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에 대해 말하는 법

[404호 이한주의 책갈피]

2024-06-30     이한주

동화가 아닌 소설판 〈옹고집전〉(종합출판범우, 《토끼전 옹고집전 배비장전(외)》에 수록)을 읽으니, 며느리까지 있는 옹고집의 나이가 37세로 나온다. 노인으로 알고 있던 옹고집이 30대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15-16세가 되면 혼인했던 조선시대였으니 30대 후반에 시아버지가 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옹고집과 비슷한 나이인 30대 후반 미혼 청년에게 이런 하소연을 들은 적 있다. “열여섯 살에 몽정을 처음 했는데, 그 후로 20년 동안 참기만 하고 살았어요. 이걸 생각하면 억울하고 비참해요.”

완성된 생식능력을 20년 넘게 사용 못 하는 생물이 인간 말고 또 있을까. 그가 옹고집 시대에 어울릴 법한 ‘혼전순결’을 지키려 애썼던 교회 청년이라 더 안쓰럽고 미안했다.

 

이오진 작가의 희곡집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제철소)에 실린 표제작은 교회 청년이 겪은 섹스에 관한 이야기다. 희곡은 공연 대본이라 상황과 분위기를 상상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 작품은 그냥 읽기만 해도 장면이 떠오르고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개신교인들에게 익숙한 말과 상황들이 재현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목사는 청년들에게 ‘크리스천의 올바른 데이트와 성’이란 주제로 이런 설교를 한다.

데이트를 원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의 데이트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이, 성도들의 눈을 마주치며)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난 크리스천들에게, 데이트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배우자를 만나고, 평생을 함께할 주님의 가정을 꾸리는 것입니다. (사이) 그렇다면 우리는 왜 결혼을 해야 할까요? 대답해보실까요? (성도들에게 묻고, 몇몇이 대답하면) 크리스천에게 결혼은,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고, 가정이란 공동체를 통해 주님 안에서 책임과 질서를 배우는 것입니다. (76-77쪽)

교회에서 자주 듣던 설교다. 교회는 청년들에게 ‘올바른 성(性)’을 설교했고, 올바름의 기준을 가정을 이루는 결혼이라 가르쳤고, 이것을 ‘혼전순결’이란 말로 각인시켰다. 생식능력이 갖춰진 10대 중반에 결혼해 30대 중반에 며느리까지 맞아들였던 옹고집 시대라면 가능할지 모른다. 그 시대의 혼전순결은 2-3년 정도 욕구를 참는 일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우리 시대 청년들은 20년이 넘는 혼전 기간을 보낸다.

생식능력을 갖추는 것보다 그 능력을 억제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일이 과연 창조주의 뜻일까? 섹스에 대한 상상을 음란으로 규정하고, 결혼을 장담할 수 없는 청년들의 섹스를 죄라 단정하는 일이 올바른가? 기도와 인내로 참으라고 어른으로서 청년들에게 말할 자신이 있는가?

차마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 교회는 ‘섹스’ 대신 ‘성’이란 고풍스러운 단어를 택해 현실과 동떨어진 설교를 하는지 모르겠다.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의 주인공인 혜인이. 유치부 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찬양대 반주자로 열심히 봉사했지만 혼전 성관계로 ‘더러운 그릇’이 되어버린 교회 청년은 목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과해. 혼전 성관계를 죄로 단정 짓고 성관계가 서로를, 영혼을 파멸시키는 거라고 말했던 것을 사과해. 그리고 이 교회에 퍼진 소문으로 말미암아 내가 받은 피해에 대해서 청년부 목사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던 것을 사과해. (149쪽)

연극에서 배우는 이 대사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이 대사를 읽을 때 나는 열여섯 살 이후 섹스는 그냥 참아야 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던 청년을 생각했다. 그는 혼전순결만 옳은 답이라 가르쳐준 교회와 그 때문에 겪은 죄책감을 떠올리며 슬픈 표정으로 울었다. 섹스에 대해 말하지 않았거나, 한 가지 답만 말했거나, 잘못 말했던 것을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그 후에 섹스에 대해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박완서 선생이 1989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세계사)에 나오는 주인공 문경은 이혼한 35세 교사다. 그녀는 부인과 사별한 대학 동창 혁주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약속하지만, 두 사람이 처음 섹스를 했던 날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디서부터 혁주와의 잘못이 비롯된 걸까. 첫날부터였다. 처음 혁주하고 자고 난 다음 그가 벽에 걸린 십자고상을 보고 버럭 화를 내던 생각이 났다. 그 여자는 혁주하고 자기 전에 십자고상이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도 못했지만 설사 의식했다고 해도 그걸 안 보이게 감추고 그 짓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신의 눈길이 두렵기는커녕 신이 증인을 서주길 바랄 만큼 그 여자는 그 짓에 떳떳했었다. 그러나 혁주는 정반대였다. 그때부터 벌써 두 사람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163쪽)

문경과 처음 섹스를 했던 날 혁주는 침대 머리맡 위에 걸려있는 십자고상을 발견하고 마치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화를 냈다. 혁주에게 섹스는 십자고상을 감추고 해야 하는 일, 안 보이는 데서 해야 하는 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문경에게 섹스는 소중한 사랑의 행위였고 신이 증인을 서주길 바랄 정도로 떳떳한 일이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작가는 섹스에 대한 이런 어긋남이 가부장제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려준다. 소설에서 혁주는 문경을 배신하고 더 나은 조건을 가진 여자와 결혼하고, 7년 뒤 아들을 얻을 수 없는 처지가 되자 문경이 홀로 낳아 키운 아이의 친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벌인다. 혁주에게 여자는 가정을 이루는 부속품으로 갈아 끼울 수 있고, 자식을 낳는 도구로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다. 섹스를 할 때 그가 가졌던 죄의식은 여성에 대한 이런 왜곡된 욕망과 가치관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소설이 나온 지 한 세대가 지났고 섹스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오갔지만 여전히 교회 안에서 섹스는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어떤 짓이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헌신이 있다면 섹스는 신에게 증인을 서달라고 요청해도 되는 떳떳하고 좋은 일이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클라우디아 피녜이로는 몰입감과 문학성과 사회성을 두루 갖춘 작품을 쓰는 아르헨티나 여성 작가다.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만들어졌고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엘레나는 알고 있다》(비채), 그리고 해마다 가장 뛰어난 범죄소설에 주는 대실해밋상을 수상한 《신을 죽인 여자들》(푸른숲)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와있다. 두 소설 모두 매우 재미있는데, 읽다 보면 아르헨티나인들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가톨릭 신앙이 어떤 방식으로 여성들을 억압했는지 알게 된다. 추리소설이라 자세한 내용을 소개할 수 없지만, 《신을 죽인 여자들》에서 17세 소녀 아나는 섹스에 침묵하고 낙태를 용서받지 못할 죄로 여기는 종교 때문에 죽는다. 사랑하는 딸 아나를 잃은 아버지 알프레드는 30년이 지난 후에도 이런 후회를 한다.

나는 아나가 조금 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아빠여야 했어. 아나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판단 능력을 더 확고하게 믿도록 가르쳐야 했어. 그리고 우리가 종교의 가르침, 하물며 신부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고 해도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도록 교육해야 했어. 임신중지에 관해서든, 종교가 집단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식을 통해 한 가지 방향으로만 생각하게 만드는 문제에 관해서든 말이야. 나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어. 그래서 아나의 죽음은 전적으로 아버지인 내 책임이야. 그건 내 삶에 남겨진 오점이지. (411쪽)

50대 남자 목사인 나는 섹스에 대해 잘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젊은이들에게 해줄 좋은 말도 알지 못한다. 그래도 그동안 배우고 깨달은 한 가지를 말한다면, 섹스에 대해서만 말하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섹스는 두 사람의 마음과 몸을 내어주고 받아들이는 일이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판단 능력을 믿고 결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섹스에 대해 말하려면 각자의 인격과 관계에 대해 말하고 듣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인간의 복잡한 인격과 다양한 관계를 한 가지 방법으로 다 말할 수 없듯이, 섹스에 대해 말하는 법도 한 가지가 아니다. 한 가지 답만 말하는 집단적인 방식이나, 한 가지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비합리적인 방식으로는 섹스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종교의 가르침으로 세워놓은 벽을 치우고, 사제의 권위로 그어놓은 선을 지우고 다시 섹스에 대해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지금보다 더 떳떳하고 다양하게 섹스를 말하고, 자기 자신과 판단 능력을 믿도록 가르치고 응원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한주
대전 주사랑교회 담임목사. 중앙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를 했다. 책과 책 읽는 사람과 책 읽고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좋아한다.