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길은 없다…평화만이 한반도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 ―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
[393호 커버스토리]
※ 본지는 6·25 전쟁 정전(7.27.) 70주년을 맞아 분단된 한반도 현실을 돌아보고, 한반도 평화를 넘어 동북아시아, 세계의 평화를 위해 어떤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지 논하는 커버스토리를 담아내며, 그중 두 편을 통일/평화 관련 주제로 문서 운동을 해온 잡지 두 곳(평화저널 〈플랜P〉, 〈계간 통일코리아〉)과의 제휴 콘텐츠로 꾸며 보았습니다. 이미 각 매체에 실렸던 글 중 커버스토리 주제에 맞고 잡지의 방향성을 잘 드러내는 콘텐츠를 추천받아, 전문성과 노하우를 갖춘 해당 잡지를 소개하는 글과 함께 게재합니다. 본 인터뷰는 원 글에서 리드문만 축약하여 게재합니다. 전체 내용은 〈계간 통일코리아〉 2022년 겨울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2013년 발기한 통일코리아협동조합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계간 통일코리아〉는 협동조합과 함께 출발해, 현재까지 20권을 발행했습니다.
만남의광장 〈계간 통일코리아〉
고속도로 시작점마다 만남의광장이 있습니다. 여행을 앞두고 화장실 가는 사람, 배를 채우는 사람,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사람, 일행을 만나려는 사람으로 만남의광장은 늘 붐빕니다. 출발하려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지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들르는 휴게소이기도 합니다. 만남의광장은 여행을 시작하려는 사람과 마치려는 사람이 만나 소통을 이루는 그야말로 ‘광장’인 셈입니다.
〈계간 통일코리아〉는 만남의광장 같은 잡지입니다. 남한에서 태어난 사람,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 북한 출신 부모님 밑에서 중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 남한 출신 부모님 밑에서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 등 출신과 말씨, 나라를 따지지 않고 다양한 사람이 자기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소통의 광장입니다. 최근 발간한 2023년 여름호만 봐도 탈북민 부부의 남한 정착기, 북한 여행을 다녀온 미국 시민의 수필, 북한 음식 유래, 한반도 역사 탐방 기행문, 전문가 칼럼 등 넓은 범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곳은, 생명 평화 통일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마음껏 떠들고, 소통하고, 각자 볼일 보는 그야말로 ‘광장’인 셈입니다.
‘전수미가 간다’ 코너를 맡고 있는 전수미 변호사는 오래전부터 법률 상담과 무료 변론을 통해 탈북민들의 남한 정착을 도운 시민활동가입니다. 시민활동가 전수미는 우리가 마련한 만남의광장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 의견을 청취하고, 때로 삶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자유롭게 대화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눈다는 점에서 〈계간 통일코리아〉의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특별히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과 만나 대화한 “다른 길은 없다… 평화만이 한반도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2022년 겨울호 수록)이라는 기사를 권합니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오랜 정전으로 전쟁 위기의식에 무감해졌고, 평화를 향한 열망도 줄었습니다. “중국이든 북한이든 한판 붙어보지, 뭐!” 호기롭게 엄포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보기도 합니다. 한판 붙었을 때, 무너지고 사라지고 짓밟힐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하고 귀중한 삶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시민활동가 전수미와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의 대화는 평화란 말이 고리타분해진 이 시대에, 평화의 가치를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합니다. ―〈계간 통일코리아〉 편집위원 이규혁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와 한미연합군사훈련의 대응이 심상치 않다. 이런 북한에 대해 한미는 ‘도발’이라고 하고, 한미에 대해 북한은 ‘전쟁 연습’이라고 한다. 과연 한미연합군사훈련 기간만 끝나면 한반도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까? 더욱 근본적인 한반도 평화의 해법은 무엇일까? 국제관계 전문가인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을 만나 답변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한미와 북한이 한창 긴장 상태로 치닫던 지난 11월 12일 주말 오후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진행했다.
- 오늘 이렇게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미연합군사훈련과 이에 대응한 북한의 도발로 한반도가 어느 때보다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인데요.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상황이 매우 안 좋죠.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긴장 고조가 계속되고 있고 국지전이 일어나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국지전은 확전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보통 2017년과 많이 비교하는데, 2018년처럼 대반전으로 가느냐 아니면 2010년 연평도 포격 같은 국지전으로 갈 것이냐인데, 저는 두 번째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또 하나는 2017년 당시에는 미국과 북한이 둘 다 말 폭탄으로 긴장을 고조시켰지만 한국이 중재자 또는 전쟁 반대 선언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려 노력했다면 현재는 남북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도 단호하다고 하지만, 오히려 미국은 외교적 해결을 선호한다고 덧붙입니다. 역설적으로 미국이 안정자 역할을 해줘야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현 정부의 성격이나 지금의 남북의 상황을 봤을 때 평화나 안정은 고사하고, 미국이 상황을 관리해줘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지요.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이 2010년 우리가 연평도 포격을 당했을 때 미국이 우리의 보복 공격을 자제시켰던 일이 있었거든요.
미국은 북한 도발을 명분으로 한미일을 묶으려고 하지만, 이게 지나쳐서 한반도에서 위기가 고조되고 미국의 전선이 세 개가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러시아와 지금 중국의 전선이 열려있는데 한반도까지 위기가 고조되어서 한미일을 묶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위기가 폭발되는 것은 미국이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평화의 안정자 역할을 하지 않고 긴장을 고조시키고 미국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긴장 완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좀 안타깝죠.
-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 지금 굉장히 중요한 걸 잘 말씀해 주셨는데요. 잘 아시겠지만 최근에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치고 지속적인 핵 무력 고도화 방침을 밝힌 바가 있습니다. 지금 현 구도 속에서 시간은 누구의 편이라 할 수 있을까요?
북한 이슈를 다룰 때 한미에서 흔히 하는 두 가지 표현이 있어요. 하나는 ‘시간은 누구 편이냐’이고, ‘공은 누구의 마당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특히 미국은 ‘현재 공은 북한 측에 넘어가 있다’라거나,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표현을 잘 사용합니다. 반면에 북한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북한이 2018년 전까지는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핵무기 개발을 지속해서 억지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2017년 이후 2018년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조금의 기대도 있었던 것 같아요. 보수 세력들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핵 개발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고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북한이 모라토리엄을 통해서 실험을 중단했으니 지체시킨 것이지요. 그것이 깨진 이후 재개하고 있는 거잖아요? 오히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북한의 핵 무력 고도화를 적어도 수년간 중단시킨 것이라고 봐야죠. 물론 비핵화를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김정은은 2018년에는 핵을 가지는 것보다 북미 관계가 해소돼 평화 체제가 되면 핵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하나의 길로 고려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핵무기를 쉽게 포기할 생각도 없었지만, 적어도 두 가지 방안을 놓고 고민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2018년 2월 말 하노이회담이 결렬된 후에는 북한이 두 번째 옵션을 포기한 셈입니다. 한미 특히 미국의 근본적인 변화, 즉 미국의 양보 없이는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현재 미국은 일단 대화에 나와서 모든 의제를 얘기하자고 하지만, 북한은 이미 해봤고 실패했기 때문에 미국이 무엇을 구체적으로 양보할지를 얘기하고, 그것을 수용할 수 있으면 나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작년 1월 신년사부터 북한 계획대로 가고 있는 겁니다. 즉, 핵 무력 강화를 통한 억지력 확보의 길로 진력하겠다는 것입니다.
- 북한은 한미 때문이라고 하고, 한미는 북한의 도발 때문이라고 하는데, 한반도 긴장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봐야 하나요?
북한은 한미의 전쟁 연습 때문이라고 하고 한미는 북한의 도발 때문이라고 하는데, 서로 입장이 다르지요. 상대방이 하면 도발이고, 자신들이 하면 적절한 대응이지요. 북한 입장에서는 전력이 월등한 한미가 훈련하는 것은 자신들에 대한 위협으로 여기는 겁니다. 이는 서로를 불신하기에 생기는 일이죠. 북한은 자신들의 핵 개발 이유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버려야 핵을 포기할 수 있지만, 미국이 지금처럼 대북 적대시 정책을 지속하므로 북한은 핵 개발을 포기할 수 없다는 논리를 갖고 있습니다. 북미협상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하지 않겠다는 표시로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약속했었습니다. 현재 한미군사훈련을 재개하고 전략 자산을 동원하니 북한으로서는 도발이라고 규정하는 것입니다.
- 명쾌하십니다. 그러면 지금 미국 측에서는 계속해서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2017년 북한이 벼랑 끝 전술을 통해서 미국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낸 것인데, 문제는 중재 역할을 해야 하는 윤석열 정부가 지금 문재인 정부와 다르다는 것 아닙니까? 어떠한 조건에서 북한이 대화에 나올 거라고 보시는지요?
지금은 중재자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대치와 긴장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남북이 ‘강대강’으로 나가고, 미국이 차후에 관리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현재는 강경한 태도를 한국과 함께 견지하고 있으니까요. 미국은 물론 파국으로 가지 않도록 하겠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화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부인하지만, 오바마 8년간의 대북 정책이었던 ‘전략적 인내’로 갈 가능성이 가장 커 보입니다. 사실 전략적 인내는 좋게 표현한 것이며, ‘전략적 방치’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었습니다. 미국은 조건 없는 대화를 촉구하고 있다고 하지만, 북한이 응할 수 있는 조건 제시는 하지 않으니 계속 도돌이표입니다. 북한은 2017년부터 2018년 하노이회담까지 나름대로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하노이회담의 결렬은 미국이 북한하고 관계를 개선할 생각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만들었잖아요. 그리고 미국은 동시행동으로 양보하지 않으면서 다시 북한에 선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북한이 트럼프에게 정말 기대했던 건 이전까지 30년 동안 미국이 ‘선 비핵화 후 보상’ 원칙과는 다르거나 적어도 유연한 접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싱가포르회담의 경우는 신뢰 회복이 가능하다고 희망을 품었지만, 결국 하노이회담에서 무너져 버렸습니다. 북한이 대화에 나오냐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어느 정도 완화할 것인가를 보고 나올 것이라 봅니다. 이 역시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다가 못한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 체제’를 이루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일단 남북 물밑 접촉을 통한 정상회담 얘기도 나오고, 중간선거 후 미국의 대북 특사 얘기도 나오는데, 윤석열 정부나 미국이 그만큼 북한과의 협상에 우선순위를 둘지 미지수인 것 같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평화 체제에 대한 생각이나 계획이 전혀 없습니다. 담대한 구상을 말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거의 ‘위장 평화’ 같아요. 계속 진영을 강화하고 한미일 협력에 올인하는 정책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이라고 하지만 대규모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전개하고, 확장 억제를 강화하며, 전략 자산 상시 전개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담대한 계획을 말하는 것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담대하게 돕는다는 거지, 북한이 대화에 나올 수 있는 담대한 제안이나 담대한 양보를 제안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게 어떻게 담대한 겁니까? 결국 그것은 이명박 정부 당시의 ‘비핵 개방 3000’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요. 북한이 핵만 포기하면 담대하게 돕겠다는 것인데,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하는 것은 적대시 정책 중단인데, 이것은 하지 않고 북한이 포기하면 담대하게 돕는다는 건 담대하다고 얘기하면 안 되는 거지요. 저는 현 정부가 평화 체제에 대한 정책 의도가 없다고 봅니다.
-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한반도 비핵화인지, 핵 보유인지요? 비핵화라면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북한에 어떤 것을 줄 수 있는지요? 북한에 필요한 것을 줄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제가 강연할 때 자주 안보 딜레마를 소개하면서 왜 국가들이 군비축소나 무장해제를 하기보다는 군비경쟁에 몰두할까 설명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상대방을 못 믿기 때문이에요. 즉 최악의 상황은 군비경쟁이 아니고 최악은 나만 군비를 포기하는 거예요.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 중에 두 사람이 동시에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을 연상해보세요. 동시에 총을 내려놓자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결말이 주로 어떻게 됩니까? 내려놓는 척하다가 뒷주머니나 발뒤축에 숨겨놓은 총을 쏘는 장면이 나오지요. 항상 그런 대비를 하는 것이지요. 상대방을 믿지 못하니, 서로 긴장 속에 있더라도 총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군비경쟁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고, 안보 딜레마 상황이라고 정의합니다. 북한이 핵을 내려놓지 못하는 근본 이유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뭐라고 얘기하냐면 ‘일단 먼저 내려놔라. 그러면 살려주고, 경제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내려놓으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절대 놓지 않아요.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을 정도의 안보가 확보되지 않고서는 내려놓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선 비핵화 후 보상’을 말하지만, 북한은 ‘선 신뢰 후 비핵화’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보상을 담대하게 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은 위장평화로 북한은 판단할 것입니다. 북한이 받을 만한 담대한 제안을 하지 않는 한 이 구조는 절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 그러면 지금 구도가 저희가 신뢰를 주어야 비핵화가 가능해지는데, 지금 현 정부에서 신뢰를 줄 수 있는 상황인가요?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남북의 대치와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는 거예요. 국내적인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보를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특히 최근 미·러 관계와 미·중 관계가 악화하면서 북한은 운신의 폭이 커지고 있습니다. 핵 문제, 기후변화, 팬데믹 대처 같은 것은 강대국들이 적대적인 상황에서는 협력이 불가능합니다. 가나마 유엔 대북 제재 체제가 가능했던 것도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협력했기에 가능한 거잖아요. 지금도 그대로 증명이 됩니다. 북한이 아무리 센 도발을 해도 유엔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요. 미국이 독자 제재한다고 그러지만, 북미의 단절된 관계로 인해 실효가 없고 상징적인 것에 불과해요. 새로운 인물들이나 기업 등을 독자 제재 리스트에 올리는 일밖에 더 있어요? 실제로 제재를 할 수 있는 건 러시아와 중국인데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 사이가 나쁘기에 효율적인 제재는 불가능합니다. 심하게 말하면 유엔 제재 체제도 사실상 효력을 상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정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솔깃할 대폭적인 양보가 있어야 하는데, 미국이 할 리가 없지요. 그래서 저는 현 ‘강대강’ 구도가 상당 기간 갈 수밖에 없다고 전망합니다.
남북 관계에 관해서는 북한이 한국을 만나려 할 때는 언제일까요?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의 최대 위협이자 생사를 쥐고 있는 상대는 미국입니다. 그래서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주장하고요. 그렇다면 안보와 관련해서, 즉 핵과 관련해서 한국을 만날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요.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한국일 때입니다. 2018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가능했던 것은 그 가능성을 북한이 봤기 때문입니다. 하노이 회담 실패에서 북한은 문재인 정부도 미국을 움직이지 못해서 실패했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후 더 이상 만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지요. 지금은 더 합니다. 한국은 북미 관계에서 어떤 변수도 안 된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결국 전쟁이 나면 우리가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 아니라 2017년 위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는 선언이라도 해야지요. 그런데 맞불 무력시위만 하고, 선제공격을 말하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남북 물밑 접촉, 특사파견, 정상회담 등을 거론하지만,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해요. 미국도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볼 생각이 없을 겁니다. 미국은 북한 문제를 기본적으로 골치만 아프고 풀리지 않는 문제, 즉 ‘pain in the neck’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해결한다고 해도 비용 대비 정치적으로 이익이 크지 않다고 봅니다. 미국에 물론 도움은 되겠죠. 그런데 괜히 덤볐다가 손해나기 십상인 투자처인 셈입니다. 차라리 적당하게 긴장을 활용해 한미일을 묶으려는 것 같습니다. 오바마 시절의 전략적 인내로 돌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 지금 우리 정부의 대통령이 해야 할 대한민국 21세기 한국의 외교 안보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현 정부의 외교는 한마디로 ‘빼기 외교’예요. 진영 편향 외교를 한다는 말입니다. 외교는 카드나 지렛대를 늘리고 이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더하기 외교’를 해야 합니다. 다자 외교는커녕 지난 6개월 동안 만난 것은 미국과 일본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리고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외교에도 ABM, 즉 Anything but Moon, 문이 전부 잘못됐으니까 다 바꾼다는 것이잖아요. 문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은 틀렸으니, 편을 정하고 전략적 명확성으로 간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전략적 명확성으로 가면 문제가 해결되느냐?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는 겁니다. 제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있는데 ‘편을 정한다고 편해지는 것이 아니다’입니다. 미국의 돌격대를 자처하고, 중국과 러시아와는 불편한 관계로 돌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윤 대통령이 사용하는 용어들이 대부분 미국의 용어를 그대로 반복합니다. 우리나라의 외교 전략이 왜 인도·태평양 전략입니까? 왜 동남아시아에서까지 한미일만 만납니까? 외교는 여러 다양한 카드를 가지고 적절하게 활용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일본 카드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그건 잘하느냐? 그렇다고 볼 수도 없어요. 경제동맹 한다고 하면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안 IRA로 뒤통수 맞고, 일본에는 저자세 외교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저는 외교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대한민국의 시스템이 어느 정도는 견뎌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망가질 줄은 몰랐어요.
- 국제관계 전공 학자로서 지금까지 한미 관계, 한반도 문제를 봐오시면서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도 지금처럼 답이 안 보이는 때가 있었습니까?
굳이 말하자면, 가장 암울합니다. 박근혜나 이명박 정부조차도 이렇게 편향적이거나 이렇게 긴장을 고조시키지는 않았어요. 집권 전에는 보수 후보가 강경한 발언을 하고, 진보 후보가 대미 자율성을 강조하더라도 대통령이 된 후에는 사실 어느 정도 중간으로 오거든요. 특히 외교는 더 그렇습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그렇지 않습니다. 더 강경해지고 더 극우적으로 되었습니다. 전쟁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계속 강경책만 밀고 나갈 수 없습니다. 북한을 압박하는 제재도 아까 말한 것처럼 거의 작동을 안 합니다. 결국 대결 구조를 심화해 코리아 리스크만 계속 키우고 국민은 불안합니다.
- 북한의 ‘도발’에 대해 일부 진영 사람들은 전술핵 배치하고 핵무장 지대로 가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강대강’’ 주장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당위로나 현실로나 핵 보유는 안 될 말입니다. 우리가 개방형 통상 국가로 오늘날 이렇게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과거 냉전 당시처럼 군사 안보에 ‘올인’하고, 핵무기까지 보유한다면 국가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경제력이 10위권이고 군사력이 6위이면 이미 과잉 군사화예요. 분단체제라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핵무기까지는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국제 제재를 받게 될 것입니다. 특히 미국은 결코 한국의 핵 보유를 용인하지 않습니다. 보수 우파들의 금과옥조인 한미동맹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이미 최근의 핵 보유 논란만으로도 미국은 불편한 기색을 보입니다.
- 전술핵에 대해서 추가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핵 확산 방지가 미국의 확고한 정책입니다. 물론 과거에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의 예외가 있기는 했지만, NPT 체제가 핵보유국을 최소로 유지하는 것을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남북한이 동시에 핵무장을 할 경우, 핵 도미노가 일어나게 되는 것을 용인할 리가 없습니다. 전술핵은 더 위험합니다. 미국은 최근에 전술핵이라는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전술핵은 작고 은폐가 용이하기에 핵 확산의 위험도 더 높습니다. 특히 사용 가능성이 높은, 사용을 전제로 한 무기라는 점에서 위험합니다. 지금은 전략 핵무기가 정확도도 높아진 마당에 구태여 유지 보관이 더 힘든 전술 핵무기는 지속해 줄이고 있습니다. 이런 무기를 한국에 배치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 그렇다면 우리 입장에서 외교·안보 정책이나 북한과의 관계에서 우선순위로 세워야 할 과제는 어떤 게 있을까요?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적어도 긴장을 서로 고조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대만을 보십시오. 최근 대만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는 미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중국을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용합니다. 미국과 중국이 대만 문제를 두고 긴장 수위가 높아지니까, 우크라이나가 그렇게 하다가 전쟁이 발발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조용해졌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긴장을 고조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한반도에 가장 필요한 것은 평화 공존입니다. 통일은 먼일이라도 일단 평화공존이라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합니다. 특히 미·중 전략 경쟁 시대에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할 가치입니다. 향후 수십 년간 미·중 전략 경쟁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중이 직접 충돌하기보다는 갈등을 전가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대만, 동중국해, 남중국해, 그리고 한반도가 그런 지점들입니다. 그중에도 한반도는 분단 구조라는 점에서 미·중의 갈등이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크지요. 특히 한반도가 남북이 사이가 나쁘면 전략적으로 미·중이 활용하기 더 좋은 땅이 되는 거예요. 반대로 남북이 적어도 긴장을 관리하고, 안정적 공존을 이루면 미·중 전략경쟁에 동원하기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 그럼 말씀하신 평화공존 안에는 한반도 비핵화가 같이 들어가는 건지요?
저는 이제는 완전한 비핵화, 미국이 주장해온 CVID는 불가능해졌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얼마나 오래 걸리고 어려운 일인지 인식해야 합니다. 목표는 비핵화에 두되, 결국 단기적으로는 핵 통제나 감축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북한이 주장하는 핵 군축 논리를 수용하게 되는 것이고,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것이므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두 단계로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봅니다. 중간 단계로 군축을, 그리고 최종 단계로 비핵화입니다. 비핵화를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아닙니다. 이미 미국에서도 그런 주장들이 나옵니다.
- 마지막으로 〈계간 통일코리아〉 독자들이 대부분 한반도 평화를 꿈꾸는 분들인데, 이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시민사회가 너무 위축되어 있습니다. 특히 평화운동이 침체해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여기에는 문재인 정부의 책임도 일부 있다고 생각해요. 시민사회에도 책임이 있고요. 왜냐하면 문재인 정부 때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 ‘왜 내부 총질하냐?’고 했지요. 그 때문에 시민사회가 스스로 비판을 자제한 측면도 있고요. 사실은 시민단체들은 더 세게 말하고, 정부는 자신의 지지층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는 식으로 미국에 강하게 요구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는 특히 아쉽습니다. 시민단체는 정부를 밀어붙이고, 정부는 그것을 외교적으로 이용했어야 합니다. 다시 시민 평화운동을 살려야 할 때입니다. ‘강대강’의 대결 양상이 날로 심화하는 지금 어쩌면 유일한 희망이 시민단체일 수도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최근 윤석열 정부가 대북 및 외교정책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까 국민이 걱정하고, 관심이 커지면서 목소리도 세졌습니다. 평화가 살길입니다. 평화는 더 이상 이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우리가 살길입니다.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평화는 우리의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