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시민-시스템
[391호 공간 & 공감]
다시 돌아왔다. 4월에서 5월. 이 시기 동네 공공도서관의 정원은 스스로 소생하고 자란다. 죽었나 싶던 마른 가지에 어느 날 새순 하나둘 돋으면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이 풍성해진다. 작은 잎은 커지기도 많아지기도 하다가 이내 뭔가 피우고 더러는 떨어뜨리다가 전보다 쌩쌩해진다. 그 속도가 개체마다 조금씩 다르다 보니 도서관이라는 유니버스는 오늘과 어제가, 어제와 그제가 또 다르다. 그렇게 식물들이 따로, 또 같이 이루는 장관을 목격하기 특히 좋은 때이면 나는 더 자주 도서관으로 걸어간다. 내 삶은 높은 확률로 늘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는 그제 같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한 멈춰있는 존재는 없다는 진실을 새삼 도서관에서 감각할 때마다, 그 공간을 함께 쓰는 이용자들을 느낄 때마다 되뇐다. 누구나 조건 없이 시간을 보낼 공간이 걸어가 닿는 곳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견디게 하는지.
노동절에 여성 양육자 두 명이 도서관 정원 등나무 벤치 아래 앉아 눈앞에 노는 아이들을 두고 서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괜히 이런 생각을 했다.
‘없는 아이지만, 있어도 키울 만하겠는데?’
유년 시절, 공부하는 엄마에게 딸려 지역 공립도서관에 다니던 기억도 떠올랐다. 나는 책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책은 별로 안 읽었으나 엄마와 외출하는 맛은 좋았다. 특별히 재밌는 공간은 아니었지만, 구내식당에서 어른과 똑같이 밥을 사 먹고 군것질거리도 얻어내곤 했으니. 엄마는 내 성화에 못 이겨 아주 오래 머물지 못했겠지만 한두 시간 정도는 홀로 보내는 시간을 확보했을 것이다.
등나무 벤치 팀이 슬슬 도서관 근처 상권으로 가볍게 저녁을 먹으러 자리를 비우고, 나도 시선을 옮겼다. 야외 식탁에서 도시락이나 간식을 풀어놓고 먹으며 한 타임 수다를 나누는 이들과 그 옆 잔디 위 빈백에서 데이트 중인 커플들에게로. 도서실 안에서는 시리즈로 보이는 책 몇 권을 쌓아두고 몇 시간 내내 궁둥이를 붙이고 있는 노년의 분들이 보기 좋았다. 재력이 크건 작건 나이 들면 젊은 날처럼 생산적이지 않은 날이 누구에게나 올 것이니, 이곳에서 내 늙음을 가늠하기도 한다. 도서실엔 졸거나 자는 사람, 노트북으로 뭔가 하는 이들도 있다. 저번엔 앞 책상에 앉아있던 중년 남성분이 등을 돌려 우리 테이블에 앉은 여성 청년에게 뭔가를 존댓말로 정중히 물어오는 걸 봤다. 익숙한 풍경이다.
하루는 도서관에서 꽃을 받았다. 출근을 앞두고 도서관을 찾은 날, 건물 사정으로 중앙 입구가 아닌 측면 출입문으로 향하다가 매점에서 천 원짜리 커피부터 사 마셨다. 딱 매점 앞인 그 출입문 근방의 벽돌 계단에 앉아 먼저 커피를 마시는 누군가, 그 머리 위로 무성하면서도 아직 색은 연한 나무 이파리들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그 풍경 속에 나도 끼고 싶어서. 계단에 앉은 이와 그 위 나무를 눈앞의 그림 삼아, 마치 원래부터 도서관에서 커피 마시기가 목적이었던 것처럼 두 동의 건물 사이 돌난간에 기대어 호로록호로록. 반 잔 정도 마셨을 때 빨간 장미 한 송이를 든 아주머니가 지나가다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직전 들뜬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내일이 ‘책의 날’이라 오늘 도서를 대출하면 장미꽃을 준대요.”
그녀 손에 든 빨간 꽃송이를 따라간 눈이 나 말고도 몇몇 있었나 보다. 알려줘서 고마워라. 덕분에 무인대출기 대신 사서를 통해 책을 빌리고 샛노란 장미꽃을 받은 그날, 평소보다 더 즐거웠다. 이런 순간에야말로 지자체가 좋아지고 국가 경제력을 실감한다. 도서관을 나서기 더 아쉬웠던 그날, 동시에 일터로 향하는 걸음이 덜 무겁게 느껴졌다.
주말 출근을 하던 또 다른 날, 전철역까지 따라나선 동거인이 꺼낸 ‘카공족’ 이슈에 우리 사이에 잦은 도서관 이야기가 또 이어졌다. “오늘은 나도 카공족”이라던 그가 카공족 문제로 카페 업주들이 골머리 앓는 현상을 언급했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무리를 일컫는 신조어. 어제오늘 만들어진 말은 아니고, 관련 통계 조사가 다양한 방식으로 과거 몇 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2016년 대학생들을 표본조사한 결과 대학생 41%가 “나는 카공족”이라고 답했는데, 보다시피 코로나 이전 수치다. 열악한 청년 주거 환경이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수면 위만 보는 누군가는 대학생들이 카페에 쓰는 돈이 낭비라고 허튼소리나 하겠지만, 카페가 넘쳐나는 대한민국에서 카페만큼 아무에게나 접근성 좋은 곳이 있을까. 심지어 통유리창 밖으로 가로수도 보이고, 빛도 들어오는데, 만 원 미만 비용으로 쾌적하면서도 장시간 자리할 수 있다. 최근 급격한 물가 인상에 소비가 침체하고 자영업자들의 경영난이 심화하자 카공족 논쟁이 다시 떠올라 카페 사장들 사이에선 비양심 소비자(‘내돈내산’인데 뭐 어때) 문제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카페 사장들 심정은 백번 이해하지만, 콘센트 치우기로 해결될 문제일까.
“일상에 도서관을 두고 살아갈 수 있다면 카공족은 사라질걸?”
동거인도 동의했다. 동거 전 원가족과 함께 살던 우리는 각각 스타벅스나 커피빈 매장을 작업 장소로 애용했다. 한 번의 이사, 동거 4년의 세월을 쭉 도서관 근처에서 보낸 우리에겐 ‘카공’ 습관이 없어졌다. 옆 사람 대화가 너무 잘 들리기 시작하면 그날의 집중은 망한 것이나 다름없는 카공은 사실 위험 부담이 꽤 큰 선택이다. 커피값을 날릴 수 있다. 누군가에겐 카페 책상 너비가 충분하지 않다. 오래 앉아있기 미안해 간식 메뉴를 시키거나 음료를 한 번 더 시키는 사람도 많다. 카공족의 반이 근방에 걸어갈 수 있는 공립도서관을 두고 사는 사회에도 카공족 이슈가 문제적일까?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이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 1위는 집에서 멀기 때문(33.9%)이다. 1년 전 도서관 글(2022년 6월호)에도 언급했듯, 우리 사회에서는 “거주지·학력·소득에 따라 ‘도서관 경험’이 다르다.”
독일 뮌헨에 머물렀던 2015년에 주립도서관(Bavarian state library)과 공공수영장(Müllersches Volksbad)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대로변에서 가까운 접근성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고, 충분한 규모였다. 뭣보다 아름다웠다. 가난한 외국인 유학생 친구를 따라간 그 수영장 앞은 정원처럼 푸릇푸릇한 녹음이, 그 녹음 안에 어울리는 오래된 돌 조형물이 있었다. 건강하게 사는 데 가난이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사회에 속한 그녀와 우리 돈 5천 원도 안 내고 수영장을 실컷 이용했다. 수영장은 50미터 레일에 최대 4미터 수심 실내 풀에서 헤엄을 치다가 이어지는 야외 풀로 나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밤에도 놀 수 있는 그곳엔 사우나도 있었다. 주립도서관은 그 웅장함에 어울리게 높은 천고를 가진 옛 건물이었다. 도서관 실내 한 면은 전부 유리여서 완전히 초록초록한 바깥 풍경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고, 공용 책상 외 1인실도 여럿 준비되어 있었다. 작년 일본 도쿄 여행 때 우구이스다니[鶯谷] 역 근처 숙소에 묵을 땐 가까운 도서관에 가볼까, 구글맵을 검색했다가 도보 15분 이내에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세 개나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복합적으로 ‘심쿵’한 기억이 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의 슈퍼스타와 다양한 콘텐츠 산업을 소재로 하는 유튜브의 ‘K컬처 국뽕 영상’들로 아무리 자위한들, 공공 영역에서 우리 생활의 질이 일본보다 높아지지는 않는다. 2021년 기준 일본의 공립도서관 수는 3,316개, 한국은 1,208개인데, 일본은 1995년 이후 30년 장기침체를 겪는 중에도 1,000개 이상 도서관 수를 늘렸다.
이 와중에 정말 열받는 사건이 현재 진행 중이다. 박강수 마포구청장 주도로 마포구 관내 구립 ‘작은도서관’이 모두 폐관될 절차를 밟고 있다. 작은도서관은 너비 33제곱미터에 장서 1천 권, 열람석 6석 이상의 공중 생활권역 내 소규모 도서관인데, 지자체 특색을 살린 작은도서관들이 미약하나마 모세혈관처럼 존재한다. 큰 공공도서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주민들이 그나마 이용할 수 있는 산소 같은 공간인 셈이다. 지난달까지도 계속 운영을 위한 심사를 마치고 계약서 날인까지 한 마포구 작은도서관을 예산 절감 이유로 ‘독서실’로 전환한단다. 지난해 기준 이용자 수 15만-20만 명에 1인당 3,600-4,800원 정도 구 예산이 쓰였는데, 유지비에 비해 이용 인원이 너무 적기 때문이라고. 이 비용을 어떻게 더 잘 쓸 계획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동안 작은도서관을 육아와 돌봄, 문화 공간으로 삼았던 주민들은 곧 갈 곳을 잃는다. 자녀 양육자를 비롯한 구민들이 반대 의견으로 구청 온라인 민원실을 도배 중이고, 출판계는 물론 마포중앙도서관장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 일로 직위 해제가 된 도서관장이 결국 파면 통지를 받았다. 임대업과 대통령 선거 홍보 말고는 공식적으로 유관 경력도 없는 이가 구청장으로 선출됐다고 하여 지역의 공립 공간을 ‘개인적인 의지’로 좌지우지하는 방식이 내 눈엔 더 보탤 말 없이 무식하고 우스워 보인다. 구청장 하나에 작은도서관 진흥법 시행도, 20여 년간 이어진 작은도서관 확대의 흐름도 꺾일 수 있는 시스템은 시민으로서 불안하다.
공공도서관을 늘리는 일은 지자체 차원이건, 국가적 계획이건 커뮤니티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 데 이미 증명된 방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위와 경제력의 차별 없이 누구나 출판물은 물론, 다양한 지식 정보와 문화 공간을 누릴 기회에서 소외되지 않는 사회라야 더 나은 미래가 있지 않을까. 누구나 근사한 수영장에서 헤엄칠 수 있는 권리 같은 건 당장 바라지도 않지만, 도서관이라는 공간으로 천천히라도 꿈꿀 수 있는 미래만큼은 빼앗길 수 없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시민들의 마음, 그리고 시스템이다.
오지은
사람과 사회를 관찰하고, 둘 사이를 연결하는 콘텐츠 노동자. 언제나 재미있는 일거리를 기대하고, 빵은 만들어 먹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