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NR과 종교문해력

[402호 에디터의 책꽂이]

2024-04-30     강동석

최근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는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 개념을 설명하는 글을 여러 번 접했다. 지난해 《한국교회 트렌드 2023》(이하 규장)이 SBNR 개념을 주요 이슈로 언급하면서 주목을 받았던 모양이다. 이 책은 SBNR을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적 영성을 가지고 있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로 규정하며 ‘가나안 성도’ ‘탈교회’ 현상이 심화되는 한국교회 흐름에서 설명하고 있다.

《한국교회 트렌드 2023》이 정리한 SBNR 등장 배경은 세 가지다. 첫째, 온라인 예배 현실화와 사회적 분위기. 둘째, 2000년대 이후 한국교회 위축과 쇠퇴. 셋째, 제도 종교에서 영성 추구로 바뀌는 시대 상황. 사실 SBNR은 1960년대 미국에서 논의됐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 논의에 불이 붙은 개념이다. 서구의 경우 세속화 이후 교회 출석이 줄면서 종교가 사라지리라 예측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회 출석 인구는 줄었지만, 많은 이의 관심사가 ‘종교’에서 개인 ‘영성’으로 전환되는 종교 지형의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교회 트렌드 2024》에서도 SBNR 현상이 여전히 유의미하게 지속 중이라는 사실을 짚고 넘어간다.

교회는 SBNR이 증가하는 현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찾아보니 여러 대응책이 언급되지만, 교회가 SBNR의 영적 관심을 자극해야 한다는 식의 원론적인 대답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SBNR이 증가하는 것은 비단 개신교에만 해당되는 현상은 아니다. 다른 종교들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이들 가운데서도 명상 등이 대중화되면서 영적인 체험을 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종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서구든 비서구든, 세속화 이후 SBNR이 증가하는 현상은 당연한 수순처럼 보이니 말이다. 마침 이런 시대 상황에 맞춰서 출간된 도서 시리즈가 있다.

불광출판사 ‘종교문해력 총서’ 다섯 권

종교문해력 총서

얼마 전, 불광출판사에서 내놓은 ‘종교문해력 총서’다. 마인드랩과 플라톤아카데미, 그리고 불교 서적을 전문적으로 내는 불광출판사의 수년간 협업으로 다섯 권이 발간되었다. 이 시리즈 서론으로서 종교학을 다룬 《내 안의 엑스터시를 찾아서 – 종교 이후의 종교》(이하 불광출판사), 불교를 다룬 《인생의 괴로움과 깨달음 – 미처 몰랐던 불교, 알고 싶었던 붓다》, 기독교를 다룬 《지금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 길 위의 그리스도》, 이슬람교를 다룬 《이슬람교를 위한 변명 – 무함마드에 대한 우리의 오만과 편견에 관하여》, 원불교를 다룬 《소태산이 밝힌 정신개벽의 길 – 일상에서 찾은 원불교의 영성》이다. ‘다름과 공감하는 시선’을 추구하는 종교 공존 사회의 필독 입문서를 자처하고 있다.

이 다섯 권의 책은 아래 기준에 따라 집필됐다고 한다.

◎ 각 종교 창시자의 삶을 중심으로 그분들이 고민했던 인생의 근본 문제를 중심으로 한다.
◎ ‘또 하나의 개론서’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오늘날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 특히 탈종교 현상 그리고 기후변화와 팬데믹 등 문명전환에 대한 시대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각 종교 전통 고유의 해법과 방향을 제시한다.
◎ 전통적 의미의 신자/신도만이 아니라 이웃종교인 그리고 종교에 관한 인문적·영성적 관심이 있는 일반 독자(SBNR)를 주요 독자로 염두하고 내용을 집필한다.

이 책들의 지향점은 또한 발간사에 적힌 종교문해력에 대한 정의를 보면 알 수 있다.

종교문해력이란 종교를 단지 ‘믿음’의 문제로서만이 아니라 이성적 ‘이해’의 문제로 인식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 종교문해력이 강조하는 비판적 성찰과 모색의 힘은 올바른 종교의 선택과 바른 신행의 지향점을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종교문해력은 이웃종교 나아가 비종교인 그리고 우리 사회의 다른 부문과의 소통역량을 더욱 키울 수 있게 해 줍니다. 자신의 종교를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다른 종교와 세계관을 이해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입니다.

서론에 해당하는 책인 《내 안의 엑스터시를 찾아서》는 비교종교학자인 성해영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썼다. 통계와 종교학 이론을 동원해 오늘날 종교를 바라보는 긍정적 태도와 부정적 태도, 종교를 둘러싸고 교차되는 시선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분석하려고 노력한다. 주요한 종교 비판을 다양하게 검토하고, 그런 비판들에도 왜 종교가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지지 않는지 여러 각도로 돌아본다. 근대 이후 종교 비판의 논리가 날로 새로워져 가는데도, 여전히 많은 이(2015년 퓨 리서치 통계에 따르면, 종교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전 세계 인구 중 84%)가 종교를 갖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저자는 종교가 세 가지 위안을 줘서 그렇다고 답하는데, ‘궁극적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더 큰 차원과 우리를 연결한다’ ‘윤리적 실천을 강조한다’가 그것이다.

정리하자면, 저자는 비교종교학적 탐구를 통해 열린 자세로 각 종교를 논할 기틀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주목할 점은 종교체험에 대한 여러 사례를 학자의 시선에서 잘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임사체험에 대한 이야기, 종교 전통과 무관하게 ‘자연발생적’으로 종교체험을 했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의 세속적 신비주의에 대한 이야기, 종교라는 테두리 바깥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형태의 종교성(템플스테이, 산티아고 순례 등)이 대두되는 현상인 ‘무종교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 등은 다양한 관점에서 종교와 영성을 돌아보게 한다.

저자가 마무리로 제언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이 종교문해력 총서에서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원불교를 소개할 때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태도이기도 하다.

종교는 인간 삶이 고통으로 가득했을 시절부터 희망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 그런데 가혹할 정도로 힘든 시기에 모든 이들을 따스하게 품어주려 했던 종교가 어쩌다 염려와 걱정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왜 우리는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종교를 떠나고 있을까요? 이런 곤혹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종교는 다시금 예수와 붓다의 가르침을 ‘지금 이곳’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가 우리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회가 종교를 염려하는 게 아니라, 종교가 공동체와 구성원들을 진심으로 위로해야 합니다.

‘믿음’이 아닌 ‘이해’의 측면에서 종교를 바라보고 종교 감수성을 높이려는 데 목적을 두는 만큼, 잘 모르는 이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책들이 쉽게 쓰였다. 각 권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본다.

《인생의 괴로움과 깨달음》은 역사적 붓다, 탄생 시점의 최초기 불교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인도학, 철학, 티베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고전인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강성용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부교수가 썼는데, 고대 인도 사상 연구가들이 축적한 언어학·고전학·고고학의 지식을 통해 불교의 원류를 좇는다.

《지금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는 정경일 성공회대 신학연구원 연구교수가 썼다. 예수가 길 위에서 태어나 길 위에서 살다 길 위에서 죽은 ‘길 위의 그리스도’였다는 관점에서 예수의 삶을 전반적으로 돌아본다. 다소 진보적인 관점에서 예수의 인간으로서 면모를 부각한다. 민중신학이나 여성신학 등 소개되는 신학 스펙트럼이 넓으며, ‘돌봄 민주주의’ ‘소진의 시대’ 등 오늘날 시대적 키워드와 맞물리는 내용도 빠뜨리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사회적 영성이 강조된다.

《이슬람교를 위한 변명》은 ‘무함마드에 대한 우리의 오만과 편견에 관하여’라는 부제처럼, 이슬람이나 무함마드를 둘러싼 오해와 가짜뉴스를 바로잡는 데 역점을 두고 서술된다. 이슬람은 폭력적인 종교 전통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와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흥미로운 지점은, 저자인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는 이슬람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연구자이지만, 정작 천주교 신앙을 따른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 점을 내세워 설명의 객관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슬람의 역사는 짧고 무슬림은 극소수이고 주로 외국인이다. 아직 우리 한국인이 편히 이해할 만큼 세련된 우리말로 이슬람에 관해 써서 알릴 지식층이 탄탄하게 형성되지 않았다. 이 책은 그러한 날이 올 때까지 한시적으로 도움을 주기 위해 썼다.

《소태산이 밝힌 정신개벽의 길》은 원불교 교무이기도 한 장진영 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소장이 썼는데,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의 여정과 메시지를 따라가며 원불교를 소개한다. 간석지를 개간해 경제적 자립을 이뤄내고, 최고 의결기구의 남녀 비율을 똑같이 만들고(현 원불교 정수위단도 남녀가 각각 9인이다), 일이나 생활과 함께 마음 공부를 이어가는 길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짚는다.

이 책들은 한마디로 시대 상황에 발맞춰 종교를 설명해내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이 시리즈가 설명해내는 각각의 형상이 해당 종교를 따르는 이들 대부분이 추구하는 전형적인 모습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SBNR이 증가하는 가운데 오늘날 요구되는 종교적 덕목이 무엇인지를 나름대로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