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만난 성경 구절이 학교 말씀과 같아서 소름!

[398호 내 인생의 한 구절]

2023-12-31     이승은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다니엘 12:3).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신학생은 아니지만) 신학교를 거쳤다가, 기독교 기반 회사에 다니게 되기까지. 성경 한 구절로 생의 전반을 표현하긴 어렵겠지만, 나는 긴 세월 이 말씀과 인연이라도 맺은 듯이 살았다. 공교육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부모님 아래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라왔는데, 아빠가 29년간의 공직 생활을 그만두면서 대학 시절부터 함께 활동한 선교회 분들과 대안학교를 시작했다. 경기도에 살던 우리 가족은 인삼이 유명하다는 생명의 땅 금산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도시와 시골이 오묘한 조화를 이룬 경기도에서 12년간 살다 마주한 금산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우리가 이사 간 시점에는 다른 가족들의 집과 기숙사 한 채, 학교 건물만 하나 있었고, 첫해 학생 수도 1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다니엘 12:3은 학교 말씀이었는데, 강당 입구 벽면에 붙어있던 이 구절은 매일 오가며 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다니엘서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 이름이 ‘별무리학교’였기 때문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학교에서 종종 이 말씀이 등장하는 때가 언제냐면, 교내 뮤지컬을 한다거나 축제가 열릴 때였다. ‘어떤 의도로 이 말씀을 선정했을까?’ 한 번쯤 의문을 품었을 법도 한데, 졸업 때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대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배우고 살아온 신앙은 위기를 맞이했다.

신학대학교를 다녔던 시간이 위기의 시간이었다니. 내겐 정말 어려운 시기였다. 충돌하는 가치관, 서로를 정죄하는 문화 속에서 몸을 추스르기 어려운 날이 많았다.

사실 다른 대학에 갔다면 겪지 않았을 고통이었겠지만, 신학대학교에는 신학생이 아니어도 성경이나 기독교와 관련된 필수 교양을 듣고 매일같이 채플을 드리며 자연스레 그런 것을 논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물론 관심 없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 시기 나는 다니엘서 묵상은 고사하고, 많은 질문을 떠안은 채로 IVF 생활을 하며, ‘회사만큼은 기독교와 관련되지 않은 곳을 가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간절히 바라는 건 어째서 반대로 이뤄지는지, 얼결에 교수님 추천으로 취업한 곳 역시 기독교 기반 회사였다. 비종교인도 모두 소그룹으로 모여 매일 아침 큐티를 하고, 한 달에 한 번 예배드리는 회사. 그때 알았다. 거리를 두려고 할수록 나는 기독교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자연스레 회사에 물들어가던 어느 날 15주년 행사를 기념하여 대표가 직원들 앞에 나왔는데, 어디서 많이 본 말씀이 적혀있었다.

사실 그때쯤엔 회사에 조금 적응하면서, 스스로 회사에 다니는 이유를 찾던 때였다. 교육 계열 회사이지만 살면서 교육 관련 직무를 고민해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그 이유를 찾는 것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과제 같았다. 더구나 콘텐츠개발팀에서 함께 일하는 이들은 대다수가 교원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었기에, 사회복지 전공인 내가 의미를 찾기란 서울 하늘에서 별 찾기 같았다. 그렇게 고민하던 와중 눈앞에 보인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라는 말씀을 읽는데, 순간 소름이 돋았다. 회사에 오기까지 기도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이상한 확신이 드는 날이었다.

어떤 집단이 표방하는 성경 말씀을 두 번이나 받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기에 스스로 의미 부여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네이버 생성형 AI가 알려주기론 성경은 총 3만 1,102절이라고 한다.) 그즈음에야 이 말씀과의 지독한 인연을 받아들이며,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신기한 마음에 행사가 끝난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빠에게 카톡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이하 사진: 필자 제공

교육이라는 업의 특성일 수도 있겠지만 회사에 몸담아 일하고 교육 콘텐츠를 만들면서,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내가 하는 일의 영향력을 생각하게 된다. 그때마다 이 말씀이 더 깊이 헤아려진다. 그래서 가장 첫 구절에 나오는 ‘지혜 있는 자’의 모습은 무엇일지 궁리도 많이 했다. 지혜는 소유격일까, 동사일까…. 이따금 지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기도 했다. 다니엘서에서 지혜 있는 자가 빛도 낼 수 있다는데, 사실 많은 사람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느 때와 같이 교육 콘텐츠를 만들던 날, 핀란드의 한 교사분이 강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교육은 지금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게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니까요.”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었지만 그날따라 유독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말이기도 해서,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이 말의 의미를 곱씹었다. ‘내가 당장의 성과를 원하고 있지는 않은가?’ ‘장기적으로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과 느긋함이 나에게 있나?’ ‘나는 어떤 태도로 지금 맡겨진 일을 하고 있나?’ 잠자코 여러 생각을 하다가 확연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서, ‘지금부터라도 그러자’ 결론을 내리며, 이 문장을 포스트잇에 옮겨 적고 책상에 붙였다. 일을 하면서 단기간에 대단한 성취를 얻으려고 애쓰거나, 스스로를 볶아대기보단 길고 넓은 시야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하게 된 날이었다.

여전히 같은 회사에 다니면서 내가 만든 콘텐츠가 아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을까 골똘히 고민하는 삶을 산다. 그러나 다니엘 12:3을 회사 행사에서 처음 본 날과, ‘당장의 문제 해결을 위한 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날을 기점으로 나는 매일 일상과 일, 다니엘 12장 말씀을 한 뼘 더 헤아리게 됐다. 포장하자면, 하나의 말씀이 삶에서 연장되는 경험과 지혜롭게 일을 바라보는 시야를 얻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하며 고려해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단순히 회사원처럼 쳇바퀴 돌 듯 일을 해내는 게 아니라 일하는 이유에 대한 답과 의미를 지닌 채 콘텐츠에 적확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훈련. 내가 만드는 교육 자료를 통해 아이들이 본인을 조금 더 이해하고 어떤 사람으로 살면 좋을지 마음껏 상상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주는 일. 그런 고민의 경험조차 부재했던 아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2년 차를 달리는 지금, 이런 시점으로 일상과 일터를 볼 수 있다는 건 내게 하나님 나라 소망과도 같은 일이라고, 감히 고백할 수 있을 것 같다.

고등학생 때부터 ‘직업이란 세상에 나를 소개하는 도구’라고 생각해왔기에 원하는 직업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한 번도 ‘나의 직업’이 되리라 예상하지 못한 일로 소득을 벌며 내 것 삼는 과정에는 분명하게도 하나님의 이끄심이 있었다. 공교육에 몸담은 아이들을 위해 교육 자료를 만들며 대안적인 교육을 받았던 나의 과거가 중요한 자원이 되는 걸 몸소 느끼고 실감한다. 내 삶 속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불신이 올망졸망하게 엉켜갔던 날을 지나, 감히 상상하지 않았던 일이나 대상을 염두에 두게 되고 누군가의 삶에 작은 빛을 심어주는 삶을 꿈꾸는 날에 이르기까지. 정말 지난한 과정이었다.

어떤 물음 하나에 해답을 찾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저절로 풀리는 생은 아니라서 여전히 많은 고민을 떠안고 산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일과 허락하신 관계를 인지하고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지금의 여정까지 신뢰와 불신을 오가며 부지런히 물어온 탓에 하나님을 더욱 신뢰해갈 수 있었노라고. 그렇게 부지런히 걷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옳은 곳으로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소소하게 소망해본다고.

이승은
사람을 사랑하기 어려워서 관찰하기를 습관처럼 하는 교육 콘텐츠 개발자 2년 차다. 평소 쓰고 읽는 것을 즐기고 기억 남기기를 취미로 삼는 편이다. 세상 많은 것에 질문을 던지며 살고, 여유로울 땐 자주 사랑의 실체에 대해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