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영성의 통합을 추구하는 현상학자 ― 보스턴 칼리지 제프리 블뢰클 교수
[397호 우리 시대 종교 사상가들과의 만남]
제프리 블뢰클은 미국 보스턴 칼리지 철학과 학과장이며, 최근 앨버트 피츠기본스(Albert J. Fitzgibbons) 석좌교수직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북미 레비나스 연구를 선도하는 대표적 인물 중 하나이며, 프랑스 현상학과 해석학을 기반 삼아 종교적 체험을 해명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는 영성과 철학 이론에 대한 통전적 교육을 시행하는 일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학생들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에 나서거나 수도원 영성 체험을 한다. 특별히 이러한 체험을 철학과 정식 수업으로 구성하여 학생들이 철학 이론과 종교적 영성을 통합적으로 학습하도록 돕고 있다. 블뢰클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전통 가톨릭 신앙의 영향 아래 자라면서, 미국 가톨릭 대학교와 루뱅 가톨릭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가운데 점점 생각의 지평을 넓혔다.
이 인터뷰에서 그는 삶 이야기와 함께 레비나스와 프랑스 현상학의 독특한 성격, 종교적 전통에 기반한 예수회 계열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 등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박효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천주교 강구성당 주임신부)와 제리 정 씨(보스턴 칼리지 재학)가 통역과 안내, 사진 등에 도움을 주었다.
- 먼저 선생님의 종교적 배경과 신앙이 형성된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신앙이 어떻게 선생님을 철학 연구의 길로 이끌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전통적인 가톨릭 신자로 자랐습니다. 보수적인 가톨릭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매주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였지요. 그러면서 저의 첫 번째 신앙고백을 하게 되고, 신앙과 관련한 많은 행위를 하게 되었지요. 식전에 꼭 기도를 드리면서요. 이 모든 게 정체성의 일부였습니다. 저는 4년제 신학대학교를 다녔고, 교회의 일부가 되고자 교회 내부 사람이 되고 싶었지요. 삶을 종교적으로 헌신하려고 결혼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었고요. 지금은 어른이 된 세 아이가 있지만요. 그사이 생각의 변화를 여러 번 거쳤지요. 조금 깊이 들어가면, 제 신앙이 자라난 방식은 어렸을 적 어머니를 잃은 일과 깊이 관련이 있습니다. 세상이 모든 물음에 답을 주지 못해도, 저는 제게 일어난 일의 의미를 생각했지요. 돌이켜 보면, 저는 언제나 꽤 즐거운 의미를 찾고, 방황하면서도 무언가를 궁금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는 신학대학에 가서 헌신하는 삶에 더 깊은 관심을 가졌지요. 그런 삶의 방식으로 들어가면 삶의 물음에 대해 답을 찾는 데 조금 더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계가 참으로 견고하게 하나로 뭉쳐있다고 느낄 수 있겠다고 여기기도 했지요.
한번은 지프차로 엉망인 도로를 탔는데, 어떤 남자 한 분이 눈에 무엇인가 끔찍하게 감염된 상태로 길가에 있었습니다. 저는 속히 가서 옮겼지요. 그분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몇 달 전이면 간단한 안약 몇 방울로 병을 고칠 수 있었을 거라고요. 하지만 너무 늦은 상태였습니다. 그 후 저는 인간의 고통에 관한 물음이 지닌 무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건 지금까지도 제게 중요한 연구 주제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 저는 신학이 이런 물음에 온전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지요. 인간과 신 사이의 관계에 관한 문제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언젠가 대개 어떤 대안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물음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이런 일을 원하고 계시고 우리는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또는 ‘인간의 죄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요. 하느님께서 그런 끔찍한 일을 일으키시거나 용납하시거나, 그도 아니면 이 불쌍한 사람의 어떤 죄 때문에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식의 답을 저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당시 그분은 그저 자신이 살던 곳에서 그냥 살아갔을 뿐인데 그런 일을 당했거든요.
또 이와 관련한 세 번째 해답도 있지요. 창조된 모든 것은 완전하지 않고, 그저 창조의 일부분일 뿐이라고요. 저는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종교적 삶의 방식과 우리의 심원한 물음에 답을 제시하는 모든 것들이 만들어낸 일관된 세계관으로 사태를 보았을 때, 저는 철학으로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철학은 세계에 대한 사유 방식과 세계를 보는 방식과 관련해서, 그런 식의 해법을 배제합니다. 어떤 것들은 종교적 세계관이나 다른 어떤 독특한 세계관 내부에서는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저는 대학원에서 철학을 배울 때, 배움의 과정 중 철학이 이런 것을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계관은 분명 혼돈이나 분산이 아니라 질서가 있음을 확립하는 방법입니다. 다만 세계관에는 편향성이 있고, 이는 그저 하나의 세계관 나름의 원리에 기반하기에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특정 세계관을 비판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질서 잡힌 세계관이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는 이야기이고, 이 또한 분명 무언가를 우리에게 제공해줄 수 있지요. 만일 우리가 이런 기본 원리를 믿는다면, 당연히 그것은 풍부하고 견고한 삶의 방식을 우리에게 선사해줍니다. 그런데 철학은, 신학이 내부에서 쉽게 들여다볼 수 없는 게 있고, 또 어떤 것들은 절대적인 명석함과 더불어 규정할 수 없는 게 있음을 이해하게 해줍니다. 다만 그것들은 일종의 기본 원리에 의존할 뿐이지요. 제게는 이것이 철학과 신학을 구별하는 방법입니다. 저는 종교적인 것에 가까운 것을 신학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이를 철학화할 때 더 편안하다고 느낍니다.
- 관련 질문을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잠시 언급하셨지만, 선생님은 미국 가톨릭 대학교에서 공부하셨습니다. 그다음 벨기에로 건너가 루뱅 가톨릭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셨습니다. 둘 다 대표적인 가톨릭 대학교인데요. 구체적인 공부 경험을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미국 가톨릭 대학교와 루뱅 가톨릭 대학교는 매우 다른 곳입니다. 그때도 그랬고, 아마 지금도 그럴 거예요. 저는 미국 가톨릭 대학교에서 배운 것이 전통에 아주 깊이 정초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퀴나스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는 것과 그 이후 도래하는 모든 것들에 많은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당시 저는 그런 전통에 부정적으로 반응했고, 조금은 반항했습니다. 그 전통을 좋아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루뱅에 갔을 때, 조금 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고 느꼈고, 전통을 배우는 일의 중요성을 즉각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루뱅과 같은 곳에서 물음을 던지게 되는 사태에 대해 깊은 감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루뱅과의 만남은 매우 강렬해서 전통만이 아니라 물음과 문제를 제기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철학과 분위기를 먼저 알려드리고 싶은데요. 아르놀드 부름스(Arnold Burms) 같은 분석철학자, 헤르만 드 데인(Herman De Dijn) 같은 스피노자 전문가가 있었습니다. 학장이었던 라캉주의적 철학자 폴 모이여아르트(Paul Moyaert), 그리고 루디 비스커(Rudi Visker), 로제 부르흐라브(Roger Burggraeve) 등과 같은 뛰어난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서로 매우 다른 입장을 가진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서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이었습니다. 제게는 매우 흥미로웠지요. 높은 압력이 가해져 거품이 일면서 무언가가 터져 나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비록 그들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작업을 했지만, 그들 모두가 공유하는 물음을 던지는 일의 중요성은 제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제가 작업할 때 만들고자 애쓴 분위기가 바로 그런 것이었죠. 당시 저는 어디에도 소속되고 싶지 않았지만, 한편으로 보면 어떤 전통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따금씩 인간학적 전회(anthropological turn)라고 불리는 어떤 것을 그들이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당시 루뱅의 대부분 학자들이 그랬습니다. 그 철학자들은 종교에 매우 큰 관심을 가졌고, 종교적 작업에 헌신적이었지만, 인간 본성에 관한 물음의 측면에서 종교를 형이상학과 구별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요컨대 미국 가톨릭 대학교에서는, 특히 위대한 아퀴나스 학자인 존 윕플(John Wippel)에게 존재와 성서로부터 사유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인간 존재란 무엇인가? 바로 이 측면에서 종교적 주제를 놓치지 않고 사유했습니다. 이러한 사유 방식이 제게 큰 영향을 미쳤지요.
- 선생님의 첫 번째 단행본 제목은 《Liturgy of the Neighbor(이웃의 전례)》이지요. 제목이 매우 흥미로운데, 일견 종교적인 용어인 ‘전례’와 ‘이웃’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이 책은 레비나스를 ‘책임의 종교’라는 주제로 다룹니다. 잘 아시다시피 메롤드 웨스트폴 같은 분은 레비나스를 철저히 무신론자로 보기도 하는데요. 선생님은 어떻게 레비나스를 통해 책임의 종교에 대해 말하게 되었는지요? 종교철학 맥락에서 레비나스를 어떻게 해석하신 것인지요?
저는 최근에도 레비나스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처음 레비나스를 쓴 것은 다소간 실천적인 이유였지요. 루뱅에 있을 때 신학 수업과 여러 현상학 관련 수업, 철학적 인간학 수업도 들었지요. 정신분석학 훈련도 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레비나스 철학과 그의 방법으로서의 현상학을 보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는 종교적 사유에 근접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종교철학자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욕망과 주체성, 능동성, 신체 등에 대해 말하는데, 놀랍게도 프로이트가 말한 바와 매우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중에 그 단행본이 된 박사 학위논문 주제로 레비나스를 택했습니다. 당시 20세기와 21세기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제 작업을 어떻게 연관시킬 것인가 하는 물음과 관련해서 레비나스는 제게 일종의 닻과도 같았습니다. 레비나스가 그러한 작업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레비나스는 후설과 하이데거와 함께 공부하면서 현상학적 방법을 수용하고, 내용적으로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인 사르트르와 맞서는 모습을 보입니다. 노동 수용소에도 수감되었고, 그의 가족 중 많은 이들이 강제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그는 유대인으로 큰 고통을 겪고, 전후 수십 년간, 특히 1950-1970년대에 크게 두각을 나타내며, 윤리적 관계가 종교적 관계이기도 하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물론 그에게 타자와의 관계가 직접적으로 신과의 관계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타자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타인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진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려면, 신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건 간에, 일단 우리가 타자와의 관계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해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레비나스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그에게 신의 초월은 내가 타자와 매여있는 것과 같지요. 이것은 도발적인 표현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너의 얼굴에 무심할 수 없다는 사실은, 내가 언제나 너의 얼굴의 부름에 대해 나의 모든 존재로 응답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사실이 신의 현존을 확증하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만일 신이 없다면, 내가 당신을 외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정당하게 당신을 무시할 수도 있다. 나는 당신을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레비나스는 인간 조건의 첫 번째 사실은 타인이 나를 보고 있을 때 나의 모든 존재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저는 레비나스주의자가 아닙니다. 이런 식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많지요. 하지만 한편으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상가 두셋을 꼽을 때 레비나스가 속한다고 봅니다. 그는 비록 많은 오해를 범하기는 하지만, 하이데거를 경유하면서 그리스철학 전통 전체와 강력한 연관을 맺으면서, 깊고 중요한 통찰을 보여줍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유대교 경전과 토라 등에 대한 해석이 그의 작업 전반에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보면, 레비나스는 큰 충격을 주는 철학자입니다. 저는 이제 레비나스를 뒤로했다 생각하고, 더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레비나스의 후설, 또 레비나스의 하이데거를 읽을 때면, 새로운 흥미를 얻지요. 그의 결론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레비나스는 여전히 어떤 것을 새로이 보게 해줍니다.
- 선생님께서는 프랑스 현상학을 영어권 학계에 도입하고, 또 이를 가톨릭 사상에 전유하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하고 계십니다. 실제로, 장-뤽 마리옹, 장-이브 라코스트, 장-루이 크레티앙 등 중요한 프랑스의 현상학들은 또한 가톨릭 전통을 기반으로 삼고 있지요. 선생님의 관점에서, 프랑스 현상학과 가톨릭 사상 또는 신앙 사이에 이런 긍정적 관계 수립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이는 맨 먼저 역사적 사건이라고 부를 만한 어떤 일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더 많은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부터 프랑스 현상학과 가톨릭 사이의 긍정적 관계 수립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20세기 중반 세속적 무신론자들의 급격한 부상으로 충격이 일어났습니다. 제 생각에 현상학으로의 전회는 바로 이런 세속적 무신론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촉발된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해한다는 말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인식하고, 그런 다음 종교적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는 의미이지요. 이러한 현상학의 운동에 가장 가까운 신학적 흐름은, 세속적 무신론자들의 급부상과 더불어 이를 종교적으로 주제화하려는 생각을 일으킨 ‘새로운 신학’(Nouvelle théologie)이라는 운동 또는 학파입니다. 새로운 신학에서는 종교적 인격이나 주체성이 신과의 관계에 기초해있다고 보면서도, 세계로 시선을 향할 가능성과 신을 망각할 가능성 역시 배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새로운 사유인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신학은 그 모든 내용을 전개하기 위해 교부들에게 돌아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계에 참여하고 육신의 일에 가담하는 와중에도 하느님이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리에게 하느님 자신을 내어주고 있다는 전통적 관념으로 돌아가기도 하고요. 프랑스 현상학자들, 이를테면 마리옹, 크레티앙, (가톨릭은 아니지만) 레비나스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러한 사유를 시행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학 운동 전반의 가톨릭적 흐름과 관련해서 세속적 무신론의 발흥이라는 드라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이데거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하이데거에서 제가 보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 내가 시간 안에서 존재를 사유한다는 논제입니다. 이 논제 다음에 오는 요점은 동일하지만 복잡해집니다. 즉, 우리 삶의 조건 첫 번째이자 마지막에 오는 것은 필멸성, 곧 죽음을 향한 존재로서의 세계-내-존재라는 것입니다. 신은 결코 이 맥락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이데거의 사유는 인간이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지에 관해 인상적이고 일관되게 설명합니다. 만일 이 사유가 옳다면, 신은 결코 인간 경험에 들어오지 않는다거나 신학이 전적으로 철학적 이성 바깥에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 하이데거는 이 둘 가운데 두 번째 결론은 사유했다고 봅니다. 신학이 무엇이건, 이는 철학 다음에 오는, 두 번째 분야가 되는 셈이지요. 차후 하이데거는 신학이 자신이 다룰 주제로 부상한다면, 존재라는 말은 거기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신학과 철학의 차이를 존중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속적 무신론의 발흥이 미친 두 번째 영향은 새로운 사유 방식의 출현입니다. 세속주의, 세속적 정체성이 등장하면서 신에게 호소하지 않고도 인간 존재 전반을 해석하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 입증되었지요. 이것이 하이데거 철학의 특징입니다. 하이데거는 우리 실존의 세속적 차원의 전개 가운데 그러한 인간의 세속적 존재 방식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자신을 해석할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고, 이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 철학의 면모입니다. 이 철학은 인간 경험의 드넓은 범위를 꽤나 인상 깊게 말해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1950-1960년대 프랑스 가톨릭 학자들이 이런 세속적 열정을 그들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바로 이에 몰두하고 있었음이 분명하고, 그렇게 해서 하이데거를 취했던 것입니다. 세속적으로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루는 사상가를요. 우리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저도 여기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 선생님께서 영성과 이론의 통합을 추구하는 여러 과제를 수행하시는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수업 중에 영성가들 텍스트를 철학적으로 읽으면서, 학생들과 수도원 체험을 해보는 과정이 있는 것을 보고 좀 놀랐습니다. 보스턴 칼리지는 분명 예수회 정신을 기반으로 삼고 있지만, 세속 사회의 대학교이기도 하니까요. 선생님은 그리스도교 영성과 철학적 이론을 통합적으로 사유하고 실행하는 작업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행하고 계신지요?
어느 정도는 우연한 계기였습니다. 두 가지 차원에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우선 저와 학생들은 예수회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전인격적으로 한 사람을 교육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 사람을 총체적으로 돌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저는 강의실에 있을 때, 우리가 도덕적 존재, 영적 존재, 성적 존재, 또 육체적 존재로 있음을 상기합니다. 이 모든 존재가 그 안에 있습니다. 이를 염두하는 편이 이러한 요소에 무심한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낳습니다. 우리가 이 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방금 언급한 모든 차원들에 학생들이 실제로 관여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그런 통전적 작업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지요.
그래서 이를 조금 더 확장된 체험 속에서 실험하고자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매년 봄 순례 여정(pilgrimage)을 떠납니다. 저도 매번 참석하진 않지만, 다른 교원이 꼭 학생들과 함께하지요. 이는 지적인 체험이면서 물리적-신체적 체험이고, 사회적 체험으로서의 영적 체험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방금 언급한 여러 체험의 차원을 통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요. 이는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학생들의 진로 탐색과 잘 들어맞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인생 진로와 관련해서) 관조의 과정을 거치게 되어서요. 저는 지금 아프리카 예수회 난민 정착지로 학생들을 데려가는, 조금 더 봉사 지향적인 과정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여러 체험과 인격 형성의 다양한 양상을 염두에 두면서 그것들을 통합하려는 노력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어떤 식으로든 저의 현상학적 접근법과 어느 정도 부합한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종교적인 일을 행할 때나 도덕적인 또는 윤리적인 일을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그런 일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가 실제로 그런 일들을 실천한다면 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사 중심에서 벗어나서 학생들이 행동하고 실천한다면 더 나은 이해를 얻게 되고요. 물론 교사가 어느 정도 권위는 유지해야겠지요.
순례길 체험 수업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연구실 안에 있는 사진을 가리키며) 아내와 우리 세 아이들과 함께 스페인으로 산티아고 순례 여정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예수회 사제였던 친구를 만나 이야기 나누면서 학생들과도 이 여정을 함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보스턴 칼리지로 돌아와 회의를 거쳐 관련 수업을 만들었지요. 이와 관련한 많은 재정을 얻었고, 훌륭한 사람들이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제게 권한을 주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을 이냐시오 순례길에 데려가고 싶다고 했고, 학교 동료들이 동의했고, 실제로 해냈습니다. 이제 매년 진행되고 있지요. 은총과 행운으로 성사된 일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일에 관해 꽤 많은 고심과 반성을 했습니다. 이냐시오 순례길에 대해 알아보면서 순례길 초심자들을 생각했고, 이 여정을 탐구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면서 관상기도를 떠올렸습니다. 순례 여정 중에 관상기도를 연습하는 과정을 넣었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고자 했습니다. 걷고, 기도하고, 사람을 돌보는 이 세 가지 모두가 제게는 일종의 실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순례길을 걸을 때 소망에 대해 숙고합니다. 우리는 관상으로 충만해지는 가운데 어떤 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상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현존을 깊이 긍정하기에 이릅니다. 또한 서로 동반하며 사랑에 관해 생각합니다. 다른 이들을, 모든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성찰하는 것이지요. 바로 이런 경험을 기반으로 제 학술적 연구에서도, 믿음, 소망, 사랑에 관해 현상학적으로 탐구하는 책을 쓰고 있습니다.
- 이제 그리스도교 대학교의 교육 활동과 관련해서 묻고 싶습니다. 한국의 많은 대학교가 세속 사회의 일원이면서 또 그리스도교 정신에 기반해서 학교를 운영합니다. 이때 어떤 도전이나 충돌을 경험합니다. 그 대학을 운영하거나 가르치는 분들은 그리스도교 정신을 따라 교육 활동을 하고 싶어 하지만, 또한 세속적인 사회의 이념을 따라야 하지요. 선생님께서는 그리스도교 영성이나 정신과 세속화 이념 사이의 조화를 어떻게 이루고 계시는지요?
우선, 저는 우리 대학교의 비전, 곧 예수회 교육의 비전이 다른 어떤 것보다 다원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세속 사상가들은 우리가 이미 모든 것에 다 열려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이를 의아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회 대학이나 고등학교는 모든 분야에서의 탁월성을 환영한다는 전제로부터 논의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근본정신은, 만일 어떤 선이나 참이 그 분야에 있다면, 이는 하느님의 존재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무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이를 보기 매우 어렵더라도, 이미 그런 사랑이 작동하고 있음을 전제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상당한 수준에서 모든 사람을 환영합니다. 하지만 이를 환영하지 않는 세속 대학들이 있지요. 그 점에서 세속 대학들도 참으로 다원적이진 않습니다.
일종의 학문으로서 신학이 있다는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신학이 그 자체의 학문으로 자기 분야를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요. 교육학적 차원에서, 이와 비슷한 우려가 있을 수 있지요. 순례길 수업이나 수도원 체험 수업, 제가 기획 중인 우간다에서 난민을 돌보는 수업 등을 우려할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종교에 적대적이라면 이런 수업은 문제가 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런 일에 열려있으며, 모든 학생을 환영합니다. 제가 첫 번째로 학생들을 데리고 순례 여정을 갔을 때 함께 나선 열 명의 학생 중 두세 명은 자기에게 별다른 신앙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런 학생들에게도 열려있었고,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중 한 학생은 교회에 적대적이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순례길을 걸으면서 극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저는 학생들과 함께 대학을 운영해간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학문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삶에 접근하는 일 역시 학문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 사회에는 많은 종교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여러 형태의 신자들이 있는 다종교 사회이며, 또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지요. 무슬림 이민자들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요.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견지하면서도 종교 간 대화와 평화적 공존을 촉진해야 할 의무감을 느낍니다.
사실 이것은 제 아내의 전문 분야이기도 합니다. 제 아내는 종교 간 대화의 신학과 비교종교 연구를 했습니다. 저는 아내를 만나기 전에도 이것이 중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질문하시는 분과 비슷한 마음을 느낍니다. 여러 종교들 사이에서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종교에서, 서로에게서 중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제 아내는 다른 전통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기 전통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제가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불교가 꽤 인기 있었습니다. 당시 불교는 제가 제 전통의 어떤 특정한 것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요. 그로부터 저는 새로운 관점에서 사태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기도 했고요. 이처럼 다른 전통에 속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그 구체적인 방식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덧붙이고 싶은 건 특별히 불신자와 관련한 부분인데, 본인의 연구와 관심에 불신자들의 생각과 관점을 담아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21세기 초 여기 북미, 북대서양 지역에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충격은 믿음 없이 사는 분들이 꽤 널리 퍼져있고, 이분들이 믿음 없이 사는 것에 꽤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단지 그분들이 화가 나있다거나 속상해서 종교를 떠났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그분들이 다른 어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의심하는 일도 옳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이 믿음 없는 삶에 만족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함께 사는 문제와 서로에게 배운다고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것이 한 사람의 진정한 삶의 방식임을 존중하는 일입니다. 물론 그것이 나의 삶의 방식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삶의 방식을 존중해야 합니다.
- 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을 위해 한 말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좀 단순한 미사어구 같은 말이지만, 한국에서도 한국의 문화를 숙성하고 도야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든, 종교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접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도 여기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형태의 종교가 있는 줄로 압니다. 이러한 다양한 종교는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방법이 되지요. 집단이나 공동체는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종교를 문제(problem)로 다루기보다는 어떤 하나의 기회(opportunity)로 다루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진행 김동규
서강대 철학연구소 연구교수·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연구원. 현상학, 해석학, 종교철학 등을 주로 연구한다. (신학적 전제를 괄호 치고) 철학적 상상력을 통해 신과 신앙을 다시 사유하는 일이 (비)신자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믿으며 여러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