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지 묻는다면 ― 경기도 화성 ‘갈피책방’ ‘우리의책방’
[396호 뚜벅이 책방 탐방]
“첫 직장은 콜센터였어요. 통일성 없이 이 직장 저 직장 다녔고, 중간중간 아르바이트도 이것저것 했죠.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으면서 2년 가까이 수입이 전혀 없었고요.” 서점을 열기 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묻자, 눈앞의 30대 청년은 그렇게 답했다.
10월 6일, 화성시 영천동 LH 아파트 단지 상가에 자리한 갈피책방을 찾았다. 문을 열자마자 높은 천장과 오렌지빛 조명, 목재로 통일된 가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널찍한 책상에 마주 앉은 강은혜 서점 지기는 엷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시간 동안 매일 죄책감 느끼면서 살았어요. 엄청 무료하게 시간을 보냈고, 자기 계발도 진짜 못 했어요. 이렇게 지내도 되나? 그런데 내가 직장을 다니면 할머니는 누가 돌보지? 이런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시골 나무 아래 정자 같은 공간이길
강은혜 지기가 서점을 연 것은 지난해 3월. 거동이 불편하고 치매가 있는 할머니를 돌보고 있을 때였다.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준 할머니가 삶의 마지막을 가족들 곁에서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자영업에 종사하는 가족들은 할머니를 돌보기 어려웠다. 자연스레 그가 할머니의 돌봄을 전담하게 됐다. “가족들이 매달 고정 비용을 주긴 했지만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앞으로 뭐 할 거야?’라는 무언의 눈치도 있었어요. 서운하면서도 뚜렷한 계획이 없어서 고민이 많았죠.”
당시 ‘유일한 낙’은 산책과 독서였다. LH 공공임대 상가 입주 공고문을 발견한 것도 도서관 책을 반납했다가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지원했더니 덜컥 합격했고, 보증금과 계약금을 치르고 가구를 들이는 데 저금한 돈을 다 썼다. 강 지기는 사람들이 모여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갈증이 항상 있었다고 말했다. 또, 교회와 사회에서 항상 질문이 많은 그에게 책은 ‘언어’를 찾는 통로였다. “교회 설교 시간엔 항상 제 얘기는 없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이 대두되고, 또래 한국 젊은 여성 작가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행복했어요.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구나 싶어서요. 마음과 인생이 읽히는 기분이 들었죠.”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것과 서점 운영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서점 지기들이 쓴 책을 보면 하나같이 동네책방 하지 말라고 해요.(웃음) 1만 원짜리 책 팔면 3천 원 남으니까요. 소셜미디어 홍보, 독서모임, 북토크로 책을 ‘열심히’ 팔면 수입이 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공간을 유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그래서 음료도 팔기 시작했는데, 이 수입 덕분에 공간이 유지되는 것 같아요.”
직장을 다니지 않았을 때, 강 지기는 다양한 공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화성시 통합 예약 시스템에서 제빵을 배웠다. 그의 하루는 아침 10시에 출근해 12시까지 빵을 만들고 굽는 것으로 시작된다. 도서관 독서모임 등 외부 일정이 없으면 서점에서 손님 응대를 하면서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 서점에 들일 책이나 인근 작은 도서관들에 납품할 책을 고르거나, 책방 모임 발제문과 홍보용 카드뉴스를 만들고 모임 후기를 ‘정성껏’ 써서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책방을 한다고 하면 여유로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엄청 바빠요.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건 돈이 안 되는 거죠.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려면 어쨌든 돈이 되는 것들을 해야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까? 책방을 찾는 사람들은 형편이 넉넉한 분들도 아닌데 어떻게 책을 팔아야 할까? 고민해요.”
LH 아파트 단지에 있는 갈피책방은 1인 가구 청년들, 신혼부부, 장애인, 노인, 아이들이 주 방문객이다. 그는 ‘단골손님’을 책방의 자랑이자 자부심으로 꼽는다. “손님들이 과일이랑 직접 담근 고추장도 주시고, 초등학생 1학년 친구는 처음 혼자서 하교하는 길에 들러서 자랑하더라고요.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엔 파티도 열었는데, 동네 어르신들, 제 친구들, 어린이들이 와서 같이 밥 먹고 영화도 보고 선물도 교환했어요. 돈은 많이 못 벌지만 매일이 행복하죠. 커다란 시골 나무 아래 정자 같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렇게 누려주시는 것 같아서요.”
할머니를 돌보며 배운 것
서가엔 문학과 에세이 서적이 주를 이뤘지만, 소수자 인권 문제를 다루는 인문사회 분야 책들도 놓여있다. 강은혜 지기는 말했다. “사회적 이슈나 약자 이슈를 책으로 볼 때는 쉽게 동의가 되죠. ‘약자들 편에 서는 게 맞지, 치매 환자랑 장애인 차별하면 안 되지.’ 그런데 그런 사람과 24시간을 함께한다는 건 무척이나 쉽지 않은 일이에요. 단순히 ‘차별하면 안 돼’라는 말로는 할머니와 저, 할머니와 사회가 맺는 관계를 입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더라고요.”
할머니를 돌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치매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모습과 달리, 증상의 스펙트럼이 넓었다. 단순히 기억을 잊어버리는 것 외에, 보자기에 연필과 핸드폰을 싸는 등 물건을 범주화해서 정리하지 못하는 증상도 있었다. “치매 증상 중 하나가 불안을 자주 느끼는 건데, 그래서 물건을 자꾸 숨기려고 해요. 할머니는 감춰놨는데 그걸 기억을 못 하니까 제가 훔쳤다고 하시고요. 새벽에 갑자기 제 방에 들어와서 돈이 없어졌다는데 이런 게 매일 반복되면 저도 짜증이 나는 거죠. 그걸 해소할 곳도 없었고요.”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했음에도 어느 날 밤에는 엘리베이터 앞에 앉아있기도 했고, 새 옷을 가위로 잘라놓거나, 한여름에 겨울옷을 찾기도 했다.
“할머니랑 같이 소리 지르며 많이 싸웠어요. 진짜 우울했는데 그러면서도 할머니 인생을 누가 알아주지? 싶더라고요. 평생을 자식들, 손자들 돌보시면서 사셨으니까요.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동안 진짜 많은 걸 배웠고, 어쩌면 하나님이 제게 이 시간을 허락하신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장애가 있는 노인을 돌보는 일은 가족이나 개인의 영역이 되어서는 안 되고, 사회와 국가가 지원해야 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고 느꼈다. 치매안심센터 분소를 이용하며 치매 검사, 치매 환자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집단상담 프로그램, 기저귀 같은 조호 물품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제가 할머니 휠체어를 끌고 갈 때 보도에 턱이 걸려서 넘어질 뻔한 순간들이 있었어요. ‘이동권’에 대해 글로 읽는 것과 제가 체감하는 게 너무 다르더라고요. 나는 국가나 사회에 어떤 도움을, 어느 수준까지 요청해야 하지? 고민이 들었죠.”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고 싶은가
강은혜 지기는 할머니를 돌보며 ‘돌봄’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다. 노골적인 감정 서술과 고민이 담긴 에세이집 《돌보는 사람들》을 접하며 돌봄이라는 말이 갖는 무게를 고민했다. 치매가 있는 할머니를 돌본 20대 ‘손녀’가 쓴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는 일기장처럼 느껴졌는데, 가부장제 안에서 지워지거나 감춰지는 여성들과 그들의 돌봄 노동을 고찰하게 했다.
강 지기는 할머니를 돌보며 당신이 사랑하는 하나님 이야기도 들었다. “할머니가 글을 못 읽으셔서 기억으로만 찬송가를 부르시는데, 〈천부여 의지 없어서〉 찬송 아세요? 전 그 가사가 하나도 공감이 안 돼요. 그런데 할머니 인생을 생각하면 저게 진짜 신앙고백일 수 있겠다, 내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정말 존중받아 마땅하고 진실하다고 느꼈어요.”
당시 그는 1년간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었다. 여러 사건을 경험하며 교회에 대한 갈증과 질문이 많았는데, 지금보다 더 날이 서있었다고 말했다. “내가 할머니가 되면 내 안에 어떤 고백이 남을까? 여전히 비관만 하고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렇게 늙고 싶지는 않았어요. 교회를 다니고 다니지 않고 여부를 떠나, 하나님 앞에 내 하루를 어떻게 여미고 가꿔야 할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할머니를 보면서 많이 했어요.”
그는 할머니와 지내면서 일기장에 썼던 글들을 책으로 엮어보고 싶어서 독립출판물을 만드는 과정을 배우기도 했다. 언젠가 출판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아직 실현하지는 못했다. “할머니를 너무 대상화하는 것 아닌가, 할머니는 당신 이야기가 읽히는 걸 원할까, 내가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걸까… 여러 생각이 들어서요.”
비판과 회의, 그 너머를 보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
갈피책방은 한 달에 한 번 복음과상황 독자모임을 연다. 눈에 띄는 점은 ‘발제문’이 있다는 것. “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묻자 강은혜 지기는 웃음을 터뜨렸다. 한 달에 하루, 복상 독자모임을 위해 서점 문을 닫고 진행하는 이 모임은 회비를 받고 운영되는데, 이에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임 후 같이 밥을 먹으면서 관계를 맺고 싶기도 했고,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준비해올 수 있도록 발제문을 만들어 미리 보내준다.
모임원들은 20-30대 청년들로, 교회 동생들과 동네 주민들이다. 같은 교회를 다녔던 친구의 제안으로 기독교 서적을 읽는 모임을 서점에서 시작했는데, 김용규 박사의 《데칼로그》, 서울 YWCA가 펴낸 《샬롬 페미니즘입니다》를 함께 읽었다. 그다음 읽을거리로 강 지기는 〈복음과상황〉을 떠올렸다. 꾸준히 구독하진 못했지만 사회 이슈가 있을 때마다 찾아보던 잡지였기 때문이다.
“서점 관련 일 중에서 복상 독자모임이 가장 기다려지고 편안해요. 어떤 문제에 대해 비관하거나 회의감을 솔직하게 나누기도 하지만, 우리 교회가, 주변의 어떤 공동체가, 내 형편과 관계가 이렇고 이게 잘못된 것 같고 이런 고민이 있다고 얘기하면서도 ‘그 너머’에 어떤 것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함께 나누고 있어서요. 제 신앙의 아주 큰 동력이 되고 있죠.”
기억하고 싶은 페이지에 꽂아두는 ‘책갈피’. 그는 이 단어에서 서점 이름을 따왔다. 하지만 다른 의미도 있다. “살다 보면 갈피를 못 잡고 앞길이 흐릿하게 보일 때가 있잖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그런 분들이 이곳에서 조금이나마 쉼과 편안함을 누리다 가셨으면 좋겠어요.”
책을 팔지 않는 ‘우리의책방’
갈피책방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걸으면 우리의책방이 나온다. 상가 건물 3층에 자리한 교회 ‘위처치’ 공간인데, 주중에는 서점으로 운영된다. 책은 팔지 않는다. 공간을 이용하는 누구나 5천 원이라는 이용료만 내면 캡슐 커피 한잔과 함께, 비치된 모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유 서재’ 공간이다. 마음에 다가오는 문장이 있으면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남길 수도 있다. 문학, 인문사회, 신학, 자기계발, 경영, 과학 분야 서적이 있었고, 어린이 도서와 영어 원서들도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교인들이 가져다 둔 헌책들로, 책을 가져온 이가 직접 쓴 추천 글도 함께 붙어있었다.
이곳을 지키는 이하나 서점 지기는 목회자 아내이자 세 자녀를 둔 엄마다. 그는 6년간 영어 학원과 영어 도서관에서 아이들의 원서 읽기를 지도하는 교사로 일했다. “2월에 퇴사하고 막내가 유치원을 다니게 되면서, 오전 잠깐이지만 10년 만에 오롯이 저만을 위한 시간이 생겼거든요. 아무 데나 처박혀서 조용히 책만 읽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남편이 주중에 이곳에서 책방을 해보면 어떨까? 제안했고요.”
서점 운영은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았다. 지금은 예약제로 운영되지만, 이전엔 매일 오지 않는 손님들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일이 힘들었다고 이 지기는 말했다. “그래도 저희 같은 경우 수익 창출이 목적이 아니니까 부담감이 덜하죠. 한 달에 한 번 교인들과 헌금 운용을 포함한 교회 전반에 대해 회의하는데, 책방 운영에 대해서도 논의해요. 처음 시작할 때 저희가 논의한 책방의 목적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자는 거였어요. 교회에서는 교회 다니는 분들만 만나게 되잖아요. 이름을 우리의책방으로 지은 것도, 교인들뿐 아니라 방문객들도 밑줄도 긋고 자기 생각도 적으면서 ‘우리’가 될 수 있도록 하자는 콘셉트였죠. 바깥에 위처치라고 적혀있으니까 서점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았지만요.”
그럼에도 서점은 책을 좋아하는 그의 오랜 ‘꿈’이었다. 남편의 유학으로 호주에서 4년간 거주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아이들과 동네 도서관과 서점들을 다녔다. “호주는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책과 연계된 무료 프로그램이 많아요. 자연스레 아이들도 책을 좋아하게 됐죠. 저는 고전문학만 주로 읽었는데 호주엔 한국 책이 극소수니까 동시대 한국 소설들을 접했고요. 한국에 돌아와서, 이곳 책모임에 참여하는 분들이 소개하는 과학, 자기계발 분야 서적들도 접하면서 ‘책 편식’이 사라졌어요.”
모든 교인이 참여하는 책모임
이곳에서 현재 운영되고 있는 책모임은 두 가지다. 고전문학을 함께 읽는 모임과 각자 읽은 책을 아무거나 가져와서 소개하는 모임. 외부인에게도 열려있지만 두 모임 모두 ‘모든’ 교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10-13명 정도 참여하는 책모임은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기독교 서적이 아니라 일반 책을 읽고 모임을 강제하지도 않는데, 책을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도 ‘꾸역꾸역’ 읽기 시작했다. 모임 장을 맡은 교인들은 책을 다 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내용을 요약해온다.
“한 달에 네다섯 권씩 읽으시는 분도 있지만, 완독하진 못해도 조금이라도 책을 읽는 것을 목표로 삼은 분도 있어요. 책을 다 읽지 않아도 남들이 읽은 책 이야기가 재밌어서 참여했다가 그 책을 빌려 가시는 분도 있고요. 영어 원서가 더 편한 친구도 있는데, 그 덕에 한국에선 구하기 어려운 책도 구하고 있죠.”
같은 책을 읽을 땐 시대 배경이나 저자에 대해 더 조사하게 되는 측면도 있고, 자신은 그냥 넘어간 문장에 꽂힌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신선하다고 이하나 지기는 말했다. 지금 교인들과 함께 읽고 있는 고전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별별 이야기를 해요. ‘도스토옙스키는 왜 이렇게 장황하게 글을 썼을까?’라는 질문도 던지죠. 책모임 리더분은 작가 평전도 읽어오셨는데, 이 사람이 도박 중독이라 원고료를 벌기 위해 최대한 장황하게 글을 썼다는 설명도 해주셨어요. 또, 인물들이 말끝마다 ‘헤헤’거리는데 전혀 웃긴 상황도 긍정적인 웃음도 아니거든요. 주인공과 판사가 심리전을 벌이는데 상대를 꿰뚫어 보거나 능글맞게 대처하는 웃음인가? 아니면 도스토옙스키가 미는 유행어였나? 그런 질문도 나오고요.(웃음) 고전은 어렵게 다가오지만 이런 얘기들을 하다 보면 너무 재밌죠. 러시아 소설은 인물 이름도 어렵잖아요. 다들 짜증 내면서 읽고 있어요. 도스토옙스키 소설은 톨스토이 작품과 달리 완전히 선한 인물도 완전히 악한 인물도 없잖아요. 그게 진짜 우리 인간의 모습이라서,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나는 거죠.”
우리의책방은 11월에 문을 닫는다. 12월에 위처치가 서울로 이주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집과 가깝다는 이유로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의 반응은 어떤지 물었다. “여러 교회를 다녀보시고 인스타나 유튜브를 통해 영상을 보고 교회를 결정하신 분들인데요. 이 교회를 오기까지 되게 어려우셨다는 거예요. 너무 감사한 일인데, ‘교회가 어딜 가든 따라간다’ 하셨어요.”
이 지기는 서울에서도 지금처럼 책모임을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앙이 없거나 교회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 모태신앙이지만 정체성에 혼란이 오는 분들이 책을 통해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나아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나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었어요. 그게 가장 보람이 컸죠. 하나님을 믿는 행위와 구원이 무엇인지 말하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왜 이렇게 상처받고 힘든지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게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살피는 일이잖아요.”
그는 당장 서점을 다시 차릴 계획은 없다고 했지만, 또 다른 꿈에 대해 말하며 서점을 언급했다. “서점 주인들이 주인공인 영화 〈유브 갓 메일〉을 인상 깊게 봤거든요. 언젠가 할머니가 되면 서점을 차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늙고 싶어요.”
에필로그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지 꿈꿔본 적이 없다. (일찍 생을 마감하지 않는다면) 나도 할머니가 될 텐데. 하지만 당장 몇 년 뒤 내 모습조차 그려지지 않아서, 나야말로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중이다. 그래도 잊고 있던 꿈이 하나 생각났다. 막연하지만 ‘언젠가’ 나도 동네책방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마음. 북 큐레이션도 중요하지만 누군가 찾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피책방에선 강아지와 개구리 모양의 두루마리 휴지함, 카운터 티슈가 날아가지 않도록 놓인 곰돌이 푸 피규어에 눈길을 뺏겼는데, 서점 지기가 신고 있던 눈알 슬리퍼에서 정점을 찍었다. (그는 직접 담근 청으로 음료도 만들어 팔고 있다.) 우리의책방에선 바닥에 깔린 여러 카펫이 눈에 들어왔다. 크고 작은 조명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심 뷰도 서점 분위기를 살렸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방을 대청소한 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새 유리 화병과 가을 소국도 방에 들였다.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