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 한 자비량 목회자가 18년 함께한 교회를 떠나며
[395호 그 사람의 설교 노트]
※ 이 글은 필자가 2023년 8월 13일 교회를 떠나며 설교한 내용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9).
아직도 교회를 떠난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정든 교회를 떠나는 것뿐 아니라 지난 23년간 인디애나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떠나는 인생의 큰 전환점입니다. 제 생애에 가장 주요한 토막을 여기에다 묻고 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살던 집에 대해서도 생각보다 미련이 많았습니다. 제가 평생 어느 한 도시에서, 또 한집에서 23년이나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사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집이 팔리지 않아도 그다지 안달하지 않았습니다. 은근히 마음속으로는 안 팔렸으면 싶었습니다. 우리 집 구석구석 묻어있는 수많은 추억이 나를 심정적으로 붙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저를 붙잡는 것들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이 우리 교회입니다. 이곳을 떠나 캘리포니아에서 사는 동안 제 마음이 어떨지 벌써 느껴집니다. 오늘도 교회는 안녕한가? 누구누구는 잘 계신가? 오늘 점심은 무얼 먹었나?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지요. ‘내가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다(고전 5:3).’ 제 몸은 떠나더라도 마음은 이런 상태가 아닐까 상상합니다.
즉 제가 이 교회와 분리될 수 없는 연합 상태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저에게 있어 이 교회는 저의 분신과도 같습니다. 지난 18년을 내 몸처럼 아끼고 함께한 교회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복되려면 자기가 소속된 교회에 심정적으로 연합되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과 교회가 그런 관계가 될 때 마음이 평안하고 안정감이 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늘 아들 예수님의 피가 묻어있는 교회로 향합니다(대하 7:16). 여러분에게도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도 어려서부터 “교회는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그늘’이라는 표현도 많이 쓰는데요, 몸과 마음을 쉬는 곳, 그곳이 교회입니다. 내가 쉬며 보호받고 공급받고 훈련받고 자라나는 곳, 교회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아! 나에게 교회란 이런 것이었구나!’ 떠나는 마당에서야 새삼 깨닫습니다. 진즉 이럴 줄 알았더라면, 있을 때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아쉽습니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 설교를 부탁해서 나름 고민했습니다. 어떤 메시지를 남길 것인가? 그 후로 제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두 단어가 있었는데, 바로 ‘연합’과 ‘사랑’이었습니다. 연합과 사랑은 하나님의 교회에 가장 근본이 되는 본질적인 요소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오늘까지 ‘연합교회’란 꼬리표를 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몸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확실히 결합하여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즉 우리 영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도 요약해보면 결국 ‘연합’과 ‘사랑’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연합과 사랑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곳이 바로 요한복음 15장입니다. 거기서 주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들’이라고 표현하십니다(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정말 절묘한 비유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그저 길가에서 이리저리 밟히다가 말라 죽는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단언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포도나무를 자세히 보면, 나무와 가지가 연결된 부분이 유난히 두툼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포도나무라는 생명이 가지가 떨어지지 않게 그 가지가 시작되는 부분을 강화해놓은 것입니다. 실제로는 나무가 가지를 붙들고 있는 원리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를 붙잡고 계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포도나무 가지를 찢어보신 분 있으신가요? 손으로는 절대로 잘 안 찢어집니다. 이게 주님과 여러분의 관계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떨어지지 않도록 꽉 붙들고 계시고, 그 가운데 여러분은 주님 안에 뿌리를 내리고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포도나무는 그 속에서 엄청 활발한 교류를 합니다. 잎은 열심히 광합성 에너지를 만들어 줄기를 통해 뿌리로 내려보내고, 또 뿌리는 부지런히 토양으로부터 수분과 양분을 흡수해서 가지로 밀어 올려 열매가 자라고 맺히게 되지요. 이게 바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의 모습입니다. 생명을 발생시키는 연합인 거지요. 생명적인 연합은 우리가 주님 안에 살 때 가능해집니다.
여러분은 정말 그들을 사랑합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불안정하거나 깨어질 때 그 결과는 심각해집니다(요 15:6). 주님은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버려지고 말라비틀어지고 사람들에 의해 불살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매우 심각하고 엄중한 말씀입니다. 열매 맺지 않는 가지의 운명이 이렇게 비참할 수 있습니다. 이거는 무슨 죄를 더 짓고 덜 짓고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은혜! 은혜!’ 하면서 대충 넘어가려고 하는데 사실은 위험한 겁니다. 은혜도 그리스도께 붙어있어야 ‘은혜’이지, 잘린 가지에 무슨 은혜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내 인생에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면”이라고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어디에 붙어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신앙의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저는 이걸 깨닫고 난 후 10여 년 전부터 심각하게 ‘주님과의 연합’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정말 잘한 일이라고 믿습니다. 내가 이미 다 이루었다는 말은 아니지만, 거기에 대해서만큼은 한 점의 후회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는 ‘~안에 거하라’(remain in)라는 말씀이 무려 10번이나 등장합니다. 성경에서 반복되는 말씀이 많이 있지만, 이렇게까지 같은 표현이 반복되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이 이 말씀을 강조하고 싶으셨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하라’라는 말씀이 내가 무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요구되는 건 행위가 아니라 상태입니다. 우산을 폈을 때처럼 어떤 영역 아래에서 지속적인 영향을 받는 관계에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큰 우산처럼 우리를 덮고 계십니다. 그분 안에 머물 때 안전이 보장됩니다. 이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이고, 그래야 우리 삶에 열매가 열립니다.
그런데 교회가 연합되기 위해 절대로 필요한 요소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교회가 연합되게 하는 접착제 같은 것입니다. 혹은 요리할 때 재료들이 서로 들러붙게 하는 전분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연합과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분리될 수 없습니다. 연합되어 있으면 사랑한다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연합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연합과 사랑’ 어느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도 ‘연합’만 말씀하시지 않고 늘 ‘사랑’을 함께 말씀하셨습니다(요 15:9).
그러나 본능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타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사실 나 자신, 내 가족, 아주 친한 친구를 빼고는 사랑하지 않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I love you!”를 너무 자주 쓰기 때문에 좀 상투적인 인사말 정도로 들리기도 하지요. 솔직히 대답해보세요. 여러분은 자신과 가족 외에 누구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참된 사랑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주님이 몸소 실천하신 것이 바로 그런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웃을 ‘사랑한다’라고 말은 하지만 약간의 희생이나 손해를 볼 마음도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듣기 좋게 “형제님 자매님, 사랑해요!”라고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여러분은 정말 그들을 사랑합니까? 쉽게 ‘예스!’가 나오지 않죠? 걱정하지 마세요. 그거 안 되는 줄 주님도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좀 쉽게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고전 13:4-5).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랑의 특성입니다. 제일 먼저 ‘오래 참으라’고 하십니다. 맛있는 것 대접해라, 안아줘라, 대신 빚 갚아줘라…, 아닙니다. 오래 참으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싫은 사람들 있어요. 나하고는 성정이 맞지 않는 이도 있어요. 같은 교회 교인이니까 정중하게 인사는 하겠는데, 그 이상은 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이들도 분명히 있어요. 어떻게 하면 된다고 그럽니까? 어렵지 않아요. ‘오래 참고…’ 그저 가만있기만 하면 됩니다. 누구든 조금만 노력하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저 사람 하는 게 정말 마음에 안 들지만, 내가 가서 한마디해줘야 속이 후련하겠지만, 입을 닫고 좀 길게 참아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내가 사랑했다고 인정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과 연합하여 그분의 사랑 안에 살면’ 이런 것은 자연스럽게 됩니다. 주후 100년경에 요한복음 저자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의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요한은 너무 기력이 쇠하여 혼자 다닐 수가 없었고, 제자들이 늘 그를 들어다 강대상에 앉혀놓아 겨우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설교 때마다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여, 서로 사랑하십시오!” 매일 같은 말만 되풀이하니까 성도들이 불평했는데, 요한은 “그것이 주님의 명령이고, 그것만 지켜도 충분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후로 그를 ‘사랑의 사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지요.
‘주와 은혜의 말씀’께 부탁합니다
저도 이제 이 교회를 떠나면서 여러분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십시오.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연합하십시오. 그리고 서로 사랑하십시오. 사도 바울이 마지막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서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바울은 교회를 제자들에게 맡기고 떠나면서 누구에게 간절히 부탁합니까? 그게 누구였습니까? 돈이 많은 부자이거나 아니면 탁월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어떤 선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람에게 교회를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주와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였습니다. 제가 만약 바울처럼 교회를 누구에게 부탁하고 떠나야 한다면 그게 누구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의지해야 할 것이 첫째는 주님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를 그분의 은혜의 말씀에 부탁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것은 바울의 절절한 기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저도 떠나기 전 마음속에 일어나는 간절한 기도가 이렇습니다. 교회와 여러분을 주와 및 그분의 은혜의 말씀께 부탁합니다. 우리 연합교회에 주의 은혜의 말씀이 넘치게 해주세요.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는 주님의 말씀에 은혜가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이 교회가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귀한 교회입니다. 주님의 몸 된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이죠. 주님은 이 교회에 당신의 피를 뿌리셨고, 저는 땀과 눈물을 쏟았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저는 교회를 개척할 때 주님께 받은 데살로니가후서 3:7-9을 소명으로 믿고, 사도 바울을 본받아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기로 결단하고 지난 18년 동안 육체노동으로 가정과 교회의 쓸 것을 채워왔습니다. 또 로마서 12:2의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를 목사-장로 중심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한국교회의 문화를 개혁하라는 주님의 명령으로 인식하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목회자상을 세우고자 애썼습니다. 이 연합교회와 여러분은 제가 지난 18년간 땀 흘려 수고한 상급입니다.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특별히 오늘 저를 환송하는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은, 마치 바울의 마지막 길에 바닷가에서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그를 전송하였던 두로의 제자들 같습니다. 저로서는 매우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제야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크리스찬 리
1956년에 태어나 1989년에 미국으로 이민, 2005년 3월 인디애나주에 뉴라이프연합교회(현 뿌리연합교회)를 개척하고 2023년 8월에 은퇴해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