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정원
[395호 정원의 길, 교회의 길]
가을이 오면 국화 전시 준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그동안 가꿔온 수백 본의 국화들 수형을 잡아주고, 꽃봉오리가 최대한 많이 생기도록 마지막 순치기를 한다. 최근 정원 트렌드에 비하면 다소 고전적이지만 국화는 여전히 가을을 대표하는 꽃 중 하나다. 뉴욕식물원 국화 전시의 역사는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제임스 헤스터 뉴욕식물원장은 일본 황실 소유의 신주쿠 교엔 국민정원(新宿御苑 国民公園)의 국화 전시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마침 뉴욕식물원의 2년제 원예 전문가 과정(School of Professional Horticulture)을 막 졸업한 일본인 이사오 아다치 씨가 고국으로 돌아갔다가 일본의 전통 국화 기술을 갖고 식물원에 입사하면서 전시 기획이 본격화되었다. 메이지유신 시절부터 일본 황실에서 관리하던 전통적인 방식의 국화 전시가 해외에서 열린 것은 뉴욕식물원이 최초였다.
전통 일본 국화는 꽃과 꽃잎의 모양에 따라 13가지 유형으로 분류되고, 식물체의 전체 모양을 만드는 방식에서 다시 5-10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그중 가장 고난도 기술로서 오랜 시간까지 요하는 방식은 오주쿠리(大作り)인데, 직역하면 대작(masterpiece)이라는 뜻이고, 영어로 표현할 때는 보통 천 송이 국화(a thousand bloom)라 부른다. 한 포기 국화에서 천 송이 꽃이 나오게 하는 일은 기술과 예술의 극한에 가깝다. 특히 꽃봉오리가 생길 가지들을 고르게 배열하려면 특수한 프레임을 제작해야 하고,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고된 작업이 뒤따른다. 뉴욕식물원에서는 시간과 비용의 제약 때문에 200-300송이 규모로 작업하는데, 미국 식물원 중 전통 일본 국화 전시를 가장 큰 규모로 개최하는 펜실베이니아 롱우드 가든에서는 실제로 국화 한 포기에서 천 송이 꽃을 뽑아낸다.
많은 정원사가 국화 작업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꽃송이를 배열하고 수형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자재와 소모품들이 쓰고 버려지는 과정에서 마음에 큰 불편을 겪는다. 천 년 세월의 교배를 거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품종들이라 병충해 저항성이 거의 없고, 이 때문에 살충제 사용도 빈번하다. 전시가 끝나면 무대에 섰던 수백 본의 국화들은 모두 폐기된다. 식물원은 미술관, 박물관 등과 더불어 문화 기관(Cultural Institute) 정체성도 있는 데다, 각국의 다양한 식물과 더불어 그 식물과 연계된 고유한 문화와 원예 기술을 보유한다는 것은 식물원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정원사들은 직업 정신으로 이 작업을 감당해오고 있다.
자연을 위한 정원
그래서 국화 작업을 하는 날에는 자주 머리를 식혀야 한다. 업무를 마치면 발걸음은 자연히 자연을 닮은 정원들로 향한다. 10월은 정원 식물들이 유전자에 간직했던 색상의 마법을 펼치는 시절이다. 원숙한 오후의 햇살을 받아 빛을 내거나, 그 빛을 품고 바람에 하늘거리거나, 나비의 화려한 날개와 어우러지거나, 가만히 있거나, 10월의 식물들은 어떤 모습으로도 한 해의 절정을 살아간다.
미국 동부의 국화과 식물인 아스터 꽃잎 틈에서 제왕나비 한 마리가 눈에 띈다. 이 나비는 곧 먼 길을 떠날 것이다. 곤충 중에서 흔치 않게 회유성(回遊性)인 제왕나비는 북미에서 이동을 시작하여 남쪽으로 멕시코까지 간 다음에 거기서 겨울을 나고 다시 미국을 거쳐 북쪽으로 캐나다까지 올라가는데, 여정 중에 번식을 한다. 이 여행의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서식지를 옮겨 다니면서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지역의 토착 바이러스나 질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1)
그 때문에 제왕나비에게 이곳은 광야 순례길의 오아시스와 같다. 이 정원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이 나비와 조상들에게 수천수만 년 동안 꽃가루와 꿀을 공급해왔다. 이곳이 자생식물 정원이라는 점이 얼마나 다행인가. 긴 여행에 앞서 든든하게 채비할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이 나비에게서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의 모습을 본다. 놉의 제사장에게 진설병을 받아먹고 무기를 얻어가던 장면을 생각한다. 다윗이 거짓말을 늘어놨던 곳, 다윗을 도운 제사장이 사울의 부하에게 참혹한 죽임을 당했던 비극의 현장(사무엘상 21-22장)이지만, 나는 다윗이 몸과 영혼을 추스르던 그곳을 성소라 부르고 싶다. 캐나다에서 멕시코까지 먼 여행을 떠나는 나비 한 마리에게 먹을 것과 쉴 곳을 내어주는 도심 속 식물원은 그런 곳이다.
식물 종을 보존하고 종 다양성을 지키는 일은 식물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내가 근무하는 비공개 온실 단지에는 사막 온실이 있다. 여길 드나들 때마다 눈길을 끄는 식물들이 있다. 멕시코에 자생하는 선인장의 한 종류인 아리오카푸스(Ariocarpus)속 식물이다. 불법 채취 후 해외로 밀수하려던 것이 발각되어 압수당했는데, 관세 당국이 관리할 곳을 찾다가 결국 이곳으로 보내졌다.
미선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토착 식물이며, 국내 주요 군락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자연 상태에서는 매우 희귀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시장에서는 정원용수로 보급되고 미국 식물원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미국 조지아 남동부 일부 지역에서 자생하던 프랭클린 나무(Franklinia alatamaha)는 19세기 이후로 야생에서는 멸절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원에서는 흔하다. 이처럼 식물원은 여러 방법으로 희귀하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들을 보존하고 복원한다. 어떤 식물이 희귀하다는 것은 그 식물 자체의 희소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식물의 서식 환경이 매우 독특하다는 뜻이다. 여러 이유로 고유한 미세 기후와 생태를 구성하던 이 서식 환경이 파괴되면서 식물이 희귀해지거나 멸종에 이른다. 아파트 재개발 사업 후 지역에 오래 정착했던 사람들이 쫓겨나고 그곳에 스며든 문화까지 모두 사라지는 일과 같다. 식물원에서는 개별 식물들의 생존과 보존을 넘어서 서식 환경의 복원과 더불어 그곳의 식물군락(plant community)을 복원해내는 것을 추구한다. 그저 아름다운 식물들을 모아놓는 것을 넘어 지역 식생과 어울리는 식물들 조합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사람을 위한 정원
정원이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여행자 나비에게 오아시스 같다면, 경쟁적인 사회에서 지친 사람들에게도 그럴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정원은 가장 가까운 정원이라 생각한다. 만일 ‘식물원 사용 설명서’ 같은 책을 쓴다면 첫 장에는 식물원의 연간회원이 되라는 얘기를 쓰려 한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공정원의 연간회원권을 구매한 후 언제든 내 집 마당처럼 이용하는 것이다. 회원권 가격이 제대로 책정되었다면 보통 3-4회 방문하면 본전은 뽑는다. 과거 우리나라 정원들은 관광지가 되고자 했다. 많은 식물원과 수목원들이 대중에게 과도하게 식물 공부를 시키려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인식 속의 식물원은 한 번 가고 마는 곳, 꽃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곳, 또는 지루하고 어려운 장소가 되었다. 그보다는 집 주변의 공원처럼, 식물원을 관광지가 아닌 생활 터전으로, 일상 공간으로 이용하는 것이 그 가치를 향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뉴욕식물원 개장 시간은 오전 10시다. 그런데 오전 7시에 입장이 가능한 연간회원 제도가 있다. 출근할 때마다 이른 아침에 식물원을 산책하는 어르신 몇 분과 마주친다. 이분들은 담소를 나누며 걷기도 하고, 수백 그루의 라일락이 내려다보이는 라일락 컬렉션 전망대에서 체조를 하기도 한다. 서늘한 오전에는 식물원 바로 앞의 포덤 대학교(Fordham University) 학생들이 운동하는 모습도 보인다. 두어 명이 함께 뛸 때도 있고, 운동부처럼 보이는 학생들 여럿이 줄지어 달리는 모습도 보인다. 짙은 그늘 속 벤치에 앉아 책 읽는 모습도 흔하고, 커다란 렌즈가 붙은 카메라를 들고 새들을 관찰하는 탐조(㤾鳥) 마니아도 여럿이다. 이 사람들은 한 해 백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식물원에 온 것이 아니라, 일상을 보내기 위해 자신들의 삶과 가장 가까운 곳에 온 것이다.
먼 길 떠나는 나비가 쉬어가듯이, 광야를 헤매는 다윗이 음식과 무기를 공급받듯이, 식물원은 삶의 무게에 지친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충전하는 곳이다. 식물원을 방문했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들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 식물에 담긴 문명과 문화의 이야기, 생태적 관점들, 그리고 미학적 가치들이 대중에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정원사들은 ‘해석’이라 부른다. 뉴욕식물원에서는 부원장급 임원이 이 일을 총괄한다.
“(이곳에 오시면) 누구나 자신만의 식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Everyone can find their own version of botanical garden).” 취임 3년째를 맞는 제니퍼 번스타인 뉴욕식물원장이 얼마 전 한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말한 내용이다. 식물원은 매 계절이 다르고, 식물원 안에서도 곳곳의 정원이 다르다. 같은 식물 앞에서 사람들은 다른 것을 경험한다. 이것이 해석의 힘이다. 해석은 사람들에게 식물 공부를 시키는 것이 아니다. 나와 식물의 관계,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인식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우리가 정원에서 느끼는 충만한 감정은 나 스스로 그 정경을 감상하고 해석한 시간들의 열매이다. 친구 인스타그램 속 사진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일보다 훨씬 즐겁고 의미 있는 경험이다. 나는 정원을 감상하는 주관이 깊어지길 바라는 만큼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는 관점이 확장되길 바란다. 누군가에 의해 결론이 내려진 메시지를 소비하기보다, 매일 천천히 세밀하게 정원을 감상하듯 성경 텍스트를 살피고 스스로 해석할 수 있길 바란다.
정원사에게 식물원은 어떤 곳일까.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전지가위를 들고 있는 우아한 모습 같은 것은 없다. 참고로 뉴욕식물원의 장미 정원(Rose Garden)은 가장 노동 집약적인 곳으로 악명이 높다. 그늘 한 점 없는 광활한 공간에서 가시로 무장한 장미 덩굴을 헤집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부담스럽다. 게다가 장미들도 국화처럼 인공적으로 교배된 품종이 대부분이라서 식물이 걸릴 수 있는 거의 모든 병에 취약하다. 많은 현장직이 그렇듯 식물원 업무 중에는 위험한 일이 많다. 설비를 다루거나, 보안과 경비를 담당하는 부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원사들이 속한 원예부(Department of Horticulture)도 그렇다. 높다란 크레인 위에서 기계톱으로 나무를 자르거나, 고압 분사기로 암석 지대 흙을 파헤치거나, 우주복 같은 방제복을 입고 한번에 200리터 가까운 농약을 살포하기도 한다. 그래서 직원 보호를 위한 규정들이 엄격하게 적용된다. 산업 안전에 대한 사항은 미국의 노동안전청(OHSA)에서, 농약 사용에 관한 규제는 연방환경청(EPA)에서 관장하고,2) 지방정부는 그 법규들보다 더 세부적이고 엄격한 규정들로 사업장을 관리한다. 사고가 없었다 하더라도, 절차 위반이 적발되는 경우 회사에는 막대한 벌금이 부과된다. 식물원에서 수행되는 수많은 업무가 이 규제들 영향을 받는다. 산업 안전 규제가 처음부터 이렇게 철저한 것은 아니었다. 한 예로, 수목관리학(Arboriculture) 수업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수목 관리 서비스 회사의 안전 규범 책자를 부교재로 사용했다. 그 회사는 1907년에 설립되었는데, 두툼한 안전 규정의 많은 부분이 기계톱에 의한 부상, 추락, 전선에 의한 감전, 뱀과 벌의 공격 등 나무 작업 중에 벌어진 사고 사례들이었다. 지금의 까다로운 규제는 100년 넘는 세월 동안 벌어진 무수한 재해의 결과들로 생긴 것들이었다. ‘아픔이 길이 된’ 결과다.
식물원의 주인공은 식물만이 아니다. 식물원은 보존이 시급하거나, 토종 생태계를 대표하는 다양한 식물들(plants)과 더불어 그것을 향유하거나 돌보는 사람들(people), 그리고 생태적·역사적·문화적 의미가 부여된 식물원의 장소(place)가 함께 보호되는 곳이다.
사회를 위한 정원
공중보건학자 김승섭 교수는 산업재해로 피해를 입은 개개인에게 집중하기보다, 그 문제의 ‘원인의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3) 사회 속에 내재된 불의, 구조화된 악을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산업혁명이 발흥한 영국은 일찍이 이 문제에 눈을 떴다. 오늘날 도시공원의 기원을 19세기 런던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당시 런던은 인구가 급속하게 도시로 유입되면서 공장 근로자의 위생과 건강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많은 독지가들이 사유지를 공원 용지로 개방하면서 오늘날 공공정원의 시초가 되었다. 공장 내부의 열악한 환경, 매연으로 덮이고 건물 그림자로 어두워진 거리에서 숨이 막혔던 도시 서민들은 공원으로 나가 비로소 맑은 공기와 밝은 햇살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4)
우리나라 대도시들도 절대적인 녹지 면적이 부족할 뿐 아니라, 그 혜택을 누릴 기회도 평등하지 못하다.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일수록 공원이 가깝고, 그렇지 않은 곳은 공원도 멀다는 사실을 여러 연구가 보여준다.5) 고급 아파트 단지 내 조경은 국제적인 상을 받을 정도로 훌륭하고, 호수 공원 주변 집값은 아파트 높이만큼 비싸다. 상식적으로 당연한 현상이라고 이해될 수 있지만, 이것이 상식이라면 참으로 서글프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는 고발은, 이 서글픔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6)
세계적인 대도시 뉴욕은 많은 사람들에게 맨해튼을 의미한다. 사실 뉴욕시는 맨해튼, 퀸스, 브루클린, 스태튼아일랜드, 브롱크스 등 다섯 자치구로 이루어져 있다. 뉴욕식물원은 브롱크스 한가운데 있는데, 이 지역의 1인당 연평균 소득은 다섯 개 자치구 중 최저이고 뉴욕시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라틴아메리카 출신 인구 비율은 자치구들 가운데 가장 높다.7) 가난한 이민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브롱크스 파크 한쪽에는 미국 도시 공원 중 최대 규모인 뉴욕식물원이 자리 잡고 있고, 도로를 하나 사이에 두고 런던 동물원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브롱크스 동물원(Bronx Zoo)이 마주하고 있다. 우연이든 계획이든 뉴욕에서 가장 큰 공원들이 가장 가난한 동네에 자리 잡았다는 점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러나 뉴욕식물원 입장료는 평소 약 35달러 수준이고, 특별 전시가 열리는 시기나 성탄절 전후에는 65달러, 약 8만 원에 이른다. 아무리 가깝다 하더라도 자주 찾기에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하지만 매주 수요일마다 브롱크스 지역 주민들에게 식물원이 무료로 개방된다. 매일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연간회원권도 지역 주민은 할인 혜택을 받는다. 특별 전시가 열리면 지역 아티스트들이 초청되고, 수요일마다 식물원 도서관 앞에서 열리는 장터에는 로컬 업체들이 농산물과 수제 식료품을 준비해 자리를 편다. 거의 매일 인근 유치원과 초중고생들의 현장 수업이 열리는데, 식물원을 찾는 학생들 규모는 연인원 10만 명에 이른다. 뉴욕 시립대(CUNY)와 브롱크스 전문 대학(Bronx Community College) 등 지역 대학 학생들은 현장 실습, 자원봉사, 인턴 근무를 위해 끊임없이 식물원을 드나든다. 언젠가 식물원은 그들의 일터가 될 것이다. 현재 뉴욕식물원 임직원 수는 약 520명이다. 정원사는 물론 보안과 경비 요원, 시설 관리 인력, 청소 인력도 모두 풀타임 근무자, 우리나라 방식으로 표현하면 정규직이다. 이들 대부분 뉴욕시 공공노조에 속해있으며 공무원과 유사한 복지 혜택이 적용된다.
번스타인 원장은 취임 이후부터 지역과의 연계 사업에 큰 비중을 두었다. 식물원의 마케팅은 소비자 개인을 넘어, 브롱크스라는 지역과의 연계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 대의는 기업이나 명망 있는 가문 등 대형 스폰서로부터 후원과 기부를 유치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기부하는 입장에서도 식물원이라는 단일 기관을 넘어 식물원이 지역과 형성하고 있는 관계성에 후원할 수 있다는 점은 좋은 명분이다. 이런 방식으로 식물원은 대형 스폰서들을 지역과 연결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로 표현하면 ‘통로’가 되는 셈이다.
만물을 위한 정원
창세기 원역사에서 에덴동산의 기능 중 하나는 먹을 것을 제공하는 데 있었다. 최초의 정원이자 첫 성전인 에덴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자급 공동체였다. 교회가 성전의 본질을 계승했다면 교회에도 영적인 의미로든 육적인 의미로든 늘 먹을 것이 있어야 한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성도의 이동이 잦은 편이다. 유학생들도 적지 않고, 많은 성도가 지역의 큰 반도체 회사의 직원 가족인데, 반도체 경기나 회사 상황에 따라 이동이 빈번했다. 짧게는 2-3년부터 길게는 10년 가까이 머물다 가는 유학생과 직장인 가족들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비시켜 떠나보내야 할까. 교회가 안고 있는 오랜 과제이다. ‘나그네’라는 영적, 현실적 실재를 경험하는 성도들을 위해 환대와 파송의 역량을 키워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밖으로 지역에 눈을 돌리게 되면서 지역 조사를 위해 구글 지도를 살피다가 우연히 영어로 된 리뷰를 보게 되었다. 조그만 한인교회에 무슨 리뷰를 남길 것이 있나 싶었는데, 손녀가 교회 놀이터를 너무 좋아한다는 내용이었다. 교회가 자리한 동네 현실을 고려하니 엄마나 아빠를 일터로 보낸 어린아이가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한 줄의 리뷰는 지역에 대한 우리 교회 역할에 눈을 뜨게 했다. 변변한 공원이 없는 이 동네에 아름다운 숲 정원을 열어줄 수 있다면. 이웃들이 이곳에서 자연이 공급하는 넉넉한 자원을 향유할 수 있다면. 침입종 식물들에게 빼앗긴 자생식물들을 위한 생츄어리가 될 수 있다면. 나그네 인생의 여정 가운데 이 교회를 거쳐가는 성도에게,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그리고 먼 길 떠나는 나비 한 마리에게 먹을 것을 대접할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다면. 부유한 동네에서 더 화려해지고, 사회적 약자들이 억압받고, 생태 감수성이 희미해지는 교회들 속에서 나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정원을 걷는다.
1) 이강운, ‘0.45g 몸으로 8000㎞ 이동…3세대 걸쳐 북미 왕복하는 제왕나비’, 〈한겨레〉(2021.12.31.)
2) 미국 노동안전청(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 OSHA)은 노동부(U.S. Department of Labor) 산하의 산업 안전 규제 기관으로 1970년 관련 법령에 의해 설립되었다. 연방환경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EPA)은 연방정부의 독립 기구로서 환경에 관한 포괄적인 규제 권한을 행사한다.
3)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2017), 57-72쪽.
4) Frank Clark, ‘Nineteenth-Century Public Parks from 1830’, 〈Garden History〉(Summer, 1973)
5) 김정화, 〈영국의 포용적 도시재생을 위한 공원녹지 정책 사례 연구〉, 《한국조경학회지》(2019), 78-90쪽.
6) 김승섭, 앞의 책, 7쪽.
7) U.S. Census Bureau(2021). American Community Survey 1-year estimates. Retrieved from Census Reporter Profile page for New York, NY.
이성희
미국 뉴욕식물원의 3년 차 가드너이다. 식물원 내 수목원 및 부지관리를 담당하는 정원운영센터(Horticultural Operations Center)를 거쳐 지금은 식물 번식과 보존을 담당하는 놀런 그린하우스(Nolen Greenhouses)에서 근무 중이다. 북미 자생식물을 소재로 한 자연주의 정원디자인을 추구하며, 뉴욕주 북부의 혹한기를 견딜 수 있는 다양한 정원 식물을 발굴 중이다. 뉴욕의 주도인 올바니(Albany) 소재 올바니한인장로교회를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