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튀리에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 시몬 베유를 읽는다

[402호 에디터가 고른 책]

2024-04-23     강동석
쿠튀리에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 / 시몬 베유 지음 / 이종영 옮김 / 리시올 펴냄 / 16,000원

시몬 베유(1909-1943), 그녀는 ‘불꽃’이라 불렸다. 한국엔 1978년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로 처음 소개되었다. 남다른 공감과 연민으로 어릴 적부터 가난한 자의 고통에 끊임없이 관심을 두었으며, 밝혀진바 탁월한 지성으로 신에 대한 사유를 끝단까지 밀어붙이려 한 인물이었다. 고등학교 철학 교사로 근무했으나, 노동운동에 몸담아 스스로 공장 노동자로 일하기도 했으며, 스페인 내전에도, 레지스탕스 활동에도 참여했다.

사후 갈리마르 출판사가 16권 전집을 계획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집필량도 보통이 아니었고, 허약한 체질과 잦은 두통에도 저 모든 일에 투신한 뒤, 결핵으로 요양원에서 지내다 서른넷에 타계해 묻히니, ‘불꽃 같은 삶’이라 할 만했다. 1978년 한국에 소개된 생애는 민주화운동 시기와 맞물려 많은 지성인에게 감명을 주었다. 《중력과 은총》 등, ‘정치적 급진주의자’보다 ‘종교적 신비주의자’ 면모로 주목받았지만, 이 둘은 그녀에게 모순되지 않았다.

2019년 말에는 시몬 베유가 “감상주의를 배제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는 미학적·정치적·도덕적 의무를 열정적으로 설파했던 여성” 6인 중 한 명으로서 논해지는 《터프 이너프》라는 책이 번역됐고, 2021년 말에는 저작 세 권이 잇따라 출간됐으며, 2023년 말에는 ‘암흑의 시대에 철학을 구한 네 명의 여성들’이란 부제를 단 《자유의 불꽃》이 그녀가 구축한 독특한 세계를 다루고 있으니, 이 시대 소외된 자들을 위해 다시 호명됐다는 착시도 든다.

개신교계에서는 2020년 번역 출간된 로완 윌리엄스의 《루미나리스》에서 ‘그리스도교를 밝게 비춘 스무 개의 등불’ 중 한 명으로 일곱 페이지에 걸쳐 시몬 베유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하기도 했다. 시몬 베유를 익히 읽어본 이들이라면, 그녀가 끝내 세례받지 않고 소명으로서 “교회 바깥의 그리스도인”을 자처했으며, 독창적 사유로 ‘권력’을 철저히 배격한 신을 사색하여 ‘포기’와 사랑을 지향하는 영성을 밀도 높은 문장으로 논한다는 것을 안다.

서른넷. 시몬 베유가 타계한 나이와 같아져서일까. 요즘 부쩍 그녀의 책에 손이 간다. 이 책은 1942년 이후에 쓰인 그녀의 종교사 관련 글 여섯 편을 실었는데, 세계(동양 포함)·지중해 종교사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전사(前史)를 검토하는 대목 중 일부는 급진적인 주장이라 수용하기에 앞서 논쟁할 지점도 있다. 교회·국가의 편중된 이데올로기를 넘어, 신과 이웃을 향한 신비주의적 영성을 ‘사랑의 광기’로서 최대한 밀어붙이는 사유 방식은 단순하고 선명한 문체로 압축되어 빛을 발한다.

강동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