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거룩하게》 아웃사이더 목회자가 전하는 은혜로운 실패담

[400호 에디터가 고른 책]

2024-02-21     정민호
어쩌다 거룩하게 / 나디아 볼즈웨버 지음 / 윤종석 옮김 / 바람이불어오는곳 펴냄 / 17,500원

일단 교회 이야기라면 관심이 간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나 어려움과 문제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나만 그런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라는 걸 늘 확인하고 싶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런 내 관심과 믿음을 충족시킨다.

저자 나디아 볼즈웨버는 185센티미터 장신에, 온몸에 문신이 새겨진, 강렬한 인상의 루터교 목사다. 그는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교회 ‘모든 죄인과 성인의 집’을 시작했다. 거기에는 도심 속 아웃사이더들, 중독자, 강박증 및 우울증을 앓는 이, 장애인, 자살 유가족 등 기성 교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이들이 찾아온다. 저자는 교인들과의 일들, 은혜로웠던 일상 에피소드들을 모아 이 책을 썼다.

그는 어쩌면 하찮게 느껴지는 기분과 자신이 비참해지는 순간의 마음, 정돈되지 않은 감정들까지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어느 성도가 맘에 들지 않아 그에게 수련회 안내 메일을 보내지 않은 이야기, 예배 시간에 너무 화가 나서 임산부인 성도에게 기도를 부탁한 이야기, 교인 부부의 결혼식 주례를 맡았는데, 실수로 강연 약속을 수락해서 일정이 겹쳐버린 이야기는 그야말로 저자의 못난 면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다.

이 책은 그런 실패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망과 좌절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이 곧 ‘은혜’가 된다. 저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두렵다는 이야기까지 한다. 은혜는 고통과 좌절 끝에 오기 때문이다. 고통과 좌절이 없는 사람에게는 은혜가 필요하지 않으니까. 이는 누구에게나 은총의 순간들이 일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자기계발적인 종교 생활이 아닌, 어딘가 모자라고 부족한 것 같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은총의 순간들.

현실은 늘 어딘가 모자라는 것만 같다. 우리가 모두 완전무결하지 못하고 모자를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서로 모자란 사람끼리 이해하고 채워주며 살아가는 것이 ‘거룩’의 모습이 아닐까.

“솔직히 말해서 때로 복음이란 그냥 타인들입니다. 때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달하시는 유일한 길은 그분들의 사자들을 통해서죠.”

기독교 교리가 주는 부담감에 짓눌린 이들, 그로 인해 좌절을 겪은 이들이 있다면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예전에 내게 ‘큰 잘못을 한 사람이 교회에 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이 책을 읽고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졌다.

정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