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뱅크스에게 듣는 평신도 가정교회 이야기

[395호 신학자의 말] ‘1세기 기독교 시리즈’ 저자 로버트 뱅크스 인터뷰

2023-09-27     로버트 뱅크스

신학자 로버트 뱅크스(1939-) 한국 초청 컨퍼런스 ‘1세기 교회와 21세기 교회의 대화’가 8월 26일 서울 중구 커뮤니티 하우스 ‘마실’에서 열렸다. 본 행사는 번역 출간되어 많은 독자의 관심을 끈 ‘1세기 기독교 시리즈’ 3권의 주제(교회, 일상, 선교)와 오늘날 교회 및 신자들의 삶을 연결 짓는 3부작 강연을 들은 후 청중들과 저자가 대화를 나누는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컨퍼런스는 평신도교회 신학포럼이 주관하고 본지와 IVP가 협력하여 진행했다. 평신도 가정교회라는 새로운 교회 구조, 그리스도인의 일상과 총체적 선교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청중들과의 대화 시간에 나온 이야기와 함께, 다음 날인 27일에 뱅크스 박사를 따로 만나 진행한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한국에서는 ‘1세기 기독교 시리즈’ 저자로 유명한 그의 다른 관심사들, 중국 선교와 그리스도인의 시간 사용 등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로버트 뱅크스와 린다 뱅크스 부부. 린다 뱅크스(Linda Banks)는 대학에서 교목으로 일하고 있으며 호주의 유학생 사역을 해 온 경험이 있다. 로버트 뱅크스와 함께 《View from the Faraway Pagoda》,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등을 포함해 여러 저서를 공동 집필했다. Ⓒ복음과상황 김다혜

- 1969년 성공회 사제직을 내려놓고, 평신도교회 운동을 해오신 것으로 압니다. 이 운동을 처음 시작하실 때 반대는 없으셨나요?

이런 결단을 반기며 응원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주위 목회자들과 여러 기독교 단체 관계자를 포함해 대부분은 ‘이건 이단이고, 하면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을 많이 냈지요. 우리가 무척 진지한 기독교인이고, 기독교인 양성과 지역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에 걸쳐 보여 주었습니다. 목회자나 리더 신분이 아닌 한 명의 평신도이자 대리인으로서 다른 교회 리더들과 교제하고,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소개했어요. 몇몇 목회자와는 굉장히 친밀한 관계가 되어 지지받기도 했고, 다른 교회들로부터 초대받기도 했죠. 미국 LA 신학교 평신도 사역 교수로 초대받아 신학교에서 평신도로서, 또 교회로서 살아가는 일에 대한 수업도 가르칠 수 있었죠.

- 박사님이 속하신 평신도 가정교회의 규모나 분위기가 궁금합니다.

보통은 자녀 두세 명을 포함해 12~15명이 모입니다. 스무 명도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어렵죠. 아침에 와서 차를 마시고 예배드리고 점심을 먹고 아이들과 놀다가 돌아와 성경 공부나 찬양을 더 합니다. 이후 또 차를 마시면서 밤새도록 이야기 나눌 때도 있고요. 끔찍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들에겐 너무 편안한 삶의 일부입니다. 대체로 20명 정도가 되면 두 그룹으로 나누고, 일부는 몇 주에 한 번 더 큰 그룹으로 50명이나 100명 이하로 모이지요. 다른 모든 사람의 이름과, 그들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 규모가 작아서 발생하는 단점이나 어려운 점은 없나요? 관계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갈등을 피하기 어려울 텐데요.

기독교인들도 사람이기에 약점과 결점과 약간의 집착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교회들 중 일부는 실제 마찰과 긴장이 있었지만, 서로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왔죠. 가끔 다투기도 하고 의견 차이를 보일 때도 있지만 이 문제를 풀 기회들이 있지요. 큰 교회는 그런 문제들이 있어도 말하지 않죠. 회의에서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표를 얻으려는 경우만 제외하면요. 51퍼센트 지지를 얻으면 교회를 잘 꾸려나간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는 열려있지 않고 배려가 없는 문화죠. 많은 사람들은 전통적인 교회에서 목사나 다른 사람과 싸우면 교회를 떠나곤 합니다. 더 이상 그곳에 있고 싶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작고 건강한 교회들은 더 전통적인 교회에서 종종 나타나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실 조금 어렵기는 하죠. 하지만 좋은 일이 실제로 이뤄질 확률을 높여야 하고요.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려면 다른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잘 도와주는 현명한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모든 가정교회에 치료사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 극복을 도울 지혜로운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지요.

- 교회 구조를 바꾸기 위해 목회자가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교회 리더십 혹은 성도들의 능력을 먼저 모아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함께 고민하고 소규모로 실천해보는 것이 하나의 방법입니다. 제가 아는 한 목회자는 1년간 몇몇 리더십과 함께 시도해나갔고, 리더들이 각자 다른 멤버들을 만나 이야기를 전하며 확산해 나갔습니다. 목회자와 아내가 작은 소그룹에 멤버로 참여하면서 이걸 기반으로 비슷한 그룹들이 시작될 수 있도록 나누고 돕는 역할을 했죠.

바울과 사도들처럼 지역과 지역을 순회하면서 어떤 모델을 세우고 체계를 이뤄가는 목회자의 역할도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그럼에도 무엇을 가르치거나, 어떤 목회의 역할을 한다거나, 행사나 일정을 준비하고 비전을 세우고 이뤄가는 모든 일을 목회자가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평신도들도 충분히 능력이 있고 어떤 경우엔 목회자보다 더 현장 문제에 근접해 있으니까요. 이들을 격려하고 어떤 도움을 주는 역할이 목회자의 몫이죠. 목회자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위계적인 리더의 역할, 가장 주가 되는 행동가 역할이죠. 더욱 낮은 곳에서 섬기는 자가 되고 교회에 속한 사람들을 성장시키는 것이 목회자의 일입니다. 어떻게 평신도 멤버들을 가르치는 자로, 목회하는 자로 세울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면서요. 교회는 한 사람이 가르치는 독백 형태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서로를 가르치고 나누고 배우는 대화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 소규모 평신도교회가 박해 등 특수한 상황에서 나타났지, 보편적 교회 모습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예수 시대에는 많은 군중이 몰려들어서 말씀을 듣고 교제하는 일도 있었으니까요.

네로 시대나 성경에서 등장하는 다른 시대에 박해가 벌어졌지만, 1세기, 특히 초기 70~80년 기간에 교회는 박해 없는 환경 속에서 교회를 세우는 활동을 했습니다. 1세기 교회가 평신도 가정교회 형태였던 것은 박해에 대한 반응이 아니었고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죠. 나중에 2~3세기에 가서 광범위한 박해가 일어났을 때는 작은 형태의 교회들이 훨씬 더 적응력 있게 살아남을 수 있었고요.

물론 예수님 말씀을 듣기 위해 많은 무리가 따랐고, 베드로의 가르침에 수천 명의 군중이 모여 떡을 떼고 교제하는 흐름도 있었죠. 하지만 대규모 모임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교회라는 형태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일방적으로 말씀을 전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가르치고 나누고 서로를 세워가는 어떤 공동체를 이루는 일이 교회이기 때문이죠. 대규모 집회를 교회 모델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에게는 큰 집단에 대한 환상들이 있고, 이를 지향하는 마음들이 강합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대부분 작은 그룹에서 전파되는데, 우리는 아직도 대집회를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께 돌아온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아요.

- 가정교회나 평신도교회 운동이 일어나는 다른 나라들의 상황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가정교회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도에만 100만 개 있다고 하는데요. 이곳에선 가족 단위 교회는 존재하지만, 목사 사례비나 건물을 마련할 돈이 없어서 교회가 마을로 퍼져나가지는 못하고 있죠.

수가 많지는 않지만 무슬림 국가인 이집트에도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되고 싶어 하지만 이를 반기지 않는 가족들 때문에 공개적으로 눈에 띄지 않죠. 어떤 이의 집에 가서 노래 부르고 먹고 마시는 등 파티처럼 보이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종교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아요. 그렇게 무슬림 가족, 친구들과 접촉하면서 기독교인이 되고 교회를 이룹니다.

미국은 매우 크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가정교회가 많은 현상이 놀랍지 않죠.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합니다. 미국 젊은이들을 보면 독립심이 있고 다른 것을 시도하려는 의지가 강해요. 1970-1990년대 학생운동, 문화운동 등을 통해 서로 만나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커뮤니티는 그 모든 것의 일부였죠. 많은 기독교인이 교회를 답답해하고 구식이라고 여깁니다. 그저 앉아서 듣고 찬양하고 서로 격려한 후 집으로 돌아가기에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죠. 하지만 집이나 아파트, 작은 홀에서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어요.

기독교가 강하게 뿌리를 내린 유럽에서도 교회가 너무 전통적이어서 형식에 얽매여 젊은이들뿐 아니라 중년층도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흥미로운 사례가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방식의 교회에 매우 개방적입니다. 몇몇 선임 선교학자들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교회 성장은 가정교회를 통해 이뤄졌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만 가난하고 궁핍한 지구인들이 많은 곳에서도 가정교회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죠.

- 선교사 소피 뉴턴의 이야기가 담긴 《View from the Faraway Pagoda》 등 중국의 선교와 교회에 대한 여러 책을 아내분인 린다 뱅크스와 함께 쓰셨습니다.

중국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증조할머니의 여동생 소피 뉴턴 덕분이었습니다. 93세로 아직 살아 계시는데요. 중국을 사랑한 교사이자 독실한 교회 목사로 사역하며 중국에서 34년간 사셨죠. 소피는 대도시 수도에서 사람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제 아내 린다와 저는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중국에서 그가 살았던 곳을 방문했고, 그가 일했던 흔적들을 발견했습니다. 덕분에 중국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과 직접 연결될 수 있었고, 그곳에 있는 동안 교회 한 곳과 연결되었습니다. 등록 교회와 미등록 교회 모두 조심스럽게 계속 성장하고 있죠.

삼자애국운동(TSPM) 교회가 그들이 공개적으로 취하는 주요 형태인데요. 스스로 운영하고 관리하고 자금을 조달하고 확장해야 하지요. 선교사나 성직자, 서양인의 도움도 거의 받을 수 없고 작은 기독교인 그룹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매우 신약성서적으로 들리지요.

- 20세기 초 당시, 중국에서 국공 내전과 공화주의 혁명 등 분쟁 시기에 사역한 호주 여성 선교사들에 대한 책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도 쓰셨지요.

중국 기독교에서 여성은 매우 큰 역할을 합니다. 중국의 성직자들 중 대부분은 여성이고, 서양에서 온 선교사들 중 80%가 여성인데요. 중국에서 기독교 메시지를 주로 전한 이도 여성들이었습니다. 교회가 시작한 학교는 복지사업과 관련된 의료 사업을 도와주었죠. 훌륭한 남성들도 있었지만 여성운동이 대단했습니다. 그것이 책을 쓰게 된 한 가지 이유였죠. 조직적으로 계획된 노력이나 돈 없이도 모든 것이 성장해온 방식이었고요. 어떤 면에서는 중국의 일부 교회가 다소 전통적으로 보일지라도 1세기 정신을 갖고 있는 거죠. 그들은 매우 생생하고, 활기차고, 또 일부는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들 중 다수는 국가를 사랑하고 국가가 성공하고 발전하고 번영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데요. 다들 깊이가 있고 여러 자질을 갖추고 있으며 헌신적이지요. 그래서 흥미롭고요.

- 이외에도 다양한 주제로 많은 책을 써오셨습니다. 한국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새로운 주제가 있으신가요?

저뿐 아니라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직면하는 문제는 ‘시간’입니다. 사실상 모든 사람이 너무 바쁩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바쁜 나라 중 한 곳이지요. 제가 사는 호주도 굉장히 분주해지고 있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제가 보기엔 사탄이 굉장히 똑똑하게 일하는 방법 중 하나로, 점점 세계인을 분주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에베소서 5:16에서 바울이 ‘세월을 아끼라’는 말을 하는데요. 당시엔 너무 게으르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문제였는데, 오늘은 너무 바쁘고 분주한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이 문제에 관해 호주 캔버라라는 도시에서 공직에 있는 크리스천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공직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기독교적 관점을 적용할 수 있는지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4년간 공무원들과 함께 일했고, 풀러 신학교를 다닐 때 알게 된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의 일터에서도 비슷한 일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동료 학자들에게 마치 C. S. 루이스가 동료들과 함께 토론한 것처럼, 우리도 기독교인으로서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지요. 저는 그런 그룹에 5년간 있었고, 4년간 사람들이 왜 그렇게 바쁜지 조사했죠. 10년이 지나 책이 나왔어요.

중세 시대엔 7가지 죄악 중 하나로 나태함이 언급되고 있는데요. 게으른 것뿐 아니라 너무 분주해서 결국 가장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여기에 대항하기 위해 ‘느리게 천천히 가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천천히 식사한다든지 천천히 사안을 결정하는 교회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굉장히 분주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성품으로 임하고, 하나님의 속도로 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요. 제가 쓴 책 중 하나가 《The Tyranny of Time(시간의 압제)》입니다. 분주함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우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걸 대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죠. 성경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까? 사람들이 덜 바빠지기 위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정리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