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392호 공간 & 공감]
수영을 시작했다. 15년 전에 배운 적이 있으니 ‘다시’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휴가철 물놀이를 가끔 즐기긴 했지만, 그동안 영법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탓에 긴장됐다. 몸을 씻고 수영복을 착용한 뒤 수영장으로. 그 냄새다. ‘락스냄새’로 불리는 염소 함유 수영장 물 냄새가 가장 먼저 마중 나왔다. 수업 시간보다 15분 일찍 준비를 마친 나는 수영장에 혼자 덩그러니 서있었다. 스트레칭하며 몸을 풀었지만, 어색함은 풀리지 않았다.
수영을 시작하게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돈 내고 누리는 스포츠에 대한 저항감이 있었기 때문에 골프는 물론, 필라테스, 테니스 따위보다는 등산, 걷기처럼 마음만 가지고도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생활체육을 선호하는 편이다. 또 목표 없는 스포츠 즉 ‘재미’와 ‘여가’를 위한 운동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나에게는 몸보다 머리를 써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활동이 곧 재미이고 여가였다.
그러다가 부쩍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다. 주일마다 집에서 교회까지 4km 거리를 따릉이로 이동하는데, 도착하면 숨이 턱 끝까지 차서 한참 동안 숨 고르기를 해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치 않고 어디 나가서 노는 것이 귀찮아졌다. 어쩌다 한 번 외출하면 2박 3일 수련회 다녀온 것처럼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결정적 사건은 4월 말 지리산 구례 여행에서 터졌다. 생각을 정리할 겸 좀 걷고 싶어서 구례 산골짜기를 방문했다. 더 더워지기 전에 늦봄의 기운을 한껏 받으려 큰맘 먹고 떠난 여행이었다.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구례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은 뒤 예약해둔 숙소까지 10km를 걸어갔다. 그리고 그날 밤 앓아누웠다. 밤새 열이 나고 온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나간 채로 새벽을 맞이했다. ‘아침 되면 괜찮아지겠지’ ‘지리산의 기운을 받아 곧 털고 일어날 수 있겠지’ 희망 섞인 주문을 되뇌었다. 물도 마셔보고, 이리저리 움직여봐도 몸이 말을 듣지 않고 바닥으로 바닥으로 계속 녹아내렸다.
그렇게 구례에서 3일 지내는 동안 대부분 누워 지냈고, 남편은 내 곁을 지키며 간호했다. 밤새 머리에 수건을 얹어주고, 온몸을 닦아 열을 식혀주느라 들락날락. 인간은 제 운명의 한 치 앞도 보지 못한다. 온종일 걸을 생각에 숙소를 화장실이 밖에 있는 너와집으로 잡았던 것이다! 그도 덩달아 고생을 했다. 구례를 떠나는 마지막 날 겨우 회복된 몸을 가까스로 일으켜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로 오는 기차 안에서 면역력과 체력이 바닥난 내 현실을 마주하며, 이대로 살다가는 내가 원하는 삶은 물론이고 삶 그 자체도 빼앗기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 체력을 기르자.
그렇게 수영을 시작하게 되었다. 수영을 등록하고 나서 가장 큰 고민은 제모와 월경이었다. 다행히 요즘 여성의 실내 수영복은 상체와 하체를 하나로 연결하여 무릎까지 덮는 반바지 형태가 있다. 물 묻은 반바지 형태의 원피스 실내 수영복은 골반이 드러나는 원피스 수영복보다 입고 벗는 데 더 불편하지만, 차라리 마음은 편했다. 그래도 사회적인 상식 수준에서 통용되는 신체 부위 제모는 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제모해야 하는가는 여전히 마음속 물음표로 남아있다.
38세 여성인 나는 수영장 등록할 때 ‘가임기 여성’(만 13세 이상 55세 이하)이라는 이유로 수강료의 10%를 할인받았다. 며칠 생각해도 할인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여성의 신체 조건에 대한 배려인가. 월경 기간에는 수영장에 못 나올 테니 해당 기간만큼 할인해주는 것이 온당하다는 계산인 건가. 혹시 월경 기간에는 수영장에 나오지 말라는 암묵적 제안일까.
그리고 왜 10%일까? 월경 기간이 개인 편차가 있긴 하지만 3~7일이라고 봤을 때, 월경 기간에 해당하는 횟수를 기준으로 금액을 할인해야 그 취지에 더 부합하지 않을까. 또 ‘가임기 여성’은 누가 어떤 근거와 목적으로 정하는 걸까? 몸은 가장 개인적이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도 임신이 가능한 나이는 개인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월경을 10세 시작하거나, 60세에도 지속된다. 정부가 지정한, 또는 일반적이라고 여겨지는 범주로 담을 수 없는 나이다.
물론 운영의 편의를 위해서 한 명 한 명 묻고 할인을 적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통상적인 ‘가임기 여성’(그 근거가 무엇이든)에게 일괄 적용하기 위한 행정 조치로 이해된다. 그래서 문제다. 이 무지의 시스템.
물속에서는 압력 차이 때문에 월경 기간 중이어도 월경혈이 외부로 잘 유출되지 않고 또 탐폰, 월경컵 등을 사용하면 더더욱 안심이다. 그런데도 나를 포함한 주변 지인들은 수영장은 물론 목욕탕 역시 방문을 꺼린다. 또 아무도 내게 제모는 꼭 해야 한다고 강요한 적 없다. 그런데 나를 포함 다수의 여성은 제모한다. 정말 강요한 적 없나? 없는 게 아니라 있다. 이게 사회 압력이다. 보이지 않아서, 공론화되지 않아서 더 무서운 사회 압력. 개인마다 몸의 편차는 얼마나 큰가. 이 편차를 운영과 기능 그리고 효용 때문에 고정된 기준으로 후려치지 않을 수는 없을까. 이 문제가 여성만의 것은 아니다.
딱 10년 전, 고등학생 때 배운 제2외국어를 써먹겠다는 핑계로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갔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물론 구엘 공원도 멋있고, 추로스와 타파스도 맛있었다. 그런데 가우디가 주었던 충격보다 10년이 지났어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장면은 따로 있다. 바르셀로나 해변에서 친구와 스페인의 여름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는데 우리 앞에 또래로 보이는 한 남성이 스페인 태양 아래, 물놀이 수건을 깔고 누워 혼자 책도 읽고, 과일도 깎아 먹으며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여름의 해변을 즐기는 그 모습이 참 자유로워 보였다. 10년 전만 해도 대다수는 혼밥, 혼영, 혼놀(혼자놀기)을 잘 못할 때라 혼자서도 잘 노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이것이 유럽의 개인주의 문화인가’ 부러울 정도로 멋있어 보였다. 햇빛을 즐기던 그가 데워진 몸을 식히려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순간, 알았다. 그는 장애인이었다. 그때의 충격이란. 천천히 바다를 향해 걸어가 바다 수영을 즐기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는, 수평선처럼 자연스럽고 평화로워 보이는 그의 모습과 달리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에 내 심장은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에서 30년을 살면서 한 번도 보지도 못했고, 상상해본 적도 없는 장면이었다. (그 후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사한 광경을 목격하지 못했다.)
몸은 몸이다. 아프든, 건강하든, 어리든 늙었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몸을 가진 존재로 산다. 몸의 조건에 따른 격차를 줄이고 어떤 몸이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믿는다. 장애인 콜택시, 여성 안심 택시, 반려견 택시 등 더 다양한 서비스가 생기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누구나 신체 조건과 상관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보편화된 사회가 더 좋은 사회라고 알고 있는 것처럼. 소득, 교육, 지역, 문화, 권력의 격차만으로도 버겁다. 몸의 격차는 이 모든 차별의 시작이다. 어떤 몸이든 자유롭게, 나답게 살아갈 권리를 추구해도 괜찮은 사회에서 살고 싶다.
공공 샤워실 헤드가 고정형이 아니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형태여야 하는 이유. 더 많은 곳에 경사로가 설치되어야 하는 이유, 더 많은 저상버스가 도입되어야 하는 이유. 더 많은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하는 이유. 아이가 차를 조심하는 골목이 아니라 차가 아이를 조심하는 골목이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 몸이 먼저다. 돈이 아니라.
박진영
기독교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공인중개사로 일한다. 책 읽기와 걷기, 여행을 좋아하고 “one life, live it”의 줄임말 ‘올리’로 활동하는 자기(self)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