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참
[397호 질문의 시간: ‘사이’에서 묻다]
거짓말하는 습관은 사람의 영혼에 사형을 가하는 것과 같은 해를 입힌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거짓말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사람이 저지른 첫 번째 죄는 속임수의 결과였다.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이 내린 명령은 금지된 실과를 따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와는 그것을 만지지 말라는 명령이었다고 말했다. 그 뒤로도 역사를 통하여 거짓말은 온갖 잔혹과 유언비어 사기극의 어머니가 되어왔고, 살인과 전쟁의 전주곡이 되었다. 남에게 아픔을 가하는 잔혹한 행위, 남의 고통과 절망을 모른 척하거나 나아가서 즐기는 행위 모두가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보지 못한 결과 파생된 것이다.
―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다.
하지만 인류의 한 처음에는 거짓말이 있었다.
성서는 인간도 모든 피조 세계도 훼손되지 않았던 처음이 우리에게 있었다고 기록한다. 그처럼 모든 것이 온전했던 에덴에 거짓말이 나타난다.
첫 거짓말은 유혹자로부터 온다. 그는 “동산의 ‘모든’ 나무 열매는 ‘먹어도 좋다.’ 단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아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살짝 비튼다.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유혹자는 얼핏 보기에 정말 몰라서 묻는 듯이 천진난만해 보이는 거짓말로 하나님이 좀 지나치신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와의 마음에 불어넣는다. 마음에 의심의 씨앗이 심긴 하와는 유혹자보다 미묘하고 은근한 거짓말로 그의 거짓말에 답한다.
“아니, 그분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 건 아니야. 그런데 동산 한가운데 있는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어. 어기면 우리가 죽는다고.”
하나님은 그 열매를 만지기만 해도 죽는다고 하신 적이 없다. 그러나 하와는 그렇게 답한다. 하와는 이 작은 거짓말을 함으로써 넘어본 적 없던 선을 넘는다. 하와의 미묘한 거짓말, 아주 작은 의심과 약간의 반항심에서 비롯된, 그러나 망설임으로 내뱉은 이 작은 거짓말에 유혹자는 쐐기를 박는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리고 하와의 마음에 작게 자리 잡은 그분을 향한 의심을 키우는 거짓말, 첫 거짓말보다 명백하고 과감한 거짓말을 한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걸 아시고 그러신 거다. (그분은 너희가 그렇게 눈이 밝아져서 지금보다 더 잘 보게 되는 게 싫으신 게지.)”
여기서 거짓말을 한 것은 유혹자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처럼 탁월해질까 봐, 피조물을 견제하느라 열매를 금하신 게 아니다. 그러나 유혹자는 자신의 거짓말을 그분에게 덮어씌워 오히려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든다. 유혹자의 말은 하와의 의심에 불을 붙인다. 이제 하와는 유혹자의 거짓말, 하나님이 하와에게 거짓말을 하신 거라는 거짓말에 반응한다.
‘어쩌면 이 자의 말이 사실 아닐까. 이 열매를 봐. 얼마나 먹음직스럽고, 아름답고, 탐스러운지! 이렇게 아름다운 열매를 먹는다고 죽다니. 그럴 리 없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신 거야.’ 그렇게 하와는 그 열매를 따서 먹는다. 그것을 남편에게도 준다.
유혹자는 이제 그들을 적극적으로 유혹할 필요가 없다. 더는 ‘벌거벗었어도 부끄럽지 않았던’ 과거의 그들이 아니다. 아담과 하와는 벗은 몸이 부끄러워 몸을 가리고, 하나님이 다니시는 소리가 들리면 동산 나무 사이에 숨는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열매를 먹었느냐” 물으시는 것에 “예. 먹었습니다. 당신이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을 먹었습니다. 제가 당신을 의심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답하지 못한다. 대신 “저 사람이 나에게 먹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살라고 하신 저 여자 때문입니다” 하고 답한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된 이들 부부는 에덴에서 쫓겨난다.
에덴에서 나온 그들에게 자녀가 태어난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으니 새롭게 살아볼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나빠진다. 한배에서 나서, 가장 서로의 편이 되어주어야 할 형제 사이에 질투가 피어난다.
하나님이 동생의 예배는 받고 자신의 예배는 안 받는 것에 가인은 화가 난다. 그는 동생이 죽이고 싶도록 밉다. 하나님이 “어째서 그러느냐. 그 마음은 옳지 않다.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경고하시지만 더욱 화를 내며 입을 꾹 닫는다. 이제 에덴에서보다 훨씬 악독하고 노골적인 거짓말이 작동한다. 그는 마치 아벨에게 평화의 인사를 하는 양 “우리 저기 들로 함께 나가자”며 아벨을 속여 꾀어낸 후 아벨을 돌로 쳐서 죽여버린다. 그리고 다시 거짓말로 이 살인을 덮으려 한다.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물음에 “몰라요. 제가 그걸 왜 알아야 하죠? 제가 아벨을 지키는 사람인가요?”라고 답한다. 가인은 이제 뻔뻔하게 하나님을 속이려 한다.
한 처음에 시작된 거짓말이 온 인류 역사에 흐르고 있다. 거짓말에 대해서라면 우리는 모두 선수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말을 갓 배운 아이도 (어른이 보기에는 귀여울 정도이지만) 거짓말을 할 줄 안다.
아주 소소하고 일상적인 거짓말부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거짓말, 타인의 명성에 해를 입히려는 거짓말, 다른 사람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거짓말, 책임을 회피하려는 거짓말, 살인을 위한 거짓말, 범죄를 덮으려는 거짓말,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거짓말,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거짓말까지.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거짓말이 있다.
게다가 거짓말은 자란다. 한번 시작하면 그 거짓말을 지키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심오한 차원에서도 그렇다. 창세기의 저 이야기는 그렇게 거짓의 작은 포자가 점점 퍼져서 인류 전체에 거짓의 곰팡이가 퍼져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거짓은 모든 죄의 기반이자 맥박이다. 거짓이 빠진 죄는 애초에 자라지 못하거나, 금방 사그라든다. 거짓의 곰팡이는 어지간한 인격으로도 지울 수 없고, 잠깐 줄어든 것처럼 보여도 금세 왕성한 생명력으로 되살아난다.
거짓의 포자는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숨어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면서도 우리는 거짓될 수 있다. (성서가 그리고 그리스도교 전통이 이야기하는) 거짓말은 이 ‘거짓이 실체화된 말’이기에,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말하는 것’(이것이 거짓말의 사전적 정의다) 이상이다.
“내가 금지한 열매를 먹었느냐”는 하나님의 물음에 아담은 “하와가 그 열매를 제게 주어서 먹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살라고 짝지어주신 여자 말입니다”라고 답한다. 그는 여기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꾸미지 않는다. 아담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다. 하와가 열매를 먹으라고 권했고, 열매를 아담에게 건넸다. 그 하와와 아담을 짝지어주신 분은 하나님이다. 이는 모두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이 명백한 사실을 말함으로써 더 중요한 사실, 사건의 핵심을 은폐한다. 그는 하와의 말에 마음이 동했다. 하나님에 대한 은밀한 의심을 그녀와 공유했다. 그 먹음직한 열매를 탐했다. 그 모든 것을 한 이는 아담 자신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아담은 하나님이 이 질문을 왜 하셨는지 알고 있다. 하나님이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 열매는 먹어도 되지만, 그 나무 열매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지금 하나님이 바로 그것에 대해 묻고 계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나님은 내가 먹지 말라고 한 그것을 네가 먹었느냐고, 아프게 묻고 계신다. 그러나 아담은 질문의 뜻을 알고도 모른 척, 하나님의 마음을 보고도 못 본 척하며 질문의 초점을 은근슬쩍 돌린다. 하나님은 애초에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누가’ 그 일을 시작했는지 물으신 적이 없다. 그분은 “네가 그것을 먹었느냐” 물으셨을 뿐이다. 그런데 아담은 “하와가 그것을 먼저 권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내 곁에 둔 분은 바로 당신입니다”라고 답한다. 아담은 그분이 무엇을 물으시는지 알고도 모른 척 이렇게 답한다. ‘어쨌든 그건 내 탓이 아닙니다. 내 책임이 아닙니다. 하와의 탓이거나 (어쩌면 결국 하와를 제게 주신) 하나님 당신 탓입니다.’ 무책임하고 뻔뻔하며 부정직한 대답. 아담이 한 말은 모두 사실이지만, 그것은 정직한 대답이 아니다. 아담의 말은 사실의 옷을 입고 있는 거짓이다.
‘네가 금지한 열매를 먹었느냐’는 그분의 물음에 아담은 이렇게 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네. 하나님. 제가 당신을 의심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처럼 되는 걸 하나님이 싫어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열매를 먹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먹어도 된다고 하셨던 당신의 넉넉하심은 잊고 당신이 인색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거짓의 포자에 잠식된 아담은 그렇게 답하지 못한다. 인류는 그런 아담의 대답을 맴돈다. 아담에게 물으셨던 하나님은, 가인에게 다시 물으시며 우리에게 제대로 대답할 기회를 주고, 또 주시지만 인류는 정직하게 하나님께 답하는 것에 매번 실패한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묻고, 또 물으신다. 아담의 귀에 그분의 물음은 범죄자를 감시하는 매서운 감시자의 질책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 물음은 열매를 먹어버린 아담에게 다시금 주어진 기회였다.
명백한 거짓말과 은밀한 거짓말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온 세상을 뒤덮고 있다. 그리하여 거짓이 이 세계의 혈맥이 되어 흐르고 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우리에게는 이 거짓을 뚫고 나올 힘도, 의지도 없다. 온 세상을 뒤덮은 홍수 뒤에도, 인류는 다시금 바벨탑을 쌓았다. 하나의 거짓말이 끝났나 싶으면 새로운 거짓말이 시작된다. 이 거짓의 행렬에는 끝이 없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 먹지 말라는 열매를 먹고, 거짓으로 그 일을 덮으려 했던 아담이 아닌 새로운 아담이 필요하다. 거짓에 물든 말을 구원할 참된 말이 필요하다. 사람을 만든 것을 후회하시면서도, 끝내 기회를 계속 주셨던 하나님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신다. 거짓의 혈맥을 변모시킬 참된 물이 시원에서부터 흘러나온다.
인류의 한 처음에 거짓말이 있었다.
그러나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다.
정다운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번역을 한다. 서로 다른 두 언어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에 관심이 있다.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 《십자가》 《신학자의 기도》 《기억하라, 네가 누구인지를》 《오라, 주님의 식탁으로》 등을 옮겼다. 팟캐스트 〈슬기로운 독서생활〉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