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과 부캐 현상
[392호 민민과 생귄의 대중문화 돌려보기]
“싹 다 갈아 엎어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싹 다.”
2020년 전후부터 온라인 및 방송에서 ‘부캐’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기 시작했다. MBC 주말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유재석은 유산슬, 지미유, 유드래곤 등 자신의 부캐로 출연하면서 ‘부캐 현상’을 대중화했다. 힙합신에선 래퍼 마미손을 필두로 다양한 부캐와 프로젝트 앨범이 만들어졌고, 코미디언 카피추, 둘째이모 김다비 등이 인기를 끌었다. 공개 코미디가 막을 내리고 유튜브 등 온라인 콘텐츠로 옮겨간 코미디언들은 아예 부캐를 중심으로 하는 〈피식대학〉 같은 채널을 만들었다. 최준, 길은지, 산악회, 서준맘 등은 부캐+코미디 조합이 낳은 스타들이다.
‘부캐’란 온라인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자신이 주로 플레이하는 캐릭터를 뜻하는 ‘본캐’ 외에 부차적으로 사용하는 캐릭터를 일컫는 말이었다. 본캐 하나만 잘하면 되지, 굳이 왜 부캐를 만들까? 본캐를 키우기 위해, 즉 본캐의 능력치를 높이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본캐가 부캐를 뒤집는 경우도 생긴다. 내 적성에 더 맞는 부캐를 찾기도 하고, 새로운 캐릭터로 게임을 시작하는 재미도 있다. 만일에 대비한 부캐 육성은 게임 세계에선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벼운 질문: 본캐에 집중해야 하나, 부캐를 육성해야 하나
이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본래 가벼운 게임 캐릭터 육성과 전략에 관한 것이었다. 본캐에 집중해 최대한의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부캐를 길러두는 것이 나을지를 묻는 정도였다. 말이 본캐지 그 캐릭터를 위해 내가 태어나거나 존재하는 건 아니다. 게임을 시작할 때 그 캐릭터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나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본캐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느라 상대적으로 다른 캐릭터로 플레이해볼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막상 부캐가 본캐보다 자신에게 잘 맞을 수도 있다. 그러니 틈틈이 부캐를 키워놓는 길이 더 전략적일지 모른다.
이런 논의가 쉽고 가벼운 것은 이 결정이 이뤄지는 곳이 온라인 게임이라는 가상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표현상 본캐와 부캐로 나눌 뿐, 사실 어떤 캐릭터도 현실의 ‘나’를 대체하진 않는다. 게임 속에선 내가 본캐이기도 하고 부캐이기도 하고 다양한 캐릭터가 될 수 있다. 시간과 노력, 때론 돈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본캐만 고집할 이유도 없다. 부모님과 나라를 버리는 일도 아니지 않는가! 현실 세계에서 나를 규정하던 정체성(예를 들어, 가족, 성별, 인종, 국가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니 말이다. 본캐는 물론, 다양한 부캐를 키워 새로운 인생(?)을 사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은 게임이라는 가상 세계가 지닌 큰 매력 중 하나다.
확장된 공간이자 삶의 한 부분으로서 가상 세계, 메타버스
‘가상 세계’ 개념은 이제 우리에게 상당히 친숙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흔히 현실 너머 미지의 초월적 영역을 떠올리곤 했다. 예를 들어, 그리스-로마 문화에서 가상 세계는 현실보다 더 우월한 혹은 본질적인 공간을 가리킨다. 플라톤은 이데아(idea)를 우리가 사는 현상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세상, 모든 사물의 원형(원인과 본질)인 세계로 이해했다. 특히 이데아란 이성적인 사고와 깨달음,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의 영역으로 보았기에, 쉽게 변하고 유한한 특징을 가진 물질세계를 열등하거나 종속적인 것으로 인식했다. 따라서, 이런 세계관에서는 현실과 이데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유한한 현실보다 무한한 초월의 영역을 꿈꾸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가상 세계는 현실과 동떨어진 분리된 공간이 아니다. ‘가상 세계’(virtual world)의 사전적 정의는 컴퓨터 기반 시뮬레이션 환경의 하나로서 개인 계정이나 아바타를 만들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수많은 사용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동의 혹은 독립된 공간을 말한다.1) 특히 컴퓨터, 인터넷 등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에 따라 ‘무한한 생산과 복제가 가능해진 디지털 공간’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유사한 개념으로 ‘사이버공간’(cyber space)이란 용어를 사용하곤 했는데, 슈퍼컴퓨터나 로봇, 인공지능 등 첨단 과학기술이 창조하는 공간으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미래 미지의 공간을 연상하곤 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구현하는 가상현실이란 현실로부터 확장되고 연장된 공간이며,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공간으로 자리한다. 이를 총칭하여 메타버스라고 부른다.
‘메타버스’(metaverse)란 ‘가상’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우주’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는 현실 세계와 유사한 정치/경제/사회활동이 가능하도록 구현해낸 가상공간을 의미한다.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는 현실 세계에 가상 이미지/정보를 더한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개인의 삶이나 현실 정보를 모두 기록하고 묘사하는 ‘라이프로깅’(lifelogging), 온라인 공간에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여 구현하는 ‘거울 세계’(mirror world) 등이 있다.
메타버스가 제공하는 가상 세계는 나의 일상과는 구분되고 독립된 공간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다. 회사나 학교에서 불리는 이름과 게임 속 공간에서의 나는 다른 이름, 다른 목적과 서사를 갖는다. 현실에서 나는 소심한 성향일 수 있지만, 가상 세계 속 나는 두려움을 모르는 모험가일 수 있다. 현실에서 내 스펙은 그리 자랑할 만하지 않고 웬만해선 나서는 법이 없을 수 있지만, 게임 속 나는 언제나 정확한 상황 판단으로 팀 동료를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하곤 한다. 메타버스를 소재로 한 대중문화 속 주인공은 현실과 가상 세계 모습을 대조적으로 묘사하는데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이나 〈프리 가이〉(2021)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두 공간은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온라인 게임 공간과 함께 불평등한 사회체제에 대해 경고한다. 영화는 가상현실 속 자아가 본캐이거나 부캐이거나 상관없이, 자본이 많은 사람은 비싼 장비를 구입하고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여 결국 게임 세계에서도 권력을 차지하게 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과도한 자본주의가 결국 게임의 순수성(?)을 깨뜨릴 것을 우려하며, 해당 게임 창작자가 처음 게임을 즐기고 만들었을 때로 돌아가도록 마지막 퀘스트를 제안한다. 이 서사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기독교인인 필자에겐 ‘피조 세계를 창조하신 창조주가 인간에게 마지막 퀘스트를 준다면 그것은 어떤 문제일까’ 하는 상상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 인간이 창조주의 의도와는 달리, 현실이라는 게임을 훼손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묻게 된다. 돈과 권력, 쾌락만을 추구하며 사회적 불평등과 구조적 죄악 등을 방치하면서 말이다.
지난 몇 해 동안, 특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온택트(on-tact) 라이프 스타일이 필수였던 기간을 거치면서, 메타버스를 향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 온라인 화상회의나 각종 첨단 기술을 활용한 방구석 콘서트가 가능해진 현실이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온 셈이다. 대표적으로 레고 모양 게임 캐릭터로 잘 알려진 오픈 월드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Roblox)〉나 3인칭 슈팅 게임 〈포트나이트(Fortnite)〉는 유저 간 거래 및 취미 활동이 가능하도록 구현하고 있다. 가상 오피스 및 화상회의 공간인 〈게더타운(Gather Town)〉은 한국에도 잘 알려졌는데, 과거 싸이월드를 연상시키는 2D 이미지들이 레트로 감성과도 어울려 대학생 MT, 수련회 등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 가운데 국내 기업 네이버제트에서 만든 〈제페토(Zepeto)〉는 증강 현실 기반의 아바타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2018년 출시된 〈제페토〉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거치면서 지난해 12월 기준 가입자 수가 4억 명을 돌파했다.2) 흥미로운 것은 메타버스 자체에 대한 관심은 전반적으로 줄어들고 있음에도 〈제페토〉의 인기가 지속되는 점이다. 배경에는 〈제페토〉가 일찌감치 K-POP 같은 문화 콘텐츠 사업과 연계하여 〈제페토〉 안에서 BTS 공연이 가능하도록 하거나 자신들이 직접 만든 콘텐츠들을 사고팔 수 있는 크리에이터 서포팅 플랫폼 기능까지 확장해 나갔다는 점이다. 이로써 〈제페토〉에서는 유명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고 마케팅까지 활발하게 이뤄져 잠재적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관점을 달리하면, 이런 현상은 메타버스라는 공간이 현실 정치나 경제의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미 〈제페토〉라는 글로벌 플랫폼은 먼저 시장을 점유하고, 거대 자본을 투자해 건물을 사고, 콘텐츠를 사고파는 시장이 되었다. 〈제페토〉 세계에서도 이미 유명 인플루언서가 존재한다. 이 말은 유명하지 않은, 덜 중요한 혹은 잉여 캐릭터들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본래 가상현실의 미덕이 현실 본캐로는 경험할 수 없는 대안적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데 있다는 사실을 배우기도 전에, 이미 메타버스 세계는 자본에 의해 침식되고 있으며 우리네 현실처럼 불평등한 구조와 사회 모순을 닮아가고 혹은 재현해내고 있다.
무거운 질문: 불완전한 현실과 부캐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본캐냐, 부캐냐?’ 원래 이 논의는 온라인 게임에서처럼 가벼운 수준에서 이뤄지고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부캐’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조명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회차 인생, 2회차 인생이 불가능한 현실 세계에서 ‘본캐’와 ‘부캐’ 논의는 가상 세계에서의 논의와는 전혀 다른 무게감을 선사한다. 복합 메타버스 플랫폼 중 하나인 〈세컨드 라이프〉는 아예 ‘두 번째 삶’을 표방하고 있다. 현실에선 이룰 수 없는 이상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피안의 공간이란 점에서 유사 종교적 체험을 제공하는 셈이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원작 소설을 쓴 어니스트 클라인(Earnest Cline)은 가상현실 ‘오아시스’(the OASIS) 서비스에 대해 “더 나은 현실로의 출구 … 무엇이든 가능한 마법의 장소”라고 묘사하고 있다.3) 로버트 제라시(Robert Geraci)는 이런 가상현실 기반의 게임이 재현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와 현상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팬데믹, 세계 분쟁, 감시 자본주의의 부상, 그리고 불가피해 보이는 환경 붕괴 사이에서 우리는 이미 가상현실을 위해 실제 현실을 포기할 준비가 된 지경에 이르렀을는지 모른다. … 이러한 가상세계의 부상은 비디오게임에서 시작하였고, 오늘날에는 (헤드셋을 쓰고, 모니터 화면 위에 구현되는) 온라인게임과 가상 세계로 연장된다.4)
비디오게임에서 온라인 게임과 메타버스로 구현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이를 사용하는 맥락은 과거나 지금이나 유사하다. 현실이란 불완전하고 부조리하며 불가피해 보이는 문제들로 가득하다는 인식이 공통으로 자리한다. 그렇기에 가상현실은 현실의 부조리함을 잊고 잠시나마 ‘또 다른 나’로서 삶을 (심지어 생생하게) 경험하게 해준다. 그러니 사회현상으로서 ‘부캐’란 단순히 게임 속 캐릭터 선택만의 문제보다 더 무겁게 읽혀야 한다. 아니, 그렇게 읽힐 수밖에 없다.
부캐 현상의 사회적 맥락은 또 다른 신조어인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이는 청년세대가 집단으로 느끼는 좌절감과 무기력감을 자조적으로 일컫는 표현이다. 개인적 실패의 경우(시험, 취업 등)에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취업난과 경제적 고통을 겪은 청년세대를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누구나 능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20대와 30대 응답자는 각각 31%, 24%에 그쳤으며, ‘한번 실패 후 재기할 수 있다’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비율 또한 각각 27%, 29%로 저조했다.5) 전반적으로 현실 사회 속 자기에 대한 긍정이나 믿음이 매우 저조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tvN 드라마 〈미생〉이 방영되었던 2014년(웹툰은 2012~2013년 연재)에 비하여 오늘 한국 사회의 현실은 얼마나 나아졌는지 고민해볼 일이다. 사회적 비관이 짙을수록 자신을 긍정하고 신뢰하는 자존감도 낮아질 확률이 높다. 바둑을 인생에 비유한 웹툰/드라마답게 제목을 ‘미생’으로 한 점은 천천히 곱씹을 일이다. 바둑에서 ‘미생’이란 ‘완전히 죽지는 않았지만 완벽하게 안전하지는 않은 돌’을 일컫는데, 두 개의 집을 만든 상태를 뜻하는 ‘완생’ 전까지의 단계를 의미한다. 그러니 드라마 속 미생이란 누구나 처음부터 완전(안전)하지 않으며 완생을 향해 나아가는 사회(인생) 초년생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2020년 전후로 회자되는 ‘부캐’ 현상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의미의 ‘미생’보다는 이번 생은 망했으니 또 다른 나로서 살아갈 제2의 삶(second life)이나 이러한 현실에서 탈출할 가상의 공간이라는 의미로 다가와 씁쓸하기도 하다. (그렇다. 애초에 “이게 이렇게 진지하게 다룰 일인가”라고 물었지만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대중문화 속 ‘부캐’ 전성시대를 이끄는 이들의 면면을 보면 사람들 시선으로부터 당당하고(심지어 뻔뻔하고), 자신감과 자기를 사랑하는 유쾌한 캐릭터들이 인기가 높다. 앞서 언급한 최준(김해준), 서준맘(박세미), 주기자(주현영), 다나카(김경욱), 길은지(이은지) 등은 남들의 시선보다 자신을 아끼고, 할 말은 할 줄 아는 당당하고 유쾌한 모습을 한결같이 재현한다. 이들을 보고 좋아하는 팬들은 상대적으로 자신이 그렇지 못하다는 현실과 자신을 대신해서 당당하고 유쾌하게 행동하는 모습에 대리 만족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러 부캐 중에서도, ‘둘째이모 김다비’(김신영)와 그녀의 인기곡 〈주라주라〉(2020)는 과도한 업무나 부당한 열정페이, 회식 문화, 워라밸 등에 민감한 MZ세대 입장을 대놓고 당당하게, 동시에 유쾌하게 대변해준다.
입 닫고 지갑 한 번 열어주라 / 회식을 올 생각은 말아주라 / 주라주라주라 휴가 좀 주라 / 마라마라 야근하덜 말아라 / 낄낄빠빠 가슴에 새겨주라 / 칼퇴칼퇴칼퇴 집에 좀 가자 … 야근할 생각은 마이소 / 오늘은 얼마 만에 하는 데이트 날인데 / 가족이라 하지 마이소 / 가족 같은 회사 내 가족은 집에 있어요
대중문화 속 부캐 현상은 게임이나 가상현실 속 부캐 논의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말을 해주는 누군가를 좋아한다. 더욱이 그것이 시원한 사이다 발언이고 유쾌하기까지 하다면 금상첨화이다. 이런 면에서 코미디언에게 ‘부캐’ 콘텐츠는 가장 잘 어울리고 또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것이 광대의 역할이었으니 말이다. 저잣거리에서 탈을 뒤집어쓰고 무능한 왕과 탐욕스러운 양반을 희화하고 백성들 마음을 대신해 소리쳐주는 역할 말이다. 박진규 교수는 그것이 대중문화의 종교적 역할 중 하나라고 말하며 사람들은 여전히 ‘세속성자’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말한다.6) 대중문화 속 부캐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해서 해주는 ‘세속성자’ 역할 어느 즈음과 닮아있다. 그렇게 대중문화의 특성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멀티 페르소나와 진정한 자아
마지막으로 부캐에 대한 또 다른 접근은 사회심리학적 접근이다. 심리학에선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고유한 성향으로서 자아와 사회에 적응하면서 형성된 사회적 자아를 구분한다. 우리는 사회적 기대와 필요에 따라 행동하는데, 이를 가리켜 ‘가면 이론’(혹은 페르소나 이론)이라 부른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가면을 쓰고 행동한다. 온전한 나를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사회적 기대와 필요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 때론 매력을 어필한다. 따라서 가면을 쓴다는 것은 부정적 의미만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관계의 사회생활에 어느 정도 필요한 사회 기술이다.
어떤 측면에서 볼 때, 부캐는 본캐와 나를 분리하는 태도로서 나다움을 포기하거나 회피하는 것처럼 볼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자아’(authentic self)라는 말이 단 하나의 인격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 때와 장소 상관없이 동일해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다양한 상황 속에 맞춰 살아갈 지혜 혹은 사회적 기술을 가지고 있다. 또한 내 안에 여러 자아(혹은 가면)가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내가 살고 싶은 이상적 자아가 있고, 사회도덕이나 질서에 따라 사는 당위적 자아가 존재한다. 그에게 미치지 못하는 현실적 자아도 존재한다. 이를 가리켜 ‘복합적 자아’ 혹은 ‘멀티 페르소나’라고 한다.
우리는 부캐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메타버스 속 부캐 현상을 현실 사회로부터의 도피나 피안 행위로 볼 수도 있겠다. 혹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제2·제3의 자아실현의 장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메타버스가 구현한 세계가 현실만큼이나 불공정하고 불평등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결을 달리하여, 대중문화 속 부캐 현상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개인으로서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대신하여 부당함을 말해주고, 내 필요를 채워주길 기대하는 사회적 요청으로 볼 수도 있겠다. 특히나, 사람들 시선이나 이해관계를 개의치 않는 당당함과 유쾌함은 필수다. ‘이생망’ 사회 속에서 터져 나온 사회 변화에 대한 집단적 열망의 발현일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부캐 현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진정한 자아’에 대한 물음으로 연결될 수 있다. 우린 누구나 다양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부캐 현상은 가면의 종류를 좀 더 확장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말은 여전히 우리가 과거에도 그랬듯 여전히 오늘날에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다양한 공간에서 사용할 가면 개수는 늘어났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대답해주는 것은 아니다. 결국 진정한 자아란 외부의 소리(사회적 기준이나 평가)에 의해서는 규정될 수 없으며, 오히려 끊임없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갈등하게 만들 것이다. 상대적으로 사회적 조건이나 상황이 안정적이더라도, 본질적인 내면의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더구나 부캐 현상이 주로 청년세대에서 나타나는 것이라면, 오늘 그들이 경제적 어려움, 취업난, 끊임없는 경쟁과 비교로부터 나답게 살아남기 어려운 현실을 시사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학교 출신의 인기 가수가 “부럽지가 않어”라는 메시지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면서도 오늘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런 맥락에서 성서는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상처받고 낮아진 자존감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수많은 자아가 흔들리고 이탈하고 상호 모순을 경험하는 세대를 향해 교회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미 많은 심리학자가 오늘날 흔들리고 침체한 자기 정체성에 위로와 응원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가면 뒤 자아가 흔들리지 않고 건강하려면 무엇보다 자기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길 제안한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어쩌면, 교회는 이제라도 ‘부캐’(가면) 뒤에 가려진 청년세대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민민의 한마디
유행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보니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인 제가 가장 납득할 수 없었던 단어가 바로 ‘부캐’였어요. 특히 예능 프로그램이나 짧은 영상 플랫폼에서 ‘부캐’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오는 대부분은 이전부터 있었던 것들 ―쉽게 말하자면 ‘역할 연기’― 이었을 뿐 전혀 새롭게 보이지 않았거든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결국 기의 없는 기표, 알맹이 없는 껍데기, 바이럴 성향이 강한 버즈워드 정도로만 여기게 되었지요.
게임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게임하는 사람들이 게임 속 자신의 아바타에 몰두하여 또 다른 자아를 투영한다는 평가는 말 그대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게임을 ‘하는’ 사람은 간혹 게임 속 캐릭터의 활동을 통해 짜릿한 성취감을 느낄지는 몰라도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드러낼 정도로 몰두하지는 않거든요. 물론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묘사하는 것처럼 플레이어의 오감과 지성이 모두 게임 속 세계로 연결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하게 된다면 또 모르겠어요. 하지만 게임과 ‘부캐’ 개념의 연결이 아직은 진지하게 생각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생귄님의 마지막 접근이 매우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내면의 다양한 성향을 조금씩 다르게 조정해가면서 살아가고 있잖아요. 아무리 한결같은 사람이라 한들, 모든 시공간에서 하나의 캐릭터만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 삶이 당연한데, 본캐와 부캐라는 구분 때문에 오히려 정체성 혼란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 듭니다. 저처럼 유행어에 콧방귀 뀌는 사람이 아니라면 나의 본캐는 무엇일까, 나의 부캐는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한두 번씩은 해볼 테니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본캐와 부캐를 구분하여 무엇이 진짜인지를 이야기하기보다는 그 모든 것이 섞여 하나의 ‘나’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 아닐까요.
1) 위키피디아 ‘가상 세계’ 참조.
2) 정다은, “‘라방’ 佛 확장에 글로벌 공모전까지... ‘메타버스 거품론’에도 거뜬한 제페토”, 〈서울경제〉(2023. 2. 6.).
3) Earnest Cline, 《Ready Player One》(New York: Random House, 2011), 18쪽. (로버트 제라시, 김은혜 외, 《흩어진 MZ세대와 접속하는 교회》(쿰란출판사, 2023), 44쪽 재인용).
4) 로버트 제라시, 김은혜 외, 《흩어진 MZ세대와 접속하는 교회》(쿰란출판사, 2023), 44쪽.
5) 박현욱, “[신조어 사전] 이생망”, 〈서울경제〉(2019. 06. 30.).
6) 박진규, 《미디어, 종교로 상상하다》(컬처룩, 2023) 참조.
김상덕(생귄)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평화를 위한 언론사진의 역할에 대한 공공신학적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사회의 다양한 갈등의 문제들을 문화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평화와 화해를 위한 교회의 공적 역할과 다양한 창조적 실천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커피를 좋아하고,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추구한다. 미술 작가인 아내(민정See)와 평범한 이상주의자로서 현실을 살아내려고 발버둥 치는 중이다. 현재 학교 강의와 글쓰기, 방송 및 유튜버 등 N잡러의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