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맛》 세 명의 엄마, ‘군자’ 이야기
[393호 에디터가 고른 책]
월간지 에디터이다 보니, 커버스토리 주제가 정해지면 그때그때 필요한 책을 사거나 빌려서 읽게 된다. 이번에는 《화해의 제자도》 《전쟁과 가족》 《농인의 눈으로 본 북한》 등을 읽었는데, 단연 눈에 들어온 한 권이 있었다. 바로 이 책 《전쟁 같은 맛》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와 오빠를 잃고, 부산 기지촌에서 일하다 상선 선원인 백인 남성과 결혼해 이민자를 낯설어하고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도 감추지 않는 미국 서부의 작은 동네에서 삶을 꾸린 ‘군자’.” 한마디로 그(1941-2008)와 그의 딸인 저자(한국계 미국인, 한인 디아스포라, 사회학자)의 이야기다. 형식상 어머니에 대한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옮긴이의 말’에서 지적하듯, 모녀의 역사에는 ‘식민 지배’ ‘한국전쟁’ ‘인종차별주의’ ‘젠더화된 노동과 폭력’ ‘정신건강 불평등’ 등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가 서려있다.
저자는 “사는 동안 내게는 적어도 세 명의 엄마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가 열다섯일 때 엄마에게 조현병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카리스마 넘치고 노련한 미시(微示) 정치가였던” 엄마는 저자가 청소년기와 초기 성인기를 보낼 때 “커튼을 닫고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채 몇 년을 소파에만 앉아” 보내는 모습으로 기억된다. 그 후 30대 때는 “나를 당신의 요리사로서 받아들이고, 내게 할머니가 해주시곤 했던 음식을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준 분”으로 이미지가 바뀌고, 엄마의 감춰졌던 과거에 대한 조사를 허락받으면서 저자가 첫 책 《한인 디아스포라의 출몰: 수치심, 비밀, 그리고 잊힌 전쟁》을 내기까지 연구를 추동하는 힘으로 자리했다.
이 책에는 ‘디아스포라’의 첨예한 부분들이 등장한다.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이고, 미국적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지극히 한국적인 이야기와 애달프게 만날 수 있다.
“엄마는 마치 “왔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외국인 혐오자들의 말을 따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당신이 온 곳을 짚어내기란 쉽지 않았고, 그래서 엄마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엄마는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 일본으로 강제징용된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가 전쟁과 분단, 미국의 점령을 겪은 뒤 미국인인 아버지와 동침했다는 죄로 추방당했다. 엄마는 내면으로 움츠러들며 당신을 이 갈등의 장소로 다시 데려가, 자기 존재를 없애고 무(無)가 되어 사라져버리고 싶어하는 것만 같았다.”
강동석 기자 kk11@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