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미디어는 정녕 우리를 갈라놓을까
[394호 민민과 생귄의 대중문화 돌려보기]
※이 글은 2020년 6월 4일 열린 제17회 국제사랑영화제 시네포럼 ‘Untact 시대, Contact하다’에서 발표한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변화 중 하나는 온라인 강의나 화상회의 같은 비대면 접촉이 늘어난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다중 접촉이 가능한 형태의 모임은 재택근무, 화상회의, 방구석 콘서트 등 온라인 미팅으로 대체되었다. 사회적 고립감으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사회적 관계 맺기(socializing) 방식의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많은 일이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지면서 개인 정보 유출, 사이버 폭력, 피상적 관계 등 부정적 영향을 염려하기도 한다. 코로나는 물리적 접촉이 제한된 비대면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것인지 질문을 던졌다.
(비록 제한적이긴 하나) 비대면 상황 속 온라인 미디어는 훌륭한 소통 도구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온라인 미디어를 향한 시선은 부정적 경향이 강했다. 인터넷 및 휴대 기기의 발전과 소셜미디어의 등장 등으로 성장한 온라인 미디어 산업이 인류의 소통 방식을 위협하고 사회적 관계를 갈라놓을 것처럼 염려하였다. 이는 가상세계 속 연결 방식이 물리적 접촉과 소통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한 염려이기도 하다. 팬데믹 동안 우리는 ‘비대면-접촉’(untact)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곤 했는데, 방역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물리적 접촉을 금지하는 특수한 상황으로부터 피할 수 없는 근원적 질문, 즉 인류의 삶의 방식으로서 ‘관계 맺기’에 대해 질문하게 된 것이다.
비단 코로나 상황이 아니더라도 대중문화는 그전부터 온라인을 통한 사회적 관계 맺기 방식을 고민해왔다. 특히 가상현실과 온라인 미디어, 소셜미디어(SNS) 등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온라인 세상 속 관계 맺기를 어떻게 상상하고 재현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중문화가 재현하는 가상의 관계
대중문화는 가장 빠르고 유연하게, 때론 비판적으로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사회변화에 문제를 제기한다. 대중문화 속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인간관계 및 삶의 방식 변화를 다룬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A.I.〉(2001), 〈Her〉(2013), 〈마더〉(2019) 등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를 다룬다. 〈토탈 리콜〉(2012),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은 가상현실 세계를 소재로 한 공상과학(S.F.) 영화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최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먼 미래 모습을 상상으로 재현한다.
반면, 비교적 가까운 미래를 상상하고 재현하는 영화도 있다. 주로 정보기술의 발전과 온라인 미디어를 통한 비대면 소통이 집약적으로 증가한 상황을 다룬다. 특히 2010년 이후 SNS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본격적으로 나왔다. 〈소셜 네트워크〉(2010), 〈디스커넥트〉(2012), 〈아메리칸 셰프〉(2014), 〈소셜 포비아〉(2014), 〈언프리티 소셜스타〉(2017), 〈더 서클〉(2017), 〈서치〉(2018), 〈완벽한 타인〉(2018), 〈Feels Good Man〉(2020)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영화들은 온라인 매체를 통한 사회관계의 변화를 어떻게 재현하고 있을까? 크게 네 가지 주제로 나누어 얘기해보고자 한다.
1. 실리적 관계 욕구를 그럴싸하게 만들어주는
2010년 개봉한 〈소셜 네트워크〉는 페이스북 창설자 마크 저커버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살아있는 사람을 소재로, 그것도 당시 20대 중반이던 CEO를 영화화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소셜 네트워크〉는 저커버그 이야기를 다뤘다기보다는 그가 만든 ‘페이스북’의 등장과 SNS 플랫폼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영화로 보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흥미롭게도 〈소셜 네트워크〉 개봉 이후로 SNS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소셜 네트워크〉가 말하는 페이스북 설립 배경은 무엇인가? 미국 보스턴의 명문대인 하버드 대학교에 재학 중인 저커버그는 뛰어난 컴퓨터 프로그래머였지만 연애에는 젬병이다. 보스턴 대학교에 다니는 여자친구에게 차인 후 홧김에 만든 하버드대 여학생 미모 배틀 프로그램이 남학생들 사이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는데, 이것이 페이스북을 만든 배경이 되었다. 결국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가 하버드 대학교 학생들이 내면에 갖고 있던 욕망, 원하는 이성에게 접근하고 싶다는 심리와 하버드라는 특별한 인맥을 확장하고픈 욕구 등을 실현해주는 도구로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는 점을 부각한다. 영화는 저커버그가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친구 신청을 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데, 현실 세계에서 서툴렀던 그의 인간관계가 소셜 네트워크상에서는 통할지 궁금증을 남긴 채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
2. 피상적이고 단절된 사회를 만드는
〈언프리티 소셜스타〉는 SNS상에 보이는 이미지와 실제 자아의 간극, 정서적 동경이나 낮은 자존감 등의 문제들을 직접 다뤘다. 특별히 주인공 잉그리드는 자신이 닮고 싶은 SNS 스타 테일러의 삶을 그대로 흉내 내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 어머니가 유산으로 남긴 재산을 들고 무작정 테일러가 사는 L.A.로 이사한다. 우연을 가장하여 테일러에게 접근한 잉그리드는 테일러와 친구가 되고 꿈같은 시간을 보내는 듯 보이지만, 행복도 잠시, 거짓말이 들통나고 테일러와의 ‘랜선 우정’마저 깨지고 만다. (마치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결국 잉그리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시도까지 하는데, 이마저도 그녀에게 세상의 전부였던 SNS를 통해 이뤄진다. 그동안의 거짓된 삶의 방식들과 미처 다루지 못한 속 얘기를 털어놓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한다. 다행히 그녀의 자살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그나마 곁을 지켜주던 댄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이 영화는 침대에서 깨어난 잉그리드가 자신의 마지막 영상이 SNS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다소 섬뜩한 결말로 끝이 난다.
온라인 플랫폼과 OTT 시장의 발전으로 영화 못지않은 퀄리티의 TV 드라마들도 등장하고 있다.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는 기술 발전과 인간 사회의 관계를 비판적 시선에서 다루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시즌3부터 제작 및 배급을 담당하게 된 넷플릭스가 내놓은 첫 번째 에피소드인 ‘추락’은 개인 SNS 별점 제도에 의해 그 사람의 신뢰도(자산)가 평가받는 사회를 그린다. 사람들은 별점을 높이기 위해 실제 삶보다 SNS 속 이미지 관리에 힘을 쏟는다. 온라인상 이미지가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에선 실제 모습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보여지는 이미지로 평가받는다.
SNS상에서 자신을 꾸미고 보이는 모습을 평가받는 설정은, 조금 확장해보면 한 개인이 사회적 배경(인종, 성별, 나이, 외모, 학력, 직업, 경제력 등)으로 평가받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여기서 SNS라는 공간은 진정한 자신을 감추고 겉모습을 꾸밀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 진실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볼까? 한 설문 조사에서 SNS 이용 태도와 관련한 질문에 67.4%가 ‘SNS에서는 모두 자신의 행복한 모습만 보이고 싶어해’라고 응답했지만, ‘SNS에서 보이는 모습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다’라는 문항에 응답한 비율은 8.2%에 그쳤다.1) SNS가 피상적이고 진실한 소통으로부터 단절된 사회관계를 만든다고 보는 시각이 담겨있는 셈이다. 모델 겸 소셜 인플루언서 에세나 오닐은 2015년 18살이었지만 인스타 팔로어 58만 명, 유튜브 구독자 26만 명의 온라인 스타였다. 그러나 돌연 자신의 모든 SNS 계정을 없애면서 SNS 속 환상과 가공된 삶을 살지 않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화장기 없는 얼굴로 출연한 인터뷰에서 “소셜 미디어는 환상입니다. 모든 사진과 영상은 그저 ‘조회수’와 ‘좋아요’를 얻기 위해서였죠”라고 말하며 그런 삶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한다.2) SNS가 피상적이고 진정한 자아와의 관계를 단절시킨다는 부정적 인식이 담겨있는 사례들이다.
3. 폭력적인 사이버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영화 속 SNS는 범죄의 도구로 전락하기도 한다. 사이버 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등장했다. 2012년 개봉한 〈디스커넥트〉는 〈소셜 네트워크〉 이후 2년 만에 등장한 영화이다. 페이스북이 2004년에 세상에 처음 나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꽤 빠른 대응이다. 이런 배경에는 SNS를 포함하여 현대사회의 변화 속도 자체가 빨라진 점도 있겠지만, 그만큼 SNS 사용과 이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대중적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또한 미성년자 성 착취 동영상을 제작하고 유포한 ‘N번방 사건’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이 사건이 보안과 사생활 보호가 뛰어나다고 여겨지던 채팅 애플리케이션 텔레그램을 통해 이뤄졌다는 점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제2·3의 유사 범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JTBC 영화 전문 토크쇼 〈방구석1열〉은 제106회를 사이버 범죄 특집으로 편성했는데, 〈디스커넥트〉와 〈소셜 포비아〉를 다루었다.
〈디스커넥트〉는 세 가지 다른 이야기를 엮은 옴니버스 영화로, 모두 SNS를 매개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이 나온다. 신디는 어린 아들을 잃고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남편과의 대화마저 단절된 상황에서 그녀가 찾은 곳은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채팅 사이트였다. 그곳에서 심리적 위안을 얻는 것처럼 보였으나, 알고 보니 채팅 사이트를 표방한 피싱 사이트였고 결국 전 재산을 날리게 된다. 지방 방송국 기자인 니나는 성인 사이트에서 미성년자에게 접근해 인터뷰하고 특종을 만들지만, 이내 불법 취재에 대한 수사망에 오르고 인터뷰에 응한 미성년자 카일은 곤경에 빠진다. 평소 친구가 없던 벤에게 SNS(트위터)는 유일한 소통 공간이다. 그를 놀리기 위해 제이슨은 가짜 계정을 만들어 벤에게 접근하고,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처럼 속여 나체사진을 요구한다. 벤의 나체사진을 얻게 된 제이슨은 그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벤은 수치심에 목숨을 끊는다. 이 영화를 연출한 알렉스 루빈 감독은 세 가지 이야기를 하나의 주제로 잘 엮어내는데, 바로 옆의 사람들(특히 가족)과 소통하려 하지 않고 온라인을 통한 관계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초래한 (혹은 초래할 수 있는) 비극적 결말을 보여주며 SNS에 의존하는 피상적 관계를 ‘끊으라’(disconnect)고 주장한다.
일부 연예인들이 인터넷상에서 악의적 댓글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는 사례들이 반복되고 있다. 〈소셜 포비아〉는 사이버 해킹과 인신공격, 협박 등의 사이버 문화가 실제 폭력과 살인 사건으로 연계된 이야기를 통해 사이버 범죄의 심각성을 알린다. 이 밖에도, 〈더 서클〉(2017)은 기술 발전과 더불어 모든 개인의 신상 정보가 공개되는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생활 침해 문제와 감시·통제가 일상이 되는 ‘빅 브라더’ 사회를 극적으로 보여주어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렇게 영화·대중문화는 온라인 매체로 인한 부정적 사례들을 보여주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3)
4. 긍정적/도구적 재현의 예
그나마 〈아메리칸 셰프〉가 SNS를 긍정적 시각에서 다루는 사례다. 유명 요리사 칼 캐스퍼는 레스토랑에서 메뉴 결정권을 뺏긴 채 경영자가 원하는 스타일의 음식만을 요리하는 삶에 불만을 느낀다. 그런 가운데 평론가에게 혹평받자 이성을 잃고 평론가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이 장면은 레스토랑에 있던 손님들에 의해 녹화되고 트위터를 통해 생중계되고 또 리트위트되어 퍼져간다. 이 일로 칼은 하루아침에 해당 레스토랑은 물론 다른 곳에서도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고민 끝에 그는 푸드 트럭을 시작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쿠바 샌드위치를 팔기로 한다. 때마침 이혼 후 떨어져 살며 서먹해졌던 어린 아들이 푸드 트럭 여정에 동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칼은 요리하는 기쁨을 찾고, 아들은 그런 모습을 트위터에 공유한다. 그의 음식과 반전 이야기가 트위터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그는 욕쟁이 요리사에서 다시 일약 유명 셰프가 된다. 혹평을 쏟았던 평론가마저 그를 찾아와 좋은 조건의 새로운 일자리를 제안하며 이야기는 해피 엔딩으로 끝이 난다. SNS는 사람을 순식간에 망치기도 하지만, 다시 일으키기도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서치〉(2018)는 화면 구성을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 모니터 등으로만 연출하여 긴박하고 몰입감 있는 이야기 구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겪은 후 데이빗은 딸 마고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마고 또한 아빠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한다. 어느 날 부재중 전화 3통 이후로 연락이 되지 않자 데이빗은 딸이 실종된 사실을 알게 된다. 마고 친구들에게 수소문해 보지만 찾을 길이 없다. 마고가 속마음을 털어놓는 친구들은 학교 친구들이 아닌 SNS를 통해 알게 된 이들임을 알게 되고, 데이빗은 딸의 노트북과 SNS 계정 등을 통해 딸의 행방을 추적해가며 놀라운 진실과 마주한다.
이 영화에서 감독의 시선은 SNS 자체를 부정적으로 재현한다기보다 딸이 현실에서 도피해 온라인 친구를 찾아가는 통로이면서, 범죄에 이용당하게도 만들지만 딸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온라인 미디어는 그저 도구로서 존재할 뿐이다. 결국 이 과정에서 부각되는 것은 아버지 데이빗과 딸 마고의 상처, 깨어진 관계, 후회와 회복을 위한 노력 등임을 알 수 있다.
기술이 모든 걸 결정하진 않는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영화 및 대중문화가 SNS와 그곳에서 일어나는 관계를 부정적으로 재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소수의 특수 사례들의 부정적인 면만을 두드러지게 함으로써 사회적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영화적 재현이 내포하는 문제의식에는 동의하지만, 비판점 또한 존재한다. 주로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사례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영화 속 비극적 결과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지만, SNS를 사용하는 모두에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SNS의 부정적 측면만 강조하면, 결국 SNS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극단적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과연 우리는 SNS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더 좋은 세상이 도래할까? SNS를 사용하기 이전 시대는 지금 보다 좋은 시대라 확신할 수 있을까? 진짜 문제는 SNS가 아니라, 누가 어떻게 어떤 사회구조에서 SNS를 사용하고 있는가이다.
SNS에 대한 대중문화의 성찰은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셀러브리티〉(2023)는 SNS와 인플루언서를 소재로 다루는데, 흥미로운 점은 인플루언서 개인의 욕망과 타락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사회구조적 문제에도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SNS가 모든 것을 뒤바꿀 것 같은 두려움을 나타내지 않고, SNS를 통해 이뤄지는 다양한 층위의 문제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사회적 거리가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SNS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기술 발전이 가져올 사회 변화에 대한 무지와 두려움이 컸으며, 그 결과 SNS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해 재현하는 경향이 있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SNS의 이용과 환경에 적응하며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대신 양가적 기능이 존재함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결국 SNS를 활용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대중문화는 이제 정보 통신 기술 발달이 인류 사회의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온라인 미디어 같은 기술 환경의 변화는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지만, 모든 변화가 기술에 달린 것은 아니다. 이른바 매체(기술) 결정론적 주장은 재고할 여지가 있다. 매체 혹은 기술 결정론이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이 소통 방식을 결정짓는다는 주장이다.4) 예를 들어, 과거 공중전화를 사용하던 시기에는 사람들이 전화를 사용하려면 줄을 서야 했고 동전을 넉넉히 준비해야만 했다. 휴대폰이 발명되면서부터는 그런 풍경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잘 생각해보면 매체가 모든 것을 결정하진 않는다. 여전히 공중전화도 존재하고 집 전화도 존재한다. 개인 휴대전화가 생기면 (기술적으로는) 더 이상 만나서 얘기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전화보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전화로는 알 수 없는 비언어적 소통들, 얼굴, 몸짓, 냄새, 분위기, 반응속도 등은 기술 발전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다시 말해,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고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user)이 결정하는 셈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사용자 역할이 점차 중요해진다. 과거 청중(audience)은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역할에 그치곤 했다. 반면, 오늘날 뉴미디어 환경에서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동시에 누구나 콘텐츠를 제작하고 공유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 사용자 역할은 결정적이다. 수년 전 사라졌던 콘텐츠가 회자되고 유행을 일으키기도 한다. 〈Feels Good Man〉(2020)은 미국 유명 만화 캐릭터인 페페(Pepe the Frog)가 온라인상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변화하는지 과정을 보여준다. 페페가 ‘기분 조타’(Feels Good Man)라고 말하는 이미지는 온라인상에서 많은 화제가 되고, 일종의 ‘밈’(meme), 번역하면 ‘짤’ ‘유행’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나게 했다. 문제는 페페 이미지를 악용하는 사례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미국 내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페페 이미지를 백인 우월주의와 혐오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공유했다. 만화가는 청년 시절 소소한 우정의 순간들을 만화로 그렸지만, 의도와 달리 온라인 유저들은 페페 이미지에 자신들의 욕망을 투영시켰다. 작가의 의도나 모니터 속 페페보다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선택이 그 성질을 결정했다.
비대면(untact) 시대, 따뜻한 연결(ontact)의 윤리
온라인 미디어와 인간관계에 대해 그동안 있었던 질문은 기술 환경이 바뀌면 인류 사회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묻는 것이었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우리는 어떤 관계를 선택할 것인가?” 물어야 한다. 김정기는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변화해도 인류가 서로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그는 인간의 특성을 소통의 욕구를 가진 존재로서 ‘소통하는 인간, 호모 커뮤니쿠스’로 정의한다.5) 인류는 인터넷 및 SNS를 통해 소통 범위를 확장해갈 것이며 그 방향은 단절이 아닌 연결이다. 결국 소통 주체인 우리가 ‘누구와 무엇을 위해 소통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에 따라 미디어 사회 속 관계의 양상은 달라질 것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대중문화는 미디어로 인한 사회관계의 단절을 우려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미디어는 인간관계를 단절하게도, 연결하게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지나치게 연결되어 있어서 문제인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김정미는 뉴미디어 시대 속 인간을 ‘연결된 개인’으로 정의한다.6) 기술은 연결을 확장하고 증폭하는 도구이다. 따라서 미디어를 통한 사회적 관계의 미래 전망은 양가적일 수밖에 없다. 사회학자 박찬호는 코로나 기간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접촉 양상을 살피면서 온라인 공간이 “자기 과시와 위세 경쟁 속에서 열등감과 질투심을 자아내는 쇼케이스가 될 수도 있으며, 지친 삶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는 회복의 터전이 될 수도 있다”고 언급하며, 향후 미래의 열쇠를 ‘비전과 지향’으로 정리한다. 즉 “무슨 정체성을 공유하는가, 어떤 삶과 사회를 소망하는가에 따라 비대면 관계의 성격이 좌우”될 것이라고 호소한다.7)
오프라인에서도 ‘비대면’이 있을 수 있고, 온라인에서도 ‘대면’이 이뤄질 수 있다. 한 공간에 머물러 있어도 각자 다른 세계에 빠져 있다면 사실상 대면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화상 시스템을 통해 서로를 오롯이 응시하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면 충만한 대면이 경험된다. 대면이냐 비대면이냐가 아니라,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대면의 반대말은 비대면이 아니라 ‘외면’이다.8)
이제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우리는 우리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은 어떤 사회를 위한 연결을 원하는지 묻는 데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위한, 나의 욕망을 위한 연결이 아니라, 타인과 관계를 유지하고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는 소통 방식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는 연결된 공동체로서 존재하기 위한 사회적 관심(social interest)과 관계 맺기(socializing)가 필요하다.
팬데믹 기간에 유행한 ‘온택트’라는 신조어는 이런 사회적 필요와 삶의 방식으로서의 요청을 잘 드러낸다. 온택트는 켜짐과 꺼짐을 나타내는 on-off의 on과 contact의 합성어로, 물리적 접촉이 힘든 언택트(untact) 상황에서도 항상 연결될 필요가 있음을 나타낸다. 온라인 시대에서 항상 연결되어 있자는 의미인 ‘올라인’(all-line)이라는 표현도 존재한다. 하지만 온택트의 또 다른 해석과 적용이 눈길을 끈다. 따뜻하다는 의미의 한자어 온(溫)과 contact를 이어서 ‘따뜻한 연결/접촉’이라는 뜻의 ‘온택트’(溫+tact)가 완성되었다. 다소 억지스러운 조합이지만, 의미만은 가장 마음에 든다. 비대면-온라인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은 인류 사회의 관계 맺기 방식을 바꾸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와 스마트 기기의 발전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초연결 시대를 가능하게 한다. 이런 변화의 특징은 시공간적 한계를 넘어서며 비대면 접촉을 하지 않고도 연결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물리적 거리’를 두면서 일정한 ‘사회적 연결’이 가능해진 세상을 말한다. 미디어를 통해 연결이 확장되거나 단절되는 것을 염려하는 영화적 재현들에도, 결국 물리적 거리가 변화해도 사회적 거리(연결)는 유지하길 바라는 의도가 내재돼있다.
우리는 온라인 미디어를 통하여 어떤 관계 맺기를 바라고 상상하는가? 그것은 우리를 규정하는 믿음(가치와 비전)과도 관련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만을 위한 ‘물리적 거리두기’를 넘어 ‘따뜻한 관계 맺기’를 통해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상상하고 실천하길 기대한다.
민민의 한마
늘 조금은 까칠한 태도를 유지하려는 저이지만, 이번 글, 특히 마지막 ‘온택트’(溫+tact) 부분에 매우 수긍하게 되었습니다. 생귄님의 평소 태도가 생각나기도 했고요. 결국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쓰는 기술인데, 우리는 참 많은 것을 걱정해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한편으론 우리가 좋은 마음을 먹으면 될 일인가, 의문도 듭니다. 기술의 개발과 보급에는 늘 자본이라는 권력과 편의라는 습관이 따라가기 마련이니까요. 생귄님 이야기처럼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그렇게 기술에 비판적이었는데, 이제 온라인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니, 기술의 힘, 정확히 말하면 기술을 퍼뜨리려는 힘은 참 무섭습니다. 이건 아무리 우리가 따뜻한 마음을 먹는다 해도 이겨내기 쉽지 않겠어요. 쉽게 말해 ‘온택트’가 돈이 되지 않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사실 편하진 않지요) 좋은 의미와는 관계없이 버즈워드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지요.
더불어 기술에 순응적인 교회를 생각하게 되네요. 신기술이 등장하기만 하면 어떤 종교보다 빠르게 받아들이고 상용화하는 얼리어답터 한국 개신교회. 온라인 미디어 기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어디 가고, 어느덧 온라인 예배를 드리지 않는 교회가 없고, 메타버스 교회를 만드느니 어쩌니 하더니 이제는 생성형 AI를 이야기하는 (기술 도입만큼은) 참 가벼운 태도를 보인다 싶습니다. 종교에 있어 매개 기술이 필수적인 것은 맞지만, 꼭 신기술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죠. 아니, 이건 필요와 관계없이 이유를 따져봐야 할 문제 아닌가요? 왜 우리는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는가? 정말 기독교 신앙에 필요한 것인가? 필요의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만 보편화할 필요는 없는데요.
아, 맞다! 따뜻한 마음, 따듯한 마음. 그래요. 우리 (한국 개신교) 다음부터라도 기술 도입에 있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요. 제발.
1) 이 글은 2020년 6월 4일 열린 제17회 국제사랑영화제 시네포럼 ‘Untact 시대, Contact하다’에서 발표한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2)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2017 SNS 이용 및 피로증후군 관련 인식 조사’ 참조.
3) 허솔지, ‘[지금 세계는] SNS 스타 소녀의 충격 고백…“환상에서 나와라”’, KBS뉴스(2015.11.4.)
4) 그 이유로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부정적 사례가 영화적 소재로 더 적합하고 사람들 관심을 끌기 쉽다는 점도 있고, 미디어를 대할 때 걱정과 염려, 공익과 윤리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대중적 시선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겠다.
5) 김은미, 《연결된 개인의 탄생》(커뮤니케이션북스, 2018), 1-15쪽 참조.
6) 김정기, 《소통하는 인간, 호모 커뮤니쿠스》(인북스, 2019), 340-362쪽 참조.
7) 김은미, 《연결된 개인의 탄생》(커뮤니케이션북스, 2018), 230-236쪽 참조.
8) 박찬호, 《비대면 대면 외면》(문학과지성사, 2022), 98-99쪽 참조.
9) 위의 책.
■ ‘민민과 생귄의 대중문화 돌려보기’는 이번 회로 연재를 마칩니다.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과 지면을 빛내주신 두 필자에게 감사드립니다.
김상덕(생귄)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평화를 위한 언론사진의 역할에 대한 공공신학적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사회의 다양한 갈등의 문제들을 문화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평화와 화해를 위한 교회의 공적 역할과 다양한 창조적 실천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커피를 좋아하고,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추구한다. 미술 작가인 아내(민정See)와 평범한 이상주의자로서 현실을 살아내려고 발버둥 치는 중이다. 현재 학교 강의와 글쓰기, 방송 및 유튜버 등 N잡러의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