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함께 누벼진 생의 에피소드를 품은,

[401호 나의 순정만화 순례] 천계영: 《언플러그드 보이》

2024-03-31     박혜은

음악과 함께 떠올릴 결정적인 사랑의 기억이나 일생의 연인 같은 것은 없지만, 대신 갖가지 자투리 일상들이 스미고 짜이고 덧대어지는 중이다. 거기에는 글렌 굴드와 … 제쓰로 툴이 복원해낸 생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누벼져 있을 것이다. 언젠가 세상 끝 날 그 누빈 이불을 덮고 나는 나의 하느님에게로 가게 될까.
― 이소영, 《별것 아닌 선의》(어크로스, 2021), 276쪽.

그날, J가 왜 수업 시간에 교탁 앞으로 나와 노래를 불렀는지 그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날이 맑고 좋아서 혹은 비가 내리고 천둥 번개가 치며 날이 우중충해서, 그것도 아니면 선생님의 첫사랑 레퍼토리가 다 떨어져서? 아무튼 그날, 서울 송파구의 한 중학교 1학년 ○반 학생들은 오늘 같은 날 수업을 받을 수 없다며 졸랐고 선생님은 그 청을 받아들여 교탁에서 비켜줬다. 그렇다면 일단 누가 나와서 노래를 해야 하는데 왜인지 우리는 J의 이름을 연호했다. J가 우리 반에서 가장 엔터테이너 기질이 충만했던 친구였나? 이윽고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단발 생머리를 찰랑이며 교탁 앞에 선 J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난데없이 “난 알아요”를 외치며 랩을 시작했다. 그날 랩이라는 걸 처음 듣고 받은 충격으로, 이후 난 10대 시절을 다 바쳐 서태지와 아이들의 모든 음반을 샀고 모든 노래를 외웠다. 아, 그 당시 중학생은 다 그랬다(아니라도 어쩔 수 없다).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를 들으며 10대 시절을 건너던 우리에게,

난 슬플 땐 힙합을 춰.
― 《언플러그드 보이 1》(서울문화사, 1997), 38쪽.

라는 대사가 도착한 건 필연이었다. 순정만화는 잘 몰라도 대중문화 향유자라면 한 번은 접했을 유명한 밈. 바로 천계영 작가가 1996년 순정만화 잡지 〈윙크〉에 연재한 《언플러그드 보이》에 나온 남자 주인공 현겸의 대사였다. 힙합이라. 당시 10대인 우리에게, 슬플 땐 힙합을 춘다는 건 곧 서태지와 아이들이 노래와 패션과 태도로 온통 뿜어내던 그런 아우라로 슬픔을 극복한다는 의미였다. 당시엔 이런 표현이 없었지만 그야말로 힙한 상태 그 자체.

1992년부터 1995년 사이, 10대 언저리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나, 매해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을 사고 카세트테이프 속지에 적힌 가사를 외웠을 테다. 언젠가, 당시 10대였고 이제는 30대가 된 또래 가정교회 친구들과 엠티를 갔는데 하필 그 개인 별장에 노래방 기계가 있어 밤새 노래만 부르다 온 기억이 있다. 노래방 기계로 제대로 멤버십 트레이닝을 하던 그때, 서태지와 아이들 2집 〈Seotaiji and Boys Ⅱ〉 타이틀곡 〈하여가〉의 랩과 노래를 한 번의 버벅임도 없이 떼창을 하는 우리를 보며 난 알아버렸다. 이것이 바로 유니티구나!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은 “서태지의 음악적 정체성을 랩이나 힙합으로 규정하기는 힘들다”고 했지만 “그가 세상에 내놓은 모든 음악이 ‘한국 힙합의 시작’을 형성한 래퍼들의 유년기를 지배했다”는 점을 중요하게 꼽는다.1) 내가 래퍼는 아니지만,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6년 1월에 은퇴하기 전까지 매년 성실하게 발표한 정규 앨범은 내 10대 시절에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으로 스며들어있다. 음악에서는 그런 비트와 리듬을 즐기던 때에도 1980년대 감성과 주제 의식을 지닌 순정만화를 동시에 읽고 있었던 사실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문화적 혼종의 시간을 보냈던 것도 같다.

그때 동시대 감수성과 스타일, 감각적 연출력을 장착한 “1990년대 만화계의 슈퍼스타”2) 천계영의 등장은 거의 대중문화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한 급으로 10대 만화 독자들에게 센세이셔널을 일으켰다. 〈윙크〉 신인 작가 공모전 대상 출신인 천계영은 곧 〈윙크〉에 《언플러그드 보이》를 연재한다. 긴 시간 수많은 패러디를 낳은 “난 슬플 땐 힙합을 춰”라는 대사는 고등학교 1학년인 여자 주인공 지율이 엄마한테 혼나고 새벽 한 시 반 놀이터에서 혼자 울고 있을 때 나타난 현겸이가 건네던 나름 진지한 위로였다. 1996년 감수성 가득 품은 작품 속 맥락과는 달리, 이후 이 대사는 “난 슬플 땐 ○○을 해”라며 슬픈 상황을 허세 넘치게 혹은 우스꽝스럽게 극복(?)하는 느낌으로 패러디되곤 했지만.

천계영 작가가 《언플러그드 보이》로 1996년 10대 독자에게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받은 것은, 저런 식의 대사와 설정이 당시 10대 당사자들의 이야기이자 감수성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고 조금은 과하거나 유치할 수도 있는 만화 속 관계와 고민들은 현실 속 우리의 모습이었고, 그들이 그 세계 안에서 화해를 이루고 성장하는 방식은 우리에게도 가능해 보였다. 그동안 내가 보아온 순정만화는 시대극이나 판타지, SF 등의 장르 안에 장대한 서사나 급진적 주제 의식, 독보적 캐릭터를 표현하는 게 주를 이루었다. 학원물이라고 해도 왠지 모르게 순정만화 속 고등학생들은 성인처럼 성숙하며 정제된 대화를 나누었고 관계와 감정이 정돈되어 보였다. 앞선 글들에서 밝혔듯 내 인생에 특별한 영향을 끼친 작품들이 시대를 고민하고 시대를 넘어선 주제 의식을 제안하며 자아를 찾기 위해 분투하던 주인공을 보유한 그런 이야기였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언플러그드 보이》 등장인물인 강현겸과 채지율, 반고호와 이락이 늘 살아있었다. 내게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주인공들의 인간적인 생동감이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강현겸이라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과 패션은 얼마나 힙하던지, 그런데 거기에 더해 완벽하고 순수한 순정남이라니. 여자 주인공 채지율의 헤어스타일과 패션 감각은 어찌나 따라 하고 싶던지. 지율이네 학급 반장인 반고호의 이름이 지어진 이유란 얼마나 매력적이었던지(고호 엄마가 반 고흐 왕팬이라 반씨 성을 가진 남자를 찾아 결혼했다는 정말 만화 같은 이야기), 문제아로 낙인찍혀 담임선생님과 반 친구들에게 늘 오해받는 반항아지만 자기만의 아픔을 품은, 속 깊은 이락은 꼭 우리 반에 한 명쯤 있는 친구 같아 얼마나 친근하던지.

잘 짜인 서사 구조와 주제 의식보다 간지 나는 스타일로 기억되고, 정돈되며 성숙한 관계 맺기보다 변덕스럽고 슬픔이 많았던 10대 시절의 감정 변화를 그대로 품은 《언플러그드 보이》는, 그래서 내 10대 시절의 시청각적 기억을 한꺼번에 소환하는 마법과 같은 작품이다. 현겸이와 지율이를 따라 그때 들었던 음악, 교실의 왁자지껄한 분위기, 수업 시간마다 창문 밖에 펼쳐지던 계절의 변화에 따라 망상도 달라지던 기억, 유치한 감정을 교류하고 서투르게 관계 맺던 어설픈 순간들, 잊을 수 없는 개성을 지닌 학교 친구들을 한꺼번에 데려온다. 이 순례길에서 만난 작품들과 다른 차원에 서있는 단 하나의 순정만화.

현겸과 지율에게 배운, 슬픔을 건너는 법

만화가 연재되던 1996년으로부터 무려 20년이 지난 2016년에는 소소하고 유쾌한 이벤트도 있었다. “난 슬플 땐 힙합을 춰”가 인터넷에서 매우 품질이 낮은 짤로 사용되는 걸 보다 못한 천계영 작가님이 직접 본인의 구 트위터 계정에 고화질 짤을 풀어주신 거다. 역시 동시대와 호흡하는 작가님다웠다. 우리의 그 밈질을 다 보고 계시다가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다니(유유).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작가님이 쪄주신 고화질 짤에는 “난 슬플 땐 힙합을 춰”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다음 대사가 생략되어 있기에.

아무도 내가 슬프다는 걸 눈치챌 수 없도록.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갈등으로, 고입 연합고사 시험장에서 내내 울다가 시험을 망치고 고등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현겸이었기에, 엄마한테 혼나 새벽 놀이터에서 홀로 울던 지율이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게 이제는 보인다. 슬플 때 힙합을 춘다는 건 나름 슬픔의 시간을 보내며 단련된, 1996년의 열일곱 살이 발견한 최대한의 슬픔 극복법이었을 테다. 내가 슬퍼하는 걸 보는 누군가가 내 슬픔을 눈치챌 수 없도록 배려하는 자기만의 슬픔 승화법. 당시에 봤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긴 장면에서 다른 사람의 슬픔을 지나치지 않고 자기만의 슬픔 승화법을 알려주는 다정한 현겸이가 보인다. 일찍 슬픔의 감정을 알아차린 현겸이 덕에, 힙합을 추며 아무도 슬프다는 걸 눈치챌 수 없게 하는 방법을 전수받는 지율이.

이하 사진: 필자 제공

봐. 기본 동작이 중요해. 힘을 다 빼고 이렇게 몸을 너덜너덜하게 해야 돼. 손은 이렇게 ‘엄마 돈 줘!’ 하고서, 엄마가 ‘어제 줬잖아!’ 그러면, 막 뒤지면서 ‘내놔! 내놔!’ 하는 거야.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면서. 고개는 막 흔들어. ‘엄마, 미워! 미워!’ (37-38쪽)

힘을 빼고 너덜너덜 힙합을 추며 ‘엄마 미워!’를 외치다 보니 현겸이와 지율이는 어느새 슬픔에서 빠져나와 함께 웃고 있다. 나중에 현겸이가 또 다른 슬픔에 빠졌을 때 그에게서 배운 힙합 춤을 흐물흐물 추며 위로하는 지율이를 보니, 이들은 그렇게 힙합을 추며 한 뼘 더 어른으로 자라난 것 같다. 날 위로해준 이에게 그 위로를 되돌려줄 수 있을 만큼. 그들이 처음부터 어른스럽고 고급진 대사를 내뱉는 학원물 속 고등학생이 아니어서 좋았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딱 자기 수준의 방식으로 서로를 품는 모습이어서 좋았던,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순정만화. 힙합을 춘 것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현겸이와 지율이처럼 삶의 장면마다 음악과 함께 슬픔과 기쁨의 순간을 넘어왔다.

음악으로 넘어온 슬픔과 기쁨의 시간

내가 다닌 대학은 사회봉사 학점 이수가 필수여서 4학기 동안 학교에서 지정한 NGO나 병원 등에서 봉사를 해야 했다. 마지막 학기에는 죠이 동기 H와 정책 관련 NGO에 사회봉사 신청을 했다. 첫 봉사 날, 단체 사무실에 찾아가자 학과와 성별이 다른 두 학생이 친구라며 같이 온 게 신기했던지 간사님께서 둘은 어떤 사이냐고 물으셨다. 같이 동아리 활동하는 친구라고 했더니 어떤 동아리냐고 물으셔서 해맑게 대답했더니,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활동가로 일하고 계시던 간사님께서 자기네 학교에도 죠이가 있었다며 반가워해 주셨다. 본인이 활동하던 동아리 옆방이 죠이 동방이어서 잘 아신다나? 그러면서 덧붙인 코멘트. “거기 노래 동아리지? 동방에서 항상 노래 부르던데.”

하하…. H와 나는 어색하게 마주 보며 웃음 지었다. 우리 둘이 차마 즉각 부인(?)할 수 없었던 이유는… 하필 H와 나는 동방에서 두 시간씩 《포크송 대백과》를 펼쳐놓고 노래를 부르던 당사자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학교에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나? 하며, “네…, 뭐 비슷한 동아리예요. 노래 많이 부릅니다” 하고 넘어갔다. H와 나는 동방에서나 엠티에서 눈만 마주치면 노래판을 벌였다. 그는 기타를 붙잡았고 난 선곡을 했다. H와 동방이나 엠티에서 놀 때면 왠지 《많은 물소리》보다 《포크송 대백과》로 손이 갔던 건 왜일까. (선교단체에 《포크송 대백과》가 찬양집 옆에 꽂혀있었던 건 왜일까.) 우리는 그렇게 죠이룸에서 두 시간은 거뜬히 가요 명곡을 부르며 놀았다. 〈가리워진 길〉, 〈별이 진다네〉, 〈매일 그대와〉…. 그러면 다른 죠이어들이 들어와서 쟤들 또 저러고 노는구나, 받아들이고 자연스레 자기 할 일을 하거나 같이 노래 대열에 합류하곤 했다. 물론 《많은 물소리》의 수많은 찬양이 우리 영혼을 채우고 운동할 힘을 내도록 했던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난 특히 뜨인돌 마니아였다).

밝은 낮의 시간에 노래로 삶의 타임라인을 채우며 자투리 일상들이 덧대어지던 기억과 함께 지금은 부재하나 영원히 잊히지 않을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 K도 하나의 노래로 기억한다.

그날, 왜 K가 수업 시간에 교탁 앞으로 나와 노래를 불렀는지 그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날이 맑고 좋아서 혹은 비가 내리고 천둥 번개가 치며 날이 우중충해서, 그것도 아니면 선생님의 첫사랑 레퍼토리가 다 떨어져서? 아무튼 그날, 서울 송파구의 한 중학교 2학년 ○반 학생들은 오늘 같은 날 수업을 받을 수 없다며 졸랐고 선생님은 그 청을 받아들여 교탁에서 비켜줬다. 앞에 나서기보다 항상 자기 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앉아있던 K가 그날 교탁 무대의 주인공이 된 이유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길쭉한 천 필통을 마이크 삼아 망설임 없이 교탁에 선 K는 눈을 감고 차분히 노래하기 시작했다.

Hey Girl, 너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이 너무 슬퍼 보여 우는 건 아니야 / Hey Girl, 다만 너를 사랑할 수 없었던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일 뿐 / 슬픔이 네게 필요하다면 눈물을 미리 준비해둘게 그것이 니가 바랬던 거라면 / 슬픔마저 참아야 한다면 받아들일게 너를 위해서 나 혼자 슬픔을 감추며 …
― 신승훈, 〈소녀에게〉 중에서

그때 K의 목소리, 짧은 앞머리를 핀으로 올려 고정한 단발머리와 자태까지 내 마음에 선명히 새겨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친구지만 교탁 무대에서 그가 보여준 의외의 용기, 생각지도 못한 노래 선곡, 교실을 일순 고요하게 만든 힘을 자주 떠올리며 어른이 되었다. 마음에 슬픔이 밀려올 때마다 K를 따라 가만히 눈을 감고 이 노래를 읊조리며. 그러니까 《언플러그드 보이》에는 내 삶의 타임라인에 기억이란 마법을 뿌려 그 순간의 아름다움과 음악을 환기하는 힘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얼마 전에는 현겸이와 지율이가 2024년에 소환되어 보이그룹 앨범 커버에 등장했다. 1996년의 감각을 반영했던 순정만화 주인공들이 다시 살아 돌아오다니. 그들이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거 같아 전율이 일었다. 2024년에 등장해도 어색함이나 촌스러움이라곤 털끝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지율이와 현겸이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오늘의 대중음악과 여전히 협업(H.O.T.와의 〈우리들의 맹세〉 협업 이후 25년 만에)이 가능한 천계영 작가님 작품을 보고 내가 어른이 된 게 명예롭고.

그럼, 그 자랑스러움과 명예로움을 안고 TWS(투어스)의 〈unplugged boy〉 들으러 가볼까. 현겸이만큼은 아니지만, 2024년에 돌아온 ‘언플러그드 보이’, 청량하다 청량해!

■ 주

1) 김봉현, 《힙합과 한국》(한겨레출판, 2023)
2) 조영주, 《한국 순정만화 작가사전》(파사주, 2018)


박혜은
문화기획자. 뉴스레터 〈에밀앤폴〉 발행인. 책을 직접 만지는 일에서 책 문화를 다루는 일로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