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로 믿는 것과 이해하는 것에 대하여》 원천에 닿는 삶
[394호 에디터가 고른 책]
“요즘 학교에서는 도대체 뭘 가르치는지 모르겠군.”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중 (책과 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 깊은 문장이다. 옷장을 통해 미지의 세계에 다녀왔다는 막내 루시의 말을 믿지 못하는 피터와 수잔에게 디고리 교수가 한 말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가 안경을 닦으며 혼자 중얼거린 말이지만, 작가의 생각이 돌출되는 부분이다. 영화화되지 않은 나니아 연대기 제1권 《마법사의 조카》를 읽은 독자라면, 영화에서는 슬쩍 스치는 저 대사가 더 실감 나게 다가왔을 것이다. 디고리 교수가 한때 아슬란의 나라를 누볐던 경험이 저 말에 응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 발행은 제2권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 약 5년 앞선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고전 13:12)라는 바울의 말에 힘이 실리는 때도 그 세계와 우리가 닿아있다는 것을 정말로 믿는 사람들이 있을 때이다.
많은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런 세계를 부정하지만, 존재한다고 믿고 싶을 때 이 책을 만났다. 철학 서적을 소개하면서 나니아 연대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저자가 이 책에서 스스로 밝히듯 C. S. 루이스의 통찰에 크게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루이스와 톨킨의 풍부한 환상적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스도교 플라톤주의의 기본적인 형이상학적 형태가 무엇인지에 대한 매우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히며, 논지를 이끌어가는 내내 매우 비중 있게 언급하고 있다. 그 외에도 월터 브루그만, 톰 라이트, 존 밀뱅크 등 비교적 익숙한 신학자들이 언급되는 재미에 의지해 낯선 개념이 난무하는 이 어려운 철학 서적을 읽어낼 수 있었다!
저자는 신학, 철학, 사회학을 통합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로 현재는 오스트리아 퀸즐랜드 대학의 인문학 발전 연구소 선임연구원이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 시대가 실재에 대한 이해를 실용주의 실재론에 넘겨주게 된 계보를 설명하고, 고대 그리스도교의 실재에 대한 관점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묵상하며 마주한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고후 5:7)라는 바울의 고백이 더 밀도 있게 다가온 데에는, 이 책의 지분이 없지 않다.
분명 어려운 책이었다. 내 경우는 《순전한 그리스도인 - C. S. 루이스를 통해 본 상상력, 이성, 신앙》(김진혁, IVP)를 함께 읽은 게 큰 도움이 됐다.
이범진 편집장 poemgene@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