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사람들
[400호 이한주의 책갈피]
작년 12월 22일 대전의 낮 기온은 영하 12도였다. 이걸 정확히 아는 건 그날 성서대전에서 이태원 특별법 홍보 피케팅을 했기 때문이다. 성서대전 전남식 목사와 성심당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있는데 10분도 안 돼 온몸이 떨렸다. 추운 만큼 시간도 더디게 흘러 지루함을 달래보려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러다 요즘 무슨 책 읽느냐는 질문에 이르렀다. 전 목사는 며칠 전 《고도를 기다리며》(민음사)를 다시 읽었다며,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이 마치 자기 같다고 했다. 그날 나도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시 읽었다. 이 작품은 이렇게 끝난다.
블라디미르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 가자.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115쪽)
두 사람은 기다렸던 고도를 만나지도, 기다리는 일을 그만두지도 못한다. 기다리는 일에 지쳐 ‘이 지랄은 이제 더는 못 하겠다’ 투덜대고, ‘내일 목이나 매자’ 절망하다, ‘이젠 그만 가자’ 했지만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왜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을까? 혼자였으면 일찌감치 그 자리를 떠났을 텐데 둘이어서, 함께 기다렸던 옆 사람이 있어서 떠나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혼자였으면 그만두었을 일을 옆 사람 때문에 계속한다. 혼자였으면 그 추운 날 피케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했더라도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끝내고 들어갔을 것이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 약속한 시간을 지킬 수 있었던 건 옆에서 함께 떨어준 사람 때문이다. 함께 기다리는 사람은 내가 떠나지 않게 지켜주는 버팀목이다. 하지만 고도가 끝까지 오지 않는다면, 만들어진 법이 실행되지도 못하고 폐기된다면, 함께 기다리며 견뎠던 그 시간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비행운》(문학과지성사)에 수록된 〈호텔 니약 따〉에는 노량진에서 함께 고시를 준비하다 헤어진 연인이 통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너 나 만나서 불행했니?”
그러곤 곧장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저쪽에서 긴 침묵이 이어졌다.
초조해진 서윤이 황급히 변명하려는 찰나 경민이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
“그런 거 아니었어.”
“……”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운 거였어.” (277쪽)
혼자라면 포기할 수 있을 텐데, 나를 응원하며 함께 기다린 사람 때문에 그만두지도, 다른 길을 찾지도 못하고 기다림을 반복한다. 이렇게 기다리는 일은 불행 그 자체는 아니지만 불행만큼 힘들다. 바라는 행복이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이 이상이 될 수 없을 거란 불안을 안고”(251쪽) 함께 기다리는 일은 어느 순간 상대방의 절망도 견뎌야 하는 무거운 일이 된다. 두 사람이 헤어진 건 날이 갈수록 더해가는 기다림의 무게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이 나온 시점이 13년 전인데, 행복을 기다리는 일은 그때보다 더 지겨워지고, 함께 기다리기보다 혼자 포기하는 쪽을 택하는 사람은 더 많아진 것 같다. 이런 시대를 견디는 비법, 지겹지 않게 기다리는 방법이 있을까?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가 최근 신작 소설집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래빗홀)를 펴냈다. 이 소설집에 실린 〈대게〉란 작품에 러시아 말을 하는 대게가 나오는데 이 대게는 해양오염의 피해자들을 상징하는 듯하다. 대게가 사는 바다는 이미 오염되고 깨지고 부서졌다. 개인이 아무리 분리수거를 열심히 해도 바다에 방사능오염 물질을 국가 단위로 쏟아붓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인간도, 대게도, 어디에도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주인공이 푸념하며 울고 있는데 남편이 말한다.
“그러니까 싸워야죠.”
잠든 줄 알았던 남편이 중얼거렸다.
“싸워서 못 하게 해야죠.”
“그렇지만 어떻게요? 게는 집게발이 전부인데 이걸 다 어떻게 막아요?”
“이길 것 같으니까 싸우는 건 아니잖아요.” (66쪽)
이길 것 같아 싸우는 게 아니다. 이길 것 같지 않아도 싸운다. 그 싸움을 통해 세상이 조금은 바뀌기 때문이다. 이 말을 ‘만날 것 같으니까 기다리는 건 아니잖아요’로 바꿔본다. 만날 것 같지 않아도 기다릴 수 있는 것은 기다림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만남으로 완성되지 않았던 기다림도 그냥 사라지지 않았다. 뜻밖의 사건과 다른 만남으로 이어져 삶이 되었고, 시간은 언제나 기다림을 통해 형체와 의미를 보여주었다. 고도를 기다리지 않았다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시간은 기억할 것 없는 무의미였으리라. 지겨웠지만 함께 행복을 기다렸던 날들이 있어 연인은 헤어진 후에도 노량진에서 보냈던 젊음을 기억할 수 있다. 지겹지 않게 기다리는 방법은 없지만 실패한 기다림도 사건과 경험을 만들어냈다는 걸 기억하면, 기다림이 헛수고였다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길 것 같지 않아도 싸우고, 만날 것 같지 않아도 기다리다 보면 뭔가 바뀌고 달라질 거라는 말은 막연하고 답답하지만 여기에 이상한 힘이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 사도가 말하는 사랑이 그렇다. 바울 사도는 사랑에 대해 말하면서 오히려 사랑이 없어도 이루어지는 놀랍고 대단한 일들을 먼저 말하고, 사랑보다 사랑이 아닌 것들을 더 많이 열거한다. 그러다 사랑에 대해 처음으로 긍정적으로 말한 것이 ‘사랑은 오래 참고’이다. 사랑은 참는다. 참는 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다는 말인데,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내 뜻대로 하지 않는 게 사랑이다. 사랑은 참는다. 사랑해서 참았다 치자. 그러나 문제는 ‘오래’ 참는 거고, 더 큰 문제는 이 오래가 대체 얼마나 길지 모른다는 거다. 10년쯤 참아주면 안 참아도 되는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바울 사도는 그런 희망은 주지 않는다. 바울 사도는 사랑은 오래 참는다는 말로 사랑에 대한 환상을 깨뜨린다. 내 마음에 흡족한 상태를 영영 못 만나고, 지겹게 참다가 끝날 수도 있는 게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 막연하고 답답한 일을 하며 믿고 소망한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이렇게 사랑에 대해 가르치는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다. 만날 것 같지 않아도 기다리고, 이길 것 같지 않아도 싸우고, 오래 참으며 사랑하는 일은 혼자서는 할 수 없다. 기다리고, 싸우고, 사랑했던 기억에는 늘 함께했던 사람들이 있다. 소설 〈대게〉에 주인공이 남편과 결혼한 이유가 나오는데 작가가 전하는 사랑 고백으로 읽었다. 기다리는 게 지겹고, 싸움이 무섭고, 사랑에 지쳤을 때도 떠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제400호에 이르도록 〈복음과상황〉을 만들어준 분들께 이 사랑 고백으로 감사와 축하를 전한다.
이 남자와 결혼한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질 줄 알면서도,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언젠가는 끌려 나가 사라지더라도 어쨌든 끝까지 고개를 높이 들고 목청껏 외치면서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았다. (69쪽)
이한주
대전 주사랑교회 담임목사. 중앙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를 했다. 책과 책 읽는 사람과 책 읽고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