쉽지는 않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도 저는 교회 안에서 교우들과 지내는 게 좋더라고요. 목사님이 가끔 제 의견과 다른 말씀을 하기도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가면 제가 40년간 만나왔던 분들, 선후배들을 만나서 즐겁게 지낼 수 있잖아요.(웃음)

ⓒ복음과상황 정민호

- 성가대 활동은 얼마나 하셨어요?

한 10년 정도 했는데요. 성가대원 중에는 30년씩 한 사람도 많아요. 우리 교회는 목사님이 장로님들에게 성가대 활동을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 시간에 사람 만나라고 그러시더라고요. 저는 생각이 좀 달라요. 장로는 교회에서 결정하고 판단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판단을 받을 일이 많지 않잖아요. 지휘받을 일도 흔치 않고요. 저는 장로님들이나 중직자들도 반드시 정기적으로 누군가의 지도를 따르는 경험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성가대가 아주 좋은 예가 되겠죠. 그래서 나중에 담임목사님께 장로님들도 성가대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안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 신앙생활은 고등학생 때부터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셨어요?

당시 교회는 세상보다 문화적으로 한참 앞서 있었어요. 30년 전에는 지금과 사회 분위기가 정말 달랐어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같은 차별적인 말도 대놓고 하던 때였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차별이 심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가면 여성들이 직분을 받고 성가대, 예산 집행도 하고 있었죠. 사회적으로 여성이 차별받는 시기에, 교회에서는 여성들이 권사님으로 불리고 존경을 받는 게 제 눈에는 놀라운 일이었어요. 고등학생들이 공부나 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 이성인 친구들이 모여서 찬양 연습을 하고, ‘문학의 밤’을 한다고 준비하고 그러는 게 놀라웠어요. 그래서 저는 재수할 때도 교회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석했죠. 주일날은 아예 공부를 안 했어요. 주일에는 새벽부터 나와서 밤까지 교회에 있었습니다. 교회가 너무 좋았으니까요. 한번은 재수할 때였는데, 학력고사가 일주일 남았을 때 10개 교회가 참가하는 찬양제가 열렸어요. 저도 공연에 나갔죠.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직도 이 사실을 모릅니다.(웃음) 친구네 집에서 양복을 빌려 입고 공연에 나간 거죠. 그때 전도사님 한 분이 저를 부르더라고요. 여기 있지 말고 공부하라고 하셨어요. 오죽 안타까웠으면 그랬겠어요. 아무튼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교회에서 평범하게 신앙생활하는 평신도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하 사진: 정한욱 제공)

- 비전케어라는 곳에서 선교 활동도 오랫동안 하고 계시지요?

15년 정도 됐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스무 번 정도 해외 봉사를 다녀왔어요. 1년에 한 번 정도 가는데, 가면 일주일 정도 의료봉사를 하고 옵니다. 의사 두세 명이 같이 가서 백내장 수술을 하죠. 한 번 가면 보통 80-150건 정도의 백내장 수술을 시행합니다. 주로 의료 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로 갑니다. 아프리카 같은 경우 안과의가 100만 명당 한 명 정도 있어요. 어떤 나라들은 의료 환경이 20년 전 상태 그대로 낙후되어 있기도 해요. 기계는 다 녹슬어있고 병원은 크게 지어졌는데 절반 이상의 공간이 유령처럼 비어있기도 하고요. 환자들이 아예 시력을 잃고 오는 경우가 많아요. 백내장은 수술 시간이 짧고, 수술 후 관리가 따로 필요 없기 때문에 현지 의사들이 충분히 관리해줄 수도 있죠. 의료 사역으로는 이만한 사역이 또 없습니다. 굉장히 효과적인 단기 의료 사역이죠.

- 의료봉사 가실 때 병원은 어떻게 하세요?

병원은 일주일 동안 문을 닫고 갑니다. 그 대신 저는 지금까지 휴가를 따로 못 갔어요. 제가 모리타니아를 많이 갔는데, 여기서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30시간 가까이 걸립니다. 서부 아프리카까지 비행기를 두 번 이상 갈아타야 하죠. 그러려면 금요일에 진료를 마치자마자 병원 문을 닫고 열심히 이동합니다. 그곳에서 일주일간 사역을 하고 다시 주일날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죠. 시차가 9시간 정도 나는데 일주일은 피곤해서 해롱해롱한 상태로 지냅니다.

- 지속적으로 선교를 하게 된 이유도 궁금합니다.

단기 선교는 부르심으로 하는 겁니다. 소명이죠. 제 신앙의 멘토이신 오스데반 선교사님이 몽골 선교사로 나가신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비전케어가 몽골 의료봉사에 갈 안과의사를 모집하고 있어 따라나서게 되었습니다. 스승도 만나고 의료 사역도 하니 아주 멋있을 것 같았습니다. 자신 있게 가서 수술했는데, 수술이 너무 어려운 거예요. 외국에 나가서 수술하는 건 한국에서 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장비와 환경이 너무 달라서 어려웠죠. 한국에서 날고 긴다는 분들도 가서 다 헤매고 간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진땀을 뻘뻘 빼고 왔죠.

그곳에서 선교사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선교라는 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요.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홍해를 건너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그랬잖아요. ‘너희는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서 행하시는 큰 일을 보아라.’ 그 얘기를 들으면서 단기 선교도 내 손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어요. 제가 선교를 하려고 와서 나를 드러내려고 욕심을 부렸다는 걸 깨닫게 됐죠. 당구에 빠진 분들이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에 당구대가 보인다고 그러잖아요. 저는 단기 선교 이후에 눈을 감으면 선교지에서 만났던 환자들 얼굴이 보였어요. 저에게는 소명이었습니다. 그래서 파키스탄에 갔어요. 이건 제 간증인데요. 선교 첫날 그곳에서 새벽 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예수 나를 오라 하네〉라는 찬양을 다 같이 불렀어요. 그때 눈물이 쏟아져서 노래를 못하겠는 거예요. 그때 하나님이 저를 이곳에 부르셨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 후로는 이 사역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책 읽기와 글쓰기는 어떤 방향으로 모험하게 될까요.

아직 어렴풋한 계획이기는 하지만 이 책의 후속 작업을 진행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복상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30여 년 전 〈복음과상황〉이 창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가 나오자마자 한달음에 서점에 달려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 이렇게 인터뷰까지 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복상 독자들이 서로 격려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환대를 전하는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행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