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402호 내 인생의 한 구절]
큰 아들은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와서 그를 달랬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 버린 이 아들이 오니까,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그런데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눅 15:28-32, 새번역)
나는 내가 세운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견딜 수 없는 자괴감을 느낀다. 이 자괴감 이면에는 현실의 나 자신보다 고귀하고 강렬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완벽을 이루는 데 번번이 실패할 줄 알면서도 가사와 육아, 생계를 위한 벌이와 사사로운 감정 노동까지 과도하게 성실한 편이다. 지금은 티끌만큼 나아지긴 했으나 결혼 전의 나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심에, 많은 순간 다른 사람 욕구에 맞춰 행동했다. 남을 돕는 역할을 자처하거나, 내가 손해 보고 말거나. 그럴 때도 씩씩하고 밝은 존재로 보이기 위해 나를 채찍질하다 마음에 병이 생겼다.
20대를 돌아보면 눈물겨운 노력에도 삶의 변화는 지지부진했다. 나와 달리 남의 수고에 묻어가거나 느긋하게 행동하면서 삶의 즐거움과 여유가 묻어나는 사람들을 보면 (내적) 분노가 치밀었다. 직장 동료가 ‘나만큼’ 열심히 일하지 않고 설렁설렁하는 모습에, 내가 일하는 동안 독박육아를 자처하고도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놓지 않는 남편의 모습에, ‘난 원래 이래. 네가 이해해’라며 자신의 이기적인 무책임을 가볍게 여기는 주변 사람들에게 가끔 미친 듯이 화가 난다. 물론 겉으로는 상냥하게 구는 내 이중적인 모습에 스스로 혀를 내두르지만.
어렸을 때 나는 딱히 잘하는 것도 없으면서 작은 일에도 잘 울었다. 느리고, 자주 아프고, 사회성이 부족해 학교생활도 평탄치 않았다. 늦은 밤까지 맞벌이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던 모부(母父)에게 나는 늘 챙겨야 할 짐짝처럼 여겨질까 봐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죄스러운 마음으로 착한 딸이 되겠다는 다짐과 노력들은 가끔씩 모부와 주변 사람들을 웃게 했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이 많이 멍들곤 했다.
그러던 내가 의외의 계기로 가족에게 관심을 받고 자랑거리가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교회에서 대부흥 성회가 열렸다. 나는 새벽 집회까지 꼬박꼬박 참석했다. 부모님과 함께 늘 맨 앞자리를 지켰던 나는 사흘 내내 이유 모를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마지막 날 저녁 집회 때였다. 주강사가 뜬금없이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이 아이는 하나님이 특별히 택한 사람이라고, 백 명 중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한 영적으로 매우 민감한 아이라고, 하나님이 분명히 크게 쓰실 사람이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포했다.
나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형들에게 무시당하고 아버지에게도 주목받지 못한 다윗이 왕이 되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신앙’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모부도 크게 감격했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이 일을 자랑처럼 늘어 놓았으니까. 그날의 경험은 숨겨진 욕망의 방아쇠가 되어 내 인생을 줄곧 따라다녔다.
이후로 매년 두 번씩 부흥회가 열릴 때마다 나는 입신해서 환상을 보는 연기를 했다. 주일이면 새벽기도, 주일학교, 본 예배, 오후 예배까지 영혼이 털려가면서도 자리를 지켰다. 말 잘 듣고 신앙 좋은 어린이로 칭송받고 사랑받는 것은 달콤한 일이었다. 목사에게 사랑을 가장한 성추행과 가스라이팅을 당하면서도 교회가 좋았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면서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다가도 토요일 오후만 되면 얼른 밤이 지나 일요일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신도시 부지가 확정되는 과정에서 교회를 중심으로 한 가족 단위 마을 공동체가 산산조각이 나던 시기에는 아빠와 저녁마다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가 서로 멀찍이 앉아서 눈물로 이 교회를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지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교회가 사라진 후, 교회 옆 커다란 느티나무 동산이 흔적도 없이 깎인 너른 벌판에 서서 상실감에 한참을 울었다.
아빠는 교회가 없어지기 1년 전, ‘20년간 외면해왔던’ 목회로의 부르심에 불순종한 것에 대한 회심(?)으로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 뒤로부터 가난한 개척교회를 살리기 위해 엄마는 생계 전선에서, 아빠는 골방 기도실에서 또 10년이란 시간을 버텼고, 나는 학업과 아르바이트, 선교단체 사역에 3박자로 치이면서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와중에 ‘나만큼’ 헌신하지 않으면서 공동체의 사랑과 유익을 누리는 친구들을 보며 우월감과 질투심에 마음이 분열되기도 했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묵상할 때마다 늘 큰형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이유도 같은 심정의 발로일 것이다. 둘째 아들은 집을 떠나 모든 것을 탕진한 후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그곳에 ‘사랑’이 있음을 신뢰하고, 불안해하면서도 기어코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긴 발걸음은 멈췄다가 움직이길 수없이 반복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큰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생을 경멸하는 마음 이면에 바깥 세계를 향한 불안이 열등감으로 자리 잡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안전한 집을 떠나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공손하게 처신하지만, 집 안에서 그는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도 맺지 못하고 기쁨도 누리지 못한다.
나의 삶은 어떠한가. 착하고 성실한 딸로서 형제 몫까지 책임을 짊어지면서 사랑보다는 상처가 깊어지고 정신과 약 없이는 하루도 잠들지 못하는 마음의 병이 생겼다. 교회를 사랑하고 선교단체에 헌신했던 나는 사실 지금 신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고 모부와 교회로부터 제대로 떠나본 적도 없다. 깊은 분노와 원한에 사로잡혀 몸은 집에 있지만 마음은 집에서 멀리 떠나간 큰아들처럼.
큰아들의 원한은 둘째 아들의 방종과 달리 쉽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돌이키기가 더 어려운 게 아닐까. 이러한 원한은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으니 비정규직이 된 거라며 차별을 정당화하는 말들. 어렵게 얻은 권리가 다른 이들과 쪼개지는 것이 두려운 마음들. 남들이 나와 동등해질 기미만 보여도 흔들리는 불안함. 때로는 두려움과 원한과 분노를 ‘공정’과 ‘정의’로 포장하는 일들까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부유하는 마음들이 초래하는 고통과 편견, 불평등을 매일 마주한다.
용납과 거절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놓치지 않고 주어진 삶을 살며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예수를 묵상한다. 사람들이 함께 있고 싶어 하든, 말씀을 귀 기울여 듣든, 왕으로 삼으려 하든, 배척하고 거부하든, 때리든, 침을 뱉든, 십자가에 못 박든,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던 예수를.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눅 15:32, 새번역)
헨리 나우웬은 “집으로 돌아간다는 건 곧 거룩한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자녀라는 참다운 자아상을 단단히 붙들고 고향을 향해, 즉 진리를 향해 꾸준히 돌아서는 결단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가로막지 않으신다. 그들이 겪는 괴로움을 속속들이 아시며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도 낱낱이 지켜보신다. 그런 그분께로 진정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큰아들의 원한이 아닌,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에 발 벗고 뛰어가 기뻐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판단하고 미워하고 비교하는 이들과,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느리고 서툴고 두드러지게 배제된 이들과 진실한 관계를 맺으며 우정을 나누는 삶. 그 삶을 ‘마땅히’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삶.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내 속의 깊은 원한을 다루고 다시 믿음을 회복하는 지난한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내 믿음의 여정은 불확실한 현재진행형이다. 다시 예수께로 나아가고 싶다.
문슬아
강원도 고성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스테이 ‘고유의 뜰’을 운영한다. 일상에서 길어 올린 마음과 갈등을 글로 쓰고, 지구가 끝나가도 다정함을 잃지 않는 고유하고 근사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