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장에서 보드게임 하면 안 되나요?

[392호 사회선교 더하기]

2023-06-30     송기훈
이하사진:필자제공

농성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저는 성을 쌓고 과격하게 싸우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농’(籠) ‘성’(城)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길가 한 모퉁이를 가로막고 있는 농성 천막과 커다란 글씨가 박힌 현수막이 주는 과격한 느낌 때문이었을까요. 농성장이라는 곳은 무언가 싸움을 하는 곳, 전투를 벌이기 위한 최전선 기지처럼 보였습니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저항하는 직접행동’이라는 사전적 설명보다, 스스로 세워놓은 편견과 선입견으로 인해 농성이라는 단어는 ‘과격함’ ‘폭력’ ‘공포’ 등 부정적인 느낌으로만 채색되었습니다.

농성 천막은 보통 투명한 비닐로 뒤덮여있거나, 여름철 운동회 때나 볼 수 있는 검정색 인삼천으로 감싸져 있습니다. 나무로 틀이 짜인 천막은 그나마 좋은 편이지요. 천막을 세우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농성장은 원터치 텐트나 벽 한쪽에 아슬아슬하게 공간을 만들어놓기도 합니다. 낯선 외관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안에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할 수 없게 만듭니다. 도심 속 외딴섬 같은 그곳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요? 머리에 띠를 매고 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붉은 조끼를 입고 화가 난 채 웅크리고 있을까요? 저는 출퇴근 시간에 피켓을 들고 선전전을 벌이고 모여서 집회하는 사람들 모습을 지나치며 본 적도 있었지만, 농성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은 애써 기억에 남기지 않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농성 천막에서 발견한 보드게임

‘현장심방,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라는 영등포산업선교회의 기독 청년 노동 현장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프로그램 목표는 말 그대로 ‘심방’이었습니다. 목회자가 교우들의 일터와 가정 등을 방문하는 목회 전통을 따라 농성 현장, 투쟁 현장 등 사회문제의 현장을 속속들이 심방합니다. 농성 천막에 직접 찾아가본 경험이 없는 기독 청년들은 3박 4일간 현장을 찾아가 직접 당사자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는 시간을 보냅니다.

여름의 농성 천막은 덥고 습했습니다. 생수 페트병이 쌓여있었고, 두루마리 휴지도 걸려 있었습니다. 건조하기 위해 널어놓은 수건이 있었고, 벽 한쪽에는 노동조합 일정이 적힌 보드가 있었습니다. 농성 텐트 한구석에는 침구류도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밖에서 느꼈던 공포감과는 다르게 나름 질서가 있었습니다. 농성장은 낮에만 운영되지 않고 밤에도 운영됩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강제집행에 대비해 농성장을 비울 수 없기에 당번을 정해서 천막을 지킵니다. 천막에 누워 잠을 청하면 사람들 발걸음 소리가 굉장히 무섭게 들립니다. 금방이라도 누워있는 나를 향해 찾아올 것만 같은 소리로 들리고, 밤낮 가리지 않는 자동차 소음 때문에 쉽사리 잠들 수 없습니다.

겨울의 농성 천막은 여름보다 조금 더 간결합니다. 추위를 막기 위해 비닐을 여러 겹 쳐서, 들어오는 바람을 막으려 애를 씁니다. 등유 난로를 가져다놓고 밤새 추위를 견디고, 발전기를 돌려 전등과 전기담요를 켭니다. 난로 위 주전자에 물을 끓여 농성 천막에 들어오는 분들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해 주시기도 합니다. 마음씨 좋은 분들이 보내주신 과일과 커피 믹스로 농성장은 생각보다 풍성했습니다.

한번은 10년 넘게 농성을 이어가던 천막을 방문했습니다. 10명 남짓 기독 청년들과 함께 좁은 농성 천막 안쪽을 비집고 들어가 앉았습니다. 다른 농성장에 비하면 5성급 호텔이라며 싱긋 웃으며 소개하는 투쟁 당사자분의 환한 미소에 낯설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농성장 주변은 늘 시끄럽습니다. 보통 인도와 도로 사이에 세워지는 까닭에 발소리, 통화 소리, 자동차 엔진 소리와 경적으로 조용할 틈이 없습니다. 투쟁 당사자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귀를 쫑긋 세워야 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농성 천막을 둘러보던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보드게임입니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보드게임이지만, 그걸 농성 천막에서 볼 줄은 몰랐습니다. “보드게임이 있네요?”라고 묻는 어리석은 물음에 또 다른 자랑거리를 내어놓는 투쟁 당사자분 앞에서 그동안 쌓아온 편견과 선입견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농성하는 사람들은 24시간 화가 가득한 채 싸우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을까요?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일상을 지내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요? 북한 주민들을 뿔 달린 도깨비로 그렸던 반공 포스터처럼, 우리는 어쩌면 왜곡된 공포와 잘못된 선입견으로 농성 천막과 투쟁 당사자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투쟁하는 사람들은 일상을 누리거나 조금이라도 즐거워하면 안 된다는 가혹한 시선으로 바라봤던 것일까요?

농성 천막이 세워졌던 자리

현장심방을 마치고 바라본 세상은 이전에 그렸던 그림과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보이지 않던 문구가 보이고, 들리지 않던 뉴스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는’ 농성 현장이 생긴 뒤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집회는 더 이상 화난 사람들 모임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농성 천막이 있는 건물 앞이나 장소를 보는 마음이 누군가의 집을 보는 듯 달라졌습니다. 농성자들은 쉰 목소리로 머리에 띠를 맨 화난 사람들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포, 폭력, 파괴와는 정말로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오히려 이분들을 길거리로 나오게 했던 왜곡된 노동 구조와 권력의 억압, 그리고 자본의 악랄함이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왜 여기서 힘들게 농성해야 하는지를 따져 묻기 전에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존엄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언제든지 같은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도 더불어 알게 되었습니다. 심방을 통해 사회현상들을 이해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사회선교를 다양하게 정의 내릴 수 있겠지만, 농성 현장 연대를 통해 배우는 사회선교는 도시 속 낯선 공간을 교회로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부당함을 호소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농성 천막을 유령처럼, 보이지 않는 것처럼 대하던 사람들을 거룩한 공간으로 초대하는 일입니다. 단순히 농성 천막뿐일까요? 예배당이라는 건물을 벗어나면 예배 공간에 대한 상상력은 무한히 넓어질 수 있습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하는 찬송가의 고백처럼요.

긴 농성도 끝은 있습니다. 투쟁 이후 천막은 철거되고, 천막을 지키던 이들은 일터로 또는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갑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자리는 빈 곳이 됩니다. 가끔은 더 이상 그곳에서 농성할 수 없도록 큰 화분이 놓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공간은 여전히 플래카드가 휘날리는 농성 천막이 세워져 있는 곳입니다. 하늘로 솟은 높은 굴뚝, 외딴곳에 세워진 송전탑, 무단 개발로 잘려나간 숲, 군사시설을 세우기 위해 파괴된 바위들 위에 여전히 천막, 아니 장막이 세워져 있습니다.

형에게서 쫓겨난 야곱은 하란 땅을 향하는 길 위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이 듭니다. 야곱은 간밤의 꿈에서 사닥다리를 오르내리는 하늘의 천사와 그 위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꿈에서 깬 야곱은 베개로 썼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칭하였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절실히 구해야만 했던 인간의 실존을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누군가에게 길모퉁이인 그곳이 야곱에게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도심 곳곳에도 ‘벧-엘’, 곧 하나님의 집, 거룩한 장막이 세워져 있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해서라도 반드시 정의로운 결과를 얻어내야 할 만큼 간절한 사람들의 기도가 도시 곳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세종호텔 앞, 명동2지구 세입자 대책위 천막 등 오늘도 돌베개를 베고 잠들어야 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광야 한가운데 펼쳐진 장막 위로, 오늘도 천사들이 사닥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며 위로와 격려를 전합니다.

송기훈
영등포산업선교회 노동선교부에서 2016년부터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