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소녀, 질문하고 사랑하며 책임을 다하는 주체
[393호 나의 순정만화 순례] 강경옥: 《별빛속에》
보편적인 주체로서의 여자는 여성을 여성의 의미에로 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여성의 역사가 생겨나도록 만들어야 한다. … 일반적인 전형으로서의 여성은 없다.
―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출구》(동문선, 2004), 10쪽.
1980년대 순정만화의 대표적 클리셰 중 하나는 여자 주인공을 사이에 두고 흑발 냉미남과 금발 온미남이 삼각 구도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일단 긴 흑발을 휘날리는 고독한 남자 캐릭터가 나오면 이건 뭐, 그냥 남자 주인공이라고 보면 된다. 반면 금발 온미남이 등장하면 그때부터 마음이 아려왔다. 한 여자만 바라보지만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할 남자가 여기선 바로 너구나 싶어서. 흑발 냉미남은 겉으론 차갑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여자 주인공을 돕는다. 주위 여성들을 휘청 흔들리게 만드는 치명적 매력 또한 갖추고 있다. 금발 온미남은 대놓고 여자 주인공에게 직진하며 헌신적으로 돕는다. 역시 남부러울 것 없는 인기남인데 이상하게 평범한 여자 주인공에게만 빠져들어 인생 다 내팽개친다. 이 구도에서 서브 남주인 온미남에게 빠지는 독자도 가끔 있었지만, 여성 독자 대부분은 압도적인 비율로 흑발 냉미남을 이상형으로 상정해 여자 주인공에 빙의하며 책장을 넘겼다.
청소년기의 나 또한 흑발 냉미남과 여자 주인공의 로맨스가 이뤄지는 결말을 보고 싶어 순정만화를 열독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당시 순정만화들은 잔혹했다. 작가의 농간(?)으로, 로맨스가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이뤄지지 않는 것도 아닌 ‘부재하는 연인’ 상태를 지속하는 결말이 많았고(그러니까 이뤄지지 않은 거다.), 그럴 때마다 작가를 원망하는 독자의 원성이 자자했다. 그렇게 로맨스 성사 여부를 중심으로 작품을 읽을 때도 있었는데 이후 지식과 경험이 쌓인 주체의 눈으로 다시 보니 작가의 농간은 다른 데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가부장제 순응 기제로 쓰일 수 있는 남녀 로맨스를 다루는 듯 보였던 순정만화가 실은 전복적 여성 주체 서사를 품고 있었다는 것을. 혁명의 역사 같은 거대 서사를 다루는 소설 띠지 문구나 굵직한 시대 역사극의 카피마냥 “이것은 결국 사랑 이야기다”가 아니라 그저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던 순정만화가 “이것은 결국 여성 주체가 다시 쓰는 거대 서사다”. 뭐, 이런 느낌?
겉으로는 기존 문법에 충실한 로맨스처럼 보이나 속으로는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전략은 역사적으로 19세기 영미권 여성 문학이 종종 구사하던 전략이었다.1) 재출간 시 나 또한 펀딩에 참여했던 《다락방의 미친 여자》(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북하우스, 2022)에 따르면, 19세기 영미 여성 작가들(제인 오스틴, 메리 셸리, 에밀리 브론테, 에밀리 디킨슨)은 양피지에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쓴 것 같은 ‘거듭 쓴 양피지’(palimpsest) 전략으로 문학작품을 생산했다. “이런 작품들의 외관은 표면의 무늬가 훨씬 깊고 접근하기 어려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가 더 어려운) 층위의 의미를 감추거나 흐려놓았다. 작가들은 이렇게 가부장적인 문학의 표준에 순응하는 동시에 그것을 전복시킴으로써 진정한 여성문학의 권위에 도달하는 어려운 임무를 해냈다.”2) 국문학 연구자 김은혜는 1980년대 한국 여성 만화 작가들이 이 전략을 구사했다고 분석했다. “정작 하고 싶었던 시대의 이야기를 이야기의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 배치”3)해 당시 남성 중심 사회가 가하는 제약에서 벗어나려 했다는 것.
작가 특유의 지면 연출력과 치밀한 심리묘사가 빛나는 강경옥의 《별빛속에》는 순정만화의 공간을 우주로 확장해, 사색하는 소녀가 여왕 후계자로서 자기 정체성과 역할을 찾아가는 서사를 펼치기 위해 흑발 냉미남과 금발 온미남 사이에 18세 지구 소녀 유신혜(다른 이름은 ‘시이라젠느’)를 주인공으로 둔 게 아닐까. 아무래도 《별빛속에》는 이 전략을 가장 탁월하게 구사한 작품인 것만 같다. 이것이 나의 순정만화 순례 첫 작품으로 《별빛속에》를 가져온 이유다.
로맨스는 거들 뿐
한 에피소드가 대략 60분인 요즘 드라마도 유튜브 요약 버전으로 보는 우리에게 1980년대 순정만화 서사 전개는 느려도 너무 느리다.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속도가 느긋하고, 대사든 배경 설명이든 텍스트가 많으며 등장인물의 독백 대사도 많다. 《별빛속에》는 비교적 전개가 빠른 편인데 인물의 독백과 대화가 많다. 특히 주인공 시이라젠느(애칭은 시이라, 지구 이름은 ‘유신혜’)가 내면을 들여다보거나 신에게 질문하는 독백이 이야기의 중심이고 서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 특유의 심리묘사가 빛나는 작가답게 주변부 인물조차 어떤 선택을 할 때 결정을 내린 이유를 다른 인물들과의 대화로 드러내곤 한다. 지나가는 인물 하나도 사물화하지 않는다. 《별빛속에》 속 인물들은 모두 감정과 생각을 지닌 사람, 즉 개인이다.
《별빛속에》를 읽을 때 “빨리 다음 권으로~!”를 외치며 조급한 마음으로 다음 권을 찾은 이유는 전개에 대한 궁금증보다 등장인물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이어가는 관계 구도가 흥미진진해서다. 흑발 냉미남 레디온과 시이라처럼 자기 마음의 정체를 쉽게 규정짓거나 표현하지 않고 망설이는 인물, 그리고 자기감정의 정체를 선명히 인지하고 움직이는 금발 온미남 아르만과 시이라의 여동생이자 정치적 라이벌 아시알르 같은 인물의 과감한 실행력이 적절한 케미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실제로 윙크북스 버전 총 10권의 완결본 중 레디온은 무려 9권에 이르러서야 자기 마음의 정체를 알아챈다. 하아. 7권쯤에라도 알아챘다면 우리는 레디온과 시이라젠느의 (알콩달콩하지는 않았겠지만) 사랑 이야기를 조금 더 누릴 수 있었을 텐데. 남주는 9권에서야 자기 마음을 알아챈 것도 모자라 무려 의식을 잃은 상태의 여주에게 마음을 고백한다. 그래. 깨어있는 시이라가 아니라 의식이 없는 시이라에게. (아이고, 이 답답한 사람아!) 하지만 그사이 의식을 찾은 시이라는 그 고백을 듣고 누워 고개를 돌린 채 눈물을 흘린다. 둘 사이에 ‘말’로 정확하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은 그게 전부다. 허공에 대고 하는 말, 돌아서 흘리는 눈물, 단 한 번 정면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나눈 교감. 작가는 남녀 주인공 둘이 말로 사랑을 속삭이는 달콤한 장면 따위 넣지 않는다. 그거 아나? 그래서 더 애타는 거.
둘이 그렇게 ‘말’로 사랑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깊은 교감을 나눈 뒤, 2계급 레디온에게 원거리 텔레포트 능력이 있는지 테스트하는 장면이 나온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옆 행성 카라디온과 전쟁이 벌어졌는데 1계급만 가진 텔레포트 능력자가 한 명이라도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테스트에서 1계급들이 서있는 우주선 투명 스크린 아래로 텔레포트해 정확히 시이라젠느 발밑에 서는 레디온. 시이라는 말없이 그 아래를 내려다보고 레디온은 똑바로 위를 응시한다. 시이라가 서있는 위치 아래로 텔레포트해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서로를 응시하는 두 사람. 이 장면에서 강경옥 작가의 연출력에 심장을 움켜잡게 된다. 사적인 관계가 공적으로 표현되는 순간이자 그 어떤 수천 단어 대사보다 심쿵하게 서로를 인정하는 장면. 난 이 장면을 둘 사이 최고의 장면으로 꼽는다.
9권에 가서야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로맨스 한정) 느린 서사의 이 남녀 주인공은 다음 권에서 바로 헤어지는데 끝내 남자 주인공이 죽는다는 걸 여기서 말하면 나 유죄? 9권까지 계속 감정의 정체와 생의 의미를 붙들고 질문하며 계급 차이에서 오는 현실적 한계에 몸부림치다가 이제야 마음을 나눴는데, 작가님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거 아시는지. 부재하는 연인이야말로 여성 주체가 오롯이 자기 정체성을 구현하는 필수 조건이라는 것. 시이라젠느에게는 로맨스가 이뤄지는 것만큼 중요한 문제가 있고, 작가가 주인공의 삶으로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연인의 부재로 완성된다. 흑발 냉미남을 비롯해 거의 모든 남자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는 여자 주인공이 결국 사랑을 성취해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론은 이 만화의 주제가 아니다. 로맨스는 거들 뿐.
신과 싸우며 신이 부여한 소명을 따라
감정에 솔직하며 자기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정직하게 인정하는 주체적 개인이자, 자기가 왜 여왕이 되어야 하는지 치열하게 질문하고 끝내 그 질문의 답을 찾아 소명을 수행하는 지구 소녀 신혜/카피온의 왕녀 시이라젠느의 선택과 행보를 난 이 만화의 핵심으로 읽었다. 우주의 명운이 걸린 상황에서 오직 여왕만이 깨달을 수 있는 계시와 초자연적 능력으로 카피온을 비롯 카라디온과 지구의 역사를 이어가게 만들고 많은 사람의 생명을 지켜내는 그 일.
시이라젠느는 오로지 자신만이 감당해낼 수 있었던 임무를 수행하고 블랙홀을 지나 지구로 추정되는 행성에서 깨어난다. 그때 (우리의 흑발 냉미남 레디온에게는 미안하지만) 시이라는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끼지만 그게 무엇인지 기억해내지 못한다.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지구의 어느 시공간에 다시 돌아온 거다. 돌아온 시이라젠느 아니 신혜는 아마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시작할 것이다. 지구에서 자기를 키워준 양아버지를 비롯해 가족과 친한 친구가 죽고 그 과정에서 지독한 고통과 고독을 겪었고, 카피온에 와서는 친딸인 줄 모르고 지속적으로 자기를 위협하던 친아버지를 방어 과정에서 죽여버렸으니 그는 이 우주에 오롯이 혼자 남아버렸다. 아름다운 별들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신혜는 지구에서 평범한 여고생으로 지내던 시절 가졌던 의문의 답을, 여왕이 되는 긴 우주 여정에서 얻어오지 않았을까.
언제나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똑같아!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 생활은 깨어지지 않아. 마치 평생이 이런 것의 반복일 것만 같아. 이제 졸업하고 대학에 가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직장을 갖거나 결혼하게 되고…? 싫어진다. …당연한 것들만 겪고 살아가기엔 존재하는 것이 너무 많아. 저 넓은 우주, 이 푸른 빛의 지구… 초능력이나 우주인 이 세상의 기이한 모든 것들… 그것들이 전부 나와 상관이 없는 것인가…
― 《별빛속에》 2권, 72-73쪽.
주류 미디어에서 왕은 당연히 남자밖에 없던 시절, 여성들이 왕권을 두고 경쟁하며 결정권을 행사하고 무대 중심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은 순정만화를 타고 자연스레 10대 소녀들에게 도착했다. 우주(와우, 스케일!)의 초능력을 지닌 여성 정치인(우주의 운명이 그들에게 달려있다)이라, 캡틴 마블 이전에 우리에게는 시이라젠느가 있었다! 교회와 학교 학생회에서 회장은 남자가 하고 부회장은 여자가 하는 그림이 당연하고 당회는 나이 든 남자들만 들어가며(지금도…) 여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고 기도하는 그림에 의문을 품는 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남자는 결정하는 사람이고 여자는 보조하는 식의 조직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내면화했으니까. 왕은 여자고 그를 위해 말없이 희생하고 보조하는 인물은 남자인 작품을 난 순정만화에서 자주 봤거든.
남자 캐릭터는 온통 클리셰 범벅인데 일반적 전형으로서 여성은 없다는 걸 보여주는 여자 캐릭터들이 《별빛속에》에는 가득했다. 용감하게 사랑을 선택한 주체인 피레와 스에라, 지구에서 온 제1왕녀 언니보다 카피온에서 여왕 수업을 받은 자신이 더 후계자답다고 믿는 정치적 수완가 아시알르 등. 단연 그 대표는 신혜/시이라젠느지만. 스포츠에 능하고 과학에 관심 많은 우주 덕후였으며 자기 주관을 가진 지구인 신혜, 자기를 환영하지 않는 고향에 돌아와 그들의 인정을 받으려 고개 숙이기보다 오롯이 자기 정체성과 여왕이 되어야 하는 이유에 집중하는 시이라. 심지어 카피온의 친아버지를 자기 손으로 죽인 시이라. 방어 차원이었고 친아버지인 줄 모르는 상태(오이디푸스!)였다지만, 어머니를 넘어 여왕이 되고 아버지를 죽여 자기 길을 가는 과감한 설정은 지금 봐도 놀랍다.
이토록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 시이라젠느의 여러 면모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그가 웃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구에서 등장하는 첫 장면인 운동장에서 배구하는 장면부터 학교생활을 하며 늘 생각하고 대화하는 주체로 일상적 표정을 지었고, 카피온에 가서도 단 한 번도 위축되지 않은 채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 (미소로 생존하기는커녕) 온통 예민해져 화를 내고 정치적 타협을 하고 사람을 다룬다. 아, 단 한 번도 웃는 장면이 없는 순정만화 여주인공이라니! 건조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많은 경우 홀로 숨죽여 울다가도 치렁치렁한 여왕 후계자 의상을 내려놓고 전사의 옷을 입고 당당하게 성역에 들어가 신의 목소리를 듣는 시이라. 자기에게 들려온 신의 목소리와 자기에게만 뜻을 보여주는 신을 향해 끊임없이 반문하며 인간의 운명과 카피온과 지구의 관계에 대해 사색하는 시이라. 신의 뜻과 자기 뜻의 경계를 뚜렷이 구분 지을 수 없음을 인식하고, 희미한 신의 뜻과 선명한 자기 뜻 사이에서 자기만의 선택을 내리고 묵묵히 길을 가는 시이라. 신의 뜻 안에는 자기 선택의 경우까지 이미 들어가 있으리라는 것을 깨닫는 시이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깨달았던 걸까.
질문의 대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궁금하다면
강경옥 작가가 마지막 정점에 이르는 결말까지 지독하게 천착한 주인공의 정체성 투쟁은 이 작품이 지금까지 걸작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9권까지 안갯속을 걷지만 10권에 이르러 단 한 가지 답을 깨닫고 그 답을 향해 용기 있게 걸어간 시이라의 모습, 그 밑바탕에는 자기 마음을 고통스럽게 직면하며 감정의 정체를 깨닫고 용기 내어 사랑을 선택한 레디온의 존재가 있다. 계급 차가 부여한 현실의 한계를 기꺼이 부술 수 있는 진짜 ‘초’능력은 오로지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밖에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 흑발 냉미남 레디온이 있었으니, 실로 레디온과 시이라젠느가 지난하게 수행한 정체성 투쟁은 그 자체가 사랑의 결실이자 소명의 이행이다. 그래서 마지막 권에서 헤어짐을 향해 달려가는 시이라와 레디온의 모습이 슬프지만 슬프지 않다. 그들은 이미 1권부터 사랑을 했고 나는 누구인가를 물으며 올바른 궤도에 올라탐으로 어떤 선택을 해도 끝내 여왕이 되어 자기만의 소명을 이뤘을 테니까.
로맨스가 이뤄지고 여왕이 되어 나라를 통치하는 이야기 같은 건 《별빛속에》에 없다. 일반적 기준에서 로맨스가 시작되는 순간 둘은 영영 이별했고, 여왕이 되는 순간 시이라는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고 동생 아시알르에게 다음 여왕 자리를 건넸으니. 9권의 투쟁 과정과 1권의 폭발로 구성된 《별빛속에》는 나는 누구인가,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여정으로 빼곡하다. 신의 뜻과 나의 뜻이라는 모호한 경계를 어떻게 돌파하는지 보여주는 아름다운 신학적 실천으로 새로운 여성의 역사를 시작하고 있다.
1) 김은혜, 〈1980년대 여성 서사만화 연구: 황미나, 김혜린, 신일숙, 강경옥 작품의 서사 특성을 중심으로〉, 전북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7.
2) 《다락방의 미친 여자》, 183쪽.
3) 김은혜, 위의 논문, 18쪽.
박혜은
문화기획자. 뉴스레터 〈에밀앤폴〉 발행인. 책을 직접 만지는 일에서 책 문화를 다루는 일로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