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 경기도 수원 ‘표현치유연구소 우리서로책방’
[392호 뚜벅이 책방 탐방]
머리카락 희끗한 여성들이 돋보기를 낀 채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천병희 옮김)를 읽고 있었다. 서울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1시간 달려 도착한 이곳은 수원 ‘표현치유연구소 우리서로책방’(이하 ‘우리서로책방’). 조정연 대표가 이삼십 년 된 두 벗과 함께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읽기 모임이 열리는 날이었다.
조 대표의 두 친구는 모두 비기독교인이지만 성경을 완독했다. 한 사람은 선물로 받은 성경책이 너무 비싸 아까워서 읽었고, 다른 사람은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로 여러 질문을 던지며 기독교인 여동생과 함께 읽었다. 두 사람은 성경도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여러 문화권에서 파생되어 융합된 책이라고 느꼈다.
50대 후반부터 60대 초반에 이르는 세 여성은 세 시간 동안 책을 읽으며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들의 가계를 그렸고, 신화 속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로 당시 여성과 이방인이 처한 시대 상황을 유추했다. 두 사람은 신화를 읽으며 인간의 원형과 서양 문화의 뿌리를 알 수 있어서, 조 대표는 ‘코린토스’(고린도)처럼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지명을 발견할 때 재밌다고 말했다.
쉰여덟에 책방을 열다
올해 쉰아홉인 조정연 대표는 지난해 10월 이곳을 열었다. 그전까지 장사를 해본 적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다. 낯선 곳을 방문하면 도서관과 서점 위치를 찾아보곤 했다. 그러나 동네책방을 찾았을 때 이미 폐업한 경우가 부지기수. 그때마다 다짐했다. ‘책방은 절대 하지 말아야지.’
“그런데 작년에 팔순을 맞은 어머니가 공부를 많이 못한 걸 후회하시더라고요. 저도 내년에 예순이잖아요. 제가 여든이 되면 후회할 게 뭐가 있을까 싶었어요. 저는 해보고 싶은 건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데, 나이가 들면서 주저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고요. 위기의식이 확 생기면서 책방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서점 한 코너에는 《순전한 기독교》 《나니아 연대기》 등 C.S. 루이스 책들만 모여있었다. 조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와 함께, 무신론자에서 세계적인 기독교 작가로 거듭나기까지 루이스의 여정을 여행지로 살필 수 있는 《CS 루이스와 떠나는 여행》 등이 있었다. 조 대표 본인이 루이스를 좋아하기도 했고, 그의 책이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연결하는 ‘가교’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조 대표는 서점을 열 때 《공동선을 위한 독서》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적지 않은 교회들이 작은 도서관을 만들기도 하지만 비기독교인들이 교회 도서관에 선뜻 들어서긴 어렵잖아요. 하지만 서점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들이 어울릴 수 있죠. 기존의 교회가 사회와 어떤 접점을 만들려면 함께 책 읽는 공동체여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치유에 필요한 자기 표현
그런데 C.S. 루이스의 책들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들어줄게요, 당신이 괜찮아질 때까지》 등의 심리 서적들이었다. 그 옆에는 독서와 글쓰기 관련 책들도 놓여있었다.
조정연 대표는 책방을 주로 찾는 사람들은 40-50대 여성이라고 했다. 상가를 이용하는 고객층이 주로 여성과 어린이인 까닭도 있고, 우연히 찾아오는 사람보다는 알고 지낸 이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더 많아서다. 그런데 서점을 찾는 이들 중 가벼운 심리 서적을 구입하는 여성들, 병적이진 않지만 일상적으로 우울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그중에 글을 써서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분들이 꽤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시는 것 같았어요. 젊을 땐 견디는 힘이 있지만 45세 전후 여성들은 많은 지지가 필요하거든요.”
조 대표는 서점에서 치유적 글쓰기 수업을 열 계획이다. 이름은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확인하기 위한 글쓰기’. 이 수업에선 책 한 권을 다 읽을 필요도 없고 한 문장, 제목 하나라도 마음에 다가오는 것이 있다면 이를 중심으로 글을 쓰면 된다. 보여주지 않고 지워도 괜찮고, 모임원에게만 보여주거나 어딘가에 익명으로 발표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서가 한쪽 구석엔 독서치료, 독후 활동 관련서들과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동문학 보기》 《권정생의 문학과 사상》 《알버트 그린 박사의 기독교 세계관으로 가르치기》 등이 함께 놓였는데, 모두 손때가 묻어있었다. 그가 집필한 책 몇 권도 발견했다. “제가 독서치료 쪽으로 공부를 했고, 대단한 전문가로 커리어를 쌓은 건 아니지만 독서치료와 상담 분야를 계속 공부했기 때문이에요.”
그는 어떤 길을 걸어온 것일까?
어린이에게 더 좋은 책을
1965년생인 조정연 대표는 1980년대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랬듯 결혼하면서 번듯한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남편을 따라 수원으로 이주한 후, 30대 중반이던 조 대표는 ‘어린이도서연구회’ 수원 지역에서 회원 활동을 시작했다. 동네에 도서관이 없었는데, 평생 책을 좋아해온 그는 어린 아들에게 조금 더 좋은 독서 환경을 제공하고 싶었다.
어린이도서연구회는 권정생의 동화를 읽고 이오덕의 글쓰기를 배우자는 기치 아래 출범한 시민단체로 어린이 교육문화 운동을 주도했다. 질 좋은 어린이책을 만들고, 전집으로 묶인 책을 낱권 구매할 수 있도록 하자고 목소리를 내왔다. ‘학교 도서관 살리기 운동’도 어린이도서연구회가 한 활동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일반 초등학교 도서관은 구석에 방치되거나, 선생님이 점심시간에 잠깐 문을 열어주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교장 선생님들한테 도서관 열어달라, 우리가 가서 청소도 하고 정리도 하겠다, 사서도 필요하다, 건의하면 거의 미친 사람 취급을 했어요. ‘사서가 뭐야?’ 하던 시절이었죠.” 시민단체들이 노력하여 관련법이 입법되면서 학교 도서관들이 조금씩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아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 소속 도서관들의 열악했던 어린이실 상황도 달라졌다. 그 선봉에 서있던 곳이 수원 지역이 소속된 경기도였다.
어린이도서연구회의 또 다른 활동으로, 재미있는 독서 활동을 제공하자는 운동도 있었다. 아이들이 책을 읽을 때 금방 지루해하는 이유가 독후감 숙제 때문이라고 판단한 조 대표는 YMCA 등에서 아이들과 함께 연극, 만들기 등 다양한 방식의 독후 활동을 시도했으며 문화센터에서 부모들을 교육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기독교 사립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독서 교육을 진행했다. “원래 신앙적인 이유에서 제 활동을 시작한 건 아니었는데, 이때부터 기독교교육과 기독교 관점에서 문학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관심을 갖게 됐어요. 《나니아 연대기》는 저자인 C.S. 루이스가 기독교인이라는 걸 알고 나면 다르게 보이잖아요. 권정생도 공부해보면 기독교적 바탕 없이는 글을 쓰지 못할 분이었다는 생각이 들죠. 또, 저자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기독교 세계관에서 그 작품을 읽을 수 있고요. 만약 박사과정을 밟았다면 이쪽으로 더 공부했을 거예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고 싶어서
조 대표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여러 어린이 잡지에 관련 글을 기고했고, 동시에 교육대학원(사서교육전공)에 진학했다. 석사논문 주제로 독서치료를 선택했는데, 정신과적·심리학적 접근이 아닌 문헌정보학적 관점에서 한 사람에게 맞춤한 좋은 책 목록을 만들어 전해주는 방식에 대해 썼다. 이때는 독서치료라는 학문이 생소할 때라, 2005년 그가 쓴 논문은 이후 생겨난 독서치료 전문과정 후배들이 많이 참고한 글이 되었다. 《글자 많은 책도 그림책만큼 좋아하게 만드는 독후활동 117가지》 등 몇 권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당시 조 대표는 일과 학업과 육아, 가사 노동을 병행하면서 “걸어 다니면서 졸 지경”이었다. 집 근처 고등학교 사서가 되는 길을 택했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사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매우 낮았고, 일하면서 사비를 써야 할 정도로 ‘열정페이’를 받아야 했지만 그는 아이들에게 좋은 독서 환경을 제공하고 싶다는 신념으로 일했다. 아이들이 버린 쓰레기로 엉망이었던 도서관을 청소하고 규칙을 세워나가면서 학교 도서관 상황은 많이 개선되었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생겼다. 부모님 모두 큰 수술을 받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고, 이를 조 대표가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핑계일 수 있지만, 그래서 일을 과감하게 그만둔 것”이라며 그는 웃었다. 이후 초·중학교 도서관에서 파트로 일하기도 하고 논술도 가르쳤지만, 거의 일을 하지 않고 ‘놀았다’고도 표현했다. “가사 노동은 하셨는데, 어떻게 노는 건가요?” 묻자, “집안일에 재능은 없어서 정말 최소한만 한다”고 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러, 조 대표는 지난해 서점을 열었다.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동네책방 창업을 교육하는 ‘서점학교’ 강의를 듣고 여러 서점도 탐방했다. 여든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내일 육십이지만 진로 탐색은 계속
우리서로책방은 영통역 인근 상가 3층에 있는데 교습소, 공방, 미용실 등과 이웃해있다. 길거리에 있다면 손님이 우연히라도 올 텐데, 접근성이 떨어지진 않을까? “월세가 형편에 맞고 깨끗하고 주차도 편해요. 단점은… 사람들 왕래가 별로 없다는 거죠. 책방을 다시 차리면 여길 선택하지 않을 것 같아요.” 조 대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근교로 책방 이주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그는 서점은 “책을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장사”라고 말했다. 많은 서점 지기들이 손님 없는 지루한 시간을 책을 읽으며 보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려고 하는데 누가 말을 시키면 좀 괴로울 때도 있어요. 책방에 오는 분들은 대화하고 싶어 하는데, 그 대화들이 책에 대한 대화는 아니니까요. 또, 손님이 몇 시간 있다 가면 그날 읽고 싶은 책을 읽지 못하거나 계획했던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죠.”
11평에 월세를 포함한 기본 경비가 월 100만 원인데, 첫 달을 제외하고 는 번 돈으로 월세를 내본 적이 없다. 책 팔아 번 돈은 관리비만 내는 수준이다. 한 권의 책을 팔면 2천 원 정도 남는데, 손님들에게는 늘 차를 대접하니 실질적으로 남는 돈은 천 원. ‘그런 거’ 생각하면 동네책방을 못 한다며 그는 손을 내저었다.
이틀간 책방에 머무는 동안 책 모임 외에 손님을 만나진 못했다. 오히려 조 대표는 종종 전화를 받느라 분주했다. 순장인 그는 순원의 전화를 받고 그의 걱정을 들어주었다. 순장 일지 제출을 놓친 것 같다는 교회 목사의 전화를 받으면서는 순원의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
서점 문을 연 지 일곱 달. 조 대표는 앞으로 1년은 버텨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할 수 있다, 없다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해서다. 그는 치유 글쓰기 수업 외에도 서점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이 많다. 평범한 강연자에게서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사람 책’(a Human Library) 프로그램을 서점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어머니도 강연자 중 한 사람으로 세우려 한다.
“엄마는 말씀도 버릴 게 하나 없고 음식도 정말 잘하시거든요. 다른 엄마들에 비해서 유난히 희생적이고, 지혜로우시고, 저를 자유롭게 키우신 분이고요. 우리 엄마는 제게 가장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고, 이 세상에서 아마 하나님 다음으로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싶은 분이기도 해요. 모든 엄마가 그런 건 아니더라고요. 저도 제 아들에게 그만큼의 마음이 없어서요.(웃음)”
그의 어머니는 신앙인이 아니었지만 ‘교회 가면 나쁜 걸 배우지 않는다’는 생각에 자녀들을 주일학교에 보냈다. “돌아가신 아빠의 반대가 심해서 엄마는 다니지 못했지만, 이후 당신도 믿게 되시고 아빠도 전도한 분이세요. 아빠랑 같이 교회 가려고 엄마가 일주일 내내 공을 들이셨어요. 저야 운전만 맡고 가끔 짜증도 냈을 뿐이죠.”
이날 아침 조 대표는 어머니 통원 치료를 위해 병원을 다녀온 후였다. 헌신적으로 많은 일을 한 그의 어머니는 연세에 비해 거동이 많이 불편하다. ‘사람 책’ 기획으로 경기도콘텐츠진흥원의 지원금을 받게 되었고, 그는 어머니 평전을 써서 소책자로 만들 계획도 있다.
조 대표는 아이디어는 많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드니 실행력이 달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점을 10년 전에 열었어야 했다며 후회하기도 했다. 나는 그가 어머니 평전을 완성하면 책방을 다시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에필로그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2000년대 초반. 학교에 컴퓨터실은 있을지언정 도서관이 없었다. 불행하게도 나는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방학 때만 복도 한구석에 설치되는 간이형 서가에서 얼쩡대는 어린이. 시립 도서관에 대한 기억도 별로 없고, 학교에선 가끔 조잡한 전집을 팔았다. 서점 상황도 열악했다. 전래 동화를 읽다가 위인전 만화를 거쳐, 초등학생 때부터 세계 고전문학 등 어른들이 읽는 책으로 빠르게 옮겨간 기억이 난다. (그 간격을 메워준 책 중 하나가 《나니아 연대기》였다.)
지방 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건만, 우리나라 내 또래의 공통된 경험 중 하나이기도 했을 줄이야. 문 여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사서 선생님은 따로 없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나서야 학교에 작은 도서관이 생겼다.
그때의 나는 몰랐지만, 그 시절 어린이를 위한 더 좋은 책과 어린이 독서 환경을 위해 노력한 이가 있었다. 나의 어머니처럼, 여성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시대를 살았지만 재능이 많았고 늘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온 한 사람이. 어느새 머리가 희끗해진 그가 내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