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묵념
[401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묵념, 5분 27초〉라는 시가 있습니다. 제목만 있고 내용은 없는 시입니다. 1980년 광주, 학살이 끝났던 그 시간, 5월 27일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 시를 접한 충격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말할 수 없음’ ‘어찌할 수 없음’, 비극 앞에서 마주한 언어의 무용성을 충격적으로 전달해주고 있죠. 참담한 사건과 시간 앞, 유려한 시구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말을 잃은 채 묵념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숱한 사건이 떠오릅니다.
20대 때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서 가장 긴 시’로 다가옴을 느낍니다. 나의 묵념, 너의 묵념, 그리고 우리의 묵념이 더하고 더해져, ‘거대한 침묵’을 이룹니다. 1980년 5월 광주만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해가 돌아올 때마다 다시 ‘묵념’ 앞에 놓인다는 점에서, 어쩌면 앞으로 더욱더 길어질 시입니다.
이 땅의 삶은 때로 남겨진 자로서 징역을 사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어느덧 ‘10년 전’이 되고 만 2014년 이후의 4월은 특히 그렇습니다. 다른 필자들에게 미리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이번 호는 슬픔과 슬픔의 곁, 그것을 둘러싼 침묵이 묻어나는 글들이 도착했습니다. 모두 같은 시기를 앓는가 봅니다. ‘내가 그리는 얼굴’이라는 주제로 이 시기를 돌아보려 합니다. 커버스토리는 두 편이지만, 같은 주제 아래 읽히는 글이 적지 않습니다.
저도, 이별하여, 함께한 시간이 꿈처럼 느껴지는 얼굴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슬픔을 안고 산다는 것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타인의 슬픔에 공명했던 이의 삶을 잘 표현해주는, 다소 감상적일지 모를 구절 하나로 4월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의 울음을 이해한 자는 그 울음에 순교한다.”
강동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