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문학소녀들

[395호 나의 순정만화 순례] 유시진: 《쿨핫》

2023-09-27     박혜은

어젯밤 꿈속에서 동경에 대한 멋진 시를 썼었다. 깨어났을 때는 유감스럽게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 전혜린,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민서출판사, 1981), 106쪽.

내 삶의 멋진 여성 계보에 오른 이 중 이상은이 먼저인지 《생의 한가운데》(루이제 린저 지음, 전혜린 옮김, 문예출판사, 1998)의 니나 부슈만이 먼저인지 전혜린이 먼저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확실한 건 중학생 때 방을 같이 쓰던 둘째 언니가 좋아하던 가수 이상은을 나도 좋아했고, 아마도 이상은이 언급했을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가 궁금해 펼쳤다가 니나를 만난 것 같기는 하다. 언니의 결혼식 날 면사포에 침을 뱉은 니나가 등장하는 첫 페이지부터 열광했고, 그 책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민서출판사)를 쓴 전설의 전혜린이 번역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1950년대에 독일 유학을 떠났었고 요절한 천재(라고 불렸던) 문학가 전혜린1)도 이상은 때문에 알고 좋아했던 것 같은데 이 또한 확실하지는 않다. 중학교 때 만나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닌 내 베프 이름이 혜린이었고, 혜린이네 엄마가 딸의 이름을 ‘전혜린’에서 따와 지었다는 것만이 확실하고도 지극히 문학적인 사실일 뿐. 그 이름의 유래가 어찌나 부럽던지. 우리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기도 중 큰 은혜를 받아 내 이름을 ‘혜은’이라고 지었다는데 뭔가 혜린이의 작명 서사에 비하면 평범하고 지극히 기독교적이었다. 같은 ‘혜’자가 들어가지만, 뒤에 ‘린’이 붙은 이름과 ‘은’이 붙은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사뭇 다른 감수성이란. ‘ㄹ’이 들어간 이국적 이름, 좀 부럽군. 난 혜린이의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을 따라가려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만 같았다.

혜린이네 엄마는 온종일 여러 신문을 탐독하던 분이었는데 당시 내 관계의 스펙트럼 안에서 그런 여성상은 처음 보았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이후에 나도 혜린이네 엄마처럼 신문을 열심히 읽어서 신문방송학과에 간 걸까?) 중고등학교 때의 혜린이 또한 공연 예술 전문지 〈객석〉을 정기구독하며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책을 읽던 친구였다. 뒤라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괜히 혜린이가 읽으니까 《이게 다예요》(문학동네, 1996)를 따라 샀던 기억이 난다. 서른다섯 살 연하의 연인(와우…! 잘은 모르지만 뒤라스 언니 좀 멋있…)을 생각하며 쓴 사랑의 글이어서 산 걸지도.

이상은 같은 아티스트가 내 여고 선배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는가 하면 혜린이와는 서로 “학교에서 말이 통하는 건 너뿐이야”라며 같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 혜린이와 나만큼 ‘읽고 쓰는 일’에 진심이었던 여자 고등학생들을 순정만화에서 만나기도 했다. 유시진 작가의 《쿨핫》에서 ‘쿨’을 맡고 있는 김동경과 서영전. 교실에서 공부 잘하는 친구, 잘 노는 친구, 학교생활에 착실한 친구, 인기 많은 친구, 잘 꾸미는 친구, 외모가 특출한 친구, 조용하고 사려 깊은 친구는 있었어도 유독 ‘책 읽고 글 쓰는 친구’를 만나기는 어려웠는데 순정만화에서 ‘책 읽고 글 쓰는 여자 고등학생’을 만났던 기억은 혜린이네 엄마를 봤을 때만큼 강렬했다.

이하 사진: 필자 제공

이루다, 성공적으로 딸을 낳다

《쿨핫》은 당시로서는 특이했던, 플롯이 아닌 캐릭터 중심 옴니버스 만화다. ‘챕터’가 아닌 ‘트랙’으로 캐릭터별 이야기를 구성했고 각 ‘트랙’에는 노래 제목이 붙어있다. 그 노래들은 각 캐릭터를 상징하는 배경음악 같은 거였나 보다. 첫 트랙 ‘Get It On(Bang A Gong) - T. Rex’에는 첫 번째 캐릭터인 ‘이루다’라는 여자 고등학생이 나온다. 쇼트커트 스타일에 키 181센티미터의 루다를 처음 본 사람들은 그를 남자로 착각하고 학교에서는 루다를 좋아하는 여학생 팬덤이 형성되어있다. 루다의 오빠 이름은 ‘이루리’인데 “남자만 들끓는 집안에서 자라나신” 부모님 두 분의 소원이 무슨 일이 있어도 딸을 가져보는 것이어서 지어진 이름이라나. “이루리=다음번엔 꼭 딸을 낳으리!” 맞다. 아들을 낳으려고 딸 이름을 후남이, 종말이로 짓는 것을 가볍게 비튼 설정. 그렇게 원하던 딸을 낳은 루다의 부모는 딸에게 “이루다=성공적으로 딸을 낳다”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렇게 우리의 귀남이, 루다는 남부럽지 않은 환경 속에서 씩씩하고 자유로운 개체로 성장 중이다.

루다의 트랙에는 소위 ‘사회적 여성성’을 지니지 않은 여자 고등학생의 성장과 관계 맺기 서사가 펼쳐진다. “개체차는 개인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역할에 우선해서 존중되어야 한다!” 작가가 첫 트랙을 열며 선언한 이 주장을 낱낱이 구현하는 게 루다의 이야기다. 《슬램덩크》 강백호 저리 가라 할 단순함과 운동신경을 장착한 루다는, (평범한 여주인공이어도) 큰 눈에 여리여리한 선으로 표현된 순정만화의 다른 여성 캐릭터들과 재질부터 달랐다. 치켜뜬 눈매와 굵은 선으로 온몸이 표현됐을 뿐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남성의 폭력에는 더 강한 폭력으로 대응했고 위기에 처하면 구원을 당하기보다 정면으로 하이킥을 날리며 누군가를 구원해주는 여성이었으니까. 이런 여성 캐릭터가 가능하다고? “여자다움은 곧 남자답지 않은 것을 뜻하는 부정성의 총체”로 “여자다움에 대한 체계적인 부정을 통해 남자다움의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지위가 보장되어 왔던”2) 한국 사회에 ‘이루다’라는 여자 고등학생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작품의 포문을 연 유시진 작가. 그를 1990년대 젠더 연구자라고 불러도 될까?

이루다 캐릭터만으로도 할 말이 많지만 내가 주요하게 말하고 싶은 캐릭터는 사실 두 번째 트랙의 주인공 김동경과 주변 인물 서영전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봐도 이루다는 전무후무한 여성 캐릭터지만 나는 두 번째 트랙 ‘Paint It, Black - Rolling Stones’의 동경에게 더 빠져들었다. 동경은 유명 영화감독의 딸로 그 자신 또한 눈에 띄는 외모와 천재라 불릴 만한 음악적 재능을 지닌 특별한 여자 고등학생이다. 동경의 어머니는 영화감독인 아버지가 유명해지기 전에 결혼했던 첫 번째 부인이자 유망한 피아니스트였으나 결혼 5년 만에 알코올의존증에 빠져 사고로 죽는다. 어머니를 죽게 한 원인이 아버지의 여성 편력에 있다고 믿는 동경은 아버지를 증오한다. 세상이 알아주는 영화감독이지만 동경에게 아버지는 위선, 나르시시즘, 지독한 기만에 빠져있는 가부장제의 화신 중년 남성일 뿐이다.

학교에서 누구하고도 관계 맺지 않고 매일 이어폰을 귀에 꽂고 혼자만의 세계에 사는 동경이지만 유명인의 딸이라는 조건, 특별한 외모, 도무지 가려지지 않는 재능, 도도한 아우라로 반 아이들로부터 질시와 미움을 한 몸에 받는다. 아웃사이더인 동경의 반대 극점으로 언제나 팬덤을 몰고 다니는 루다가 같은 교실에 있다. 어떤 접점도 없던 루다와 동경은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며 엮이는데 그때 루다는 처음으로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자기를 추종하는 ‘팬’들로 둘러싸인 루다가 처음으로 먼저 손 내미는 존재가 동경이었던 거다. “제대로 된 친구가 아니라면 없는 게 차라리 낫”다는 동경과 친구가 되려는 루다의 행동 개시로 트랙1과 트랙2가 연결되는데(캬~ 구성 좋고!) 둘을 연결하는 지점에 바로 독서 토론 클럽 ‘가디록’이 있다.

인간이 귀를 감을 수 없는 세 가지 이유

학교에서 학급 친구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는 동경이 유일하게 관계를 맺는 그룹은 독서 토론 클럽 ‘가디록’의 멤버들이다. “인간관계라는 건 대개가 지랄 같은 거야. 적을수록 좋지”라고 말하는 동경이지만 가입 자격이 성적 상위 20%고 논술에 면접까지 보는 ‘가디록’에 스스로 찾아간 이유는 뭘까? 구구절절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동경이 1학년 때 교실 뒤에 쌓여있던 작년 교지 재고분을 펼쳐 읽다가 우연히 당시 2학년 선배였던 서영전의 글을 읽는 장면을 뛰어난 연출력과 필력으로 보여줄 뿐.

흠… 보나마나 또 무슨 ‘풍부한 감수성과 기발한 표현력’의 환상적 조화로 엮어진 글이겠군.

.......

…그건 학생 백일장에서는 드물게도, 짧은 소설이었다. 아니… 어디로 보나 거기서 ‘학생 백일장’의 냄새 따위는 나지 않았다. 그 글은… 넘치는 재기와 기지로 무장되어 있었다. 아마 단지 그것만으로도 눈에 확 띄는 글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정신을 차려 읽어 보면― 그 글이 그토록 매력적인 이유가 그 뛰어난 재기 밑에 감추어진, 일견 관조적인 듯하면서도 매우 따뜻하고 힘찬 그 무엇 때문임을 알 수가 있다. 그걸 아마 글쓴이의 인간성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내 경우, 정말로 나를 끌어당겨서 그 글을 몇 번씩이나 다시 읽어 보게 만든 것은 다른 어떤 것이었다. 처음에 글을 읽었을 때 그것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아주 희미하고 있는 듯 없는 듯한 이상한 향기가 남아 있었을 뿐. 그 이상한 향기의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또는 어쩌면 단지 그 향기에 매혹되어서 나는 그 글을 읽고 또 읽었으며, 읽으면 읽을수록 그 ‘어떤 것’은 점점 확실해졌으며 존재감을 더해 갔다. 그리고 그 존재감이 무거울 정도로 뚜렷하게 내게 다가왔을 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었다. 그건 ‘슬픔’이었다.
― 《쿨핫》 2권, 151-152쪽.

동경은 교육부 주최 전국 학생 백일장 고등부 입선작이었던 영전의 짧은 소설 ‘인간이 귀를 감을 수 없는 세 가지 이유’를 읽다가 글에 배어있던 슬픔의 향기에 매혹되고 만다. 한 인간을 향한 극심한 혐오와 그 인간 외의 인간들을 향한 지극한 무관심에 빠져있던 동경은 ‘교지’에서 자기 마음을 움직이는 ‘한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 글에 매혹된 후 우연히 영전이 ‘가디록’ 멤버라는 걸 알고 홀린 듯 가입 신청서를 내고 클럽에 들어간 동경. 글이 준 느낌과 글을 쓴 사람이 주는 느낌이 다르다면 마음 아플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영전의 세계에 들어간다.

나 또한 ‘인간이 귀를 감을 수 없는 세 가지 이유’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동경처럼 매혹되고 말았다. 비록 그 소설 내용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제목만으로도 마음이 건드려졌달까(매우 따뜻하고 힘찬 작가의 인간성과 슬픔의 향기가 배어있던 소설이라니, 소설가 최은영의 단편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혜린이와 둘이 “학교에서 말이 통하는 건 너뿐이야”라며 조금은 외로운 소녀 시절을 보내던 나는 영전이 만나고 싶은 선배처럼 여겨졌다. 동경이 영전의 글에 마음이 움직였듯, 어떤 언어로도 표현하거나 전달할 수 없던 내 내면세계를 표현한 단어들을 만난 것 같았다. 눈을 감듯 귀를 감을 수 없어 느껴야만 했던 슬픔과 아픔을 담은 하나의 시를 읽은 것 같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기쁨의 정서를 드러낼 언어를 찾아내는 것일까. 나는 ‘인간이 귀를 감을 수 없는 세 가지 이유’의 내용을 멋대로 상상하며 순정만화 속 인물들과 친구가 되었다.

서로를 알아보았던, 읽고 쓰는 문학소녀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어떤 집단에도 속하지 않았던 동경은 끝내 영전 선배에게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그저 ‘가디록’ 안에서 영전을 관찰할 뿐. 그런 동경의 외로움과 나약한 자존심을 꿰뚫어 보았던 영전은 만약 동경이 가까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면 더없이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 갔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동경은 끝까지 자기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동경답다. 고교 졸업을 앞두고 ‘가디록’ 부실에 연결된 옥상에서 영전은 그런 동경을 단 한 번 안아준다. “나중에 다시 만나면 너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남기며. 그 한마디에 동경은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끼지만, 인생에서 다시없을 한 가지 질문을 품게 되기도 한다. “사랑으로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또는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그건 사랑이 아닌 것일까.” 작가는 영전과 동경 사이의 진한 우정 혹은 사랑 서사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동경에게는 충분했던 단 한 명의 존재를 만나게 해주었다. 자기의 결핍을 알아봐주고 손 내밀 의지를 가졌던 여자 선배라는 존재.

영전과 동경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간 후에도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읽고 쓰는 일을 계속했을까? 최은영의 단편소설 〈몫〉에 나오는 희영처럼 “글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지 모르겠어. 정말 그런가. 내가 여기서 언니들이랑 밥하고 청소하고 애들 보는 일보다 글 쓰는 게 더 숭고한 일인가,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누가 물으면 난 잘 모르겠다고 답할 것 같아”3)라고 말하며 삶 자체에 몰두했을까. 설혹 그렇더라도 오로지 읽고 쓰던 문학소녀들만이 글에 대해 저런 말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 대학 시절에도, 영전과 같이 읽고 쓰던 여자 선배들이 있었다. 글로 소통하고 책으로 연대했던 그들 덕에 나도 나를 비춰 볼 수 있었고, 내가 걸어가야 할 미래의 가느다란 빛 한 줄기를 볼 수 있었다. 그 선배들은 지금, 출판사를 만들고, 영전 선배 같은 짧은 소설을 쓰고,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몰두한 내용을 글로 쓰며 살고 있다. 읽고 쓰는 삶에 있어 내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여자 선배들이 이렇게 근사한 행보를 걷고 있으므로 문정희의 시를 새롭게 써봐도 좋겠다. 그 많던 여학생은 어디로 갔을까. 여기 있습니다. 지금, 여기.

덧붙여, 포틀랜드에 거주하던 혜린이가 잠깐 서울에 나와 만났던 지난여름도 떠오른다. 여러 이야기를 나눴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 “서울에서 책을 한 짐 사서 먼저 부쳤는데 책 부치는 데만 거의 ◯◯만 원 들었어”(내 귀를 의심할 정도의 국제배송 플렉스~). 그 말을 듣고 내 외로움이 조금 옅어지는 느낌이 들었던 건 왜일까. 혜린아, 너도 아직 그렇게 사는구나! 역시, 내 친구.

■ 주

1) 미스터리 전문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김용언은 그의 저서 《문학소녀》(반비, 2017)에서, 남성 지식인들로부터 “부잣집 철부지 문학소녀의 대명사”로 호명되었던 전혜린을 탐구해 “20세기 한국의 문학소녀들은 전혜린의 삶을 거의 그대로 선취했거나 비슷비슷한 반복을 거듭”해왔음을 드러냈다. 저자는 전혜린을 위시한 읽고 쓰는 여자들의 삶을 변호하는 이 책을 “문학소녀. 나도, 당신도 전혜린이었다”라는 여운이 깊은 문장으로 끝맺는다. 1990년대의 이상은도, 둘째 언니도, 혜린이도, 나도 문학을 읽고 쓰는 삶―그러니까 전혜린의 자장 안에 있었다.
2)  권김현영 엮음,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교양인, 2017), ‘들어가는 글’, 14-15쪽.
3)  최은영, 〈몫〉,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문학동네, 2023), 79쪽.


박혜은
문화기획자. 뉴스레터 〈에밀앤폴〉 발행인. 책을 직접 만지는 일에서 책 문화를 다루는 일로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