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흔적을 찾아서

[397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2023-11-30     이범진

“인간은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나 파랗습니다.”

엔도 슈사쿠 문학관이 있는 소토메의 ‘침묵의 비’에 적힌 이 문구는 종교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는 표현입니다. 굳이 비문 앞에 서지 않더라도, 문장만으로 하나님의 침묵과 인간의 슬픔을 묵상하게 됩니다.

이번 커버스토리는 엔도 슈사쿠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생애와 성찰에 기대어 우리의 신앙을 낯선 방식으로 갈무리해 보았습니다. 그는 소설 《침묵》의 작가로 유명하지만, 삶과 신앙의 비극과 희극, 희로애락의 굴곡을 들춘 수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특별히 이번에는 3명의 필자(강동석, 김승철, 김진혁) 외에도 6명의 독자가 엔도 슈사쿠의 책에 얽힌 자기 이야기를 덧붙여 주셨습니다.

독자 참여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덧붙이고 싶습니다. 2023년은 독자분들로부터 글을 받으려 애썼던 한 해였습니다. 2022년에 한 독자로부터 종이 잡지의 ‘톱-다운’ 방식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화 자리를 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독자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지면에 옮기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게 침착한 지상(紙上) 대화, 즉 종이 잡지다운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독자”라 표기하지 못했을지라도 올해 필자나 인터뷰이 중 우리 독자는 전체의 40% 정도였습니다. 앞으로도 독자 공동체의 이야기를 더 다채롭게 담아 보겠습니다.

세월은 멈춤 없이 흐르는데, 그 햇수를 기억하면 의미가 더 깊이 되새겨집니다. 엔도 슈사쿠의 탄생 100주년이 아니었다면, 이달의 여러 목소리는 나오지 못했거나 나중에 나왔겠지요. 우리는 새해에도 몇 주년, 몇 주기를 기념할 것입니다. 특별히 내년 3월은 복상이 400호를 발행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이어 4월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10주기를, 10월은 성수대교 붕괴 희생자 30주기를 맞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며, 어떤 흔적을 찾아 나서야 할지 ‘탐정소설가’ 엔도 슈사쿠로부터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드리운 반기독교, 혹은 반종교 정서가 쉽게 감지되는 요즘입니다. 그럼에도 이즈음 카페나 공공장소에서 흘러나오는 캐럴과 찬송가는 아직 용납되는 사회라 다행입니다. 거리마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에는 꼭 축복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이범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