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를 향한 기독교의 시선은 달라져야 합니다”
[395호 민민과 생귄의 대중문화 돌려보기] 연재를 마친 이민형(민민)·김상덕(생귄) 박사
‘민민과 생귄의 대중문화 돌려보기’는 두 기독교 문화 연구자의 시선으로 우리 시대 문화 현상을 살펴보는 연재였다. 이 연재는 2022년 5월(378호)부터 매월 다양한 문화 현상을 다루었으며, 지난달에 16회로 마무리되었다. 약 1년 3개월 만에 두 필자를 다시 만나 서로 수고했다는 격려와 함께 연재하면서 궁금했던 점들과 이 연재의 의미에 대해 나눴다.
-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연재 마치신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해요.
민민: 시원섭섭해요. 더 잘할걸 하는 생각도 많이 들고요. 대중문화는 지금도 계속 발전하는데, 연재를 더 이어갔어야 한 것은 아니었나 조금의 책임감도 느껴집니다.
생귄: 만약 혼자였다면 이 연재를 못 했을 것 같아요. 민민 님과 번갈아가며 하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죠. 아무래도 민민 님의 관점이 추가되니까 좋았어요. 이야기도 더 풍성해졌고요.
- 이 연재는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대중문화를 소비하던 흐름과 결이 달랐어요. 대중문화 새롭게 보기를 시도했죠. 이전의 소비 방식, 시각과는 어떤 관점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민민: 생귄 님과 저는 이를 ‘기독교 문화 연구 3세대’라고 정의하기로 했어요. 1세대는 기독교 관점에서 대중문화를 굉장히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접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낮은울타리’와 같은 ‘반-대중문화 운동’이 1세대 문화 연구에 해당하죠.
2세대 문화 연구는 대안 운동이었어요. 기독교가 대중문화와 다른 문화 운동을 통해 대안 문화를 만들어 내겠다는 시도죠.
3세대는 대중문화에 반영된 대중 심리를 기독교인인 우리가 읽고 이해해서 대중과 대화하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이에요. 이제 공공성에 대해, 공론장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대가 되었는데요. 기독교가 이 사회 한 부분으로서 일조하려면 대중 심리를 읽고 이해해서 대중의 언어로 대화할 수 있어야 하죠. 기독교만의 것으로는 사람들과 대화가 되지 않아요. 이 연재는 대중의 언어를 먼저 읽고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쪽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생귄: 교회가 대중문화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갖고 있어요. 한쪽에는 기독교인이라면 세속 문화를 멀리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어요. 다른 쪽에서는 대중문화를 받아들이고 적극 수용하여 전도와 선교에 활용해야 한다고 보죠. 이런 태도의 충돌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대중문화의 기술, 장르, 표현 등 문화의 외형은 허용하면서도 내용과 메시지는 거부하는 거죠. 예를 들어 CCM은 일반 음악과 유사한 스타일과 장르를 취할 수 있지만 가사는 다르게 작성돼요. 이렇게 내용(메시지) 중심으로 판단하다 보니 허용할 수 있는 대중문화를 찾기 어려워집니다. 점차 많은 문화가 걸러지죠. 기독교인들은, 볼 수 있는 문화와 보면 안 되는 문화로 구분돼야 한다고 여깁니다. 이에 따라 미디어 금식 등의 현상도 생겨나고요.
사실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정보 습득, 동기 부여, 재미와 감동 등 여러 목적이 있어요. 그런데 교회가 대중문화를 보는 관점에선 이런 면을 고려하지 못했어요. 주로 메시지가 기독교적인지 아닌지를 우선해서 판단했죠. 저희 연재에서는 대중문화 자체를 먼저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어요. 대중문화를 일반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 안에 담긴 메시지에 저항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죠. 대중문화 현상이 그 자체로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방금 말씀하신 3세대의 방법으로 대중문화를 보게 되면, 기독교 바깥, 일반 영역에서도 기독교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민민: 궁극적인 목적은 대화니까요. 일단 현재의 기독교를 보면, 일반 영역과 대화가 원활하게 되지 않아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저희는 기독교가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문제를 풀어내려 했어요.
생귄: 저희 주장은 기독교가 그들만의 렌즈로 대중문화를 이해하려 하지 말고, 대중문화 자체를 이해하고 배워야 한다는 거죠.
사실 기독교와 세속은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 경계가 매우 모호해요. 서로 얽혀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기독교 중심으로 사고하니까, 기독교문화와 대중문화 둘로만 나누는 거죠. 누구든지 자신이 속해있는 전통과 입장으로 문화를 보는 거예요. 남성과 여성이 문화를 볼 때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고, 불교와 무신론자가 문화를 보면 달리 볼 수 있죠.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가 다르겠고요. 우리 사회는 기독교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다원화 사회라고 봐야 해요. 그런 차이가 있어도 공통의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듯이, 기독교도 상식적이고 공적인 언어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 연재에서 놀랐던 점 중 하나는 두 분이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굉장히 비판적이었다는 점이었어요.
민민: 저는 미국에서 미학적 신학을 공부했어요. 그전까지는 기독교 문화라는 게 한 가지 모습만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에서 다양한 교단, 교파 등을 보고, 그들이 가진 미학적 특징들까지 배우니까 하나하나가 매우 새로웠어요. 기독교 문화가 굉장히 풍성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외국의 교회들은 한국교회에 비해 평균적으로 기술 부분에서는 굉장히 뒤처져 있어요. 그렇지만 예배드리거나 신앙생활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단순해지니까 내가 더 노력하고, 집중하게 되었죠. 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런 걸 경험하고 돌아왔는데, 한국은 너무 편한 거예요. 교회가 서비스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굳이 필요 없는데, 교회는 왜 서비스에 몰두할까 싶었죠. 차라리 조금 더 아름다운 것들, 이 종교의 전통적인 것들을 연구하고 활용하면 좋을 텐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나중엔 4차 산업혁명, 메타버스, 챗GPT 같은 생성형 AI 등의 담론이 교회 안에 너무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것 같다고 느껴졌어요. 누가 이런 ‘현상이 없는 표현’을 교회로 들여오는 건지 궁금했죠.
지금 연구하는 영역이 기술과 신학의 교차점을 찾는 것이거든요. 저는 신학 영역에서 기술을 실용적인 측면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기술은 분명 중립적이지만, 랭던 위너의 말에 따르면 표류하고 있어요.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긍정적 역할을 할 수도, 부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기술을 기독교가 어떻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룰 수 있는지 고민해야죠. 그런데 사람들 관심은 오로지 이걸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지, 어떻게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것들을 만들지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생귄: 옛날에는 교회에서 드럼이나 기타를 치면 안 된다고 했죠. 성과 속을 엄격하게 구분하던 전통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그게 뭐가 중요하냐, 모양보다는 마음만, 내용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통용되었어요. 목사님들이 가운을 벗고, 청바지 입고 나와 열린 공동체를 지향하는 모습도 보여줬죠. 저는 이걸 누렸던 세대인데요. 만약 이전 세대처럼 제약도 많고 불편했다면, 저도 기독교 문화를 좋아했을까 싶긴 해요.
하지만 이런 배경에는 교회가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사람들이 온다는 일종의 비즈니스 마인드가 존재하죠. 거기서 문제가 생겨요. 모든 걸 실용주의적으로 하게 되거든요. 마케팅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주요 마케팅 대상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은 배제하는 문화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반면 교회의 서비스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것저것 따져보면서 교회를 쇼핑하듯 옮겨 다니게 됩니다. 결국, 편하고 멋진 기술의 도입이 종교적 본질마저 대체하는 시장의 마인드로 이어진다는 점은 늘 우려스럽습니다.
교회가 기술적으로 뒤처질 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어떻게 보면 종교가 시대로부터 뒤처질 수밖에 없는 영역들도 존재하는 것 같아요. 흔히 그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예전에는 교회가 세상의 문화를 선도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요.
민민: 1950년대부터 기독교가 문화를 이끌었던 시대가 있긴 하죠. 그때는 문화적 인프라가 없었고, 그나마 건물·인력 등 재정적 기반이 있는 곳이 기독교 단체였어요. 1980년대 이후로 이런 흐름은 완전히 뒤집어져요. 대중문화라는 게 생겨나기 시작하면서부터요. 제가 글에서 “늘 한 발짝 뒤처지는 것이 종교적 습성이다”라는 식의 표현을 썼는데, 여기에는 우선 자조적 의미가 있어요. 교회는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보고 난 다음에, 사람들이 좋아한다 싶으면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늘 한 발짝, 한 템포씩 늦어요.
그리고 저는 종교가 일반 영역에 비해 늦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기독교와 종교가 추구하는 가치는 결국 대안적인 가치인데, 예를 들면 사랑, 정의, 평화 같은 가치들은 빠르게 달라질 수 없고 오히려 다른 문화에 비해 느린 편일 수밖에 없죠. 그런 가치들의 자리를 지켜주는 게 종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생귄: 한국 역사와도 관련 있어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구한말부터 독립, 전쟁을 거치면서 사회제도 및 문화가 새롭게 재건되는 상황에서 기독교가 들어왔어요. 우리가 개신교라고 부를 때 ‘구습에 저항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개혁해간다는 의미로 ‘개신교’(改新敎)라는 말을 썼죠. 그러니까 개신교는 새로운 것이거든요. 근대 지식과 문물, 교육과 문화가 특히 그랬어요. 교육이든 문화든 교회 중심으로 이뤄지고 발전했으니까, 문화를 이끌어갔던 것이 맞죠.
지금 한국 사회 발전 속도는 교회보다 훨씬 빠르고요. 문화는 더욱 그렇죠. 지금 한국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K-컬처가 세계에서도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고 있잖아요. 과거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특히 문화 전반을 이끌었던 것은 맞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고 교회는 교회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잘 살펴보면 말이죠… 요즘 문화를 보면, 교회가 잘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을 세속 문화가 대체하거나 더 잘하는 것 같아 보일 때도 있어요. 제도 종교가 하는 방식이 아닌 종교색을 가능하면 뺀 채로 영적이고 감정적인 필요를 채우려는 시도들이 마치 유사종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유사종교현상은 문화에서 계속 남아있을 겁니다. 교회가 자꾸 첨단화된 것만 하려 하고 종교적인 것들을 잃어버리면 문화가 종교의 영역마저 가져가버릴 수 있다는 거예요.
- 교회가 세상 문화를 이끌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에 꼭 따라붙는 말이 있어요. 세상이 더 재밌어졌으니까, 이제 새로운 세대를 교회로 불러올 수 없다는 얘기죠.
민민: 비겁한 변명이잖아요. 교회가 세상과 재미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아요. 종교는 마냥 재미있을 수 없거든요. 제가 늘 하는 말인데, 교회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는 곳이지, 재미를 느끼려고 오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가 최첨단 문화를 따라가면서 꼭 재미가 있어야 하는지 저는 모르겠어요.
교회라면 오히려 조금 차분하게 신을 대면하는 곳이어야 하죠. 신을 예배하는 시간이 당연히 지루할 수도 있고, 호기심 가득한 공간이 될 수도 있어요. 지금 무얼 하는지 알 수 없는 뿌연 공간이 될 수도 있고요. 거기가 재미라는 요소로 가득 차버린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아요. 그렇게 교회로 데리고 온들 그 사람들이 재미를 못 느끼면 그다음에 뭘 할 수 있을까요. 또 다른 재미있는 걸 개발해야 할까요? 그런 태도는 잘못된 것 같아요.
생귄: 신을 만나는 공간에서 필연적으로 지루하거나 불편할 수 있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한국교회가 좀 더 예전과 몸의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고, 기독교 내에 다양한 전통과 영성이 회복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또 지나치거나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았으면 해요. 자칫 교회 문턱이 높아질 수도 있겠다, 염려도 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어렵거나 지루한 공간으로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민민 님이 종교적 공간이 꼭 재미를 위한 곳이어야 하느냐고 하셨는데, 즐거움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세속적 쾌락을 흉내 내는 식으로 갈 필요는 없다고 봐요.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연결되고, 각자 받아들여지고, 서로를 걱정하고, 함께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재미가 생길 수 있고,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 두 분의 연재를 보면 자주 교회 이야기로 글을 맺는 걸 보게 됩니다. 한편으로 교회에 얼마나 마음을 쓰는지 엿볼 수 있는 지점 같아요. 연재에 교회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는 이유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생귄: 방금 질문은 지면에 꼭 넣어주세요. 저희가 교회를 정말 애정한다는 말이요.(웃음)
민민: 저희가 연재에서 대중문화를 대중문화 자체로 보자는 얘기를 하다 보니 뒷부분에는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가 나오게 돼요. 저나 생귄 님이나 교회를 굉장히 애정하는 건 사실이고요. 이런 비판을 하다 보면 ‘니들은 뭔데?’ 아니면 ‘그래서 교회가 망하라는 거냐’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그렇지 않죠. 교회가 잘되길 바라고 교회가 교회답기를 바라서 그런 비판을 하는 거죠.
저희가 신학을 하는 사람들이다보니 직업병 같은 것도 있고요. 늘 교회를 생각하는 마음, 자나 깨나 교회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 여기저기 묻어나는 것 같아요.
생귄: 저는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교회나 교인도 대중문화의 소비자이기 때문이에요. 대중문화를 볼 때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남의 나라 얘기하듯 보고 말할 수 없어요. 많은 교인이 대중문화를 보잖아요? 굳이 구분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더 중요한 건 교회에서도 대중문화 얘기를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문화를 소비한다는 건 사실 어떤 식으로든 메시지를 주고받고 의식을 만들고 담론을 형성한다는 말인데요. 교인들끼리 최근에 본 드라마를 두고 얘기하는 게 교회와 상관없는 것 같아도, 대중문화를 통해 메시지와 해석을 주고받는 일이거든요. 단지 어떤 건 봐라, 보지 마라 하는 건 매우 수동적인 태도입니다. 오히려 많이 보고 생각하고 서로 대화해봐야 대중문화를 보는 관점이 생길 수 있죠. 그래야 좀 더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대응할 수 있어요.
한국교회 교인들은 그동안 너무 수동적인 태도를 가졌는데요.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보다 교회 혹은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까 더 걱정해온 거죠. 이제는 교회 안에서도 대중문화 얘기를 더 활발하게 하면 좋겠습니다. 전날에 본 주말 연속극부터 OTT 방송이나 웹툰까지도요.
민민: 교회에 가서 대중문화 얘기로 강의하면, 끝나고 나오는 질문이 ‘뭘 해도 되느냐 안 되느냐’는 거예요. 저는 그 질문을 들으면 누구 기준에서 듣고 싶냐는 얘기를 항상 하거든요. 목사님의 기준에서 듣고 싶은지, 하나님에게 물어보고 싶은지, 나에게 물어보고 싶은지 말이죠. 그리고 제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할 거냐라고도 물어봐요.
어떤 대중문화든 교회 안으로 끌고 들어와서 논의할 수 있다고 봐요. 요즘 이런 현상은 왜 그런 거지? 〈나는 SOLO〉는 왜 재밌지? 하면서요. 이런 논의에 전문가는 따로 없어요. 나름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모두가 전문가가 될 수 있죠. 각자가 시청자고 소비자이기 때문이에요.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얘기하다 보면 또 다른 관점이 나올 수 있어요. 그런 것들을 계속 공유해가다 보면 공동체만의 관점이 생겨날 수 있는 거죠.
생귄: 맞아요. 이제 누가 하지 말라고 해서 뭔가를 안 하는 시대는 아니죠. 어떤 하나의 해석만이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착각이죠. 대중문화는 해석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해석 공동체는 하나의 해석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아요. 다양한 관점의 해석이 가능하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서로를 더 이해하고 배울 수 있다는 점이 포인트지요. 교회에서 ‘거룩한’ 얘기만 하려고 하면, 그 안에서 추상적이고 빤한 정답만 남아요. 마치 아이들이 무슨 질문에도 쉽게 대답하는 것처럼요. “저 알아요. 하나님이요. 예수님이요”라고요. 교회 공동체가 대중문화의 소비자라는 것, 그리고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주면 좋겠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궁금증과 생각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이런 대화가 우리 생각을 더 단단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 문화 비평이라는 게 대중이라는 집단의 의식을 계속 낯설게 보는 일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어떤 현상에 대해 불편하게 보는 지점이 생기고, 두 분이 자주 ‘프로불편러’가 되셨는데, 이런 상황이 불편할 때는 없었는지 궁금했어요.
민민: 민민이라는 이름을 쓴 것도 비슷한 맥락인데요. 민(mean)하다는 말이 영어로 까칠하다, 까끌까끌한 태도가 있다는 의미거든요. 그래서 mean Min. 제가 생각해도 저는 ‘프로불편러’가 맞는 것 같아요. 모든 걸 비판적으로 보는 태도가 없지 않아요. 그런데 연재하면서 저는 태도가 조금씩 바뀌었어요. 제가 사람들에게 대중문화를 이해하면서 대화거리를 찾을 거라고 하면서 자신은 계속 깐깐하게만 본다면 말이 안 되잖아요. 대중문화를 볼 때는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 안에 대중 심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봤죠. 대중문화가 만들어진 데는 사회적 배경이 있다는 걸 되뇌면서요. 그러니까 대중문화를 보는 눈이 조금 편해졌어요. 모든 것들이 사람들 나름의 삶과 고충이 녹아들어 있는 현상이라는 걸 이해하게 된 거죠. 저는 ‘프로불편러’에서 ‘덜-불편러’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생귄: 많이 성숙하셨네요. 연재하면서 제가 좋은 영향을 끼쳤나 봅니다.
민민: 이분의 영향이 커요. 생귄 님은 저와 다르게 좀 더 둥글둥글한 편이고요. 긍정적으로 보는 것들이 많아서 많이 배우게 됩니다.
생귄: 비판적으로 문화를 읽는다는 말을 비평이라 할 수도 있는데, 어떤 문화를 볼 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본다는 말이기도 해요. 수동적 자세로 보면 비판적 접근이 될 수 없어요. 콘텐츠를 보고 좋아하고, 느끼고 이것이 왜 좋은지, 왜 싫은지 나름대로 이해와 이유가 생겨야 하죠. 그래서 ‘프로불편러’의 역할이 중요해요. 모든 사람이 콘텐츠를 그렇게 볼 수 없으니, 전문가 그룹이라는 게 필요하다면 그런 역할을 해주는 거죠. 모든 문제를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건 본인을 힘들게 하는 일이긴 해요.
아무 생각 없이 콘텐츠를 소비하고 싶기도 하죠. 하지만 계속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사람들은 왜 그럴까, 저 현상은 왜 그럴까 하면서요. 그러면서 미디어 감수성, 문화 감수성이 생기겠죠. 그게 신앙과 잘 맞아떨어지면 좋은 신앙인이 된다고 봐요.
- 얘기를 듣다 보니 두 분이 계속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좀 더 수준 높은 문화 소비를 요구하시는 것 같아요.
생귄: 그런데 그게 사실 쉽지 않은 일이죠.
민민: 대중문화는 결국 삶으로 연결돼요. 대중문화 속에 무조건 선정적인 것, 폭력적인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꼭 재미있는 것만 있지도 않거든요.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 관심을 두게 하죠. 대중문화를 얘기하지 못한다는 건 삶을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봐요.
그런데 마치 기독교인들이 이 모든 것을 초월하고도 하나님한테까지 못 갔다며 아쉬워하고 대화 나누는 걸 들으면 할 얘기가 줄어들어요. 대화 나눔, 생각 나눔이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데서 오는 답답함 같아요.
생귄: 일상 문화 얘기는 되게 중요해요. 그러니까 성경이나 관념이나 우리의 신앙고백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성육신해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중요하죠. 우리 일상을 말해주는 통로가 대중문화가 될 수 있다고 봐요.
- 두 분 케미가 아주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잘 맞는 사이인가요? 서로 어떻게 알게 됐는지도 궁금해요.
생귄: 저희는 동갑이에요. 둘 다 보스턴에서 유학했는데 민민 님은 저보다 2년 먼저 유학을 가셨죠. 그렇게 알게 됐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어요. 2018년 1월쯤이었어요. 첫 강의도 성결대에서 같이 했고요. 겹치는 지점이 많았네요. 둘 다 문화를 좋아하고, 관심사도 비슷했으니까 말도 통하고 잘 맞는 편이죠.
서로 다른 점도 있어요. 보기보다 민민님이 감성적이고 따뜻한 편이고요. 저는 보기에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좀 이성적이고 차가워 보일 때도 있습니다.
민민: 그래서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비슷하기만 하면 안 맞을 수 있는데 서로 다른 관점을 갖고 있으니까요. 어쩌다 글을 같이 써보자는 얘기가 돼서 연재로도 엮이게 된 거죠.
- ‘생귄’이라는 이름도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생귄: 생귄(sanguine)이라는 말은 영어로 활기차고 쾌활한, 에너지 있는, 같은 뜻이 있어요. 외국인들이 저를 부를 때는 ‘상덕’이 아닌 ‘쌩덕’이라고 부릅니다. 생귄이라는 단어는 제게 좋은 느낌으로 기억되는 단어였는데, 제가 유학 가기 전까지는 되게 쾌활했고, 텐션도 높았고 나름 ‘오지라퍼’였거든요. 유학 생활 10년 만에 다운돼서 돌아오긴 했지만요. 성격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삶의 방식이 달라진 거죠. 여행 다니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그러지 못하니까 아쉬움을 담아 저의 ‘부캐’라도 이렇게….
민민: 얘기를 듣고 보니 더 안 됐네요.(웃음)
생귄: 웃긴 게 뭔지 아세요? 이분은 이름을 민민이라고 해놓고 본인이 까칠하기만 할 것처럼 그러잖아요. 그런데 사람들 반응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 스타일이고, 남 싫은 거 절대 안 하고, 싫은 말도 잘 못 해요. 저는 생각보다 그런 말 잘해요. 어떻게 보면 내가 더 ‘민’할 수 있죠. 이분도 까칠하고 싶은 건지, 실제로 까칠한 건지 모르겠어요.
민민: 민민이라는 이름은 미국에서 유학할 때 조교를 하면서 생긴 별명이에요. 당시 제가 중간고사 점수를 굉장히 낮게 줬어요. 그러면 자극이 돼서 기말고사 때 쭉 올라가니까요. 제가 중간고사 때 점수를 낮게 주는 걸로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대요. 되게 ‘민’하다. 그런데 알고 보면 나쁘지 않다. 그때부터 쓴 별명입니다.
- 두 분이 보내주신 필자 소개도 재밌었어요. 민민 님은 ‘그동안 듣던 팝송 테이프들을 주저 없이 쓰레기통에 넣으려다 이것이 맞는 선택인지 심각하게 고민했고, 직접 공부해서 밝혀내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쓰셨는데 사실인가요.
민민: 중학교 때 큰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수련회 세미나 때 ‘낮은울타리’ 대표님이 와서 대중문화 세미나를 했어요. 두 시간 반 동안 대중문화가 얼마나 나쁜 건지, 대중문화에 어떤 사탄의 전략이 숨어있는지 들었죠. 그때 그 단체의 접근법에 호기심이 생겼고, 듣다 보니 대중음악을 들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백워드 매스킹’ 같은 이야기도 나오니까요. 집에 있는 테이프들을 다 버리려 했어요. 그때 세미나에서 ‘낮은울타리’가 월간지를 낼 건데 거기서 좋은 음악을 추천해 주겠다고 했죠. 저는 중학생 때 그걸 구독했어요. 없는 용돈을 모아서 처음으로 구독했는데, 어떤 음악을 추천해주는지 봤죠. 그런데 추천 음악이 다 CCM인 거예요. 만족이 안 됐죠. 처음엔 CCM만 들으려 했는데, 의문이 들었어요. 대중음악이 나쁘다는 걸 이 사람들은 어떻게 알지? 본인들도 들을 텐데 왜 나는 들으면 안 될까. 직접 공부해서 이게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제 꿈은 계속 바뀌었지만, 결국 문화 연구를 하게 되었네요.
- 생귄 님 필자 소개에서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추구한다’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생귄: 부끄럽지만 소소한 취향이에요. 미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사진·예술·영화·음악, 공간이나 디자인까지도 두루 관심 있어요. 그보다 제가 자라온 환경은 민민 님과 조금 달랐어요. 주로 교회 울타리 안에서만 있었다고 할까요? 제게 교회는 많은 경험을 선물해준 곳이죠. 중창단 활동도 해봤고, 기타 같은 악기도 배웠고, ‘문학의 밤’에서 연기도 했었죠.
CCM은 1990년대가 가장 중흥기였다는데, 음악적 수준도 높았고, 대중음악보다 멋있는 가사과 고민도 많이 담겨있었죠. 손영지 씨 앨범을 되게 좋아하는데 〈서른〉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깨달은 지 얼마 안 됐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참 다행이야. … 무언가 될 줄 알았던 내 서른은 참으로 평범하지만”이라는 가사가 나와요. 하나님만 예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 고민이나 신앙이 흔들리는 것까지도 CCM이 담아냈어요. 긍정적 영향을 많이 받아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교회에서 긍정적 영향을 많이 받고 누렸던 세대죠. CCM 가수가 되려는 생각도 했었고요.
- 요새도 CCM 많이 들으세요?
생귄: 가끔 들어요. 좋은 팀이 소개되면 꼭 들어보는 편이고요. 요새 나오는 팀들은 확실히 노래도 잘하고, 연주도 잘하고 세련된 느낌이 들어요. 아쉬운 건 요즘 CCM이나 예배음악을 보면 신앙이 좋은 사람만을 위한 노래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부르기 힘든 노래라는 생각도 들고요.
제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그림이 있어요. 대학교 때 선교단체에서 1학년 후배가 들어왔는데, 교회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후배였어요. 그냥 사람들이 좋고, 기독교에도 관심이 있어서 온 거였어요. 이 친구가 모든 모임에 잘 적응했어요. 설교까지도 들었는데, 딱 한 순서에만 참여하지 않았죠. 찬양 시간이요. 그러니까 신앙적 배경이 없는 사람이 볼 때 또래들이 손 들고 눈 감고 기도하는 모습은 다가가기 힘들었겠죠. 우리는 너무 좋았지만, 그 친구는 잠깐 나갔다 와야 하는 시간이었어요. 교회는 다양한 사람이 올 수 있는 공간인데, 교회 문화라는 게 일부의 아주 헌신하는, 혹은 신실하고 진지한 사람들만을 위한 문화일 때는 아쉬움이 많은 것 같아요.
저도 다양한 노래를 좋아하는데요. 신기하게도 힘들거나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찬양을 들어요. 다른 음악과는 다른 위로를 받습니다. 좋아하는 그룹도 있고, 나름의 기준도 있죠.
- 향후 활동 계획이나 연재 후 무얼 하시려는지 말씀해주세요.
민민: 일단 이 연구는 아마 계속할 것 같아요. 이 연구를 계속해서 그걸 한국교회와 한국 기독교에 보급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언젠가는 저희 관점도 달라지겠죠. 4세대, 5세대가 나올 텐데 그러려면 반드시 3세대는 거쳐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사명감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업을 계속하고 학교에서도 강의할 거고요.
생귄: 미디어나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이론을 배워서 쭉 써먹는 게 아니라서 계속 달라지는 문화를 연구해야 해요. 연구자들끼리 연구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담론화되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찾는 것이 고민이에요. 더 적극적으로 뭔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죠.
민민: 제일 좋은 건 교회에서 저희를 초대해주시는 거예요. 가서 대중문화에 대한 연구를 소개하고 이야기하면 좋죠. 대중문화 이야기가 듣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지 저희를 찾아주세요.
진행 정민호 기자 pushingho@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