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세계와 관계를 위해 갈라지고 깨진 틈, 임보라

[401호 무브먼트 투게더]

2024-03-31     자캐오

우리의 오랜 길벗, 초록나무가 강조했던 것처럼 “아픔이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니, 그 낮고 작고 외롭고 연약한 자리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합시다.

요즘 주일 성찬예배 때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강조하는 문장이다. 그와 동행했던 시간을 지금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우리들의 이야기와 자리로 잇고 엮기 위한 간절한 고백이다.

그의 별세 소식을 전달받은 때는 2023년 2월 4일 저녁이었다. 전쟁을 치르듯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를 녹사평역 근처 이태원 광장에서 서울시청 광장으로 옮긴 직후였다. 소식을 전하던 최 목사님도 아직 믿지 못하는 듯했고, 나 또한 도저히 믿기 어려운 소식이라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믿기지 않았고, 믿을 수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여러 현장에서 활동하는 길벗들에게서 연이어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그때야 겨우 더듬거리듯 현실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더 이상 그가 우리 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일 자체가 너무도 잔인하게 느껴지는 현실을 마주했다.

임보라, 우리들의 초록나무.

그는 우리들의 하느님께서 당신과 나를 위해 보낸 마중물이었고 이정표이었습니다. 그가 걸으면 새 길이 되고, 어제의 오래된 이야기가 생명의 맥박을 가진 오늘과 내일의 이야기가 되었죠. 무엇보다 그는 당신과 나의 숨구멍이었고, 우리 각자의 어두움과 상처 그리고 아픈 이야기를 품어 준 비밀 창고였습니다.

이 시간, 그의 영원한 동지이자 사랑의 원천인 섬돌향린교회 길벗들을 위해, 맘 깊은 연대와 축복의 기도를 전합니다.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 저와 길찾는교회 식구들이 있습니다. 그대들이 늘 우리 편이었듯, 우리도 항상 그대들 편임을 잊지 말아요.

그의 빈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지만, 우리 함께 그의 뒤를 이어 또 다른 이야기와 세상을 만들어 가기를 두 손 모읍니다. 우리의 사랑, 영원한 우리 편, 임보라. 우리도 언제나 당신 편입니다.

― 2023년 2월 6일, 성공회 용산나눔의집·길찾는교회 그리고 자캐오로부터.

이 땅에서 그와 이별하기 위한 장례식이 진행되던 때,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는 그를 추모하며 남겨진 길벗들을 위로하려고 ‘추모와 연대의 글’을 쓰면서, 눈물이 흐르고 흘러도 멈추지 않고 쉽게 마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지난 10여 년간 ‘퀴어 인권 운동을 함께하는 임보라 목사와 자캐오 신부’라고 불렸다. 하지만 나는 항상 “그의 등을 보며 반걸음 뒤에서 걷고 있다” 얘기해왔다. 그럴 수 있어 다행이었고, 그럴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많은 분이 나와 임보라 목사님을 10년 넘도록 일관되게 동행해온 동지로 알고 있지만, 실상 우리는 맘 깊은 고통과 상처, 그리고 슬픔을 깊고 짙게 공유해온 ‘영혼의 친구’(Anam Chara)이기도 했다. 한국교회에서 점점 어렵고 좁아지는 퀴어 인권 운동의 길을 걷는 사람 중 한 명인 내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큰 힘이자 축복이며 위로였다.

그래서일까. 임 목사님 부고를 들은 직후, 우리가 함께 만든 기도문의 한 구절이 자주 떠올랐다. 2018년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DAHOBIT)에 무지개예수와 성소수자부모모임, 뉴미디어 그룹인 닷페이스 등이 공동 기획한 ‘정체성 강제 전환 시도 근절을 위한 기도회’의 기도문 중 한 부분이었다. “나는 당신의 기도가 되고, 당신은 나의 기도가 되어,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기도가 되어 따로 또 같이 연대합니다.”

‘서로서로 맘 살핌’이 필요했던 시간

임보라 목사님이 최근 몇 년간 동행하던 길벗들에게 자주 말씀하던 건 ‘서로서로 맘 살핌’이라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되돌아보니, 뜻하지 않은 이별을 맞이하기 전까지도 우리는 일 얘기가 우선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수밖에 없을 만큼 한국교회 안에서 퀴어 인권 운동에 함께하던 몇몇 사람들을 향한 실질적 위협이 계속되었고 그 강도가 점점 심해졌다. 그나마 조금씩 이뤄지던 토론이나 논쟁이 설 자리는 사라지고, ‘동성애 옹호’라는 낙인을 찍어 집단 괴롭힘을 자행하다가 끝내 제거하려는 시도만 반복되었다.

2014년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물리적으로 적극 방해한 극우·보수 개신교 집단은, 2016년 총신대에서 비공식적으로 활동하던 성소수자 동아리에 소속된 구성원을 색출하고 징계하려고 나섰다. 2017년부터는 임 목사님과 번역출판위원회가 주도한 《퀴어 성서 주석》 번역·출판 등을 무모한 이단 시비로 마녀사냥하는 데 힘을 쏟았다. 2018년에는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에 맞춰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몇몇 학생이 소규모로 진행한 무지개 퍼포먼스를 ‘동성애 옹호’라는 프레임으로 엮어, 각종 징계와 지속적인 집단 괴롭힘을 이어갔다.

그리고 2019년 제2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진행된 축복식에 참여한 이동환 목사님을 향한 소속 교단 내 극우·보수 집단의 저급한 공격이 이어졌다. 성공회 김돈회 신부님, 기독교장로회 임보라 목사님 그리고 기독교대한감리회 이동환 목사님 셋이 ‘무지개예수’ 이름으로 무대에서 꽃잎과 성수를 뿌리며, 2014년 서울퀴어문화축제 때 시작된 축복식을 이어갔을 뿐이었다. 목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존재에 대한 축복’을 실천한 것뿐인데, 그로 인해 시작된 감리회 재판이 무려 4년 동안 악질적인 괴롭힘 형태로 계속되더니 올해 3월 4일 ‘출교 확정’으로 일단락되었다.

이처럼 숫자나 영향력 면에서 한국교회 다수인 극우·보수 집단과 경향성은 사회적 소수자 길벗들에 대한 환대와 연대를 특별한 사건으로 만들어, 우리 일상이 되지 못하도록 한다. 그들이 만들어낸 ‘유별난 이들에 의한 특별한 사건’이란 프레임은, 주류의 통념과 편견, 혐오에 눌어붙어 잔인하고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프레임 씌우기는 반복되고 계속된다. 현재 한국교회 내에서 상대적 소수파인 우리가 그들이 좌표를 찍어 집단으로 괴롭히는 ‘비운의 영웅’을 지키다가 지쳐 사라질 때까지.

그렇기에 우리는 사회적 소수자 길벗들에게도 평등하고 안전한 교회가 만들려는 우리의 도전이 유별난 사람들에 의한 특별한 사건으로 제한되지 않도록 싸워왔다. 우리 안에 익숙하고 당연하게 작동하는 세계관들과 언어를 바꾸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중물과 디딤돌을 지나 ‘다음 사람들’이 있는 사건과 이야기들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또 찾았다. 변화의 임계점을 향해 쌓여가는 사건과 이야기들이 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기에 부딪히고 또 부딪혔다.

퀴어 길벗들을 비롯해 우리 모두가 각자의 맥락과 조건 가운데 상대적 약자나 사회적 소수자로 살아가는 부분과 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왔다. 우리는 그 가운데 서로 환대하고 연대하는 길을 선택할 뿐이다. ‘차이와 다양성에 근거한 사회 연대 정책과 구조’를 만들고 사회 속의 교회로 함께한다는 건 우리에게 그런 의미였다. 오래전 역사와 이야기 한가운데에서 상대적 약자와 사회적 소수자인 나그네와 이방인으로 존재하면서 그들의 편이 되었던 교회. 오늘날 이런 교회를 이 땅에서 적극 실험하고 응용하며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또 설득해왔다.

하지만 ‘서로서로 맘 살핌’을 입버릇처럼 말하며 앞장서 실천하던 임 목사님과 뜻하지 않은 이별을 겪은 뒤, ‘나는 그의 가까운 길벗으로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자괴감과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그로 인해 꽤 오랫동안 깊은 늪에 빠져 옴짝달싹 못 하거나 깊은 물속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 같은 절망과 고통에 시달렸다. 임보라 목사님의 부고로 시작해 이동환 목사님의 출교로 일단락된 지난 1년은 내게 절망과 고립에 사로잡혀 어둠 가운데 가라앉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던 시간이었다.

잇고 엮는 일을 포기하지 말자

모든 것에는 갈라지고 깨진 틈이 있답니다.
그 틈으로 빛이 찾아오죠.
There is a crack,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
― 레너드 코헨, 〈송가〉(Anthem)

깊고 끈적한 어둠. 한 줄기 빛도 존재할 수 없는 심연의 어둠, 희망이라곤 단 한 조각도 허용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는 어둠을 대면했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우리네 일상 어딘가에 자리 잡은 채, 포기하지 않고 당신과 내게 속삭이는 어둠. 그런 어둠이 내게 계속 속삭였다. ‘넌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이런 일들과 상관없는 자리로 떠나라. 이런 일은 문제투성이 너 따위가 할 일이 아니야. 가장 가까운 영혼의 친구가 갈라지고 깨지는 동안,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네가 누구를 위해 뭘 한다는 말이야.’

그런데 어둠이 끈질기게 속삭여 내가 갈라지고 깨져 조각나는 순간, 그 자리에서 나는 빛과 희망을 만났다. 우리들의 초록나무, 임보라는 지난 10여 년 동안 함께 꿈꾸며 달려가던 또 다른 세계와 관계를 위한 ‘갈라지고 깨진 틈’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산산조각 나버린 것 같은 그때, 그 갈라지고 깨진 틈으로 한 줄기 빛과 한 모금 숨결 같은 무지갯빛 그리스도가 찾아오셨다. 임보라는 그렇게 우리와 무지갯빛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갈라지고 깨진 틈이었다.

초록나무 임보라, 또 다른 세계와 관계를 위해 갈라지고 깨진 틈이었던 임보라. 그와 동행해온 나와 수많은 무지개 길벗들이, 또 다른 세계와 관계를 만나게 할 갈라지고 깨진 틈이 되도록 초대한 임보라. 나 또한 그처럼 갈라지고 깨진 틈이 되자, 어둠이 짙어갈수록 가까이 다가오는 새벽을 굳게 믿게 되었다. 한국 사회와 교회의 한계나 편견 때문에 더욱 강화되는 차별과 혐오, 배제를 가로질러, 또 다른 세계와 관계를 세우기 위해 잇고 엮는 일을 포기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지옥을 끌어안은 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있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자신의 지옥을 끌어안은 채,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 만나고 싶은 천국을 꿈꾸며 산다. 지금 이 순간, 자신만의 지옥을 끌어안은 채, 또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갈 천국을 꿈꾸며 애쓰고, 힘겨워도 또 한 걸음 내딛으며 사는 이들을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고 무지갯빛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좀 더 나아지기를. 무엇보다 당신과 내게 깊고 섬세한 하느님의 위로와 쉼이 가득하기를.

◯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동등하며 독특합니다.
⊙ 우리가 신을 믿든 안 믿든, 때로 부르는 신의 이름이 달라도 우리는 따로 또 같이 함께 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성소수자와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모든 혐오와 차별, 배제에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서로를 향한 믿음과 자비, 그리고 소망과 사랑만이 이 세계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 우리는 혐오가 아닌 사랑, 차별이 아닌 자비, 배제가 아닌 가능성과 희망이 가득한 세계를 꿈꿉니다.
⊙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이제 서로의 기도가 되어 용기를 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향한 행진을 시작합니다.
◯ 지금 모습 그대로 괜찮습니다. 지금 모습 그대로 소중합니다. 우리가 발견할 또 다른 나를 사랑합니다.
⊙ 우리, 서로의 기도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나는 당신의 기도가 되고, 당신은 나의 기도가 되어,
◯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기도가 되어 따로 또 같이 연대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변화를 만들어 갑니다.
⊙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앞선 초록나무 임보라 목사와 함께 더 크고 높고 깊고 넓은 무지개 숲을 만들어 가리라 다짐합니다.
⊙ 그 여정에서 초록나무가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서로에게 숨 쉴 틈과 디딤돌 하나 되어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2023년 6월 8일,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모임, 초록나무 추모예식 가운데(2018년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DAHOBIT) ‘정체성 강제 전환 시도 근절을 위한 기도회’ 기도문 인용).

민김종훈(자캐오)
성공회 서울교구 사제, 용산나눔의집·길찾는교회 원장, 정의평화사제단 회장,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 NCCK 정의평화위원회 교단파송 위원, 무지개예수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일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