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3인의 서점 ― 경기도 김포 ‘민들레와달팽이’ ‘화창한서점’ ‘코뿔소책방’

[398호 뚜벅이 책방 탐방]

2023-12-31     김다혜

복음과상황 김포 독자모임엔 특별한 구석이 있다. 구성원의 절반인 세 명이 동네책방을 운영한다는 것. 김포 독자모임을 이끄는 ‘화창한서점’ 김나영 지기는 가톨릭 신자다. 그가 ‘좌파 목사’라는 별명을 붙여준 김영준 목사는 ‘민들레와달팽이’ 지기. 20대 여성인 가혜민 ‘코뿔소책방’(꿈틀책방 2호점) 매니저는 9개월 차 서점 지기다. 이들은 김포의 서점 여섯 곳이 모인 우리동네책문화협동조합(이하 ‘우동책’)에 소속돼있다. 복상 독자모임과 동네책방 협동조합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토론 좋아하는 지기를 만날 수 있는 화창한서점

Ⓒ복음과상황 김다혜

사우동에 위치한 화창한서점은 2000년대 난개발이 이뤄졌던 풍무동과의 접경 지역에 있다. 서가엔 주로 소설, 인문사회, 독립출판물이 놓여있는데, 김포 독자모임 방문 당시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와 정영환의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이 한자리에 꽂혀있어서 눈에 띄었다. 이를 언급하자 김나영 지기는 ‘토론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이 뭔가를 주장하면, 반대편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그 이야기를 듣거나 일부러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경향이 있어요. 여러 정보를 얻어서 스스로 판단하고 싶기도 하고, 각 입장마다 나름대로 근거가 있으니까요.”

그는 한국교회에서 ‘이단’으로 찍힌 교회나 목사의 설교 영상을 찾아서 듣기도 하고 서점에 찾아온 신천지 신자를 통해 초급반 교육을 몇 차례 들어보기도 했다. “제 마음 한편에는 종말이나 휴거에 대한 불안이 있는데, 이건 가톨릭으로도, 개신교로도 해소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신천지 신자들이나 세대주의자들은 마지막을 위해 살아간다고 하잖아요.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논리가 궁금한 거죠. 내가 읽고 판단하겠다고 교리집을 가져다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했어요.” 서가 한쪽에는 《에델 퀸》 《윤공희 대주교의 북한 교회 이야기》 《새롭게 읽는 김대건 이야기》 같은 가톨릭 계열 서적부터 《쿼크, 카오스, 그리스도교》 《시대의 끝에서》 등의 개신교 서적, 《신천지의 과대망상》 《일곱째 나팔의 진실》 등 신천지의 실체를 밝히는 책도 있었다.

김나영 지기는 원래 성공회 가정 출신인데 가톨릭 집안에 속한 배우자와 결혼하면서 개종하게 됐다. “시댁도 원래 개신교 집안이었는데, 아마 1970년대 에큐메니컬 운동이 한창일 때 교회가 분열하는 모습을 보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신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 엄마와 부흥회를 많이 다녔어요. 개신교 신자들이 가지는 ‘몰역사성’이 싫었죠. 한국의 특별한 역사가 아닌 이스라엘 중심의 역사관을 따르고, 휴거나 종말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서요. 최근 영준 샘과 복상, 또 평화교회연구소 등을 만나면서 내가 알던 개신교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죠.”

서가의 다른 코너에는 〈복음과상황〉 〈생활성서〉 〈가톨릭 다이제스트〉도 함께 놓여있었다. 그는 같은 ‘영성’을 다룬다고 해도 가톨릭과 개신교의 접근 방식이 달라서 흥미롭다고 했다. “가톨릭에서는 어떤 공적 지침이 중요해서, 잡지를 만들어도 주교회나 교구의 인증을 받지 못하면 개인 활동으로만 남아요. 교구의 인증을 받은 게 사회참여적이지 않다는 말은 아니지만, 일반 신자들의 영적 생활에 초점이 맞춰진 경우가 대다수죠.”

그는 최근 복상 독자모임에서 한 멤버가 개신교 안의 집단주의를 비판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신은 전혀 다르게 여겨서 신기했다고 말했다. “개신교야말로 개인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가톨릭은 항상 교회 공동체 속에 있는 자기 신앙을 고백하거든요. 우리 교회와 우리 공동체가 강조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지만, 나는 과연 구원을 받았나 고민하는 부분은 미흡한 것 같아요. 또 가톨릭교회의 성사 중심 신앙생활은 가정 단위로 하기 때문에 혼자 신앙생활을 하려는 분은 적응하기 쉽지 않고요. 반면, 개신교는 자유롭게 뻗어나가기 때문에 그 안에서 건강한 자기 고유성을 갖는 사람들이 다수가 된다면 쇄신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복음과상황 김다혜

김나영 지기는 잡지사에서 근무하다 일을 그만두고 20년간 주부로 살았다. 자녀들을 다 키운 후 시부모님이 소유한 창고를 수리해 서점을 시작했다. “열심히 일하는 편은 아니어서 지인들이 장사를 하는 거냐 마는 거냐 하고, 어떤 손님은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올리셨더라고요. ‘이 서점은 문을 닫은 걸까. 동네 서점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그러고 보니 나는 책을 한 권도 사주지 않았다.’ 나중에 방문하셔서 책을 사셨지만요.(웃음)”

그는 ‘커뮤니티’로서의 서점을 꿈꾸지만 막상 커뮤니티를 조직하는 데는 별 흥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모임에 참여하는 것과 모임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업무의 영역이잖아요. ‘우동책’과 복상 모임으로 만족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동네책방 4년 차를 맞는 내년에는 서점 내 자체 책모임에 조금 더 에너지를 쓰고자 한다고. 이외에 그는 한 달에 한 번 정신질환센터 입소자들이 방문하면 책을 읽어주는 등 책 관련 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무늬만 서점’, 민들레와달팽이

Ⓒ복음과상황 김다혜

“여긴 무늬만 서점이어서요. 다른 곳을 추천드립니다.” 김영준 목사의 이 말을 듣고 찾아간 민들레와달팽이는 높은 층고가 눈에 띄는 곳이었다. 출입문 쪽에는 헌금함과 주보, 성경책들이 놓여있었고, 서가 칸마다 나무 팻말에 분류 기준을 써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전봉준, 신동엽’ ‘문익환, 백기완’ ‘신영복, 루쉰’ ‘권정생, 이오덕’ ‘윤동주’ ‘환대와 연대’ ‘유토피아’ ‘숲’ ‘밥’ ‘섬’ ‘김포’…. 서가에 꽂힌 책 제목들을 일별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5·18 광주 사태》 《윤상원 평전》 《저항하는 섬, 오키나와》 《우리는 왜 이슬람을 혐오할까?》 《서준식 옥중서한》 등등. 《헤어지자고 했을 뿐입니다》 《근대 장애인사》 같은 페미니즘과 장애 관련 도서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무늬만 서점이라고 하셨는데… 거짓말 아닌가요?” 묻자 김 목사는 웃음을 터뜨렸다. “책만 있고 사람이 없으니까 무늬죠. 그 점에서 진실을 말씀드린 거예요.” 2016년 지인인 건물주의 후원으로 이 공간을 민들레교회 예배 처소로 사용하다가, 2020년 같은 공간에서 서점도 시작했다. “기존 카페가 문을 닫게 되었는데, 포스기 약정이 남아있어서 위약금을 100만 원 내야 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서점 문을 열었어요. 서점은 책이 손님을 응대하니까 편하겠다고 생각했고요. 종이와 사각형이라는 단정한 ‘물질’로서의 책, 인테리어로서의 책을 좋아하기도 하지요.”

서점은 교회의 사회선교 프로젝트이자 협동조합인 ‘달팽이학교’의 모임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학습이나 생애 주기가 느린 사람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꾸려왔는데,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은 최근까지 주 1회 진행되었다. “2012년에 교회가 공구상가에서 모일 때, 모인 사람 열다섯 명 중에 예닐곱 명이 장애인이셨어요. 뇌병변장애인, 조울증이 있는 집사님, 지적장애를 가진 딸과 그의 어머니, 아스퍼거증후군 등 다양한 장애나 질환이 있는 분이 많았고, 당황했죠. 그런 분들을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장애인부모회를 만나 발달장애인 자조모임 조력자 양성 과정을 수강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하는 발달장애인 자조모임에 참여하면서 당사자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발달장애인에게 자조모임은 왜 필요할까. “이분들은 자기 말을 할 기회가 없어요. 학교에선 특수교사가, 복지관에선 복지사가, 집에선 부모님이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죠. 자기 말을 해서 무언가 직접 구현할 기회가 거의 없어요. 장애인 당사자와 대화하며 욕구를 확인하고, 욕구를 실현하는 활동을 조력합니다. 영화관에 같이 갔다가 폐쇄된 공간에서 무서워하면 다독여주거나 데리고 나오고, 노래방 가고 싶다고 하면 같이 가서 리모컨 조작해주고, 여행 가고 싶다고 하면 티케팅을 해주거나 운전을 해주거나 하는 일들을 조력자들이 하고 있어요.”

달팽이학교는 이주민 여성들의 검정고시 공부 모임을 진행하기도 했고, 이주민 아동과 함께 놀기도 한다. 김 목사는 서른 살이던 2005년부터 안산이주민센터에서 3년간 기관 전도사로 일했는데, 이후 김포에서 목회를 하면서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민자 현주 씨(응우옌 티 프엉)를 만났다.(본지 344호 ‘다르거나 혹은 같거나’) 현재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 상담팀장으로 일하는 현주 씨는 2015년부터 민들레학교에서 검정고시 공부를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세 시간씩 3년간. “베트남 여성들과 캄보디아 청년,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공부했어요. 대학원 세미나 하는 느낌을 받았죠. 우리에겐 국사지만, 그분들에겐 한국사잖아요. 전혀 낯선 것이어서 굉장히 많은 설명을 해야 했고, 그분들도 정말 열심히 수업을 들으셨어요.”

Ⓒ복음과상황 김다혜

지역에서 교회와 목사가 할 수 있는 일

서점 공간은 주일엔 민들레교회 예배당으로도 이용된다. 한 점에서 모이지 않고 여기저기 작은 단위의 모임들이 산개해서 하나의 교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으로 교회 이름을 지었다. 2021년 결산 기준, 교회 헌금의 30%가 사회선교비로 쓰였다. 외국인주민지원센터 요청을 받아 미등록 이주민 가정에 대한 생활비 지원을 하기도 했다.

“아이 셋을 엄마 혼자 키우고 있는데 월세가 밀려있었어요. 그런데 엄마는 비자가 없고, 아이들도 국적이 없으니까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도 안 되고 공적으로 생활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통로가 없어요. 액수가 많진 않지만 교회가 1년간 생활비를 지원했죠. 공적 기관이 행정적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요. 별게 아니에요. 위기 가정에 전기비가 3개월 밀렸다는 거죠. 평소 복지관이나 동사무소에 말을 해놓으면 연락이 왕왕 와요. 정부가 대동맥이라면 끝자락 어딘가에 피가 돌지 않는 부분이 있고, 그런 건 교회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김 목사는 요즈음 보람을 느끼기보다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민들레교회가 12년 차인데, 코로나 전에는 50명 모였지만 20명이 사라지셨어요. 교회 자체를 졸업하신 느낌이에요. 숫자에 연연해하는 편은 아니지만 사람들이잖아요. 이성적으론 이해가 되지만 남은 사람은 외롭죠. 그게 또 목사의 일인 것 같지만요.” 달팽이학교도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소통이 되진 않으니까 때로 외롭다고 그는 덧붙였다. 김 목사는 일주일에 한 번 요양원에 방문해 치매가 있는 어르신들을 만나는 방문 목회도 하고 있다.

지칠 때는 없느냐고 묻자, 그는 일이 끝나면 혼자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모든 걸 다 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시간을 좀 낭비도 하고, 작전도 잘 짜야 하고요.” 김 목사에게 왜 이주민과 장애인 사회선교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신학 공부할 때 신문 사회면의 이주민 관련 기사들을 보고 화가 많이 났어요. 히브리인이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라면 한국 사회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 곁에 서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죠. 반면 장애인과 치매가 있는 어르신들 뵙는 건 일종의 지역에서 왔던 도전이었어요. 거기에 응전하는 게 교회의 일이고 목사의 일일 수 있으니까요. 그거 안 하면 또 뭐하겠어요.”

9개월 차 서점인이 지키는 코뿔소책방

Ⓒ복음과상황 김다혜

마지막으로 찾은 코뿔소책방(꿈틀책방 2호점)은 김포시 운양동 전원주택 단지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맞은편에는 공원이 있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젊은 부부들과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보였다. 서점에 들어서자 다양한 그림책이 눈에 띄었는데, 동행한 김나영 지기가 동네 분위기를 알려줬다. “주말에 오면 젊은 아빠가 아이 손을 맞잡고 들어와서 책 같이 보고 사주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코뿔소책방은 부모가 선결제를 하고 아이가 나중에 와서 책을 사보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이곳을 지키는 가혜민 매니저는 어릴 때부터 동네책방 일에 관심이 많았다. 이전 직장을 다닐 땐 퇴근 후 글쓰기 워크숍이나 책 만들기 수업 등을 들었고, 지인이었던 ‘꿈틀책방’ 대표를 찾아가 일을 배우고 싶다고 제안했다. 서점이 새로운 일터가 된 후, 가 매니저는 서점 안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다. 독립 출판물 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모임, 성인들과 함께 읽는 그림책 모임, 아이들과 《아낌없이 주는 나무》 《크리스마스 캐럴》을 비롯한 고전을 읽는 모임 등이다. 그는 그중 어린이 책모임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금요일 저녁에 열리는데, 두 시간 동안 책을 매개로 지도 선생님이랑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신기해요. 한 친구는 초대한 친구에게 ‘여기 오면 이런 얘기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어’ 하더라고요. 자기들끼리의 비밀 얘기였겠죠. 그런데 책이 그 매체가 되는 게 너무 좋았어요.”

그는 서점 운영은 타깃을 정확하게 잡고 기획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라고 느꼈다. “사실상 자영업이고 1인 사업체이기 때문에 계획도 잘 짜여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또, 지역 도서관과 협업한다고 했을 때도 의외로 서류 작업이나 행정 일이 많은데요. 그런 것들은 손님들이나 서점 바깥에선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20대 끝자락에 들어설 그에게 앞으로 서점 일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노동에 치이고 사람에 지친 분들과 책을 같이 읽고 그분들이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대부분 현실적으로 책을 볼 여유가 없고, 그중 정말 소수가 일상 속에서 탈출구의 일종으로 책을 펼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분들은 이 동네에서는 보기가 어려운 것 같고요. 그런 부분이 요즘 고민이 되기도 해요.”

Ⓒ복음과상황 김다혜

김포 서점 지기들의 네트워크

세 명의 서점 지기들이 소속된 ‘우동책’은 여섯 책방 중 가장 오래된 꿈틀책방 이숙희 대표의 제안을 받아 책모임에서 출발했다. 이후 사업자협동조합을 결성하고 최근 예비 마을기업으로 인증받는 절차를 마무리했다. 김나영 지기가 김영준 목사와 가혜민 매니저를 각각 처음 만난 것도 이 과정을 통해서였다.

협동조합이자 예비 마을기업을 추진하게 된 이유는 지역 기관과 좀 더 원활하게 소통하고, 서점 한 곳이 할 수 없는 일들을 여러 곳이 모여 시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지역 행사를 기획하고, 매년 정기적으로 ‘작은 책방이 꿈이라면’이라는 주제로 서점 창업 강의 및 컨설팅을 진행한다. 서점을 중심으로 지역과 마을을 변화시킨 사례들을 탐방하는 등 워크숍을 갖기도 했다. 신도시인 김포에서 문화적 욕구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서점을 통해 이를 구현하고자 하는 이들이 생겨났고 또 그렇게 만드는 것이 ‘우동책’의 역할이라고 김 지기는 전했다.

그는 서점을 열고 우동책과 복상 독자모임이라는 네트워크에 참여하면서 자신에게는 일종의 도피처였던 책이 소통의 통로가 되었다고 말했다. “네트워크를 통해 본받고 싶은 분들도 만나고 있어요. 저도 젊었을 때, 영준 샘처럼 활동가로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살지 못했어요. 이제 50대가 되고 불안에서 조금 자유로워지면서 내 안에만 머물지 않고 주변과 소통하고 신앙이나 신념들을 증명하고 싶어요. 복상 독자 모임을 통해선 제 신앙의 해소되지 않는 부분들을 찾아가고 있고요.”

Ⓒ복음과상황 김다혜

가 매니저는 네트워크가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창구’라고 말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경제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요즘 20-30대는 ‘파이어족’을 동경하고 부동산이나 재테크에 관심이 많잖아요. 신앙생활하고 공동체에 섞이려고 애쓰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비주류이기도 하고요. 그런 걸 생각하면 가끔 제가 퇴보하고 있나, 내가 착각하고 있나 흔들릴 때가 있어요. 그때 서점을 통해 연결된 분들과 복상 독자모임을 통해 지지를 받죠. 저보다 어른들이 많으셔서 더 그런 것 같고요.”

김 목사는 복상 모임이 낱권으로 한 개인에게 가기보다 사람들 모임 속에서 역동하는 텍스트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게 개신교회와 성서라는 텍스트가 가진 오랜 전통이기도 하잖아요. 달팽이학교처럼 복상 모임도 제겐 일종의 교회예요.” 복상 모임이 있어서 그나마 외롭지 않다는 그는 이 모임을 함께했던 한 여성 독자의 이야기도 전했다. “한국교회 구조 안에서 상처를 받은 젊은이인데, 1년간 그가 쏟아낸 말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복상이 동료 상담 모임이기도 했던 것 같은데, 그를 위해서라도 모임을 지켜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는 조직화나 세력화하는 운동이 아니더라도, 지역에서 어떤 사건이 있을 때 ‘복음과상황 김포 독자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최소한의 목소리라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고 말을 맺었다.

(왼쪽부터) 가혜민 매니저, 김나영 지기, 김영준 목사. Ⓒ복음과상황 김다혜

에필로그

이날 세 곳의 책방을 가이드해준 김 목사는 〈복음과상황〉에 “엄마 나 왜 등록번호 없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해(378호 커버스토리 ‘어린이를 둘러싼 세계’) 김포에 사는 미등록 베트남 이주 여성 M 씨가 30cm 나무젓가락으로 종아리를 1회 때렸다는 이유로 아이들과 ‘즉각 분리’ 조치를 당한 사건을 알린 바 있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무국적 상태였다. 그 이후의 이야기1)를 들었다.

“첫째와 둘째 셋째가 다른 그룹 홈에서 2년간 지냈어요. 초등학교 4학년인 큰애는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죠. 사춘기가 왔는데, 전학도 싫고 집으로 돌아가면 동생들을 책임지는 느낌이 드니까요. 한 기관의 잘못은 아니고 한국 사회제도 자체가 가정에 문제를 만든 거죠. 엄마 보고 더 노력하라고 하는데, 엄마를 위해 뭔가 해줄 생각을 해야 하는 게 맞잖아요.”

이 가정은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한국에 머물 수 있는 임시 체류 비자를 계속 갱신해야 한다. “법무부와 보건복지부에선 이들을 출국시키는 게 원칙이었어요. 제가 갖고 있었던 자료들과 복상에 기고했던 글을 시청과 아동보호전문기관, 법무부에 다 보냈죠. 상황을 헤아려 달라고요. 다 안 통하고 출국되는 걸로 가닥이 잡히다가 김포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전향적으로 재검토해 주었어요. 시청 여성가족과에도 곡진하게 가정 이야기를 전달했고,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 최영일 목사께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요청하셨고요. 자료와 진정성, 기관 내에 따뜻한 행정을 펴려는 사람들이 함께 만든 기적 같은 일이에요. 그 과정에서 복상이 도움을 준 거고요.”

■ 주

1) 본지 390호(2023년 5월호) 58-63쪽에 실렸다. 김영준, “없지만 있는 국경, 있지만 없는 사람”.


김다혜 기자 daaekim@gos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