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묵상할 때 ―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 안해용 사무총장

[401호 다시 만난 세계]

2024-03-31     안해용
Ⓒ복음과상황 정민호

“삶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

안해용 사무총장이 SNS 계정에 올려놓은 자기소개 문구다. 그는 평생 ‘삶’이라는 화두로 씨름해온 목회자이자 사회복지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여러 위기를 겪고 세 차례 자살 시도를 했다. 목사가 됐을 때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들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는 목회를 하고자 했다. 2013년 개척한 너머서교회 담임목사직을 내려놓은 후, 교육대학원에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강사로 활동하다가, 이후 경기도교육청 학생위기지원단 단장, 학교폭력 분쟁조정관 등을 거쳐 현재는 목회사회학연구소 연구실장이자,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10년 전에 본지와 인터뷰(278호, 2014년 1월)를 진행한 바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동안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과 그의 삶을 관통하는 ‘자살’ ‘죽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에 위치한 라이프호프 사무실에서 만난 안해용 사무총장은 벌써 10년이 흘렀다는 데 놀라워하면서도, 10년 전 인터뷰 당시 입었던 카디건을 보여주며 그때를 회상했다.

복음과상황 2014년 1월호에 실린 인터뷰 지면

1. 세 번의 자살 시도

안해용 사무총장은 3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났다. 할아버지는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받아들여 교회를 세운 인물이었다. 어릴 때부터 교회 문화 가운데 살았던 그는 많은 기대 속에서 집안의 1호 목사가 되었다.

순탄한 삶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를 잃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잃었다. 그 충격에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당시 교회에서는 학생회장으로 즐겁게 시간을 보냈지만, 자취방에 돌아오면 지옥 같은 일상이었다. 삶이 너무 힘들었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서, 낮에는 학교에 가고 저녁에는 일을 했다. 그 외롭고 힘든 시기에 신앙이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내면에 치열한 갈등이 일어났다. 다행히 어떤 분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등록금을 지원해준 이가 있었다.

이후 그는 신학대학교에 진학했다. 신학교에 가도 현실은 힘들었다. 생계유지가 쉽지 않았다. 입시 과외부터 학교 청소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닥치는 대로 했다. 부산장신대학교에 입학한 후, 그해 6월부터 교육전도사로 일하기 시작했지만 생계를 위한 선택이었다. 열심히 하면서도 목회자로서 잘하고 있는지 회의감이 뒤따랐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방향을 잃었다. 어떤 목회자가 되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위축되고 두려움에 휩싸였다.

두 번째 자살 시도로 자신에게 있는 우울증을 발견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신학교 교수님을 찾아가 상황을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이종헌 박사가 운영하는 성장상담연구소를 소개해주셨다.  거기서 상담을 받고 집단상담을 배웠다. 집단상담이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 치유가 시작됐다. 내면의 상처를 알게 된 시간이었다. 엄마와의 애착 문제, 아버지를 향한 분노, 가식적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이 많았다. 상담하면서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자리에는 자신과 같은 목회자가 많았고, 아내도 거기서 만났다.

- 결혼 생활은 어떠셨어요?

당시 제 나이 스물여섯, 아내는 서른이었어요. 네 살 연상이었죠. 아내는 성공회 출신이고 저와 정말 다른 사람이죠. 색깔도 배경도 달랐지만, 결혼했어요. 그때 저는 울산에서 전임 전도사로 일하고 있었죠. 아내가 성공회 신자라서 예배 후 식사할 때 성호를 긋는데, 교회 사람들이 그 모습을 문제 삼았어요. 그 일로 결국 교회를 떠났죠. 아내의 성공회 신앙을 이단으로 본 교회에 공개 사과를 요청했지만, 결국 아내의 신앙을 바꾸라는 요구에 직면했어요. 그건 바람직하지 않았죠. 아내의 신앙을 존중하기 위해 교회 사역을 그만두어야 했어요.

당시 우리 부부 사이에도 갈등이 많았어요. 결혼 1년 차부터 별거까지 하게 되었죠. 그때 저는 더 이상 목회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잘 몰랐기 때문이에요. 서로 너무 달랐어요. 갈등이 생길 때마다 저는 회피로 응대했고, 아내는 그런 저와 끝까지 씨름했죠. 요즘에는 노력하며 맞서 싸우고, 싫다고 소리도 내요. 당시에는 갈등이 심해 별거 3개월 후 이혼을 결심했어요. 결혼식 주례를 맡아주신 목사님께 상담받으러 갔죠. 목회자가 되고 싶었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던 제 꿈이 모두 무너진 순간이었어요. 그래서 세 번째로 자살을 결심했죠. 하지만 주례하셨던 분이 목회하지 않아도 되고, 이혼해도 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 말이 큰 위로였어요.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시야가 좁아진 상태인데, 다양한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다른 선택도 할 수 있게 되죠.

- 그래서 다른 길을 선택하셨나요?

마침 목회 말고 다른 일에 관심이 생겨 수능을 다시 준비했어요. 제가 원래 87학번인데, 대학 입시가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바뀌어 우리 교회 아이들과 같이 수능 공부를 하게 됐어요.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야간반에 들어갔습니다. 수도권 지역에 와서 생활하게 됐죠. 부천에서 다시 결혼 생활을 시작했어요. 낮에는 도당동 철강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학교 가서 강의 듣고, 주말에는 면목동의 교회에서 파트타임 사역까지 했어요. 교인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고, 치열한 현장에서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 모습이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정말 도전적인 시간이었죠.

2월 28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2. 샘물 같은 목회를 꿈꾸다

- 정말 바쁘게 지내셨을 것 같아요.

그렇게 4년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어요. 1999년에는 딸도 태어났죠.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목회 영역이 생각보다 넓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과정, 성장하는 데는 다양한 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죠. 사회복지학에서는 ‘인간행동과 사회 환경’을 필수과목으로 접해요. 인간에게는 환경적 요인, 개인적·기질적 요인 둘 다 중요하죠. 목회하면서 환경적 요인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교인들이 왜 그런 신앙생활을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지 않았죠. 누구든 자신이 만나온 하나님 모습 중 하나를 취해서 살아가요. 믿음은 이성적인 개념보다는 전인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릴 때 어떻게 부모님과 관계를 맺었는지, 그 관계 형성 방식이 하나님과의 관계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쳐요.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면 엄격한 하나님을,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면 사랑의 하나님을 믿게 되죠.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인식하고 믿는다는 걸 받아들여야만 온전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더 나아질 수 있는 길이에요. 신앙은 결정론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봐요. 우리는 계속해서 그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결론을 붙잡고 있는 게 아니죠.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에서 복음이 어떻게 적용될지, 목회자는 어떻게 사역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어요. 그게 참 좋았어요. 앞으로 목회를 한다면 교인들의 삶의 영역 안에서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나가며, 그들의 생활환경을 바꿔가고 싶다는 꿈을 키웠어요. 상담을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져서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았어요. 이런 시간이 제가 한 사람, 한 성도를 이해하는 데 기본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 이후 사역을 하면서 생각한 대로 해보셨어요?

상담목사로 여러 사역을 하다가 번아웃이 왔어요. 정말 힘들었죠. 일이 많아서 아이를 돌보는 일에 시간을 쏟지 못했어요. 딸에게 아빠의 모습이 어떨지 생각하니 정말 미안했죠. 아이가 일곱 살이었는데,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하면서 아빠의 영역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내와 모두 정리하고 인도로 가기로 결심했어요. 10개월 정도 준비해 1년 정도 살다 오기로 했죠. 첸나이 남쪽에 오로빌 공동체가 있어요. 전 세계 25개 나라에서 온 사람들 2천 5백 명이 모여 사는 마을이죠. 거기서 힌두교 문화를 접하고, 난민도, 현지 교회도 만났어요. 북쪽으로 가니까 달라이라마가 있는 티베트 불교도 있었고, 더 올라가면 이슬람 문화권이었어요. 다양한 종교를 공부하고 접하는 기회였어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다시 목회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한국으로 돌아와 2년 정도 부목사로 있다가 교회에서 나왔어요. 그 후 ‘너머서교회’를 개척했죠. 개척 당시에는 교회개혁실천연대와 함께 활동했는데, 한국교회를 개혁하고 싶었어요. 제가 꾼 꿈이 그 발단이 됐습니다. 꿈에서 시골의 논 사이에 웅덩이가 보였는데, 그중 탁한 웅덩이가 있었어요. 그런데 구석에서 조그마한 맑은 물이 나오는 거예요. 꿈속에서 저는 그 물이 나와 언제 탁한 웅덩이가 깨끗해질지 궁금했어요. 반대편을 보고 다시 돌아봤을 때, 3분의 1 이상이 깨끗해져 있었어요. 그 꿈이 정말 강렬했습니다. 할 수 있다면 제가 그 샘물 역할만 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죠. 6년 동안 사역하다가 사임했습니다.

사진: 인터뷰이 제공

3. 목회자에서 사회복지 전문가로

- 너머서교회 사임 이후에 다양한 일을 하셨더라고요?

사실 목회를 그만두고 이력서를 100통 정도 썼지만, 한 곳도 되지 않았어요. 상담이나 사회복지 분야로 지원했거든요. 사회복지는 나이가 많다고 안 되고, 상담은 경력이 없다고 안 되었어요. 교회 안에서 한 일은 인정받지 못했죠. 목회자가 사회의 일원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때 친구가 운영하는 노인복지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1년 동안 일할 기회를 얻었어요. 그 시기에 새로 다닐 교회도 정해야 했습니다. 그때 가족들과 함께 찾아간 교회가 더불어한교회였고요. 가족들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그 교회 교인이 되었죠.

2015년 5월, 경기도교육청에서 일을 하게 됐어요.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일이었죠. 5급 사무관으로 5년 동안 일했어요. 그동안 자살 예방 사업, 교육 복지, 학교폭력 분쟁 조정, 아동 학대 및 도박 중독 학생을 돕는 일을 했어요. 그때 교육청에서 만난 기관이 라이프호프였어요. 협력 사업을 했고, 그 인연으로 공무원 생활을 마친 후 재작년에 이곳 사무총장으로 와서 같이 일하고 있어요. 이제 2년 2개월이 됐네요.

- 라이프호프에서 유가족들과 정기적으로 모인다고 들었습니다. 그 모임에서는 주로 어떤 시간을 보내나요?

월 2회 자살 유가족 모임을 진행합니다. 모여서 근황을 공유해요. 새로운 멤버가 오면, 떠나간 가족 이야기를 나누고, 현재 얼마나 힘든지를 털어놓죠. 이 과정에서 각자 겪은 아픔에 관해서도 얘기합니다.

유가족이 아닌 사람들은 유가족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유가족이 아니면 정말 모릅니다. ‘네 마음을 다 안다’고 말하는 건 모순이에요. 사람마다 겪는 아픔은 다 다르니까요.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끼리 그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과정을 겪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래서 회복한 당사자가 기관에서 동료지원활동가로 일하기도 합니다. 자살 유가족이 치유되는 과정에 도움을 주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는 거죠.

저는 교회도 우리 사회에서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길 바랍니다. 상처받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회복되고, 다른 이를 돕는 사역으로 나아가는 일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상처만 안고 있는 구조가 아니라 상처받은 이들을 찾아 위로하고 돌보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 치유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나요?

완전한 치유는 하나님 나라에 이르러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치유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돕는 경험은 또 다른 치유의 기회가 될 수 있죠. 오히려 완전히 치유된 상태에서만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도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사무총장님은 자살 예방과 사람들의 문제 해결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전하는 사명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저는 삶과 죽음을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이는 인간의 근본적인 에너지에 기반한다고 생각합니다. 에로스(사랑)와 타나토스(죽음의 욕망)이죠. 죽음의 두려움과 사랑의 힘은 인류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죽음을 깊이 이해할수록 삶의 방향성이 명확해지고, 이는 자살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중요한 메시지가 됩니다.

- 다양한 활동 중 하나로 ‘버킷 리스트’ 작성을 권장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건 어떤 의미가 있나요?

모든 인간은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죽느냐죠. 최근 ‘건강한 죽음’ ‘존엄한 죽음’ ‘행복한 죽음’ 같은 개념이 대두되었는데, 이는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반영하는 일이죠. 톨스토이의 질문처럼, 현재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죽음을 묵상하며 얻을 수 있는 교훈입니다.

4. 우리에게 필요한 죽음에 관한 논의들

- 자살을 고려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어느 정도라도 보시나요?

현재 연구에 따르면 10대의 자살생각률은 13.5%로 나타나고, 성인은 대략 3-4%입니다.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해 가볍게 언급하는 경향이 있고, 일상에서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는 사회·문화적인 요인과 관련 있는데요. 자살 문제는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살을 사회적 타살로 보는 시각도 있죠. 이런 관점에서, 고립감과 절망감을 겪는 사람들에게 사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 청소년들이 성인보다 자살률이나 자살생각률이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청소년기의 높은 자살률이나 자살 생각 비율은 여러 요인에 기인해요. 발달심리학에 따르면, 청소년기는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인데, 이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으로 혼란을 겪게 돼요. 이건 일정 부분 예상되는 현상이지만, 한국에서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것은 삶의 만족도가 낮기 때문입니다. 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이에 따라 청소년들의 삶의 질은 크게 떨어져있어요. 어릴 때부터 시작되는 경쟁과 차별화는 큰 압박감과 절망감을 유발합니다. 단순히 발달 주기상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문화적 요인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는 겁니다.

- 교사를 비롯해 청소년들을 마주하는 분들이 알아야 할 노하우를 말씀해주세요.

청소년의 자살은 대체로 즉흥적이고 성인과 달리 계획적이지 않아서 예방하기 어렵습니다. 청소년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심리적·정서적 문제를 조기에 파악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몇 가지 방법이 있어요.

첫 번째는 수면 문제를 확인하는 겁니다. 청소년의 수면 문제는 정서 문제와 직결됩니다. 두 번째는 식사 문제를 점검하는 겁니다. 식사도 정서 상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세 번째는 기분 변화를 살피는 겁니다. 현재 어떤 기분인지 확인하면서 정서 상태를 진단할 수 있어요.

청소년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또 다른 이유는, 죽음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자살을 문제 해결 수단으로 보는 경향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인식들을 바로잡고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죠.

마지막으로 자살 예방 교육에서는 자살의 여파가 남은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해야 해요. 청소년들이 자살을 가볍게 선택하지 않도록 도와야 해요.

- 목회하실 땐 죽음이라는 개념에 어떻게 접근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송구영신예배 때 모든 교인에게 유언장을 작성하도록 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코끼리 티 파티’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죽음에 대해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저도 비슷하게, 죽음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고 이해하는 시도를 했어요. 처음에는 저항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분이 삶을 돌아보며 감정에 젖곤 했어요.

- 우리가 평소 죽음을 깊이 생각해보지 못하고 터부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된 이유는 현실주의적 세태에 물들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들이 현실적인 천국 개념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현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기복주의에 빠져있습니다. 이건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오염된 교회의 현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죽음을 직시하고 이에 대해 고민하면 교회가 교회와 삶의 본질을 회복해갈 거라고 믿습니다.

- 사망 이후 일어나는 일에 관해 묻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요. 보통 목사님은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나요?’라는 물음을 받으시면 어떻게 답하시나요?

저는 그런 질문을 하신 분에게 먼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고 묻습니다. 우리 각자의 죽음에 대한 관점을 나누는 것이, 정답을 제시하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종종 목사로서 해답을 제공받으려고 하지만, 저는 그런 접근에 반대합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해답은 없어요. 중요한 건 질문을 나누며 각자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티베트 불교에서도 질문을 주고받으며 서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방식이 있다고 해요. ‘죽고 나면 어떻게 되나요?’라는 질문보다는 죽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 죽음에 대한 두려움,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을 얼마나 가까이 느끼는지 등을 나눌 때 우리는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5. 앞으로의 활동

- 라이프호프에서 사무총장으로 활동한 지 2년이 넘었습니다. 어떤 일들을 하고 계세요?

이곳에서 근무를 시작한 후로 한국교회에는 변화가 매우 많았어요. 코로나 이후 많은 현장이 변화하고 교회 환경이 열악해진 점을 보면서 고민이 생겼습니다. 첫 번째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처럼, 교회에도 일종의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교회는 목회자 역량에 따라 교인들이 받는 서비스 질이 달라지는데, 이에 따라 작은 교회가 무너지는 현상들을 보이죠.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하는 매뉴얼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교회 안에서 돌봄에 대한 기본 지침을 제공하려 해요. 예를 들어, 자살 상황 발생 시 목사들이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예배 양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담은 매뉴얼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데, 이에 대한 교육과 인식 개선이 필요해요. 특히 목회자들이 정신질환을 질환으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아, 올바른 이해와 초기 개입의 중요성을 알리려 합니다.

- 자살 유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한 구체적 계획도 있지요?

작년부터 자살 유가족의 ‘커밍아웃’을 장려하며 토크 콘서트를 준비해 왔습니다. 이는 자살 유가족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드러내며 공감과 이해를 얻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죠. 일본에서 시작된 유사한 활동을 참고해서, 올해도 전국 투어를 계획하고 있어요.

- 그 외에는 어떤 일들이 있나요?

저희는 공공 기관의 감정노동자들, 특히 자살률이 높은 경찰관, 소방관, 간호사를 대상으로 회복 탄력성 증진 프로그램을 진행해왔어요. 이번에는 목회자 부부들에게도 같은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진행 정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