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컬과 복음주의에 여성이 있는가?

[403호 로잔 1974-2024]

2024-05-30     채송희

※ 2024년 3월 26일 서울영동교회에서 열린 로잔너머 이슈 포럼 ‘젠더’ ‘복음주의와 페미니즘,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의 발표문을 수정한 글이다.

1. 서론

제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이하 예장통합)은 현재 6개 에큐메니컬 기관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아시아기독교협의회(Christian Conference of Asia, CCA), 세계선교협의회(Council for World Mission, CWM), 세계 개혁교회 커뮤니언(World Communion of Reformed Churches, WCRC), 복음선교연대(Evangelical Mission in Solidarity, EMS), 미션21(Mission21).

여러분들이 들어본 이름은 몇 개나 되나요? 이 기관들은 개인과 지역교회가 회원으로 활동하는 로잔과 달리, 교단만(혹은 예외적으로 선교단체나 교회협)이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업무상 직간접적으로 이 기관들의 활동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예장통합은 현재 45개의 해외 교단과 선교 협력 관계를 맺고 에큐메니컬 선교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로잔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예장통합 교단이 관여하는 6개 에큐메니컬 기관이 여성과 관련해 어떤 일들을 해왔고, 하는지를 역사적·구조적·신학적 측면에서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이 기관들을 로잔과 병렬해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에큐메니컬 기관의 구조와 활동을 알면 로잔의 젠더 이슈를 다루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2. 에큐메니컬 기관들과 여성

1) 세계교회협의회(WCC): 352개 회원 교단, 120개국, 5억 5천 명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8년에 창립된 WCC는 창립 1년 만에 교회에서 ‘여성의 삶과 봉사(Life and Work) 위원회’를 만듭니다.1) WCC 여성위원회는 전쟁 이후 삶의 회복은 교회와 사회에서 여성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WCC는 이후 여성의 관점에서 성경 읽기 등 여러 여성 이슈에 대한 회의, 프로그램을 엽니다. 이러한 노력이 집결된 것이 1988년부터 10년 동안 진행된 ‘여성과 연대하는 교회의 에큐메니컬 10년’(Ecumenical Decade of Churches in Solidarity with Women)입니다. 이 운동의 결과물로 1998년 WCC 하라레 총회는 다음 내용을 포함한 권고안(reccommendation)을 이러한 행동 지침을 발표합니다. “여성의 목소리와 경험을 존귀하게 여기는 여성들을 위한 신학교육 기회 및 프로그램 제공, 젠더 스터디와 여성의 관점을 포함한 신학 교육과정 개발, 여성·남성·어린이들이 어떻게 하면 정의로운 공동체를 이루며 살지에 대한 여성, 소녀, 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훈련 제공, 참여하는 모든 이들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예배문, 젠더, 언어 정책 수립.”

2013년 부산 총회 때 만들어진 PJP(Pilgrimage of Justice and Peace) 프로그램 안에 ‘여성과 남성의 정의로운 공동체’(Just Communities of Women and Men) 분과를 두고 젠더 이슈에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부산 총회에서 선출된 WCC 의장은 케냐의 여성 평신도 아그네스 아붐(1949–2023) 여사였습니다.

2022년 제11차 총회에서도 본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여성과 남성의 정의로운 공동체’ 사전 대회를 통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선언문을 작성했습니다. WCC는 UN 여성지위위원회와도 긴밀하게 협력합니다. 모든 젠더 기반 폭력에 반대하는 Thursdays in Black 캠페인도 1980년대 이래로 계속하고 있습니다.

2)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100여 개 회원 교단, 15개 교회협의회

WCC가 국제적인(global) 에큐메니컬 기관이라면 CCA는 최초의 지역(regional) 에큐메니컬 기관입니다. 2023년 9월 말 인도에서 제15차 총회가 열렸습니다. 총회에서 의결권을 가지는 총대는 반드시 절반이 여성이어야 합니다. 총회 전에 여성 사전 대회가 있었고 사전 대회에서 나온 선언문이 총회에서 채택되었습니다. 향후 5년간 CCA의 중요 사항을 결정할 실행위원 21명 중 8명이 여성입니다.

3) 세계선교협의회(CWM): 6개 지역 32개 회원 교회

1795년 런던선교회(LMS)로 시작된 CWM(Council for World Mission)은 올해 6월에 총회를 개최합니다. 마찬가지로 32개 회원 교단 총대 4명 중 절반은 반드시 여성이어야 합니다. 2020년에 선출된 CWM의 의장은 남아프리카연합장로교회(UPCSA)의 리디아(Lydia Neshangwe) 목사님입니다. 리디아 목사님은 몇 년 전 UPCSA 교단 총회장이 되었고 지난해 아프리카의 지역 에큐메니컬 기관인 AACC(All Africa Conference of Churches) 역사상 최초로 여성 회장이 되었습니다.

4) 세계 개혁교회 커뮤니언(WCRC): 232개 회원 교단, 약 1억 명

WCRC(World Communion of Reformed Churches)는 세계 개혁교회들(장로교회, 회중교회, 연합교회 등) 모임입니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총회를 했습니다. 총회 전에 여성 사전 대회를 해서 성명서도 나왔습니다. 총회에서 채택한 다섯 개 신학 문서(concept paper) 중 한 개가 ‘젠더 정의’라는 제목으로 나왔습니다. 총회에서 최후에 발표한 단 한 개의 선언문(declaration)은 ‘여성 안수 선언문’이었습니다. 이 선언문을 발표한 이후 WCRC는 회원 교단 중 여성 안수를 허락하지 않은 교단들에서 여성 목사들이 안수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해 선출된 WCRC 의장(moderator)은 여성으로서 레바논 장로교회에서 두 번째로 안수받은 나즐라 카삽 목사님입니다. 2022년 CWM과 공동으로 여성 원탁회의(Women’s Round Table Meeting)를 서울에서 개최했습니다. 본부 내에 젠더 데스크를 두고 있고, 최근에 모든 회원 교단을 대상으로 〈Gender Audit〉이라는 설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5) 복음선교연대(EMS)

EMS(Evangelical Mission in Solidarity)는 독일 서남부 지역에서 시작된 선교단체이고, 지금은 독일(1세계) 정체성을 탈피해 파트너 선교를 지향하는 에큐메니컬 선교 기관입니다. ‘다문화 신학과 교육, 여성과 젠더 부서’(Intercultural Theology and Education, Women and Gender Unit)를 두고 있고 이 부서 책임자는 여성입니다. 홈페이지에서는 이런 글귀를 볼 수 있습니다. “젠더 정의는 선교이며 이 정신은 EMS의 모든 선교 프로그램과 영역에 반영되고 있다. EMS는 이에 기여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도입했다. … EMS 내에서 젠더-적합 언어(gender-appropriate language)를 사용하려는 노력은 여성과 남성을 넘어서는 젠더들을 포함하는 젠더 다양성을 고려한다.”2)

6) 미션21(Mission21)

EMS가 독일에 기반을 둔 에큐메니컬 선교 기관이라면, 미션21은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된 선교 기관입니다. 미션21은 행정 부서 세 개를 두고 있습니다. 재정-IT부, 인적자원부, 그리고 여성과젠더부입니다. 미션21에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유럽 네 개의 대륙 회의가 있는데요. 각 대륙 회의는 정기적으로 청년 워크숍과 여성 워크숍을 열고 있습니다.

위 내용은 제가 아주 가까이에서 접하는 기관들의 삶과 사역(Life & Work)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실무 부서의 배치, 언어 사용, 프로그램, 캠페인, 신학적 어젠다 등에서 여성/젠더 이슈를 계속 다룹니다. 이런 구조적·의식적 노력은 중요합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에큐메니컬 진영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사실입니다.

3. 로잔대회와 여성

세 번의 로잔대회와 대회에서 발행된 문서에 대한 역사적·신학적 정리와 연구는 이미 많이 되어있으니 저는 그중에서도 여성 이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겠습니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아주 오랜만에, 로잔에 관한 공부를 하고 관련 문서들을 읽었습니다. 제 글의 주제와 가장 밀접하게 닿아있는 글은 작년 말에 발표된 백소영 교수님의 〈로잔운동의 “총체적 복음”에 대한 여성주의적 제언〉입니다.3) 물론 백소영 교수님의 논리에 전부 동의하지는 않지만, 로잔운동을 여성주의 관점에서 들여다본 (아마도) 최초의 학술 논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초록에서 밝히듯 이 논문은 “로잔운동이 선교의 지향점으로 제시하는 ‘총체적 복음’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하려는 시도입니다. 저는 로잔대회의 구조, 신학, 참여, 언어 등의 측면을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몇 가지 제언을 하겠습니다.

1) 로잔 문서

가. 언어 

로잔운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세 번의 로잔대회에서 나온 문서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각 대회의 신학적, 실천적 지향을 집대성한 문서들이기 때문입니다. 내용을 살피기 전에 문서들의 언어를 먼저 보겠습니다. 로잔언약(1974년)에서 하나님과 성령님은 모두 남성대명사 ‘He’로 불립니다. 로잔언약, 마닐라선언, 케이프타운서약에 하나님을 지칭하는 단어 ‘아버지’는 각각 3번, 2번, 43번 나오고 예수님을 지칭하는 단어 ‘아들’은 각각 10번, 16번, 56번 나옵니다.

문서가 영어에서 한글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오류들도 있었습니다. 로잔언약 13항에서 영어에는 없는 ‘형제’라는 표현이 번역문에 난데없이 등장합니다.4) 케이프타운서약 2부 IIF 항에는 ‘여자와 남자’(women and men)와 ‘남자와 여자’(men and women)라는 표현5)이 각각 네 번씩 등장하는데, 한글 번역본에는 그중 두 개가 ‘남자와 여자’로 번역되고 한 군데는 아예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이라고 번역되면서 그 표현은 사라져 버립니다. 결국 한글 번역본에서 ‘여자와 남자’라는 표현은 한 곳에서만 살아남게 됩니다.

나. 성경

로잔언약에서부터 지속적으로 강조된 ‘성경의 권위와 능력’(2항)은 베빙턴이 제시한 복음주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성경은 “그 모든 가르치는 바에 전혀 착오가 없으며 신앙과 실천의 유일하고도 정확무오한 척도”(로잔언약 2항)입니다. 그러나 성경 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거나, 역사적으로 성경이 때로는 (특히 여성들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는 사실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런 전제하에 성경의 권위를 대단히 강조하는 로잔 문서들이 작성되었다는 것은 여성 이슈에 대해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세 문서 중 케이프타운서약에는 성경의 구체적인 인물들이 소환됩니다. 그중 여성 이름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26번, 아브라함은 10번 등장합니다.

“성경은 신자들과 신자들의 공동체를 측정하는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아브라함부터 모세, 시편 기자들, 예언자들과 이스라엘의 지혜자들, 예수님과 사도들로부터 우리는 … 성경적 생활양식을 배워야 한다.”(케이프타운서약, 1부 6항) 저는 이 대목에서 나름대로 여성 예언자들과 구약에 분명 존재했을 여성 지혜자들, 혹은 여성 사도들을 떠올리려고 애쓰는 중입니다만 쉽지는 않습니다.

다. 내용

세 개 문서에 여성과 관련된 중요한 항목들이 있습니다.

사회적 참여를 복음전도와 나란히 배열한 로잔언약 5항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종, 종교, 피부색, 문화, 계급, 성(sex), 또는 연령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은 천부적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누구나 존경받고 섬김을 받아야 하며 착취당해서는 안 된다. 이 사실을 우리는 등한시해 왔고, 때로 전도와 사회참여를 위해 서로 상반된 것으로 여겼던 것을 뉘우친다”라고 말합니다. 마닐라선언의 고백 14항은 “우리는, 성령의 은사가 남자든 여자든(영어에는 women and men)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주어져 있으므로, 복음 전도에 있어 함께 동역하며 선을 이루어야 함을 단언한다”라고 선언합니다.

제가 세계 로잔 홈페이지에서 찾은 여성 관련 자료나 강의에서는 이 두 구절을 여성 이슈를 다루는 근거로 많이 제시하였습니다. 실제로도 이 두 가지 입장 ‘여성과 남성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동등하게 창조되었다’와 ‘복음전도를 위해 여성과 남성은 성령이 주신 은사대로 함께 일해야 한다’는 로잔운동의 여성 이슈에 대한 대전제입니다. 여기에 기독교 가정의 중요성, 남편과 아내의 역할 내지는 메타포6)는 계속 강조됩니다.

케이프타운서약은 이전 두 문서에 비해 길이가 훨씬 길고 세계의 구체적 현실을 담기 위한 노력이 보입니다. ‘포르노, 폭력, 탐욕’, 종교적 폭력과 억압을 언급하면서는 ‘인종주의, 흑인노예, 유대인 학살, 인종분리주의, 인종청소, 원주민 학살, 종교전쟁, 정치적·종족적 폭력, 팔레스타인의 고통, 카스트제도의 계급적 억압, 종족학살’을 말합니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구체적인 예로 노예제, 인신매매, 빈곤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여성들은 여기에 제가 나열한 이 문제들에서 이중으로 억압받고 고통당하는 당사자들입니다. 로잔 문서에서는 신기할 정도로 이러한 문제들을 젠더 이슈와 연결하지 않습니다. 여성은 “세계복음화를 위한” 남성의 동반자 혹은 남편의 동반자 아내로 주로 등장합니다.

2) 세계 로잔 홈페이지7)

세계 로잔 홈페이지에는 방대한 양의 자료가 올라와 있습니다. 로잔 홈페이지의 섬네일이나 이미지는 여성의 존재를 가시화합니다. 여러 이미지가 여성들을 보여줍니다.

케이프타운 로잔대회 때에 남편과 나란히 서서 남성과 여성의 파트너십에 대한 강연을 한 레슬리 세그레이브스(Leslie Segraves)8) 씨는 2014년 로잔 40주년 기념 행사에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대략 다음과 같은 발표를 합니다.

“1974년 1차 로잔대회에서 빌리 그레이엄은 참가자의 10퍼센트가 여성이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1989년 2차 로잔대회에서 22퍼센트의 참가자가 여성이었다. 그리고 10퍼센트에 달하는 여성이 회무에서 발표하고 소그룹을 인도했다. 마닐라 로잔대회(1989년)에서 호주의 로빈(Robyn Claydon)이라는 여성은 여성 최초로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여성들만의 네트워크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그녀는 전 세계를 다니며 로잔운동 안에 여성 지도자들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3차 로잔대회에서는 35퍼센트의 참가자가 여성이었다. 또한 발표자, 소그룹인도자의 35퍼센트도 여성이었다. 여성이 남성들과 더불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이유는 세계복음화를 위해서이다.”9)

레슬리 세그레이브스 씨는 로잔을 통해 자신을 포함한 여성들이 사역에 참여하게 된 사실을 매우 감사하게 여기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2010년 케이프타운 대회에서 독일 여성 엘케 베르너(Elke Werne) 씨는 “여성은 2등 시민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습니다.10) 강연에서 그는 ‘로잔언약’이 여전히 예언자적인 문서임을 말하면서, 그럼에도 현실에서 우리는 여성들을 위한 정의에 목소리를 내는 것, 여성을 억압으로부터 해방하는 것에 종종 실패했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여성들에게 그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리를 주지 않고, 혹은 여성을 가르치는 일에서 배제하고 주방에만 가두었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젠더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다양한 은사들이 필요하고 복음으로 세계 여성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고도 말합니다. 강연은 급작스럽게 (남성과 여성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동등하게 창조되었으니) “서로 싸우는 것을 멈추자”는 결론을 냅니다. 세상은 우리가 상보론자(complementarian)인지 평등주의자(egalitarian)인지 관심이 없고, 하나님도 이 문제에는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고 덧붙이면서요. 그녀가 제시하는 대안은 서로의 젠더 차이를 소중히 여기고 함께 섬겨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자는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갈등, 여성이 구조적으로 당하는 차별, 억압 폭력을 언급하는 것은 로잔의 궁극적 지향인 세계복음화를 저해한다는 생각이 여러 글과 강연에서 드러납니다. 과거 민주화운동이나 통일운동에서도 같은 논리가 반복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일, 대의를 이루기 위해 여성 문제는 덜 중요한 문제, 혹은 표면에 드러나서는 안 되는 문제로 취급당했던 경우를 저는 많이 알고 있고 지금도 종종 비슷한 상황을 듣고, 경험합니다. 로잔운동이 복음 전파와 사회적 참여의 양 날개를 강조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젠더 이슈에서는 복음 전파의 대의가 여성들 문제를 가시화하지 못하는 기제로 작동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이러한 논리가 여성들 목소리로 강화되고 확산됩니다.

홈페이지에는 현재 세계선교에 중요한 이슈들을 다루는 ‘이슈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다루는 주제는 다양합니다. 예술, 사업, 어린이와 가족, 위험에 처한 어린이들, 교회 개척, 도시, 창조세계 보전, 디아스포라, 장애인, 자유와 정의, 건강, 힌두교, 통합적 선교(integral mission), 반부정부패, 국제학생사역, 유대인 전도, 리더십 개발, 미전도종족, 미디어, 사역 협력, 펀드레이징, 구술문화, 복음선포, 연구/전략 정보, 성경 보급, 텐트메이킹, 일터사역. 여기에서도 여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슈는 보이지 않습니다.

홈페이지에서 ‘모임’(Gathering)이라는 메뉴도 보입니다. 주로 2000년대 이후의 모임에 대한 정보를 올려놓았습니다. 300개가 넘는 모임 중에서 제 눈에 뜨인 여성 주제의 모임은 단 세 개11)였습니다. 이 세 개의 모임은 모두 복음전도를 위해 여성 리더십을 개발하는 주제로 모였습니다. 저는 로잔 홈페이지에서 리더십 지위에 여성들이 꽤 많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럼에도 로잔은 여전히 여성들의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거나 다루더라도 제한적인 주제로 다룹니다.

3) 제4차 로잔대회와 한국교회

제4차 로잔대회 한국준비위원회 상황은 젠더 관점에서 보면 훨씬 심각합니다. 준비위원회 구성원의 절대다수가 남성입니다.12) 앞서 지적했듯이 로잔 문서들을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해서 생겨난 실수들이 있었습니다. 3월 18일부터 20일에 진행된 ‘제4차 한국로잔 목회자 컨퍼런스’는 한국교회 구조상 역시 참석자 절대다수가 남성입니다. 프로그램을 보니 발표자, 강연자도 모조리 남성이었습니다. 여성의 참여가 세계 로잔 수준에 한참 못 미치며 이는 로잔운동의 정신과 방향과 충돌하는 것입니다.

한국준비위원회 내부 문서에서 이런 구절들을 읽었습니다. (제4차 로잔대회는)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의 발전과 부흥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중대한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됨” “비서구 교회의 선교를 주도하는 한국교회가 … 대한민국의 K-Culture와 한국교회가 추구하는 K-Spirit/K-Soul을 200개국의 참가자들과 공유하므로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함” 등입니다. 이번 로잔대회가 정부 예산 지원을 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걸 염두에 두며 작성된 문서라서 이런 문장들을 썼는지 모르겠으나, 이는 성찰과 반성을 기조로 진행되어온 그간의 로잔대회 정신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문득 로잔, 마닐라, 케이프타운 대회 때에도 주최국인 스위스,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로잔대회를 통해 자국의 영향력을 확산하려는 시도를 했는지도 궁금해집니다.

물론 한국교회가 짧은 시간에 수적으로 급속히 성장한 것은 맞지만 우리는 그 부작용을 곳곳에서 직면하고 있습니다. 청년 세대의 교회 이탈 현상, 교회의 노령화, 한국교회의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구조, 교회의 공공성 약화, 한국교회 신학의 보수화, 공교회성을 상실한 개교회주의 등은 미래 한국교회의 전망이 밝지 않다는 지표입니다. 한국준비위원회는 성취주의적 태도보다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정직하게 응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어린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가진 것들을 세계교회 앞에 정직하게 풀어놓을 때 한국교회도 세계교회도 이후로 복음을 전하고 사회적 책임을 감당할 힘을 하나님께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4. 열린 결론: 에큐메니컬과 복음주의에 여성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그렇다’와 동시에 ‘아니다’입니다. 여성들은 에큐메니컬과 복음주의 진영, 아니 교회가 있는 어느 곳에나 있어서 존재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여성들은 교회 직제에서 배제되거나 리더가 되기 어렵습니다. 여성은 남성의 권위 아래에 보호받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여겨지고, 남성을 돕는 보조적인 존재로 자리매김됩니다. 중요한 어젠다에서 여성의 문제는 다른 중요한(?) 문제들에 밀려나거나 때로는 아예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번 4차 로잔대회에서는 7개의 대주제 아래 25개 이슈 네트워크 트랙이 운영됩니다. 오늘날과 미래의 선교에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주제들을 고른 것이겠죠. 이 중 ‘여성’이라는 단어가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여성 이슈가 다뤄질 만한 주제는 딱 하나 보입니다. 대주제 3번 ‘인간됨에 대한 이해’에 포함된 7번째 주제인 ‘성과 성별’13)(sexuality and gender)입니다. 그러나 이 주제에서 어떤 내용을 다루게 될지는 로잔대회가 준비되는 과정에서 방심하지 말고 지켜봐야겠습니다.

백소영 교수님은 자신의 글에서 ‘여성 의제의 우선성’과 ‘여성 주체화의 긴급성’을 촉구합니다. 이는 이번 로잔대회가 여성 의제들을 다른 담론 뒤에 감추거나 뭉개서는 안 되고 명시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여성들 스스로가 여성 담론의 주체자,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야 할 것입니다. 백소영 교수님은 이어 몇 가지 제안을 하는데요. 첫째는 전통적 여성 담론을 넘어서 기독교적 정체성과 사회적 시의성을 만나게 하는 여성 이해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로잔과 여성 신학위원회’(가칭)와 같은 행정력을 가지는 기구를 만들 것을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합니다. 둘째, 로잔운동이 강조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방편으로 국제적·지역적으로 발생하는 시의적 ‘여성’ 이슈를 신속하게 다룰 상시적 네트워크 기구의 결성을 제안합니다. 셋째, 구체적 여성 이슈 중심으로 에큐메니컬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이 ‘프로젝트형 연대’를 도모할 것을 제안합니다.

위 제안에 모두 동의합니다. 케이프타운서약은 1948년 UN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the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을 인용하며 모든 이들의 자유를 지지합니다. 마찬가지로 로잔이 UN 여성지위위원회(the Commision on the Statue of Women)의 기준, 정책,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로잔의 방향과 정책에 반영하기를 제안합니다.

한국교회에 ‘로잔너머’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로잔 너머를 말하려면 일단 우리는 이번 제4차 로잔대회를 넘어야 합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오늘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이 9월 로잔대회에 반영될 수 있도록 다양한 단위들이 연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시도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 주

1) 이 위원회는 1953년에 ‘교회와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협력 분과’로, 1967년에는 ‘교회와 사회에서의 여성’으로, 1978년에는 ‘교회에서 여성과 남성 공동체’로 이름을 바꿉니다. 
2) EMS 홈페이지
3) 백소영, ‘로잔운동의 “총체적 복음”에 대한 여성주의적 제언’, 〈신학과 사회〉(Vol. 37 No. 4, 2023)
4) We also express our deep concern for all who have been unjustly imprisoned, and especially for those who are suffering for their testimony to the Lord Jesus. → 우리는 또한 부당하게 투옥된 사람들, 특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이유로 고난받는 우리 형제들을 위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
5) 마닐라 선언에서 ‘여자와 남자(women and men)’와 ‘남자와 여자(men and women)’라는 표현은 각각 2회, 7회 나오지만 한글 번역은 women and men을 모두 ‘남자와 여자’ 혹은 ‘남녀’로 번역했습니다. 
6) “성경이 계시하는 인격. 우리는 남편이 보낸 편지 자체가 아니라, 남편의 마음을 담고 있는 편지를 사랑하는 아내와 같은 심정으로 성경을 사랑한다.”(케이프타운 1부 6-A항) “우리는 특별히 남편들이 바울의 가르침에 나오는 남편과 아내에 대한 책임의 균형에 주목하기를 원한다.”(케이프타운 서약 중 IIE. 3-C항) 
7) lausanne.org
8) 로빈 클레이던은 성경 교사, 설교자, 전도자이며 30년 넘게 로잔운동과 함께 국제사역을 해왔다. 그녀는 1989년 로잔 기획위원회의 위원이었으며 회의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했다. 1991년에 로빈은 기독교 여성 지도자를 발굴하고, 훈련하고, 네트워킹하는 데 특별히 초점을 맞춘 ‘로잔 여성 세계복음화 수석 협력자’(Lausanne senior associate for women in world evangelisation)가 되었다. 그 사역의 초점은 유능한 기독교 젊은 여성들이 리더십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젊은 여성 지도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로빈은 여성들이 로잔운동의 모든 차원에서 기여할 기회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큰 격려를 받았다. 그녀는 로잔 국제이사회의 부의장이 되었으며 2004년 태국 포럼의 프로그램 의장을 역임했다. (출처: lausanne.org/leader/robyn-claydon)
9) lausanne.org/content/women-in-lausanne
10) lausanne.org/content/mending-broken-relationships-church
11) ①2019년 6월 2-5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Rise in Strength: Global Consultation for Women in International Christian Leadership ② 2019년 10월 25-26일, 미국 휴스턴 Mobilizing Women for The Gospel ③2024년 1월 10일 온라인모임 Leading with Courage and Competence: Women and Practice of Leadership in Complex Contexts
12) 제4차 로잔대회 한국준비위원회의 성별은 제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고문 5명: 모두 남성 목사, 지도 12명: 모두 남성(목사, 변호사, 장로, 선교사, 교수), 준비위원장 1명: 남성, 부위원장 3명: 모두 남성, 총무 1명: 남성, 각종 위원회 8명: 모두 남성, 실행총무 1명: 남성, 총괄기획본부장 1명: 여성
13) ‘성과 성별’이라는 번역은 한국준비위원회의 번역입니다. 출처: lausanne.kr/outline/

 

■ 참고

〈로잔언약〉
〈마닐라선언〉
〈케이프타운서약〉
김은하, 《생명문명 시대를 연 20세기 기독여성 지도자》(나눔사, 2022)
김회권, ‘로잔과 함께 가는 여정, 그리고 그 너머’, 〈복음과상황〉 396호(2023.11.)
박현철, ‘복음주의 볶음밥’, 〈복음과상황〉 398호(2024.1.)
백소영, ‘로잔운동의 “총체적 복음”에 대한 여성주의적 제언’, 〈신학과사회〉37/4(2023.1.)
이강일, ‘다시 로잔을 생각하다’, 〈복음과상황〉 392호(2023.7.)
이강일, ‘‘화해의 나라’를 가리키는 로잔운동’, 〈복음과상황〉 393호(2023.8.)
로잔 홈페이지(lausanne.org)


채송희
목사. ‘아시아’ ‘여성’ ‘에큐메니컬’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슴이 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서 고되지만 보람차다. 아시아 여성신학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있으며 동시에 예장 총회에서 에큐메니컬 업무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