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증언》 간토 학살 100주기, 비극을 응시하다
[395호 에디터가 고른 책]
이재민 340만 명, 사망자 9만 명, 부상자 10만 명, 행방불명자 4만 명… 100년 전인 1923년 도쿄와 간토(關東) 일대를 강타한 진도 7.9 강진이 남긴 상흔은 참혹했다. 이 사건은 일본 방재 정책에 크나큰 전환점이 되었다. 일본 정부는 재난이 발생한 9월 1일을 ‘방재의 날’로 정하고, 이날을 포함한 1주일을 방재 주간으로 지켜왔다. 올해는 간토대지진 100년을 맞아 방재 훈련을 적극 실시하라는 지시를 공공기관 및 지방단체에 내려보냈다고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일본이 간토대지진 직후 발생한 학살의 책임은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학살은 대지진 직후 “조선인들이 불을 지르고 다닌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탄다” “조선인들과 공산주의자들이 습격한다”는 날조된 소문에 근거해 (이 유언비어 배경에는 일본 국가가 있었다) 6천 명이 넘는 조선인, 7백 명이 넘는 중국인, 일본인 사회주의자·노동운동가 등이 죽임당한 사건을 일컫는다. 도쿄에만 3,600개 넘게 조직되어있던 민간단체 자경단이 군대·경찰·헌병의 지원 아래 낫·죽창·도검·총 등 흉기로 무장하여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도 일본 정부는 ‘간토 학살’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1923년 12월 제국 의회에서 당시 총리가 “현재 조사 중”이라고 밝혔던 점을 고려하면 100년째 회피성 발언만 이어온 셈이다. 100주기를 맞아 언론의 기획 보도, 연구서·단행본 발간, 추모 행사가 이어지는 와중에 윤석열 정부마저 ‘모르쇠’로 일관하니 씁쓸함이 가중된다.
국가적 참사는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가? 한일 연구자들 기록, 한일 문학가들 작품, 진실을 증언해온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참상을 전하는 이 책 출간이 뜻깊다. 연구 및 현지답사 등 20년 노고의 결정체다. 저자는 조선인 학살 요인을 6가지로 정리하고, 지진과 학살을 직접 목격한 일본 시인 쓰보이 시게지의 장시 〈15엔 50전〉 전문도 번역해서 싣는 등, 다각도로 비극적 진실에 다가설 수 있도록 돕는다.
“기억해야 할 과거를 의도적으로 삭제하는 짓은 죄악입니다. ‘삭제의 죄악’에 맞서 ‘기억의 복원’이 필요합니다. 다시는 그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과거의 흉터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 비극을 차분히 응시하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만, 이 작은 책이 이 지리멸렬한 시대에 고통과 치유의 구심점에서 한일 시민이 만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강동석 기자 kk11@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