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하다 사업해서 월급 100배 된 썰

[392호 커버스토리]

2023-06-30     김정열

내 돈의 연대기

내 첫 용돈은 3,000원이었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부모님께서 늘 신권으로 주셨는데, 형들과 함께 용돈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십일조 300원과 이삭줍기(불우이웃) 헌금 100원을 따로 빼둘 수 있도록 지폐와 동전으로 용돈을 받곤 했다. 나는 그렇게 돈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았다.

2000년 수능이 끝나고 처음 아르바이트를 했다. 카페 아르바이트였는데 시급이 1,900~2,000원이었다. 첫 월급으로 21만 원 정도 받았다. 퇴근하고 바로 갤러리아로 뛰어가 18만 원짜리 버켄스탁 보스턴(슬리퍼)을 샀더랬다.

2009년, 내가 첫 사역지에서 교육전도사로 일하며 받은 월급은 90만 원이다. 당시 나는 내 동기 전도사들보다 10만 원 더 받는데도 그랬다. 첫 월급은 다 헌금하고, 두 번째 월급은 부모님께 옷 선물 사드리고, 남은 돈으로 당시 여자친구(지금의 아내)에게 중고로 소니 디지털카메라를 사주었다. 찢어지게 가난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난했다.

2017년까지 상도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고 사임했는데, 그때 받았던 월급은 약 230만 원이었다. 물론 사택도 제공되었고, 이러저러한 지원금(유류비, 통신비, 교육비)과 심방 기간에 성도들에게 받았던 봉투 이런 걸 다 생각하면… 월 400만 원 정도 되는데, 나는 세금을 안 냈으니까 세후 월 수령액이 400만 원 정도였다. 연봉 5,800만 원쯤 되려나. 거기에 무슨 날만 되면 성도들로부터 받는 선물들(추석엔 두 손 가득 선물 꾸러미를 들고 집에 가져가도, 한 번 더 왔다 갔다 할 정도)까지 생각하면, 사회적(심리적) 지위는 연봉 1억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아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가 대형교회에서 사역한 건 아니다. 담임목사님께서 부목사 처우에 매우 적극적인 분이었기에 가능했던 부목사 페이였다. 암만 그래도 난 항상 돈이 빠듯했다.

2018년에 사업을 시작하면서 교회를 개척했다. 모아둔 돈도 없고 신용도 없어, 부모님께서 약간의 돈을 대출받아 빌려주셨다. 신의 은총과 주변의 도움과 실력으로 사업 시작부터 지금까지 단 한 달도 적자를 본 적이 없다. 코로나 시국 3년을 포함해서 사업은 매년 조금씩 성장했고, 나는 2009년에 받았던 월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번다. 내가 사업을 시작할 때 큰형은 자영업자 중 80%가 2년 안에 망하고, 그 남은 20% 중에서 80%가 자기 생활비를 못 가져간다면서 걱정했는데… 우리 수박빈티지(수박)는 안 망했고, 내 생활비뿐 아니라 직원들 월급까지 주는 가게가 되었다. 근데 나는 아직도 still hungry! 훨씬 더 많이 벌고 싶다. 어떻게 보면 ‘돈 욕심’일 수도 있고, 어쩌면 승부욕일 수도 있다. 아니면 사명감일 수도 있고.

자산은, 자산이라고 부르기엔 귀여운 수준의 자산이 있긴 하다. 부동산으로만 갖고 있다. 금융자산과 부동산 자산을 균형 있게 갖고 있어야 하는데…. 주식이나 코인은 할 줄 모르고, 적금은 만기로 찾으면 꼭 쓸 데가 생기더라. 사업에 때려 박아야 하는 돈은 늘 부족하니까. 아무튼 이제 부자는 아니지만 어디 가서 축의금은 20만 원씩 하고, 동생들에게 점심 밥값을 내고 다닐 정도는 되었다.

그래서 내가(우리 가정과 가게가) 재정적으로 자유한가? 아니다. 아직은 아니다. 내 씀씀이가 커진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재정적 자유(노후 준비를 포함해서)까지 가려면 10년은 더 일병처럼 일해야 할 것 같다.

돈, 그래 돈, 근데 뭐

몇 년 전 교회에서 중보기도 제목을 나눌 때였다. 내가 1,000억 원 단위의 돈을 벌고 싶다며 이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한 적이 있다. 우리 교회는 열댓 명 정도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작은 교회이다. 기도 제목을 들은 우리 성도 한 명이 울었다. 자기가 왜 여기서 그런 기도 제목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그 성도는 나의 절친이었는데…. 교회에서까지 세상에서 ‘돈돈’하는 소리를 또 듣는 것이, 그것도 담임목사 입에서 그런 소리를 듣는 게 속상했나 보다. 내 친구의 마음이야 고마웠지만, 난 아직도 회사의 ‘연 매출 100억 원’과 ‘브랜드 가치 1,000억 원’을 위해 기도한다.

당연히 나도 교회에서 아무도 불편하지 않게 그 내용의 기도 제목을 에둘러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물질의 복을 우리 회사에도 부어주시길’ ‘1달란트 맡은 종이 아니라 5달란트 맡은 종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뭐 이런 식으로. 그런데 나는 그 순간에 굳이 ‘돈’이란 표현을 노골적으로 쓰고 싶었다. 교회 안에서 나의 솔직한 욕구(혹은 사명감)를 가장 단순한 단어로 표현하고 싶었다. 돈, 그게 뭔데 교회 안에서 그렇게, 아직도, 여전히 금기시되는 걸까?

나는 부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다. 게다가 난 행복하기 위해 살지도 않는다. 나는 그냥 주님이 가신 십자가 길을 같이 걷고 싶다. 내게 주신 사명, 그 푯대를 보고 경주하는 삶을 살고 싶다. ‘연 매출 100억 원’ ‘브랜드 가치 1,000억 원’은 수박이 달려가는 푯대가 아니다. 십자가 푯대를 보고 달리는 중에 보고 싶은 풍경 중 하나일 뿐이랄까.

반대로 돈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안일한 생각은 원래 안 했다. 이 부분은 어렸을 때부터 아주 철저하게 교육받아왔다. 나는 돈이 주는 편안한 생활에 감사하고, 돈 때문에 겪을 불편한 생활을 어떤 종교적 경건처럼 포장하지 않는다. 또한 부를 사랑하거나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의 신앙을 이미 유산으로 받았다.

나는 그냥 내(수박의) 그릇 크기가 궁금하다. 주인이 몇 달란트를 맡겨도 되는 종인지 그게 궁금하다. 나는 무익한 종일 뿐이라, 내가 아무리 부자가 된다 한들 그건 주인이 믿고 맡긴 달란트일 뿐 내 것은 아니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의 한 달란트는 결국 다섯 달란트 맡은 종에게 주어지는데, 그건 다섯 달란트 맡은 종의 자산이 늘어나는 게 아니고 그냥 종이 실무를 보는 데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이 늘어난 것이다. 나는 내 돈의 주인을 대리해서 집행할 수 있는 예산이라고 반복적으로 암기하곤 한다.

그래도 돈은 언제라도 나를 집어삼키려고, 우는 사자처럼 내 앞에 있다. 사업하면서 당장의 돈 욕심에 작게 혹은 크게 거짓말한 적도 많고, 높은 매출을 확인하며 남 앞에서 우쭐해본 적도 있다. 통장에 잔고가 단 천만 원이라도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든든하고, 월말에 돈 나갈 곳은 많은데 통장 잔고가 간당간당하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신앙 훈련과 재정 훈련을 받았는데도 나는 여전히 돈 앞에서 일희일비하더라.

어느 날 ‘하나님, 그냥 돈이나 씨원하게 많이 벌고 싶습니다!’ 이런 기도가 속으로 나왔다. 그게 그날 나의 아주 솔직한 기도였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왜 그렇게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할까? 나는 지금도 충분히 많이 버는데. ‘나는 청지기다, 나의 푯대는 자산가가 아니다’ 그렇게 암기하는데도 돈 욕심은 돌고 돌아 내 안에 또 똬리를 튼다.

어떤 때는 무슨 짓을 해도 매출이 나오지 않는 날이 있다. 수박에서 같이 밥 벌어 먹고사는 사람이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이라서 수박은 매출이 일정 금액 이상 나와야 한다. 그런데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나. 매출 말아먹은 날에 하필 친구네 빈티지 가게(월세도 낮고, 혼자 운영해서 인건비도 나가지 않고, 게다가 간이 과세를 적용받는 곳)의 하루 매출이 100만 원, 200만 원이라는 소리를 듣기라도 하면, 내 멘탈 한구석이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여담인데, 남과 비교만 안 하고 자기 삶에 감사하며 살기만 해도 그대는 초고수다.

그렇게 매출을 따지며 일희일비하다가 멘탈이 터진 날에는 목사 입에서 ‘×발, 졸라 빡세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만 그런가? 하나님께서 자영업하는 자녀들의 비속어 사용은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못 들은 척해주신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아무튼 내 솔직한 기도가 응답이 되려나 안 되려나, 로또 사는 사람의 간절한 마음으로 또 기도한다. ‘하나님, 매출 좀 씨원하게 나오게 해주세요!’

철학까진 아니고, 내 재정 운용 실전편

수박교회 재정은 이런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1년에 약 1,500~2,000만 원 정도 헌금이 들어오는데, 안팎으로 절반씩 나눠서 집행하고자 한다. 안으로 쓰는 돈은 목회자 사례비와 기타 운영비이고, 밖으로 쓰는 돈은 문화(사회)/환경/선교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눠서 후원한다. 여기 문화(사회) 부분에서 집행되는 예산으로 ‘복음과상황’을 후원하기도 한다.

수박빈티지는 매출을 1/4로 나눠서 집행하고자 한다. 매달 매출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기준은 이렇게 잡아두었다. 25%는 내가 받고, 25%는 인건비와 월세, 25%는 물건 구입 및 운영비, 마지막 25%는 저금(세금용). 이랜드와 다르게 나는 회사 매출이나 순익을 따져 십일조는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가져가는 돈(세전)만 따져서 헌금을 한다.

내가 쓰는 돈(용돈)은,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아무 생각 없이 쓴다. 먼저 헌금을 떼고, 그다음에 생활비를 뗀다. 번 돈 중 헌금이 10~15% 되고, 생활비(4인 가족)가 50% 정도 된다. 그리고 20%는 저금하고 마지막 남은 15~20% 돈이 내 용돈인데, 사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카드를 긁는다.

나는 아무 취미 생활도 없고, 식도락에도 관심이 없고, 사고 싶은 것도 없다. 돈을 많이 안 쓰지만, 여기서 핵심은 돈을 얼마나 많이 쓰는지가 아니고 계획적으로 규모 있게 돈을 쓰느냐 마느냐는 데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용돈 운용’ 빵점이다. 한 달 용돈을 정해놓고, 규모 있게 용돈을 집행해야 하는데 그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가뜩이나 사업하느라 이미 스트레스가 만땅이라, 본능적으로 다른 곳에서는 어떠한 작은 스트레스도 받고 싶지 않아 한다. 그런데 뭐 어느 누가 자기 욕망을 절제하며 규모 있는 생활을 하기 위해 스트레스 받는 생활을 달가워하랴, 다 똑같다.

우리 부모님은 헌금으로 가계 재정의 30~40%까지 집행하셨는데, 그건 지금 나보다 돈을 더 잘 벌었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걸 절제하고 작은 부분에서까지 굳이 스트레스 받으며 규모 있게 가계 재정을 운용하신 덕분인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도 이제는 헌금(혹은 기부) 예산을 20%까지는 증액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늘 말은 쉽고 실천이 어렵다. 근데 또 막상 아무 생각 없이 실천하면 그렇게 고된 것도 없더라.

예전에 우리 아빠가 말했다. 옳은 일도 지나치게 하지 말라고. 나는 아직도 이 말이 대단한 영성가의 명언처럼 들린다. 대단한 통찰이 아닐 수 없는데, 이 말은 특히 돈에 적용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돈만큼 발란스가 중요한 경기가 또 있을까.

머스크처럼 되고 싶지 않고, 부모님처럼 되고 싶다

우리 부모님은 항상 돈이 없었다. 엄마 지갑에 만 원짜리 지폐 몇 장 두둑하게 꽂혀있는 걸 본 일이 없었으니까. 본가에서 우리는 아직도 엄마가 시집올 때 들고 온 식탁 위에 밥을 차려 먹는다. 목사(아빠) 월급으로 여섯 식구와 개 한 마리까지 먹고살기가 만만한 일은 아니지 않겠나. 몰래 부모님 호주머니에서 잔돈이라도 좀 훔치려 하면, 잘 나와야 천 원짜리 한두 장이 전부였고, 보통은 동전도 잘 못 건졌다.

두 분은 항상 자기가 번 돈에 하나님 몫, 가족의 몫, 가난한 이웃의 몫이 있다고 가르치셨고, 그걸(발란스를) 누구보다 철저하게 실천하셨다. 더 헌금하고 싶다고 자녀들 몫에 손댄 일이 없으셨고, 더 편안하게 살고 싶다고 덜 헌금하신 적도 없다. 아직도 하나님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는 부자처럼 행동하시고, 자녀를 위해서는 중산층처럼 행동하시고, 당신들을 위해서는 별로 쓰질 않는다. 그래도 우리의 삶은 이상하게 풍성했다. 허투루 100원도 쓰지 않았고, 써야 하는 돈이라면 1억 원도 내놓는 두 분의 돈에 대한 철학과 실천이 내 자녀들에게까지 전달되어야 할 텐데…. 내가 중간에서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아 그게 가장 큰 문제다.

요즘 투자회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장님, 돈이 제일 쌉니다.’ 존재 목적이 돈 그 자체인 집단에서 하는 말이 ‘돈이 제일 싸다’인 게 참 재밌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정도가 아니라 돈이 제일 싸다니. 그런 마인드가 있어야 큰돈을 벌 수 있나 보다 싶다가도 ‘너희는 수천억이 있으니까 그럴 수 있지’ 하면서 혼자 속으로 욱하기도 했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돈의 값이 싸고,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돈의 값이 비싼 게 당연하니까. 아무튼 나는 ‘돈이 제일 쌉니다’ 이 말을 가슴에 새겼다. 성경 말씀인 것처럼.

‘하나님! 정작 드리고픈 것은 천 원짜리 한 장 헌금이 아니라 나의 존재 전체와 나의 인생 전체입니다. 헌금 바구니가 작아 헌금만 드리지만 헌금만 받지 마시고 나의 존재 전체와 나의 인생 전체를 받아주세요. 나와 내 가족에게는 절약하고 하나님과 어려운 이웃에게는 사치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건 내가 아동부 사역을 할 때, 우리의 봉헌기도문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는 있는데, 매번 치는 무게가 무겁다. 아, 지겨운 돈 욕심!

김정열
수박빈티지의 대표이자 수박교회 목사. 9년 동안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지금은 빈티지샵을 운영하게 되었다. 개척한 수박교회에서 매주 목회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