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의 영토들》 외 3권
[396호 잠깐 독서]
서평으로 본 현대신학의 지형도
한국 신학계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해온 저자가 현대신학을 대표하는 책 47권에 대한 서평을 통해 현대신학사를 들여다본다. 다양한 교회 전통 아래 놓인 책들을 비롯하여, 오늘날 신학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준 거장의 작품과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는 학자의 저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영역을 다룬다. 복잡다단한 현대신학의 지형도를 파악하기에 적절한 구성으로, 배경·맥락·주안점을 고려한 사려 깊은 시선, 꼼꼼한 독해가 돋보이는 책.
현대 신학사는 ‘오늘 여기’서 신학함의 의미, 교회의 사명,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성찰할 때 우리가 발 디딜 수 있는 넓고 단단한 지적 배경이 되어 준다. 현대 사회가 그리스도교에 던지는 도전에 답할 통찰을 얻기 위해, 특정 신학이나 전통을 절대화하지 않기 위해, 다른 관점을 가진 이와도 진실하게 대화하기 위해, 과거의 지혜를 무시한 채 현실을 바꾸고자 분투하다 탈진하지 않기 위해, 반대로 과거가 주는 중압감에 눌려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나의 고민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기 위해 우리는 현대 신학의 역사를 공부한다. (14쪽)
선교사 바울이 일기를 남겼더라면
1세기 교회를 연구해온 저자가 성경 본문을 바탕으로 바울의 선교 이야기를 일기 형식으로 구현했다. 그동안 축적돼온 1세기 사회·문화 연구를 적극 활용한 이 책은 신학자이기보다 목회자이자 선교사였던 바울의 내면을 파고든다. 선교 여행에서 묻어나는 그의 인간적 면모와 사역 열정을 이해하기 쉽게 그려냈다.
안디옥에서 더베와 루스드라와 비시디아의 안디옥을 거쳐 세바스테 가도 via Sebaste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는 중에 갑자기 성령님의 음성이 들렸다. “아니다. 거기가 아니다!” 성령님은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는 우리를 막으셨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분명히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 같았다. 그때부터 나는 길을 잃었다. 성령님이 말씀하시자, 역설적으로 나는 길을 잃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해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목적지가 없어지니 가는 길이 더 멀고 험하게 느껴진다. 피로가 몰려온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23쪽)
생물학자가 만난 하나님
평생 생물학을 연구한 과학자가 쓴 이 책은 인간의 탄생부터 노화까지 쉬운 언어로 설명하며 이를 신앙과 연결 짓는다. 저자는 실험실에서 생명의 신비를 연구하며 하나님을 더 강렬하게 만났다고 고백한다. 신앙을 위협하는 학문으로 간주되어온 과학이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를 더 확실하게 증명해준다고 지적하며, 가장 과학적인 것이 가장 신앙적이라고까지 말한다.
과학은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은 할 수 있어도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은 할 수 없습니다. … 앞으로 설명할 발생생물학은 전 세계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결과를 논문이라는 매체를 통해 공인받은 결과를 정리한 것입니다. 반면, 발생생물학을 토대로 한 신앙의 적용은 순전히 저의 개인적인 적용에 지나지 않습니다. … 바라기는 관찰과 실험과 증명으로 생명을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만난 하나님이 내가 만난 하나님과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지를 살펴보며 신앙이 확장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25-26쪽)
교회 내 비장애중심주의를 넘어서
장애가 있는 몸은 기도 제목에 불과한가? 장애인, 여성, 그리스도인, 학자인 저자가 교회와 사회에서 경험한 장애인 차별과 배제를 특유의 위트를 섞어서 이야기하는 책. 그리스도인의 언행에 깔린 장애인 차별과 능력주의를 짚고, 성경을 장애인 관점에서 해석하며,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을 교회에 제안한다.
너무나 빈번하게, 미끄러운 경사길 논증자들은 장애인에게 필요한 시설을 설치하는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비용과 편의성 핑계를 댄다. 이런 모습은 예수님이 묘사하신 하나님 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예수님의 만찬에서는, 비용 때문에 장애인들을 포함하는 것을 제지할 수 없다. 큰 잔치에서 가난한 자들과 장애인들이 먼저 자리를 잡았고 여전히 모두가 참석할 수 있을 만큼 자리가 남아 있다. ‘남은 백성’처럼 우리가 장애인들을 중심으로 잔치를 베풀면 비장애인들을 위한 넉넉한 공간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누릴 수 있다. 우리는 이를 경쟁으로 몰아갈 필요가 없다. (281-2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