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서사의 풍요로움을 위해
[392호 시대를 잇는 읽기] 폴 스티븐스·클라이브 림의 《돈은 중요하다》(IVP, 2022)
“기독교 신학은 길을 잃었다. 그 목적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1)
미로슬라브 볼프와 매슈 크로스문의 《세상에 생명을 주는 신학》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도 무수히 많은 신학 서적이 쏟아진다. 불필요한 책이 있겠느냐만 때론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목사라는 직분, 목회라는 업무가 단순히 신학으로 덕질을 하는 건 아닐 텐데 싶어서 말이다. 과연 이런 주제와 서적들이 실질적 목회에, 그리고 그 목회 업무를 통해 돌봄을 받는 성도들 삶에 얼마나 영향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볼프 역시 다소 회의적으로 현대의 신학 기조를 꼬집어 말한다.2)
그러면, 어떤 신학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작업, 어떤 책이어야 하는가. 볼프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에 뿌리내리고 있고, 교부들에게 안내를 받으며, 교회 안에 자리 잡고 있고, 대중과 소통하는 신학으로, 과학 및 다양한 분야의 인문학과 비판적으로 대화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그 중심에 번영하는 삶의 문제가 있는 신학이다.’3) 바꿔 말하자면, 성경과 교회 전통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세상(인문, 사회, 문화, 과학)과 소통하고, 그런 면에서 유의미한 신학이 필요하다는 뜻이겠다. 이는 신학에 관한 얘기만은 아니다. 사실 신학이란 교회를 위한 학문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자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지금 교회는 여러 변곡점에 있다. 모더니즘을 지나 포스트모더니즘, 크리스텐덤을 지나 포스트크리스텐덤, 그리고 코로나를 지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서있다. 물론 시대가 변해도 하나님 말씀은 여전하고, 교회 또한 본질적으로 다를 리 없다. 하지만 실천적으로 이런 시대적 변화라는 건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의미하고, 이는 마치 시계가 오른쪽으로 돌던 것에서 정반대 방향, 왼쪽으로 도는 모습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다.
예를 들어, MZ세대 열풍이 꽤 오래 거세게 불고 있다. 이와 관련한 미디어 콘텐츠부터, 각종 상품이 쏟아지고 사안마다 논평이 이어진다. 오늘이 어제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적응하려는 노력이다. 지난 세대에 적용되던 관점과 시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니, 새로운 접근이 등장하는 거다. 뒤에도 얘기하겠지만, 한국교회는 그동안 비교적 수월하게 교회를 운영해왔다. 그 시절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겠지만 분명한 건 시대를 꿰뚫는 관점과 실천, 그리고 시대와 호흡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좋은 시절이 오래 지속된다는 건 반대로 변화에 대한 필요를 느끼기 어렵게 한다. 기존 구조에 갇히기 쉬워 자칫 변혁이 어려울 정도로 방만하게 될 위험에 노출됨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가 행하는 전도 접근 방식은 대개 아직도 기독교 국가 사고방식을 전제한다. 교회 종을 울리고, 예배를 잘 준비하면, 사람들이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연결이 끊겨있다. 교회에서 이것저것 바꿔 보지만, 그런 것으로 그들과 가까워질 수는 없다. 우리는 일상의 삶이라는 정황에서 그들과 만나야 한다.”4)
팀 체스터의 이 말은 코로나를 지나 다시 힘차게 움직이려는 많은 교회를 맥 빠지게 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짐 월리스가 말했듯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그동안 우리를 이끌었던 ‘정상’이 아니라, ‘새로운 정상’일 수 있다. 오히려 과거의 그 ‘정상’이 이제는 우리를 어려움으로 이끌고 있다는 인식과 고백이 필요한 것 아닐까.5) 한동안 흔히 쓰였던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말은 누구보다도 교회에 필요한 화두가 아닐까.
이런 얘기를 서두에 길게 쓰려던 게 아닌데 여기까지 왔다. 뒤에 이어질 내용과 맥이 닿아있으니 괜찮을 거라 스스로 위안하며 팀 체스터의 이어지는 말로 일단락한다. “우리의 소명은 일상생활에서 선교하는 일상의 교회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매력적인 이벤트를 꾸미는 일에서 매력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일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6)
모든 게 돈이다
내게는 《돈은 중요하다》가 그런 책이었다. 출판사에서 서평단을 모집하고 책을 홍보하는 시점부터 끌렸고, 출간 직후 구매해서 먼저 살핀 후, 교회 모임에서 함께 꼼꼼히 읽었다.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돈과 관련해, 좀 더 넓게 가난과 부의 문제를 다뤄온 서사가 있다(깨끗한 부자냐 가난한 성자냐 등의 묵은 얘기를 굳이 꺼내고 싶지는 않고). 하지만 그 서사가 풍요롭지 못했고, 더군다나 앞서 얘기한 대로 지금 시대에 맞게 다룰 새로운 서사는 더욱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사실 이미 인문사회 분야에는 윤리·도덕적 측면에서 돈과 부를 다룬 무수히 많은 자료가 있다. 따라서, 그런 책들을 통해 학습하고, 이어서 기독교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과정을 홀로 또는 함께 밟아왔다. 물론 이 방법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좋은 학습법이기에 추천할 만하지만, 인문사회 서적에 익숙지 않은 신앙인이나 신앙 모임에서 교재로 사용할 책을 결정할 땐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아무래도 동기에서부터 ‘나는 사회과학을 학습하려는 게 아니라 신앙 모임을 하고 싶은데, 왜 이런 책을 읽어야 하지?’라는 자연스러운 의문이 없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참 반가운 책이었다. 우리는 재밌게 읽었고 유익을 얻었다. 돈은 무척 중요한 주제다. 돈이 아닌 게 어디 있나. 모든 게 돈이다. 의, 식, 주, 다 돈이다. 일도 돈이고, 취미도 돈이고, 심지어 신앙생활도 돈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교회가 코로나 시기에 힘들었던 큰 이유가 교회 운영이었다. 돈 문제라는 얘기다. 사람이 모이지 않으니 재정이 부족하고, 당연히 운영이 어려운 거다. 대다수 교회는 건물을 필요로 하고, 임대료가 됐건, 관리비가 됐건 공간 유지를 위한 비용이 발생한다. 사람이 모이면 당연히 비용이 따른다. 일단 먹어야 하고, 필요한 교재, 도구, 장비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하려는 누구나 자기에게 사용되는 비용을 부담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게 헌금 명목이건, 회비 명목이건 말이다.
이렇듯 우리의 삶과 돈은 뗄 수 없는 관계인데, 교회는 그만큼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성경은 돈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이 주제와 관련된 교회의 가르침은 정말 희귀할 정도로 드물다(물론 교회에 십일조를 내라는 가르침만큼은 제외다)”.7)
교회가 돈을 말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만큼 말해야 한다. 해석의 다양함을 고려치 않고 맨눈으로 보더라도 성경에는 돈 서사가 풍성하다. 부자와 나사로, 어리석은 부자, 예수를 따르려는 부자 청년, 이게 다 돈 얘기 아닌가? 물론 교회가 돈을 말하지 않은 건 아니다. 돈을 말했지만 돈은 말하지 않았고, 돈은 말했지만 돈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바로 이원론의 문제다.
이게 이 책 4장에서 다루는 문제다. 한국교회가 세상과 교회를 둘로 나눠 세상을 악하다며 터부시해 왔다고 지적한다면,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단지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를 강조한 것뿐이니, 그런 지적은 오해라고 말이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그건 세상을 말한 게 아니라 교회를 위한 세상 얘기였다. 예를 들어, 고지론. 교회 얘기인가, 세상 얘기인가. 교회 얘기다. 세상에서 성공하라는 교회에 대한 얘기다. 그런 성공한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 곧, 교회에 대한 관심이지 빛과 소금 되어서 세상을 돌보라는 얘기는 아니었다는 거, 누군가만의 오해일까.
교회는 꾸준히 돈을 말했다. ‘성전’이라 부르곤 하는 ‘예배당’ 건축, 소득의 10분의 1을 내는 명목, 새로이 직분을 받는 것에 대한 명목, 여러 감사에 대한 명목. 그렇다. 교회에 돈 얘기는 드물지 않다. 하지만, 울타리를 넘어서는 이야기는 드물다. 지역명을 바꿔가며 터지는 세 모녀 사건, 국내 거주 이주노동자, 조손 가정, 소위 흙수저 청소년과 젊은이, 지구 반대편의 절대빈곤 인구, 최근 연일 보도되는 전세 사기 사건과 이로 인해 생을 마감하는 일, 이제는 한풀 꺾인 그래서 또다시 많은 이들을 빚의 굴레에 가둬두는 주식-코인-부동산 각종 투자 열풍, 파이어족을 향한 동경. 이게 그동안 돈에 대해 낯설지 않은 교회가 하지 않은 낯선 돈 얘기다.
교회가 돈을 잘못 다루면 세상이 어두워진다
그게 교회랑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하지 말자. 구구절절 교회론을 얘기하지 않고서도 교회는 사람의 모임이고 그 사람들이 지금 사회(社會)라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건 교회 얘기다.
몇 년 전 한 청년을 상담한 적이 있다. 돈 얘기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고 부모님이 계시지만, 가장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가정 구조였다. 일단은 재정 문제로 인한 힘겨움을 호소했고, 학자금 대출과 더불어 본인 생활비, 그리고 함께 사는 부모까지 챙겨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구조였지만, 다 알기도 어렵고 뭘 해결해줄 수도 없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이 청년에게 정작 문제 되는 건 교회의 가르침이었다. 규모가 상당한 그의 출석 교회는 빚이 있는 삶을 죄악시하였고, 그는 신앙인으로서 대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데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그 교회 지도자는 노골적으로 가난을 죄로, 부를 복으로 여기면서 빚을 문제 삼았다.
이 청년은 빚을 진 게 아니라, 사회가 이 청년에게 빚을 지운 거다. 흙수저 청년이 대학을 졸업하니 빚이 쌓이고, 아르바이트 몇 개를 병행하면서도 생활이 어려우니 대부업체 도움까지 받게 된 현실. 이 청년의 처지가 그의 불성실함, 무분별함, 방만함과 신앙적인 불신앙의 결과인가. 참 아이러니했다.
그래서 돈은 중요하다. 이 책의 백미, 압권은 제9장이다. 이런 내용을 만날 줄은 몰랐다. 어찌나 반가운지. ‘건강과 부의 복음’. 이 장의 제목으로, 지난 교회 모습을 돌아보는 내용이다. 한국 현실도 무관하지 않은 부의 복음, 긍정적-적극적 사고방식, 번영신학을 다룬다. 노먼 빈센트 필, 로버트 슐러, 조엘 오스틴…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등장한다.
앞의 그 청년, 사실 9장이 다루는 그 내용의 피해자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부를, 돈을, 복음을 어떻게 다루었나.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 초반을 휩쓸었던 부의 복음 가득한 수많은 교회 프로그램과 메시지. 우리가 다시 살피고 반성할 건 없는지. 그때 그 가르침에 가슴 뜨거웠던 이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한국교회는 궁금해하지 않아도 될까.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걸까.
교회가 돈을 잘못 얘기하고, 잘못 다루면 세상이 어두워진다. 신학자 하비 콕스는 저서 《신이 된 시장》에서 ‘빈민 살인자’(necatores pauperum)라는 표현을 인용한다.8) 4세기 무렵 가톨릭교회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그리스도의 후계자인 교회에 재산을 내어놓을 것을 사람들에게 종용했고, 그 시점부터 교회에 부가 쌓였다고 지적한다. 이것이 마땅히 가난한 이들에게 돌아갈 몫을 빼앗아 ‘빈민 살인’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이다.
4세기만의 얘기일까? 수백 년이 지났지만, 교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한국교회에 넘쳐나던 인적, 물적 인프라. 그 결과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하나님의 피조계는 더 온전해졌는가?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더 확장됐는가? 울타리 치고 그 많은 풍요로움을 소진하지는 않았는지, 누구를 지적하기 이전에 스스로 자문할 일이다.
돈 얘기를 다룰 때마다 생각나는 건 어리석은 부자 비유다(눅 12:13-21). 밭에 소출이 풍성해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자 고민을 한다. 신박한 솔루션은 곳간을 허물고 더 큰 곳간을 마련하는 것. 넘쳐나는 곡식을 쌓아둘 수 있다. 우리는 이 얘기가 어리석은 부자에 관한 것임을 안다. 하지만, 성경에서 빠져나오면 그걸 어리석다기보다 지혜롭다고 할 테다. 어디까지 쌓아두어야 할까. 교회는 어디까지 쌓아두고 묻어두고 쟁여두어야 할까. 돈을 쌓아두는 걸 유보금이라 한다. 대학이나 기업은 유보금 규모가 과하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교회는? 유보금이 필요한지부터 깊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흔히 청소년기에 학교에서 건전한 성(性)을 다루지 않아 각자도생(?)으로 성을 배우니 건강한 성 인식을 갖지 못한다고 말한다. 교회가 건전한 돈에 대해 말하지 않으니 신앙인들은 지금도 성경에서 말하는 관점이 무엇인지를 생각지 못하고 세속적인 돈 인식(?)을 형성하는 게 아닐까. 모든 문제의 정답을 찾을 수는 없다. 하나의 해답이면 되겠다. 안 하던 얘기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청량감을 느낄 테다.
돈은 중요하다. 참 중요한데 이걸 설명할 방법이 없다. 다만, 각주에 언급한 책과 아래 관련 도서를 읽으면 저마다 자기 서사에 들어맞는 얘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설교를 통해, 성경공부를 통해, 독서모임을 통해 교회 안팎에서 꾸준히 숙고한다면 큰 유익이 있으리라 본다.
* 돈과 세상을 알아가는 추천 도서
짐 월리스의 《회심》(IVP)
대개 회심을 내면적이고, 종교적인 사적 측면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저자는 그 지점을 지적하며 회심의 공적 측면, 회심의 총체성을 얘기한다. 개인적으로 팀 켈러와 짐 월리스는 한국교회가 꼭 읽었으면 하는 저자다.
팀 켈러의 《정의란 무엇인가》(두란노)
한국교회에 팀 켈러가 널리 알려지기 전에 번역된 책인 것 같은데, 수작이다. 정의를 성경적인 개념부터 목회적 관점까지 차분하게 설명해준다.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더 정의롭게 한다.”
필립 케네슨의 《열매맺다》(새물결플러스)
새물결플러스 출판사에서 나온 책 중에 몇 권을 고르라 한다면 선택할 한 권.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사회적인 각 영역으로 적용하는데, 아무튼 기가 막힌 책이다. 청년, 직장인과 함께 학습한다면 유익할 것.
마이클 샌델의 《공정이라는 착각》(와이즈베리)
여전히 한국 사회 화두인 능력주의와 공정을 다룬 책이다. 다 읽기 부담스럽다면 능력주의 역사를 다룬 2장만 읽어도 좋다. 마치 신학 서적을 읽는 느낌일 것.
로날드 사이더의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IVP)
가진 사람은 많지만, 읽은 사람은 드물다는 그런 책 중 하나? 워낙 유명한 책이라 목록에 넣어봤다.
자끄 엘륄의 《하나님이냐 돈이냐》(대장간)
엘륄의 책 중 잘 알려진 저작인데, 만만치 않다. 내용이 어렵다기보다, 엘륄의 책이 그렇듯 원론적인 성경의 관점을 말한다. 예를 들면 저축도 하지 말라는 부분에선 이걸 동의해야 하나 싶기도. 물론 엘륄은 언제나 좋다.
성정모의 《시장, 종교, 욕망》(서해문집)
해방신학 관점에서 자본과 시장, 교회와 신학을 다룬 책. 선입견보다 균형 잡힌 관점이라 좋았다.
하비 콕스의 《신이 된 시장》(문예출판사)
본문에서 언급했으니 패스.
피터 나바로의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에프엔미디어)
주식, 거시경제를 다룬 분야에서 바이블 같은 책이란다. 제목이 이해된다면 이미 감각이 있는 분.
염승환의 《주린이가 가장 알고 싶은 최다질문 TOP 77》(메이트북스)
주식을 이해하기 위해 교보에서 이것저것 들추다가 선택한 책. 매우 쉽게 궁금한 부분을 잘 설명했다.
1) “기독교 신학은 길을 잃었다. 그 목적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학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 러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비추어 번영하는 삶의 비전을 분별하고 명확히 진술하며 권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 나님의 임재 안에서 인간과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이 번영하는 것은 창조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최우선적 관심이며, 따라서 신학의 중심 목적이어야 한다.” 미로슬라브 볼프·매슈 크로스문, 《세상에 생명을 주는 신학》( IVP, 2020), 27쪽.
2)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 오늘날 학문적 신학은 거의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주제에 대해 오직 동료 전공 자를 위해 글을 쓰는 존경받지 못하는 학문 전공자들로 구성된다.” 앞의 책, 68쪽.
3) 앞의 책, 111-112쪽.
4) 팀 체스터·스티브 티미스, 《일상 교회》(IVP, 2015), 18쪽.
5)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은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를 이 위기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정상’이라고 여겼던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되돌아갈 때 위기는 반복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정상’이 필요하다.” 짐 월리스, 《가치란 무엇인가》(IVP, 2011), 23쪽.
6) 《일상교회》, 18쪽.
7) 폴 스티븐스·클라이브 림, 《돈은 중요하다》(IVP, 2022), 47쪽.
8) 하비 콕스, 《신이 된 시장》(문예출판사, 2018), 130-131쪽.
황정현
제자도연구소에서 목회자, 직장인, 청년, 지역 주민들과 책을 읽고 얘기하고, 도시공동체교회에서 코로나 이후 다원화 시대에 적합한 신앙생활을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