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계속될 것입니다
[401호 그 사람의 설교 노트]
※ 안산 화정감리교회의 2024년 4월 14일 주일 설교문(원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본문: 마태복음 3:1-12)이다.
이틀 후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2014년 4월 16일은 부활절을 앞둔 수요일이었습니다. 세월호에는 우리 교회 학생인 예은이가 타고 있었습니다. 가라앉은 배에 있는 수백 명, 아니 솔직히 말하면 예은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한다면, 배 안에서 죽어간 수백 명은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 같았고, 오직 예은이 생각으로만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생각이었죠. 세월호 안에 있던 수백 명은 각자 누군가에게 제가 생각했던 것과 똑같이 소중한 ‘우리 예은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라고 하는 제가 “우리 예은이 어떡하나” “예은이 엄마·아빠를 만나 무어라고 말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만 매몰되어 있었던 거지요.
안산에 합동분향소가 차려지고 전 국민이 애도하며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은 날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세월호 가족들이 정치화되었다” “세월호 가족들이 시체팔이를 한다” “세월호 가족들이 자녀들 대학 특례 입학을 원한다” 등등,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가짜뉴스가 만들어지고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가짜뉴스를 실어나르는 사람들 중에 목사와 장로가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실어나르는 가짜뉴스 중 대표적인 것 하나를 소개한다면 “세월호 리본은 악령을 불러들이는 주술이다”라는 말입니다. 저는 이러한 밑도 끝도 근거도 없는 가짜뉴스가 퍼지는 것, 시민들이 가짜뉴스를 믿고 세월호 유족을 폄훼하고 조리돌림하는 일이 너무나 엽기적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한 유족에게 제가 무엇으로 도울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는 서명을 받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서명을 받으려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기꺼이 서명해준 분들이 많았지만, “왜 목사님이 이런 일을 하고 다니느냐” “왜 목사가 세월호 배지를 달고 다니느냐”며 눈을 부라리는 사람도 많았는데 그들 모두 목사나 장로들이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하며 ‘이것이 교회인가,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맞는가’ 생각했습니다. 슬픈 일을 당해 쓰러져있는 이웃이 있는데, 위로하고 도와주지는 않을망정 최소한 비난하고 괴롭히지는 말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병든 자, 소외된 자, 아픈 자를 찾아가셨던 예수님의 ‘공감’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했는데,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한국교회의 태도는 예수님의 공감 능력도 사도 바울의 신앙 영성도, 성경 속 사랑과 정의도 찾아볼 수 없는 공허한 모습이었습니다.
2015년 1월 25일부터 교회를 뛰쳐나온 유족들, 교회에서 쫓겨난 유족들과 함께 합동분향소 한편에 마련된 컨테이너에서 예배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전국 각처의 교회가 찾아와 예배를 주관하고 유족들에게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대부분 작은 교회들이었습니다.) 예배 후 대화 시간을 가질 때마다, 유족들은 교회를 향한 섭섭함과 원망스러운 마음을 표출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흐른 후 어느 엄마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참사 초기부터 우리를 가장 괴롭히고 마음을 아프게 했던 존재가 목사·교회들이었는데, 끝까지 우리 곁을 지켜주는 존재도 교회와 목사님들입니다.” 초기부터 유족들을 괴롭히고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이들은 기독교 신앙과 상관없이 막말을 쏟아냈던 당시 한기총 부회장 조광작 목사,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등 대형교회 목사들이었고, 유족들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곤 했던 한국교회 전반을 말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우리 곁을 지켜주는 존재”는 분향소 예배에 찾아와 손잡아주고 함께 울던 목사와 소수 교회를 말하는 듯했습니다. 저는 이 소수의 무리가 바로 이 시대의 남은 자 7천 명이라고 믿습니다.
참사 당시 정부는 왜 세월호 가족에게 그리 잔인하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의문점을 밝히고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하면서 책임자를 찾아 처벌하는 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는데도, 세월호 유족을 폄훼하고 진상 규명을 방해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촛불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부는 진상 규명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임기를 마쳤습니다. 참사당한 자들의 고통마저 정권을 잡은 자들에게는 그저 자기들의 정치적 이익 창출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또한 세상의 잘못된 질서와 행보를 꾸짖어야 할 교회마저 마치 아무런 일이 없는 듯 잠잠했으니, 지난 10년 동안 슬픔과 절망과 고통은 오롯이 유족들 몫이었습니다.
교회는 고난당한 자, 억울한 일을 당한 자, 슬픔과 절망에 쓰러져있는 자를 찾아가 손잡아주는 ‘사랑의 실천자’로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10년 동안 이 사회에 보여준 교회의 태도는 진정한 교회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2022년 10월에는 어처구니없는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159명의 아까운 젊은이들이 억울하게 죽었지만, 이번에도 정부는 책임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희생자들을 모욕했고 유족들이 모이는 일마저 방해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와 너무도 닮았습니다. 오히려 더 잔인해진 것 같습니다. 세월호 때는 분향소라도 차리게 해주지 않았습니까.
지난 10년 동안 함께 예배해온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의 예은이 엄마(박은희 전도사)는 ‘4월의 엄마가 10월의 엄마에게’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내용 중 “우리가 좀 더 싸워 생명과 안전을 우선하는 사회를 만들었다면 이태원 참사가 생기지 않았을 텐데 미안합니다”라는 언급이 있었습니다. 편지 낭독을 들으며 ‘왜 그것이 세월호 엄마들이 미안해해야 할 일인가’ 하고 반문했습니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은 우리 사회 전체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가족들은 최선을 다해 싸워왔습니다. 다만, 공감하고 함께하며 힘을 주어야 할 시민사회가 남의 일처럼 치부했습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참사에 철저히 무관심했고, 교회 안에서 세월호를 말하는 것을 금기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웃사랑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우리 화정교회가 지난 10년 동안 세월호 유족들을 위해 작은 헌신이라도 해온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희생된 학생들이 다니던 교회가 총 37곳입니다. 그 교회들 중에서 세월호 관련 집회나 생명안전공원예배에 참여하는 곳은 화정교회가 유일합니다. 저의 지도력은 부족하지만, 세월호와 관련해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에 따라주신 성도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세월호 엄마·아빠들의 고통은 그들의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들의 슬픔과 고통에 작은 위로라도 줄 수 있도록, 앞으로도 관심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며칠 전 4·16희망목공소에서 일하는 민정 아빠가 부상을 입어 입원하던 날, 병실에 들러 한 시간 동안 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몰랐던 이야기였습니다. 희생된 학생의 형제나 자매 중에 대인기피증 같은 것이 생겨 집에서 나오지 않는 청년이 많다는 것입니다. 세월호 유족들 곁에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을 처음 알게 되어 부끄러웠습니다. 지난 10년간 세월호 가족은 거의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괴로움과 절망에 스스로 삶을 내려놓은 부모도 여럿이고, 유족들 중 누구도 예외 없이 각종 육체의 병, 정신적 병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10년 동안 4월이 오는 것을, 들에 풀이 돋고 나무에 움이 튼 모습이 아니라 세월호 엄마·아빠들이 픽픽 쓰러지고 병원에 입원하는 모습을 통해 실감하고 있습니다. 몸이 기억하는 것입니다. 올해는 10주기라서 그런지 예년보다 더 그렇습니다.
세월호 유족들의 아픔은,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을 살리지 않아 죽었다는 억울함과 슬픔, 지난 10년 세월 동안 정부나 시민사회로부터 모질게 조리돌림을 당하면서 얻은 절망감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잊혀질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는 두 가지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천하보다 귀한 생명,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던 고귀한 아이들이 잊히는 데 대한 두려움입니다. 또 하나는, 기억하지 않으면 참사는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기억해야 참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이 사회는 자꾸 잊자고 하고, 지우려고만 하는 것 같습니다.
세월호 유족들은 어디에서도 온전히 위로받지 못했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더하여, 손가락질당하고 괴롭힘당한 것으로 얻게 된 트라우마가 몸과 마음의 병을 깊게 만들었습니다. 교회마저도 함부로 대했습니다. 저는 언젠가 한국교회가 세월호 유족들에게 “아파하는 당신들과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당신들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고백하며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회개가 우선이겠지요. 광야의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던진 첫마디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실현되는 나라,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 차별이 없는 나라, 사랑의 나눔과 위로가 넘치는 나라입니다. 회개하지 않고는 그 나라에 참여할 수 없기에 주의 길을 예비하러 온 요한도,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도 회개하라고 외치셨던 것입니다.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라고 했습니다(마 3:8). 마음으로만 아니라 손과 발로 행동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는 참사를 겪은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다가가 손잡아주고, 함께 우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잊지 말고 기억하고 기도하고 참여합시다. 함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박인환
세월호 희생자 예은이네 교회(안산 화정감리교회) 담임목사. 10년 동안 유족들과 예배를 드리고 416희망목공소에서 유족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